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르 증후군(Cotard's syndrome)
난 코타르 증후군(Cotard's syndrome) 환자이다. 걷는 시체 증후군(Walking Corpse syndrome)이라고도 불리는 병이다. 가장 희귀하고 특이한 정신질환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1882년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였던 쥘스 코타르(Jules Cotard, 1840~1889)에 의해 명명됐다. 마치 꽃이 꽃이라는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존재하듯이 그렇게 세상에 나타났다. 그는 '마드모아젤 X'라는 가명의 한 여성 환자를 진단했다. 그녀는 지독한 자기 혐오증에 시달리며 자신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뇌와 신경, 췌장, 가슴 등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심각한 우울증의 상위 버전이다.
그녀는 결국 신에 의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식사, 일상생활의 모든 것들을 거부하다 좀비처럼 변해 결국 굶어 죽었다. 비현실적인 믿음과 죽음에 대한 확신으로 시작된 병이다. 십이지장과 위를 버리고 삶의 싱그러움을 던져버린 다른 삶을 선택한다. 죽음의 누더기 옷을 걸치고 사는 삶은 언제부터인가 기생충처럼 내게로 파고 들어왔다. 시작도 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차감해 버리는 병이다. 난 삶에서 무엇을 얻었던가? 잃었던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존재를 거부하거나, 썩어간다고 믿거나 , 몸 안의 모든 장기나 혈액 또는 심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심장이 없어."라는 노래에 무한 수긍을 한다. 주문처럼 온몸을 타고 흐르는 내 최고의 자가(自歌)이다. 심장이 마음대로 질주하다가 가출했다. 아직은 살아있다는 믿음에 "응, 아냐 넌 죽었어!"라는 별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나와 밀당하는 지구에게 살아있는 게 맞는지 묻고 싶다. 침수하는 모래성의 통곡소리처럼 녹아내리는 눈사람처럼 내가 자꾸 사라져 간다. 은쟁반에 내 머리를 담고 폭력의 에로틱함과 이국적인 잔인함을 춤으로 돌려 깎기하고 싶다. 그로테스크한 일상에 신비로움을 담아 통쾌한 복수를 꿈꾼다.
아주 드문 경우에는 자신을 영원한 불멸의 존재라고 믿기도 한다.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의 증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망상증이기도 하다. 자기 정체성의 부인과 부활사이의 귀로에 서서 날마다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온다. 결국은 탈선하게 되는 삶에서 죽음으로의 역방향 운전과 같은 자율 주행을 수시로 반복한다.
전문가들은 얼굴 인식을 담당하는 뇌의 일부 영역인 '방추상회(fusiform gyrus)'의 결함이나 환각과 망상이 관련된 측두엽과 전두엽 위 이상으로 이 증상이 유발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스로의 몸을 인식하지 못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 희귀병이라고 생각하기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있음에도 죽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잠과 죽음을 혼동하며 내일이 없기를 바라는 소박한 희망에서 눈 속에 핀 미나리 아재비과의 복수초(福壽草) 같은 병이다.
복수(復讐) 초
한자로는 복 복(福) 자에 목숨 수(壽) 자이다. 하지만 난 원수에게 복수(復讐)한다고 할 때의 그 '복수'로 바꾸어 생각한다. 꽃이 지고 나서야 이파리가 돋아나는 복수초처럼 난 삶을 역주행하지! 차가운 눈 속에서도 배반의 생명을 피우지. 노란색의 앙증맞은 외모 속에 맹독을 품고 있다. 눈 속에 피는 연꽃, 설연화(雪蓮花), 쌓인 눈을 뚫고 나와 꽃이 피면 그 주위가 동그랗게 녹아 구멍이 난다고 눈색이 꽃, 얼음새꽃이라고도 부른다. 꽃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 서양에서는 '슬픈 추억'이다.
일본 원주민 아이누들은 하느님의 외동딸 크노멘공주가 두더지와의 결혼을 거부해서 벌을 받아 꽃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버림받은 우리의 두더지는 꽃으로 변한 공주를 지키기 위해 밤새도록 복수초 주위의 눈을 쓸고 있다는 슬픈 전설이다. 엄지공주한테도 버림받은 두더지를 위해 차가운 북풍이 대변인으로 나섰다.
"두더지의 땅은 세상 끝까지 걸쳐 있습니다. 이 세상엔 두더지가 없는 곳은 없어요. 내 마음은 차갑지만 지금도 계속 두더지가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하고, 목숨을 걸고 소중히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풍인 나도 그런 두더지의 마음을 아는데 나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당신이 왜 두더지의 마음을 모르지요?"
<나무위키>
혹시나 산행을 하다가 신기하고 아름답다고 해서 복수초를 건드리거나 먹게 되면 죽을 수도 있다. 작은 술잔처럼 생긴 아름다운 외모지만 독사 블랙맘바처럼 강한 독을 품고 있다. 얼음나라에서 온 마타하리 같이 치명적인 매혹을 지닌 꽃이다.
