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경준과 BBK와는 사업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BBK라고 하니까 'BBQ치킨'과 헷갈려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이는 이명박과 김경준이 함께 설립한 자산운용회사를 말한다. 자산운용회사라는 것은 고객으로부터 투자금을 위탁받아 이를 금융상품에 투자하여 수익을 올리는 사업을 말한다. 특히, 김경준은 'MAF-limited'라는 역외펀드 운용을 통해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았고 거기에 이명박이 개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역외펀드라는 것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투자자들을 모집하여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운용기금(펀드)을 말한다. 다시 말해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고 세금이 대폭 감면되는 곳에 펀드사를 설립하여 거기서 모은 투자금으로 국내증시에서 '외국인 큰 손' 노릇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로스 펀드'니 '이헌재 펀드'니 하는 것이 다 역외펀드를 말하는 것이다.
김경준이 설립한 BBK는 이와같은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된다. 정식 명칭이 'BBK Capital Partners'인 이 회사는 지난 1999년 4월 27일 설립되었으며, 흥미롭게도 'BBK Capital Partners Virgin Island'가 100% 투자한 한국법인으로 되어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듯이 버진아일랜드는 '조세 회피'(Tax Haven) 목적으로 많은 외국 금융사들이 사업등록을 하는 곳이다. 물론, 대개의 경우 서류상으로만 법인 사업소재지로 되어있다. 김경준이 만든 BBK 역시 실제적인 자금운용은 서울에서 하면서 서류상으로만 버진아일랜드를 경유하는 형태로 운용되었다. 이름 뿐인 회사(페이퍼 컴패니)를 통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큰 손' 노릇을 해온 것이다. 바로 그 BBK의 회사 브로셔와 회사 정관 속에 '이명박'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들어가있다는 것을 이번 주간동아(6월12일판)가 특종 보도한 것이다. 박근혜 캠프의 최경환이 공개한 이명박의 명함 하단에도 'BBK투자자문주식회사'라는 것이 나와있다.
BBK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주간동아 보도에 따르면 BBK는 MAF펀드 운용과정에서 투자회사에 위조 및 변조한 펀드운용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이로 인해 대표이사 해임 및 사업등록 말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되어있다. 펀드운용보고서를 위조 및 변조했다는 것은 주식시장에서 작전을 통한 주가조작에 개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펀드 운용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면 펀드운용보고서를 위조하거나 변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증권가에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당시 BBK 주가조작을 통해 수많은 개미 투자가들이 천문학적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그와같은 상황에서 이명박이 BBK 회사 정관에 이름이 명기되어 있고, BBK 회사 브로셔에 대표이사로 사진이 실리고, BBK 회사 명함을 들고다녔다면 이는 중대한 팩트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001년 초 증권가에 솔깃한 소문이 나돌았다. 소문은 “광주은행에 자회사격인 (주)뉴비젼벤쳐캐피탈(종목코드 022780)이 외국계 기업으로 넘어가 M&A 된다”는 호재성 뉴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2001년 4월 27일 (주)뉴비젼벤쳐캐피탈 사는 (주)옵셔널벤쳐스 코리아로 상호를 바꿔달고 새 주인을 맞았다. 이사진 8인이 전원 미 시민권자들인 외국인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실상 내면을 살펴보면 1.5세 격인 김경준과 그의 누나인 에리카 김이 이사진에 포함된 ‘검은 머리 외국인’이었다. 더욱이 이명박이 이 회사의 대주주이며 회장이라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2001년 상반기 가장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인 종목으로 '황제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옵셔널 벤쳐스’라는 새 간판을 내걸고 거래가 재개된 이회사 주식은 이 같은 소문이 사실화되는 과정에서 단기 3개월 만에 800% 대의 고공행진(1,000원대에서 8,000원대에 육박)을 벌이며 ‘화제주’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김경준은 8개 해외 벤쳐기업들에 투자한 것처럼 거짓 공시한 뒤 주가조작에도 가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전체 지분을 몽땅 팔아버리는 수법으로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 김경준은 소위 ‘작전세력’을 규합해 주가 조작을 통해 부당이익까지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류조작 및 공문서 위조에 있어 에리카 김이 가담한 것으로 보여지는 가운데 김경준이 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5개 회사 중 4개의 회사의 대리인이 에리카 김인 것으로 확인되었다.이 과정에서 수많은 서민들이 '깡통'을 찼고, 그 분을 이기지 못한 채 금감원과 회계감사법인 앞으로 작성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등 당시이 사건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었다.
