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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 환웅 환검
『규원사화』<단군기檀君紀>에는 단군왕검과 환검을 동일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고시씨와 여러 사람들이 천부인 3개를 받들고 함께 그의 아들인 환검신인(桓儉神人)을 추대하여 군장으로 삼으니 이분이 임금이 되었다. '임금'이란 군장을 뜻한다.
高矢氏諸人 奉天符三印 共推其子桓儉神人 爲君長 是爲壬儉 壬儉者 君長之意也,
『삼국유사』에는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고 이러한 체계는『환단고기』에도 마찬가지로 나온다. 즉 위『규원사화』의 기록처럼 단군왕검과 환검이 동일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신사기』에는 ‘조화주 환인, 교화주 환웅, 치화주 환검’의 셋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치화주 환검(桓儉)은 『삼국유사』『환단고기』등의 다른 기록에 환웅으로 기록된 분이다. 치화주 환검과 다른 기록의 환웅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홍익인세, 다른 기록에는 홍익인간 이화세계
둘째, 주오사,
셋째, 운사, 우사, 풍백, 뇌공의 사령, 삼국유사등 다른 기록에는 뇌공이 빠짐
넷째, 366사, 《삼국유사》등의 기록에는 360여사
다섯째, 팽우, 신지, 고시의 삼선
천부삼인을 가지시고 사령을 거느리고 태백산 단목하에 내려오신『삼일신고봉장기』의 제(帝)는 팽우, 신지, 고시를 신하로 삼았기에 단군이 아닌 치화주 환검임을 알 수 있다.
삼가 상고하건대, 『고조선기』에 이르기를,『삼백 예순 여섯 갑자에 하느님께서 천부인 세 개를 가지시고 운사·우사·풍백·뇌공을 거느리시고, 태백산 단목아래 내려 오시사, 산과 강을 개척하고, 사람과 만물을 낳아 기르시며, 재주갑자 지난 무진년 상달 초사흗날에 이르러, 신령한 대궐에 거동하사, 하느님의 말씀(삼일신고)를 가르치시니, 때에 팽우는 삼천 집단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와서 머리 숙여 받들며, 고시는 동해가에서 푸른 돌을 캐어 오고, 신지는 돌에 이것을 그려 전했다』하였으며,
謹按古朝鮮記曰 三百六十六甲子
帝握天符三印 將雲師雨師風伯雷公 降于太白山檀樹下 開拓山河 生育人物
至再週甲子之戊辰歲上月三日 御哲宮誕訓神誥
時彭虞率三千團部衆 頫首受之 高矢採靑石於東海濱 神誌劃其石而傳之
* 『삼일신고봉장기』는 대진국 3대 문황제 때인 서기 739년 작성된 것이므로 『고조선기』는 아무리 늦어도 대진국(발해)때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사왜곡이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환웅은 단군왕검보다 1565년 전이니 『신사기』의 환검은 단군왕검보다 1500여년전으로 보아야 한다.(단기보다 124년 앞선다는 대종교의 개천년도는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환검(또는 환웅)과 단군왕검을 동일시하게 된 것은『규원사화』에 나와있다.
하물며 신시와 환검을 사람들마다 모두 한 사람으로 여기더니 지금은 모든 세상이 거의 다 그렇게 여긴다. …… 예로부터 환검(桓儉)을 신인(神人)이라 칭하였으니, 곧 신神 환桓 등의 이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况神市 桓儉, 人每認爲一人, 至今擧世殆然而. …… 古來, 稱桓儉曰神人,
『환단고기』<단군세기서檀君世紀序>에서도 삼신일체를 주장하였으니 혼동을 하게 된 것이다.
삼신일체의 상제(上帝)와 같아서
三神一軆之上帝也
『규원사화』에는 환인 환웅 환검을 삼신이라 규정하였는데 이러한 구분은『신사기』의 구분법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삼신(三神)'을 또는 '삼성(三聖)'이라 하는데, 지금의 문화 구월산에 삼성사(三聖祠)가 있어서 환인과 환웅 및 환검을 공경하여 제사를 지낸다.
三神, 又云三聖, 今文化.九月山有三聖祠, 卽敬祀桓因 桓雄 桓儉者也.
