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기나무 / 김춘리
아이는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
비행기 통로를 서성거리며
입양아를 부둥켜안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은발 남자의 눈은 회색이어서 머리는 새털 같고 덤불 같았다
제가 잠시 안아볼까요?
그는 웃으며 정중히 사양했다
제 아이입니다.
딱 한 번 가 보았던 할머니 집으로 엄마를 찾으러 간 적 있다
엄마는 반기지도 안아주지도 않았다
엄마의 어깨 위에는 새집 같은 덤불이 얹혀 있었다
한 번도 새가 깃든 적 없는
담벼락 떨기나무는 덤불에 가려져 있었다
바람이 불면 총 맞은 것처럼
비둘기나 도요새 무늬 같은 덤불이 펄펄 날렸고
새를 더럽힌다며
엄마는 떨기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덤불에 스며든 빛은 아름다운 스테인리스 무늬처럼 보였다
틈새로 나를 찌르던 빛을 시간이라고 불렀다
혼잣말이 익숙해서 뱉지
못한 말이
입안에 가득했을 때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가끔 떨기나무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 시집 『평면과 큐브』 (한국문연, 20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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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리(金春里) 시인
춘천출생,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모자 속의 말』 『평면과 큐브』
공동시집 『언어의 시, 시와 언어』
2012년 천강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