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사람냄새 ●지은이_김주대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3. 10. 25
●전체페이지_240쪽 ●ISBN 979-11-91914-50-4 03810/국판(145×210)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20,000원
방방곡곡 사람과 삶의 풍경을 쓰고 그리다
김주대 시인의 그림 산문집 『사람냄새』 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그림 산문집은 코로나의 절정기를 거쳐 코로나 사태 이후인 2023년까지 계간 『시에』에 연재했던 이야기다. 돈, 기계, 자동차, 전쟁, 재난, 참사, 정쟁의 냄새가 지독한 시대에 방방곡곡 ‘사람냄새’를 찾아내어 우리들 앞에 그림과 함께 뜨거운 삶의 이야기를 펼쳐냈다. 『사람냄새』라는 제목은 페이스북 친구들이 댓글에서 "천재 주대 시인 글에는 사람냄새가 나요."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김주대 시인이 붙인 것이다.
“엄마, ‘코’하고 ‘콩’은 글자가 다르잖아?”
“코나 콩이나 비슷하잖나. 그게 고마 약이다. 그리 알고 콩나물 좀 마이 사다 먹거라. 콩나물을 마이 먹으마 간에도 좋고 코로나 이긴다. 또 너 술 마이 먹는 데도 콩나물이 좋다.”
―「어머니 생신」 중에서
‘코로나’를 ‘코로 나오나’ 혹은 ‘코 나오나’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는 따뜻한 웃음과 뭉클한 눈물을 동반케 하며 이번 산문집에 자주 등장한다. “욕을 자꾸 하만 사람도 욕이 된다. 좋은 말을 자꾸 쓰만 좋은 사람이 되고 그렇다.” “아침 물안개가 술렁술렁 핑께 죽은 너 아바이 담배 연기 같더라. 어제는 꽃밭에 나비가 오길래 징용 간 너 이할밴가 했다. 그것들이 다 내 애인이”(「봉선화」)라며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며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엄마는 삶의 좌표이자 가장 든든한 기둥이 아니겠는가.
주암정 주변을 한참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다. 배를 닮은 바위 위의 정자에 오른다. 정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정자 기둥에 쓰인 글씨를 발견한다. “주 인 이 업 서 도 차 한 잔 드 세 요” 글씨 아래에는 물 끓이는 주전자와 커피가 놓여 있다.
―「주암정」 중에서
술에 취해서 ‘동해에 자살하러 와서 할머니네 여인숙에 자고 나면 다들 안 죽고 서울로 돌아간다고 했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간단하게 그림을 그렸다.
―「여름 3박 4일」 중에서
주암정 한켠 방문객들에게 커피 한 잔을 나누어주는 마음씀에 시인은 “틀린 표기가 따듯해서,/못 먹는 커피를 그만 두 잔이나 마셨다”는데 “하여튼 누구든 죽지 말고 목숨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자. ‘살아서 부귀영화를 노리자’는” 김주대 시인이 전국을 빌~빌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과 풍경은 결코 높거나 화려하지 않다. 낮고 어두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풍경에 눈빛을 반짝이고 가난하고 아프지만 선한 사람들 속으로 ‘슬쩍’ 스며들어 ‘사람냄새’로 함께 어우러진다.
할머니가 끄는 손수레를 뒤에서 밀고 가다가 밧줄이 풀려 폐지들이 쏟아지자 일에 익숙한 어른처럼 주섬주섬 폐지를 손수레에 올려 담는 소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생계가 더 무서운 목숨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택배 노동자, 라면 국물만 좀 남았을 때 밥 한 공기를 주시는 분식집 주인 아주머니, 명쾌하고 해박한 정세를 이야기해 주는 목욕탕 때밀이 아저씨, 콘크리트 담벼락에 조화를 심는 폐지 줍는 노인, 풀 한 포기가 문을 지킨다며 뽑지 않는 90도 할머니 등 김주대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데 이상하게도 어느 틈엔가 뭉클 눈물이 흐른다.
또한 “사는 데 답이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무료하겠느냐. 답이 없으니 답을 찾아가는 묘한 긴장으로 사는 게 삶이”(「큰스님요, 제가 제대로 살까요?」)라는 것과 “말없이 가르치는 자가 최고수라면, 많이 떠들며 가르치려 대드는 자는 하수이고, 자신이 독립적 대가리라고 생각하는 자는 옹졸한 최하수”(「동갑내기 스님의 도(道)」)라는 일침은 서늘하다.