수많은 서민들로 하여금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주가조작 및 공금횡령 사건의 배후에 김경준과 에리카 김이 있고, 에리카 김과는 후원자로서, 김경준과는 동업자의 관계에 놓여있는 이명박이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돌연 사기사건의 주범에서 피해자로 둔갑되어 있다. 이명박은 자신이 35억의 피해를 입었고, 친형인 이상은이 대표로 있는 (주)다스(구 대부기공)의 투자금 190억 중 회수하지 못한 140억 등 도합 175억원의 민사 피해보상 소송을 김경준을 상대로 제기했다. 또한, 이명박 측은 “옵셔널벤쳐스 코리아 투자에도 참여 65억원의 피해를 본 사실이 있다”고 소장에 명시했다.
정말로 이명박이 피해자였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황들이 많다. 이명박 측은 “사업 추진 당시 지분을 출자해 참여한 적이 있으나 김경준이 ‘역외펀드 운용보고서 허위기재’ 등으로 그의 사업체인 BBK사가 라이센스를 취소 당하는 등 물의를 일으켜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는 생각에 사업관계를 끊었다”고 주장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옵셔널벤쳐스코리아에 자신이 35억을 직접 투자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형이 경영하는 (주)다스로 하여금 190억원을 투자하도록 하였다.
이명박 측은 김경준 주가조작/공금횡령/자금해외유출 사건과 관련 '나도 피해자 중 하나'라는 주장과 함께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경준 및 BBK와 자신이 무관하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진실을 호도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에리카김-김경준 스캔들'은 크게 세가지 소송사건에 휘말려있다. 첫째는 (주)심텍과 관련된 건이고, 둘째는 (주)다스와 관련된 것이고, 셋째는 주가조작 및 투자금 횡령의 피해자인 개미투자자들의 집단소송이다. 이명박 측이 주장하는 '무혐의'는 (주)심텍과 관련된 것이며, 나머지 2개 사건에 대해서는 김경준의 해외도피 및 범죄인송환 지연으로 '미결' 상태에 남아있다. (주)심텍과 관련된 사건에 있어서 '무혐의'를 받은 것은 당사자간 합의로 사건이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에 검찰에서 조사를 종료시키기 위한 요식행위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그것을 갖고 '팩트'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의도된 행위'에 해당된다. 참으로 나쁜 사람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검찰 조서 상에 "이명박은 BBK 사건과 무관하다"는 문구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애시당초 관련이 없다면 왜 굳이 이러한 문구가 등장하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 중요한 진실이 숨어있다. 검찰이 미친 사람들이 아닌 이상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해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문구를 남길 이유가 없다. "박근혜는 BBK 사건과 무관하다"고 하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가 되겠는가? 결국, 이를 심층적으로 유추해보면 "이명박은 BBK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이 35억원을 사기당한 (주)심텍과의 합의를 위한 협상조건일 가능성이 높다. 즉, 35억원을 모두 돌려주는 대신 "이명박이 BBK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을 증언해주도록 요청했고, 이를 (주)심텍측이 받아들여 사건이 무마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애시당초 (주)심텍 사건은 이명박이 공동피고인으로 연루된 사건이었고, 이에 대해 (주)심텍 측은 "이명박이 나를 믿고 투자해달라고 했기에 투자했다"는 주장을 당시에 폈었다.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댓가로 35억원을 돌려주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명박이 설립한 LK이뱅크와 BBK가 '서울 중구 태평로2가 150번지 삼성생명 빌딩 17층'이라는 동일 주소지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정관도 가짜고, 회사 브로셔도 가짜고, 명함도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왜 두 회사가 같은 주소지를 사용했을까? 이토록 명백한 팩트들이 산적해있는데도 왜 언론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까? BBK가 금감위에 제출했던 모든 서류들, 이명박이 설립한 LK이뱅크와 관련된 모든 서류들, 그리고 김경준이 위조/변조한 펀드운용보고서 등을 검토해보면 분명한 진실이 드러날텐데... 모든 자료들이 사실상 다 공개될 수 있는 것들이고, 변조와 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자료들이므로 '진위 논란'이 발생할 여지도 전혀 없다.
