미디엄 쿨 (Medium Cool)
1969년 미국영화
감독, 각본, 촬영 : 해스켈 웩슬러
출연 : 로버트 포스터, 베르나 블룸, 피터 보너즈
마리아나 힐, 해롤드 블랭켄십, 피터 보일
'미디엄 쿨'은 명 카메라맨 출신 해스켈 웩슬러가 직접 감독을 했던 보기 드문 극영화 입니다. 원래 해스켈 웩슬러는 평생 이름을 날린 카메라맨이었습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이었습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66)'와 '바운드 포 글로리(Bound for Glory)'로 두 번의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았고, 그외 대표작으로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68)' '메이트원' 등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숱한 다큐멘타리 영화를 만들었지요.
이력을 보면 대충 '미디엄 쿨'의 영화 형태가 나옵니다. 촬영감독이면서 다큐멘터리 감독, 그리고 사회물에 많이 손을 댄 부분, 1969년 그가 첫 번째로 만든(사실 몇 편 안되는) 극영화인 '미디엄 쿨' 역시 강력한 사회물이자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한 영화입니다.
196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몇년 후이고 민주당 전당대회가 얼렸고,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시카고를 무대로 거리의 시위와 진압, 그리고 취재하는 촬영기사의 상황이 마치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듯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난 참혹한 현상을 취재하는 두 사람, 카메라를 든 존(로버트 포스터)과 조명과 녹음을 담당하는 거스(피터 보너즈)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영화는 주로 존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존은 방송영상을 찍는 카메라 기자입니다. 루스라는 간호사와 사귀고 있고, 장비를 들고 이곳 저곳 찾아다니죠. 그런 존의 취재 차량에서 뭔가를 훔치려던 소년, 존은 그 소년을 쫓아가지만 소년은 도망치고, 소년이 흘리고 간 존의 물건속에 들어있던 비둘기를 발견합니다. 존의 이야기와 그 소년의 집의 이야기가 따로 진행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가 합쳐집니다.
해롤드라는 13세 소년,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고, 아버지는 사망했는데(베트남전에서 사망한 듯 합니다.) 해롤드는 모르고 있죠. 엄마(베르나 블룸)는 웨스트 버지니아 지역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시카고로 이사왔고, 모토롤라 매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해롤드를 키우고 있습니다. 비둘기를 돌려주러 온 존은 해롤드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두 사람은 그게 인연이 되어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뭐 영화가 전적으로 존과 해롤드의 엄마와의 관계로 이어지는 로맨스 분위기는 아닙니다. 그냥 스토리상에 들어있는 이야기이고, 1968년의 여러가지 사회적 상황이 영화의 스토리를 방해하는 듯 하게 수시로 흘러나오면서 다큐멘타리와 극영화의 반반 같은 분위기로 흐릅니다. 존 F 케네디의 이름이 언급되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육성이 TV에서 흘러나오고, 거창한 민주당 전당대회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대대적인 시위를 하는 군중들과 그 시위 진압을 하기 위해서 분주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무장 경찰들의 모습이 나오고,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는 긴장감이 보여지고... 이 장면들이 실제 영상과 영화를 위해서 찍은 영상이 뒤섞여 나오면서 실제 상황과 영화가 별도로 구분되지 않는 현장감이 생생하게 벌어집니다.
주로 핸드헬드 카메라로 들고 찍기를 한 영상들이 영화가 아닌 현장을 찍는 다큐멘터리 영상처럼 보여지고 있고, 이런 장면들은 존과 루스가 벌거벗고 있는 침실 장면들에서도 현란하게 보여집니다. 없어진 아들을 찾기 위해서 시위대와 경찰들이 장악한 혼란스러운 거리를 정신없이 방황하는 해롤드의 엄마의 모습이 굉장히 혼란스럽게 오래도록 비추어지고 있고 그 상황이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상황과 묘하게 겹쳐지기도 합니다.