하지만 『신사기』에서는 조화주 교화주 치화주의 삼주(三主) 일신(一神)론을 펼친데 반하여 다른 기록들은 삼신일체론을 주장하고 있다. 삼주일신은 일신이 셋의 작용을 하였다는 뜻으로 신의 입장에서 본 것이고, 삼신일체는 개별적 세 분의 신이 알고보니 하나라는 뜻으로 인간의 시각에서 본 것이다. 삼은 분열의 수이므로 삼신이란 여러 신이 존재한다는 기본 뜻이 있으므로 일체로 설명한다해도 일신과는 다른 개념이 된다. 『독단』에 육신(六神)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런 식으로 다신(多神)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개념의 출발이 삼신이기에 정통개념인 ‘일신’과 변형개념인 ‘삼신’은 구별해야 한다.
六神之別名:風伯神、箕星也,其象在天,能興風。雨師神、畢星也,其象在天,能興雨。
(* 사령(四靈)이 신으로 변하였고, 이는 수메르 같은 다른 문명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으로 취급되어 다신론이 형성되었다. 메소포타미아 4대 주신 : 아누(An:알의 변형으로 보임) - 천상의 신, 키(ki) - 지상의 신, 엔키(Enki) - 물의 신, 엔릴(Enlil) - 대기의 신)
다수의 중국기록에 나오는 삼신(三神)을 보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개념상실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사기』<진시황본기>등에 나오는 삼신산도 이러한 변형의 영향으로 보인다.
言海中有三神山,名曰蓬萊、方丈、瀛洲,僊人居之。
삼신의 개념은 삼황(三皇)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잠부론潛夫論』<오덕지>를 보자.
世傳三皇五帝,多以為伏羲、神農為三皇;其一者或曰燧人,或曰祝融,或曰女媧。其是與非,未可知也。我聞古有天皇、地皇、人皇,
삼황의 원래 개념은 천황, 지황, 인황이었다. 그러다 전국시대 중국역사 독립을 위한 삼황오제론이 확립되면서 삼황은 복희, 신농 등을 말하게 되었다. 삼황이 신에서 인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삼황(三皇)이라는 말 역시 전국시대 말에 이르러 비로소 등장하였으며, 오제설 또한 전국시대의 산물이다. 전국시대 중기이전의 전적에서는 오제의 이름이나 그 서열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전국시대 중후기에 이르러 오제의 이름이 비로소 제자(諸子)들의 서적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신화로 읽는 중국의 문화』金榮權著, 임진호譯, 문현, 2010, p142~143
권태훈에 삼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봉우사상연구소http://www.bongwoo.org/xe/631
이 우주는 크게 천(天), 지(地), 인(人)의 세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인(人)은 사람을 포함하여 전우주의 모든 생명체들을 총칭하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하늘, 즉 우주의 운행을 맡은 분을 천황씨(天皇氏)라고 부르며, 우주의 뭇 별들을 관장하는 분이 지황씨(地皇氏)이고, 우주의 온 생명들을 맡아보는 분이 인황씨(人皇氏)라 하는데, 이 분이 바로 대황조입니다.
그리하여 이 지구의 대변화과정인 개벽이 일어날 때마다 대황조님이 나오셔서 지구상의 생명체들을 돌봐주시고 다시 번성할 씨앗을 뿌려주시곤 하는 것입니다. 대황조도 이 우주의 생명체적 존재로서 우주개벽이래 수억겁(數億劫)을 닦아 나오신 분입니다. 즉 아주 오랜 기간의 영적 진화과정을 통하여 지금의 위치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는 대황조와 단군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대황조는 우리 민족의 첫 조상이자 정신적 스승으로서의 고유명사이고, 단군은 대황조께서 우리 민족의 삶의 길을 열어주신 이후 계속해서 그 길을 따라 민족을 이끌어간 머리 밝은 우두머리(君長)들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서의 뜻입니다. 즉 대황조는 한분이시나, 단군은 역대로 여러 명이 실존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중국 역사의 조종(祖宗:할아비, 근본)인 요순(堯舜)은 당시 우리민족이 파견한 도인(道人)정치가로서의 단군들이고 상고(上古)시대의 선인(仙人)들인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황제(黃帝) 등도 모두 단군들이었던 것입니다.