(2) 미모의 미국 변호사 '에리카 김'과는 어떠한 관계인가?
때는 1994년. 이명박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미국 LA를 방문하게 되고 여기서 에리카 김이란 미모의 여성을 만나서 이상야릇한 춤을 함께 함으로서 악연이 시작된다. 당시 에리카 김은 유부녀였기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이상하게 퍼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로 에리카 김은 한국을 자주 왕래하였고, 이명박 덕분으로 뜨기 시작한다. 서로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 두 사람은 그 후 한국과 미국에서 자주 만나는 장면이 목격되었고, 이명박은 에리카 김이 한국에 올 때마다 공항 영접 및 차량 제공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된다.
이들의 관계가 언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95년 에리카 김의 자서전격 에세이‘나는 언제나 한국인’ 출판회였다. 이날 참석한 정치인들을 꼽자면 강영훈, 서영훈, 홍인길, 강삼재, 김덕룡, 이명박, 최불암, 구천서, 강인섭, 김원기 허진석 등 거물급 인사 2백 여명이었으며, 이같은 대성황에 힘입어 에리카 김은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된다. 바로 이 자리에서 이명박은 에리카 김과 함께 축하 케이크를 잘랐고, 그 리얼한 장면이 KBS 아침마당 프로에서도 방영되었다. 그 때 에리카 김의 나이가 불과 30살 전후였으니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인 지난 74년 이민을 와 미국 명문 코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UCLA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 불과 27세의 젊은 나이에 변호사가 된 에리카김은 이렇듯 순식간에 한국의 거물급 인사들과 연분을 맺고 있는 ‘유명인사’가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때부터 서서히 이명박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명박이 에리카 김의 후원자라는 설이 조금씩 신빙성있게 흘러나왔다. 이후 에리카 김의 유명세가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자 서영훈은 이를 두고 “저렇게 설치면 정치인들이 가만 두지 않을텐데...”라며 주변 사람에게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명박에게 친 남동생인 김경준을 소개한 사람이 바로 누나인 에리카 김이었다. 김경준은 차익거래(아비트리지)를 통해 국내외 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BBK투자자문을 설립해 파생상품 거래를 중심으로 지난 97년 주가지수가 29% 하락하는 동안 수익률 75%, 2001년 주가지수가 74% 하락하는 동안 31%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은 김경준의 투자 실력에 상당한 신뢰를 나타냈고, 결국 'LKe뱅크'라는 회사를 이들과 함께 설립하게 된다. 여기서 L, K, e는 각각 이명박, 김경준, 에리카 김을 뜻한다.
(3) 현대건설 파산의 원인 제공자는 정몽헌 아닌 이명박이다?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에서 채권단에 의해 현대건설 사장으로 임명된 심현영 사장(2001년 5월~2003년 3월 재직)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당시 현대건설은 욕심이 지나쳤어요. 열심히 해외 건설사업을 해왔지만 공사대금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엄청난 부채들이 누적되어 있었죠. 이라크의 철도공사만 해도 10억 달러에 달하는 공사 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죠. 마구잡이 수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익성 있는 기술집약형 공사만을 선별 수주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공교롭게도 현대건설이 이라크에 처음 진출한 것은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에 취임한 직후인 1978년부터다. 그러나, 그 후 이라크는 1980년부터 88년까지 무려 8년간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고, 같은 기간 쿠르드족을 화학무기까지 써가며 대량 학살하여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1990년과 1991년에 걸쳐 걸프전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로인해 이라크 경제는 완전 초토화되었을 뿐아니라 경제제재 조치로 인해 원유 판매에 제동이 걸려 대외지불능력에 결정적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결국 이것이 현대건설 이라크 미수금으로 이어졌으며, 바로 이것이 현대건설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대건설의 미수금이 당시 이라크에 진출했던 한국기업 미수금 총액의 90%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라크 진출 전세계 민간기업 채권액의 4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시 이라크 건설시장에서 현대건설의 시장점유율이 40%였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1980년대에 지속된 이라크-이란 전쟁으로 인해 외국기업들은 1차 탈출 행렬일 이루었고, 90년대 초의 걸프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은 모두 이라크를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설만 꿋꿋이 이라크에 버티고 앉아서 무리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공사를 강행해나갔던 것이다. 