그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이해해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한데, 그런 만큼 영화는 거창하지 않고 건조하게 진행됩니다. 사람이 만나서 사귀고 놀고 하는 장면들조차 지나가다가 언뜻 카메라로 각본없이 찍은 것처럼 보여지고 있습니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차츰 높아지던 시대, 그런 상황에서 사실을 찍기 보다 원하는 것을 찾아서 찍는 기자와 언론에 대한 비판도 다소 보여지고 있습니다.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노만 메일러 등을 비롯한 당시대와 관련된 인물들이 대사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해롤드와 엄마는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온 가난한 백인 가족을 상징하고 있고.
무려 만 달러의 거금을 발견하여 선뜻 경찰에 돌려준 흑인 택시기사, 그를 찾아서 취재하려는 존, 이 에피소드에서는 흑인 차별과 언론의 안일하고 오만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흑인 택시기사를 방문한 존과 거스를 비아냥대며 협조를 잘 안하는 흑인들, 겨우 당사자와 짧은 인터뷰를 하고 돌아가려는 존을 막아서고 왜 우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취재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흑인들, 그들을 겨우 진정시킨 다른 흑인이 존에게 내가 지금 당신 목숨을 구해준것을 아냐고 묻고 존은 바빠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귀찮아하고...... 300년간의 우리 상황을 왜 15분 인터뷰로 때우냐고 항의하고 그러다가 결국 존은 흥미를 느껴서 그들을 취재하고, 그렇지만 방송국에서는 오히려 질책을 당하고..... 뭐 그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해스켈 웩슬러는 자신의 직업인 카메라맨을 주인공으로 해서 독특한 사회물을 만들어 냈는데, 이 영화는 당시 상영금지 조치도 받고 냉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보면 뭐 그리 저항적인 내용도 아니고 그냥 카메라를 들이대고 보여주는 방식인데 당시 분위기는 이런 부분조차 꽤 민감하게 받아들여진 시기였나 봅니다. 케네디 암살, 마틴 루터 킹 암살, 냉전시대, 베트남전 등 여러갖 민감한 부분때문인지. 감독, 각본, 촬영 등 해스켈 웩슬러는 1인 3역을 했습니다.
존 역의 로버트 포스터는 나이가 들어서 여러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갑자기 다작배우가 되었는데 젊었을때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닙니다. 기억날만한 작품으로는 '엘리게이터'라는 악어의 공포를 다룬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이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이 절묘하게 일치하고 동일한데, 물론 상황은 전혀 다른 부분이지만 두 장면의 연관성을 보며 꽤 공교롭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건과 사건을 취재하는 사람, 하지만 나중에는 그가 사건의 당사자가 되버리는..... 구성까지 거의 흡사한. 참 묘한 결말이지요. 굳이 기승전결의 스토리로 끌고가지 않은, 어느 시기의 어느 시점을 불특정하게 다루고 끝맺는 영화입니다. 그렇게 1968년은 흘러갔다... 뭐 그런 식의. 여기에 존과 해롤드 가족의 비극 같은 내용을 슬쩍 넣어서 극영화처럼 만든 작품이지요. 해스켈 웩슬러가 47세인 1969년에 발표한 영화였는데 그는 2015년 93세로 사망했는데, 사망하기 얼마전까지도 여전히 다큐멘타리 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평생을 카메라와 함께 살아갔던 인물이지요. 그가 '극영화 감독'의 이름으로 나오는 보기 드문 영화가 '미디엄 쿨' 입니다.
ps1 : 1960년대 후반만 해도 미국에서 정치적 비판 성향의 영화는 그 강도가 약해도 금기시된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ps2 : 모든 것은 감시당하고 있다.... 이건 '언론'보다 국가의 통제력에 대한 비판을 담은 부분입니다.
ps3 : 이 영화가 상영금지가 될 수 있는 조치 방안으로 행해진 것이 바로 X등급 판정인데 중간에 두 남녀의 누드장면이 아주 잠깐 나오긴 하지만 사실상 의도적인 상영금지 조치의 방안이었다고 봐야죠. 아무튼 다큐멘타리 방식의 촬영으로 만들어진 대표적 영화입니다.
ps4 : 미디엄 쿨 이라는 제목은 촬영할 때 '미디엄 샷(클로즈엄과 풀 샷의 중간)'을 의미하는 제목일 것입니다.
[출처] 미디엄 쿨(Medium Cood 69년) 카메라와 다큐 그리고 영화|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