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261026 연옥
요세비
죽은 후의 정화를 뜻하는 연옥은 하느님의 자비일까 아니면 벌일까?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심판을 받을 때 대차대조표 저울에는 어떤 것이 표시될까? 기도를 많이 한자가 무거울까? 행동하는 믿음을 산 사람이 더 무거울까?
갈라디아 서 5.6 에 보면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고 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도 권고하기를 ‘이생의 마지막 날 사랑에 대해 심판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
그런데 이생에서의 삶이 저울의 무게를 가늠하는데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 자신이 없을 것이다. 이 때 정화(淨化)라는 장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본성이 나약하다. 죄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회개를 하고 정화를 하여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러한 죄의 완전한 회개를 이루지 못했다면 정화를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안에서 죽었으니 구원은 보장되지만 거룩한 상태가 되지 못했으니 정화를 거쳐야 한다는 논리 일 수 있다. 이때 정화의 하는 곳이 연옥(煉獄)이며 뜻으로 하면 불 가마, 불의 감옥이라는 뜻이다. 라틴어 푸르가토리움(Purgatorium)을 번역한 것으로 ‘정화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정화의 매개물이 불이다.
죄는 현세에서도 용서를 받지만 래세에서도 용서를 받는다.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그가 연옥 불에서 빨리 면제되어 구원의 하늘로 가게 해 달라는 탄원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옥으로 가고 어떤 사람이 연옥으로 가고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로 직행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고 가르친다.
정화는 고통을 동반한다. 연옥의 불과 지옥의 불은 다를까? 죄의 경중에 따라 불의 강도도 다를까? 정화는 축복일까?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통공(通功)이라고 한다. 죽은 이가 산 이를 위해, 죽은 이가 죽은 이를 위해, 산 이가 죽은 이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대사(大赦)라고 하는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