현대건설 여동진 해외사업본부장은 작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건을 계기로 아무리 규모가 큰 공사라고 하더라도 공사비를 받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공사를 수주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얼마나 뼈저린 반성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이 이라크에서 철수를 마쳤던 1990년대 초까지 직원들에 대해 이라크 잔류를 지시하며 공사를 강행하도록 한 것은 '미친 짓'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묻지마 수주'와 '묻지마 시공'이 기업의 재무구조에 치명타를 입혔을 뿐아니라 직원들의 안전과 생명마저 위협한 처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현대건설 부도 문제에 대해서는 재임기간을 이유로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CEO 재직기간 중 벌어진 걸프전쟁 당시의 무모함에 대해서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걸프전쟁 당시 이라크 현장에 남아있던 현대건설의 한 직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발발된 걸프전쟁은 이라크에 있던 모든 외국인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이라크는 화학무기로 위협하고, 미국은 화학무기를 쓸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떼니 이라크에 있던 외국인들은 모두 철수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 직원들은 본사의 이명박 회장으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공포에 떨며 영국의 단파방송인 BBC라디오에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지나게 되었다. 결국에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던 91년 1월 14일가지 이라크의 북부 키르쿠크에서 나오지 못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총격적을 천장 속에 숨어서 기도를 하며 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이라크인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이라크 북부 슐레마니아를 거쳐 시리아와 이란을 거쳐 귀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인은 전쟁이 나기 하루 전인 1월 13일 바그다드에서 택세로 약 1,000km를 달려 요르단 암만을 통해 귀국했습니다."
(4) 거짓 자술서를 토대로 김유찬 '양심선언'을 정치공작으로 매도?
96년 15대 총선 서울 종로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명박은 선관위에 선거비용을 보고할 때에 약 7,100만여 원을 신고하였다. 그런데 이는 꼴찌를 기록한 '장군의 딸' 김을동(송일국의 어머니, 탤런트)의 9,300만여 원 보다 훨씬 적고, 3등에 그친 노무현의 7,300만여 원 보다도 적은 것이었다. 이를 두고 당시 노무현 후보는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코미디"라고 일갈했다.
그런데 문제는 선거 당시 이명박 캠프의 인원과 활동상황이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도 장난이 아니었다는 데에 있었다. 특히, 선거를 위해 동원한 아르바이트인력 일당을 2만원으로 신고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경쟁후보 측에서는 통상적인 일당이 3만원이고, 선거의 경우 4~5만원이 관행인데 2만원인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캠프 인력이 타 후보와 비교도 안 되는 6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도 쟁점이 되었다.
결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명박 선거운동에 대한 전면 실사를 시작했고, 그런 가운데 자금담당 참모였던 김유찬이 폭로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김유찬의 기자회견에 있어서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김유찬은 "선거를 승리로 이끈 만큼 당시 6급이었던 내 직급을 당연히 5급으로 올려줄 것으로 생각했고, 이 문제를 이야기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하더라. 그래서, 같은 당 이재창 의원 비서관으로 옮겨갔는데 이명박이 이재창을 따로 만나 나에 대해 네거티브 발언으로 일관했다고 훗날 들었다. 그래서 인간적인 모멸감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김유찬이 9월 10일 기자회견을 하자 이명박 측은 비상사태에 직면했다. 그는 이광철 등 비서진들을 총동원하여 김유찬 검거령을 내렸고, 김유찬을 잡아온 이명박은 회유와 협박을 일삼다가 김유찬으로부터 끝내 '해외로 도피하겠다'는 결단을 얻어냈음. 마음이 바뀔까 봐 두려웠던 이명박은 이광철 차량 트렁크에 현금 2,000만원을 싣고 김유찬 일가족 4명에 대한 홍콩행 비행기표 4장을 구매토록 했고, 미화 1만 8천 달러를 '도피자금'으로 건네주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혹시라도 김유찬이 딴 짓을 할까봐 두려웠는지 이광철에게도 오사카행비행기 표를 끊어주고 그로 하여금 공항 출국심사대를 통과하여 김유찬이 최종 게이트로 탑승하는 것을 확인토록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광철이 치밀하지 못하여 출국절차를 밟은 후 재입국 절차 없이 그냥 공항 내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광철의 경우 출국 기록은 있는데 입국 기록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이것이 검찰에 꼬리를 잡혀 이광철은 순순히 자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로인해 이명박의 파렴치한 범죄는 만 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출국시키면서 김유찬으로부터 강제로 받아낸 편지 한장을 들고 그 다음날 유유히 기자회견을 하면서 김유찬의 기자회견이 국민회의 측의 '정치공작'이라며 공세의 고삐를 당겼다는 것이다.
