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도 아닌, 한식도 아닌
1970년대까지 생선회는 바닷가가 아니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살아 있거나 싱싱한 생선을 내륙으로
옮길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흔히 일식집이라 부르는 식당에서 광어나 도미의 선어를 회로 내는 정도에서 그쳤다.
한국에서의 외식산업은 1980년대 이후에야 일정 규모를 지니게 된다. 고도경제성장으로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것이 계기이다.
보너스라도 탄 날이면 온 가족이 ‘가든’으로 몰려가 갈비를 뜯었고 프라이드치킨을 배달시켜 아이들에게 먹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생선회는 대중적인 음식이 되지 못하였다. 양식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생선회는 비쌌다.
1990년대에 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광어와 우럭 양식이 일반화되고 생선을 살려 보관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중적인 횟집들이 도시 곳곳에 생겨났다. 그런데, 음식 내는 스타일은 일식을 따랐다. 그래야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식당 주인들은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온전히 일식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생선을 넙데데하게 썰어 무채 위에 얇게
깔고 와사비(고추냉이)와 간장을 함께 내놓는 것은 같았다. 그런데 그 옆에는 된장과 초고추장을 올려 한국식 맛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또 상추, 깻잎, 풋고추, 마늘을 내놓아 한국의 쌈 방식을 더하였다. 1990년대 말에 들면서 한민족은
한풀이하듯이 생선회를 먹었다. 대형 횟집에 앉아 두툼한 광어와 우럭을 쌈싸 먹는 가족의 모습은 일상화되었다.
일식집의 ‘고급함’과 한국인의 입맛이 결합한, 묘한 차림의 생선회가 한반도의 주요 외식으로 정착한 것이다.
어떤 해산물이든 물회가 된다
내륙 도시의 생선회 식당과 달리 바닷가의 식당들은 예부터 내려오던 생선회 먹는 방식을 유지하였다.
생선을 잘게 썰어 장류에 비비는 막회와 여기에 물을 더하는 물회를 꾸준히 먹었던 것이다. 내륙의 도시인들은
바닷가 피서지에서 이 막회와 물회를 별미로 먹었다. 2000년대 들어 이 막회와 물회가 내륙의 도시에도 일부 진출을 하였다.
그러나 이 음식은 크게 번지지는 않고 있다. 바닷가에서 먹는 별식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일식의 생선회에 비해 품격이 낮은 생선회로 여기는 경향도 작용하고 있다. 바닷가 어부들의 가정식에서
출발한 음식이니 그 내는 모양새가 투박한 것이 한 이유일 것이다.
물회로 먹을 수 있는 생선은 가자미, 광어, 우럭, 쥐치, 도미 등 다양하다. 비린내가 심하고 살이 무른 꽁치, 갈치,
고등어 등의 생선 외 거의 모든 생선이 물회로 조리가 가능하다. 생선뿐 아니라 해삼, 멍게, 오징어, 전복, 성게소 등
어떤 해산물이든지 물회로 먹을 수 있다. 최근에는 생선과 각종 해산물을 섞어서 만드는 물회도 유행을 하고 있다.
물회의 양념은 고추장 또는 된장을 쓴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고추장이 강세이고 제주도와 남해 일부 지역에서는
된장을 주로 쓴다. 내륙의 도시에서는 고추장물회가 많다. 여기에 식초와 설탕 등을 더하여 맵고 달고 신 맛의
물회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