천황, 지황, 인황의 구분이 오래된 것이기는 하나 『삼일신고』에 하느님께서 ‘셀 수 없는 세계를 주관’하시고 인간을 포함한 ‘뭇생명을 만드셨다’하였으니 삼신 개념처럼 삼황개념역시 정통개념에서 멀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神 在無上一位 有大德大慧大力 生天 主無數世界 造兟兟物 纖塵無漏
이러한 오류는『환단고기』에서 구분한 환인시대에도 나온다. 환인을 천신으로도 인간으로도 묘사하고 있다.
『삼성기전(三聖記全)』<하편(下扁)>
옛날 환국이 있었나니 백성은 부유하고 또 많았다. 처음 환인(桓因)께서 천산에 올라 도를 얻으시어 오래 오래 사셨으니 몸에는 병도 없었다. 하늘을 대신해서 널리 교화하시니 사람들로 하여금 군대를 동원하여 싸울 일도 없게 하였으며, 누구나 힘껏 일하여 주리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게 되었다.
昔有桓國衆富且庶焉初桓仁居于天山得道長生擧身無病代天宣化使人無兵人皆作力自無飢寒
『삼성기 전』 <상편>
어느 날인가 동녀동남 800이 흑수백산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환인은 또한 감군으로서 천계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음식을 익혀 먹는 방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환국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환인이라고 불렀다.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 於是桓因亦以監群居于天界 石發火始敎熱食謂之桓國 是謂天帝桓因氏
* 영화 노잉(Knowing)에 지구멸망의 날 외계인들이 어린이들을 선별하여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키는데 그러한 일이 7만년전 천산에서 있었을 수도 있다. 천강신화는 외계인의 이주와 관련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신사기』의 조화주, 교화주, 치화주의 삼주일신(三主一神)론에서는 유일신 하느님의 주재자, 조화자로서는 환인으로, 인간세상에 교화하러 오신 인황씨로는 환웅으로 구분하였으니 교화주께서는 지구에 개벽이 있을 때마다 여러 번 오신 것이 된다. 그러므로 7만년전 환인시대에도 오셨을 것이고, 『삼일신고봉장기』에 나온 21960년(366갑자:고조선기 작성당시 기준) 전에도 오셨을 것이고, 『규원사화』와 권태훈이 말하는 궐천년(11000년)전에도 오셨을 것이고, 약 6200년전에도 오셨을 것이다. 이때는 개벽이후 현문명의 시작점이므로 『신사기』에서는 인황씨를 치화주 환검으로 구분하였고, 다른 기록에는 ‘환웅’으로 나온다. 개벽은 주기적으로 여러 번 있었으니 지구인류역사 약 400만년동안 여러 번 오셨을 것이다. 7만년전은 한국인들이 기억하는 연도의 상한일 뿐이다.
이렇게 교화주이신 대황조께서 지구에 여러 번 오셨는데 인간들은 시간대별로 환인, 환웅, 환검의 셋으로 구별하여 부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환인, 환웅, 환검의 구분 역시 오래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환(桓)자가 갑골문과 금문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http://www.zdic.net/z/1b/zy/6853.htm
그렇다면 옛날에는 어떻게 불렀을까? 『규원사화』에는 단군왕검이 환검(또는 환웅)을 황조라 칭하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에 수식어가 붙은 대황조(大皇祖)가 전통용어이다.
하느님은 오직 하나 되는 신으로서 가장 높은 곳의 하나 되는 자리에 있도다. 하늘과 땅을 시작하게 하고 모든 세계를 주재하며 한없는 사물을 만드시니, 가없이 넓고도 넓음에 감싸지 아니한 사물이 없으며, 신령스럽게 밝고도 밝음에 가녀린 티끌마저도 새지 아니한다. 하느님은 오직 하나 되는 신으로서 가장 높은 곳의 하나 되는 자리에 있도다. 부리고 거느리는 하늘 궁전은 모든 선함이 열리고 모든 덕화가 근원하는 곳이며, 뭇 영령들이 보호하고 모시는 크게 길하고도 크게 밝은 곳이니, 이름하여 신향(神鄕)이라 한다. 하늘의 천제(天帝)께서는 하늘 궁전으로부터 3천의 동아리를 거느리고 내려와 우리들 임금의 조상이 되더니, 공덕을 온전히 함에 이르러 하늘로 향하여 신향으로 돌아갔다.