결국, 97년 9월 1심법원의 유죄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이명박의 '뒤집어 씌우기' 정치공작은 그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사실이 또 하나 제기되었다. 그것은 이명박이 김유찬에 대해 위증의 대가로 1억 2,500만원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측은 위증을 했다면 유죄 판결을 받았겠냐며 '흑색선전' 운운하고 있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위증의 목적은 '무죄'를 선고받기 위한 것 뿐만이 아니다. '중죄'를 면하기 위해 위증하는 것도 매우 일반적인 형태이다. 만일 김유찬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액면 그대로의 진실을 밝혔다면 이명박이 징역 등 사법처리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여간 사태를 조작하고 호도하는 능력 만큼은 이명박이 분명 프로급이다.
(5) 죽을 병 걸려 병역 면제 받은 사람이 투병생활도 후유증도 없었다?
불과 한달 전인 1963년 8월 15일 '기관지 확장증 고도'와 '악성 축농증'을 앓아서 병역까지 면제받고 곧바로 병원에 가서 1개월간 있다가 9월 15일 경에 나왔다는 사람이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대포를 마시고 연일 소리를 질러가면서 선거연설을 한 후 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되었다는 것은 무협지보다 더 황당한 일이다. 여러 의사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니 당시 '기관지확장증 고도'라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확률이 매우 낮다고 말한다. 숨이 가쁘고, 온몸이 들썩일 정도로 기침을 심하게 하고, 가래를 뱉어내기에 여념이 없으며, 심해지면 수술을 해서 목에 구멍을 내는 무서운 병이 바로 '기관지확장증 고도'라는 것이다.
특히, '기관지 확장증 고도'가 되면 자각증상이 있었을 뿐아니라 병에 대한 공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한 '악성 축농증'을 앓는 사람 역시 나오는 누런 코를 주체할 수 없어 하고, 골이 쪼개질 듯 아픈 등 고통에 시달린다. 이 두가지 병을 동시에 심하게 앓고 있는 사람이 자각증세를 느끼지 못하고 군에 자원 입대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코미디다.
이명박은 병적기록상 "1964년 징병처분 미필"로 기록되어 있다. 이명박 측의 해명을 보면 이명박이 1964년 상반기의 신체검사에 응하지 않은 것은 6.3 시위의 중심인물로 시위 준비를 주도했기 때문이고, 이는 불가피한 사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1964년 3월 28일자 고대신문을 보면 이명박은 동년 3월 26일에 한일회담 반대를 위한 좌담회를 열고 있다. 데모 준비를 위해 징병 검사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데모를 위해 징병검사에 응하지 않은 것이 무슨 '불가피'한 일이고 '정당한 일'인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군의관으로부터 '기관지 확장증 고도'와 '활동성 폐결핵'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면 곧바로 전격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폐결핵은 감염성이 대단하므로 식구들까지도 접근하기를 피하는 병이다. 가개를 수시로 뱉어내고, 얼굴이 노랗고, 기침을 하는 등의 증세를 보이는 병이기 때문에 타인들도 쉽게 알아보고 접근을 피하는 몹쓸 병이다. 당연히 격리 수용하여 치료를 하는 병이었으며 60년대 당시에 '죽음의 병'이었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의학 상식이다. 그렇다면 이명박은 병원 등에서 생과 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병마와 싸워야만 했다.