김주대 시인은 “시는 들리는[聽] 그림이고 그림은 보이는[視] 시”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들은 몸의 삐걱거림에서 비롯된 울림 혹은 누수 현상이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사는 일이 다 열렬한 삐걱거림이어서 울며 내가 내게서 새어 나간다. 고춧가루 먹은 것처럼 열이 나고 목구멍이 확장될 때, 코가 화끈거릴 때, 미간이 붉어질 때, 눈이 뜨거워질 때, 침을 꿀꺽 삼키면 도달하는 첫 지점에서 울음이 시작된다. 오늘도 물컹한 울음을 도화지에” 그리고 “방방곡곡 그리운 건 언제나 상처에서 오고, 꽃은 너무도 불안하여 그만 예뻐져 버렸다”고 곡진하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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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작가의 말·04
제1부
훈기네상회·11
노벨물리학상과 시·19
주암정·23
밥·31
시(詩)팔놈아, 시나 제대로·37
독거 중년 죽다 살다·45
당당한 소녀·51
큰스님요, 제가 제대로 살까요?·55
천공, 동갑내기 친구로서 한마디 함세·65
제2부
거지 박동완·71
여름 3박 4일·81
동갑내기 스님의 도(道)·91
팬데믹 시대의 아픈 이야기 몇·101
코딱지만 한 동네 목욕탕에서 ICBM을 논하다·111
어머니 생신·123
단순한 나의 시론과 낯설게 하기·133
제3부
청년과의 대화·143
엄청난 봄·153
만 원만, 오천 원·161
동해 건어물 처자·167
108동자승 전시장 풍경·181
강릉에서 만난 두 여인·191
잠복근무 성공·199
제4부
낯선 사내에게 잠자리를 팔다·205
50주고 300받고·211
시를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지 않고, 책을 읽지 않는다·215
90도 할머니의 풀·221
봉선화·225
우짼 양반이 전화를 했더라·229
사지선다형 문제·235
■ 작가의 말
내가 풍경이 되어 나를 돌아보다
방방곡곡 빌~빌 돌아다니면서 특히 시장에서 쪼그려 앉아 장사하시는 할머니들과 친해지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 할머니가 파는 물건을 아무 말 하지 않고 종일 세 번 찾아가서 삽니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지 못한 할머니라고 해도 세 번 찾아가면 기억하십니다. 할머니가 나를 궁금해하기 시작합니다. 할머니는 나의 취재 대상이지만 할머니가 거꾸로 나를 취재하고 싶어 합니다. ‘뭐 하는 놈이기에 자꾸 와서 물건을 사며 기웃거리지?’ 하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
할머니께서는 이 김주대가 궁금해 죽겠는 거지요. 궁금해 돌아가시기 직전 그때 할머니께 말을 겁니다. “할머니이~ 옆에 앉아서 장사하시는 거 구경 좀 해도 돼요?” 하고는 카메라를 들고 ‘슬쩍’ 다가가서 옆에 다소곳이 앉아요. 내가 ‘슬쩍’ 풍경이 되기 시작하는 거지요. 할머니와 함께 손님들을 구경합니다. 손님이 물건만 뒤적거리다가 사지 않으면 내가 막 화가 나요. 이제 내가 할머니의 입장이 되고 할머니의 심정이 되어 손님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풍경이 되어 나를 돌아본다는 의미는 그런 것입니다. 취재 대상인 할머니의 입장, 할머니의 심정으로 손님들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풍경이 되어 풍경 밖의 나를 되돌아본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면 취재 대상(풍경)에 완전 동화된다는 의미입니다. 몰입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요. ‘나’를 놓아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요. 공장 노동자를 취재하려면 공장에서 노동자와 같이 일을 하는 게 최고지요.
우리는 꽃을 보며 꽃이 될 수도 있고 산을 보다가 산이 될 수도 있고 강가에서는 강이 될 수도 있어요. 때로는 내가 바다가 되어 물살을 가르는 배가 지나갈 때 심장이 움찔해지기도 하지요. 만취하여 쓰레기통 옆에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 졸다가 어떤 놈이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지나가면 내가 막 화가 나요. 내가 쓰레기통의 입장이 되어 쓰레기통과 친해져 있는데 내 친구 쓰레기통을 발로 차니 내가 화가 안 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쓰레기통 찬 놈과 막 싸우는 거지요. 내가 풍경(쓰레기통)이 되어 풍경 밖의 나를 바라본다는 게 내게는 그런 의미입니다.
2023년 가을
김주대
■ 표4
좋은 날이 오지 않아도 온 거고, 오면 더 좋고,
꿈은 마음속에 이미 이룩한 것을
미래에 단지 물리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겠는가?
수많은 원자로 인간이라는 물질이 이루어졌다.
인간의 꿈은 원자들의 패턴이고 작용이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꿈을 꾼다.
아니 우주가 꿈을 꾼다.
꿈이 물질로 변하기도 하고
물질이 꿈으로 변하기도 한다.
나는, 우리는 이미 꿈을 이룩하였다.
방방곡곡 그리운 건 언제나 상처에서 오고,
꽃은 너무도 불안하여 그만 예뻐져 버렸다.
_김주대(시인)
■ 김주대(金周大)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85년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최루탄 연기 속에서 시를 배웠다. 1991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고, ‘그리운 것은 언제나 상처에서 온다’는 생각으로 2014년부터 시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법보신문, 계간 『시에』 등에 글과 그림을 연재하였다. 시집으로 『도화동 사십계단』, 『그리움의 넓이』,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 등이 있고 화첩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 『시인의 붓』, 『꽃이 져도 오시라』, 『108동자승』과 산문집 『포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