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開天節)
요약(要略) : 한민족(韓民族) 최초(最初) 국가(國家)인 고조선(高朝鮮) 개국(開國)을 경축(慶祝)하기 위하여 제정(制定)한 국경일(國慶日) 10월 3일(十月 三日) 서기 전 2333년(西紀 前 二三三三年) 단기 1년(檀紀 一年) 무진년(戊辰年) 음력 10월 3일(陰曆 十月 三日)에 국조(國祖) 단군(檀君)이 최초(最初) 민족국가(民族國家)인 고조선(高朝鮮) 개국일(開國日)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制定)하였다.
개천절(開天節)은 ‘개천(開天)’의 본래의 뜻을 따질 때 고조선(高朝鮮) 개국일(開國日)을 뜻한다기보다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환웅(桓雄)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白頭山) 신단수(神壇水) 아래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상원 갑자년(上元 甲子年) 서기 전 2457년(西紀 前 二四五七年) 음력 10월 3일(陰曆 十月 三日)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개국을 경축하는 국가적인 경축일인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다.
민족의 전통적 명절을 기리는 행사는 먼 옛날부터 제천행사를 통하여 거행되었으니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마니산(摩尼山)의 제천단(祭天壇),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등에서 각각 행해진 제천행사에서 좋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우리 민족은 10월을 상달(上月)이라 불러 한 해 농사를 추수하고 햇곡식으로 제상을 차려 감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천행사를 행하게 되는 10월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3일의 3의 숫자를 길수(吉數)로 여겨 왔다는 사실은 개천절의 본래의 뜻을 보다 분명히 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명절을 개천절이라 이름짓고 시작한 것은 대종교(大倧敎)에서 비롯한다. 즉 1909년 1월 15일서울에서 나철(羅喆 : 弘巖大宗師)을 중심으로 대종교가 중광(重光 : 다시 敎門을 열다)되자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하였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개천절 행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상해임시정부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여 경축식을 행했고 충칭(重慶) 등지에서도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행사를 거행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식 제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르던 대종교의 「개천절 노래」를 현행의 노래로 바꾸었다.
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므로 대한민국 수립 후까지도 음력으로 지켜왔는데 1949년에 문교부가 위촉한 ‘개천절 음·양력 환용(換用)심의회’의 심의결과 음·양력 환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와 ‘10월 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에 따라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종교에서 행하던 경축식은 국가적 행사에 맞추어 양력 10월 3일에 거행하고 제천의식의 경우만은 전통적인 선례에 따라 음력 10월 3일 상오 6시에 행하고 있다.
이 날은 정부를 비롯하여 일반 관공서 및 공공단체에서 거행되는 경축식과 달리 실제로 여러 단군숭모단체(檀君崇慕團體)들이 주체가 되어 마니산의 제천단, 태백산의 단군전,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의 백악전 등에서 경건한 제천의식을 올리고 있다.
檀紀 4357年 開天節을 慶祝하며 南.北韓 8千萬 民族의 平和統一을 祝願하고 祈願합니다
첫댓글
강인님
단기 4357 개천절을 축하합니다
오랫만에 개천절 노래를
들으니
감동입니다
긴해설까지 수고하셨습니다
금송 선배님!
감사합니다.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국민학교시절 전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개천절 노래 부르던 날들도 있었는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강인님!
좋은 계절에 행복 가득 하십시요.
솔체 회장님!
감사합니다.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