그런데 그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신체검사장을 나오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정상인 이상의 건강을 자랑하며 같은 해 4월에는 대구의 모 섬유회사에 취직하여 사장으로부터 가정교사를 겸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가 한 달 만에 서울로 올라와 1965년 7월 1일부터 현대건설에 출근했고, 그 해 여름에는 정주영 회장과 28명의 신입사원들이 벌인 '술 마시기 대회'에서 천하장사를 했고, '기관지 확장증 고도'와 '폐결핵'에는 독약으로 알려진 콘크리트 가루와 흙먼지를 마셔야 하는 건설 현장에서 근무했고, 섭씨 40도가 넘는 열사의 나라 태국과 중동 등 세계 각곳을 누비며 입사 11년만인 1977년 1월에 현대건설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병무청 군의관의 판정이 맞다면 최소한 1965년 당시에 이명박의 얼굴은 병색이 완연한 상태여야 하며, 그와같은 사람이 어떻게 섬유회사 사장으로부터 가정교사(당시에는 대부분이 입주 교사였음.) 자리를 제의받고, 어떻게 현대건설의 면접과 신체검사를 통과할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 '기관지 확장증 고도'와 '활동성 폐결핵'에게 있어서 술, 먼지, 콘크리트 가루는 그야말로 극약과 마찬가지인데 이 모두를 거뜬히 소화하면서 섭씨 40도의 열사의 땅까지 자원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이명박은 '폐결핵' 환자도 아니요, '기관지 확장증 고도'는 더더욱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6)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숨겨놓은 주식이나 땅은 전혀 없다?
이명박의 친형이 사장인 (주)다스의 최대 주주는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이다. 그는 전체 지분의 49%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이명박의 형인 이상은 지분 46%보다 더 많다. 최근 이명박이 해명할 때 처가 쪽은 회사원과 언론인이며, 막대한 재산을 가질만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와같은 상황에서 연간 매출 3,000억원에 순이익 수십억원 짜리 회사 지분 50% 가까이를 처남인 김재정이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더욱 웃긴 것은 왜 중소기업을 쭈~욱 경영해온 친형을 제치고 자신의 처남을 최대주주 자리에 앉혔을까 라는 점이다. 혹시, 형도 믿을 수가 없어서? 큰 돈을 벌만한 그 어떠한 일에도 종사하지 않았던 김재정이 수천억 짜리 회사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차명재산' 의혹이 불거지는 것이다.
김유찬이 폭로한 '이명박 리포트'에 따르면 김재정은 20평대 아파트에 전세 살면서 국민임대주택 응모를 검토할 정도로 형편이 넉넉치 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명박이 소유한 건물의 관리인 역할을 하면서 식당을 운영했는데 임대료를 낼 수 없어 수개월 연체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주)다스 지분이 진짜 김재정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황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정주영을 능가하는 '자린고비'이던지, 아니면 이명박이 거짓말하는 것이던지 둘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김재정은 강남 일대에 천여 평의 땅을 소유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 시세평가액만 하더라도 족히 천억원대 자산가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김지하씨가 격렬하게 비판했던 강남 일대 땅 중 일부가 바로 김재정 명의로 되어있다고 한다. 김유찬은 '이명박 리포트'를 통해 이명박 재산 의혹의 열쇠를 김재정이 쥐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주)다스와 관련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회사가 정말로 이명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왜 지방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친형 이상은이 생면부지 김경준에게 백억이 넘는 돈을 투자했겠는가? 더욱이, 중앙일보는 지난 2002년 이명박 대리인인 김백준 서울메트로 감사가 에리카 김에게 편지를 보내 '(주)다스 투자금 문제에 대해 긴급 상의하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친형이 경영하는 회사에 대해 상의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친형 이상은 명의 회사 주식은 물론, 김재정 명의 회사 주식과 강남 부동산 등이 사실상 이명박의 '차명 주식 및 부동산'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다스의 1년 순이익이 약 100억원 규모이고 시중금리가 5% 내외임을 감안할 때 이 회사의 자산가치는 대략 2,000억원 정도가 된다. 여기에 김재정 명의 강남 일대 땅과 이명박-이상득 명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최소한 4,000~5,000억원 수준에 이른다. 박근혜 측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근혜사랑) = http://cafe.daum.net/ilovehye/
줄푸세 = 선진화 운동
“줄푸세” 는 박 전 대표의 “경제살리기 해법” 신조어(新造語)다.
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 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 고,
법질서를 “세” 우자.
첫댓글 명박상 자진해서 출두하시지 ..있는돈 더 쓰고 가시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