밤새도록 소복을 입고 녹슨 칼을 갈고 또 간다. 해가 뜨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다. 어쩌면 죽음을 동경해서 뇌가 반란을 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순간, 누구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정말 살아 있는 것인지를 정말 살아는 있는 것인지를 물어보곤 한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자의 죽음의 갈망은 집요하고도 진득하다.
어떤 환자는 오토바이사고로 뇌손상을 입고 허무주의적 망상에 시달렸다. 남아프리카로 갔다가 지옥을 경험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가 갔다 왔다고 하면 갔다 온 것이다. 살아서 지옥을 갔다 온 자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호기롭게 독주를 마시고 다른 자아로 옮겨간 내가 미리 죽음을 마중 나가는 것이다. 얼음을 녹이고 눈을 뿌리치고 피어오르는 복수초 같은 삶이다. 죽거나 죽이거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병들이 명명법으로 인해 환생하고 있다. 어린 시절, 동네를 배회하며 침 흘리고 다니던 착한 칠성이가 말갛게 세수를 하고, 선물 공세를 하던 두더지처럼 내게 아이스크림을 불쑥 내밀었다. 크노멘공주처럼 선물만 받고 집으로 도망쳤다. 바보 칠성이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제 사라진 별처럼 내 기억 속에서 환생하고 있다. 그래도 내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랑! 얼음장을 녹이는 묵직한 사랑! 바라는 것이 없고 그냥 바라만 보는 바보같은 사랑!
난 여러 번 죽었다 부활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삶을 극단의 배신감으로 맞이하는 아침, 통탄의 눈물을 쏟아낸다. 난 분명 코타르 증후군환자이다. 비현실적인 느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나만 아는 뜨거운 눈물로 뒤적이는 낮들이다. 이제 더는 인조 속눈썹을 붙이지 않아도 되고 길 가다 묽은 침을 맘껏 뱉어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타인의 삶에 묶인 등반자의 고리를 이젠 벗어버리리라!
살타는 냄새가 따라다니며 뼈와 피부만 남았으며, 자신의 몸이 거열형을 당한 사람처럼 나누어지며 여러 갈래로 찢겨 고통당하고 있다고 믿었기에 먹지도 않았다. 이 증상을 겪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죽어 존재하지 않거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살고 싶은 대로 막산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잠시 내 몸이라는 집을 떠날 뿐이다. 언젠가 인체 표본 전시회에서 멋지게 포즈를 치하고 있었던 자가 나이다. 잘 말린 육포처럼 섹시하게 검붉은 몸매를 자랑했다. 죽었으면서도 모른척하고 살아있는 척을 했다. 내가 인정하건 안하건, 현재완료시제 속 죽음은 늘 우리 속에 내포되어 있었다. 착각하지 마시라 당신도 어쩌면 몸은 아프리카 대륙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파헤친 심장은 푸에고 장미밭에 심어주세요. 뜨거운 피를 뿜어 꽃을 피울게요."
" 다음생엔 피뢰침으로 태어나 벼락 맞아 화끈하게 죽을게요."
"이제 나를 그만 봐주세요. 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난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토록 귀찮은 연료를 위속에 꾸역꾸역 채우지 않아도 된다. 때론 밤새도록 노래방 전용 대형 새우깡을 쉬지 않고 바다냄새를 그리워하는 흰 수염 고래처럼 우적우적 먹어댄다. 하루종일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생각에 쉬지 않고 먹는다. 이미 죽어서 일어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잠만 자기도 한다. 내 안에 있지만 만질 수도 보이지도 않는 장기들이 태엽을 감아야 돌아가는 시계내부처럼 그려진다. 유통기한 지난 2차 세계대전에 만들어진 아직은 상하지 않은 통조림처럼 그렇게 잘 육체를 모시고 산다.
난 4년 전에 죽어서 영혼만 남아프리카 "말라위"로 갔다. 영국의 선교사인 데이비드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이 실패했던 나일강 탐험을 하고 왔다. 어차피 죽어 육신은 없으므로 전 세계 어디든 영국여왕처럼 비자 없이 프리패스이다. 생각해 보니 그녀도 죽음으로 사라졌다. 황열병, 장티푸스, 파상풍, 말라리아등 풍토병주사를 맞을 필요도 없다. 정말 죽어서 죽음으로 진실을 증명하는 병이 억울한 코타르병이다. 세상은 넓고 병들은 많다. 어쩌면 난 또 다른 병의 존엄한 창시자일 수도 있다.
하루종일 입은 악취 나는 작업복처럼 내 그림자를 벗어던지는 날, 비로소 내병도 나으리라! 사실, 난 코타르증후군 환자이고 싶은 가사(apparent death, 假死) 환자이다. 영원히 알함브라 궁전의 안주인으로 살고 싶다.
난 정말 살아는 있는 것일까? 코타르 증후군 말기 환자일까?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