若曰: 惟皇, 一神在最上一位. 創天地, 主全世界, 造無量物, 蕩蕩洋洋, 無物(不)[弗]包, 昭昭靈靈, 纖塵弗漏. 惟皇, 一神在最上一位. 用御天宮, 啓萬善, 原萬德, 群靈護侍, 大吉祥, 大光明, 處曰神鄕. 惟皇, 天帝降自天宮, 率三千團部, 爲我皇祖, 乃至功完而朝天, 歸神鄕.
(* 여기도 삼신이 아닌 일신으로 나온다. 삼신이 아닌 일신이 정통개념이다.)
환이 황이었음을『태백일사』의 예에서 알 수 있다.
<신시본기>
주에서 말한다. …… 환웅은 또한 천왕이라고도 하니 왕은 곧 황이며 제이니라. …… 때문에 하늘로부터의 밝음을 환이라 하고 땅으로부터의 광명을 단이라 한다. 이른바 환은 구황(九皇)을 말하는 것이다.
注曰 …… 桓雄亦曰天王 王卽皇也帝也
故 自天光明 謂之桓也 自地光明 謂之檀也 所謂桓 卽九皇之謂也
<삼신오제본기>
천해 금악 삼위 태백은 본디 구한에 속한 것이며 9황의 64민은 모두 그 후예이다.
天海金岳三危太白本屬 九桓而蓋九皇六十四民皆其後也
환(桓)은 ‘환하다’는 뜻을 표기하기 위한 한자어로 황(皇)이 원래 대황조를 뜻하는 신칭(神稱)이었는데 삼황오제론이 생기면서 복희, 신농등의 인간에게 사용되다가 급기야 진시황이 황제(皇帝)를 칭하면서 빛이 내지 못하는 인간에게 사용된 후로 환(桓)이라는 한자어가 새롭게 생긴 것으로 보인다.『강희자전』에는『옥편』을 인용하며 ‘황백색’이라 하였으니 ‘하나라는 한’보다 환한 빛의 색깔과 관련있음을 알 수 있다.
又木名。《郭璞云》葉似柳,子似楝。《玉篇》皮黃白色。《山海經》袟周之山木多桓。
* 잎이 버드나무를 닮았다고 했는데, 『규원사화』와『환단고기』에 버드나무 궁궐에 거처(柳闕而居)라고 나오는 것과 연관있는지 궁금하다.
중국기록에는 황천상제(皇天上帝), 줄여서 상제(上帝), 황천(皇天), 천제(天帝) 등으로 나온다.『한서(漢書)』<교사지하郊祀志下>에 다음과 같이 써있다.
今稱天神曰皇天上帝
* 환웅(또는 치화주 환검)이 『삼일신고봉장기』등의 기록에는 帝, 天帝 등, 중국기록에는 황천상제로 나오니 양쪽 기록 모두 하느님으로 묘사하고 있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황천지자, 천제지자는 중국기록에 나오는 황천상제이다.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창건하시었다. 북부여에서 나왔는데, 천제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녀이다. …… 길에서 부여의 엄리대수에 이르렀다. 왕이 나루에 이르러 말하길, “나는 황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녀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해 갈대를 엮고, 거북은 떠올라라.” 하니 소리에 응하여 갈대가 이어지고, 거북이 떠올랐다. 그러한 연후에 건너가고, …… 전하여 십칠대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18세에 왕의 자리에 오르니, 영락태왕이라고 불렀다.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
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황천지자, 천제지자를 ‘해모수’의 아들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고구려 역사는 단군조선과 무관하게 된다. 단군의 장남이 부루라는 설도 해모수의 아들이 해부루인점과 동일하니 2대 단군이 부루인지 의문이다. 『성호사설』《경사문(經史門)》<삼성사(三聖祠)>에서는 부루가 단군의 아들이며 북부여왕이라는데 의문을 단다. 금와를 양자로 삼았다면 단군의 대는 아들인 부루에서 끊어졌다는 주장이다.
《여지승람》에 고기를 끌어대어 이르기를, “천신환인이 서자 웅으로 하여금 천부인 3개와 졸도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상봉에 내려오게 하였는데, 이때에 곰이 변화하여 여인이 되니, 신 환인이 혼인을 하게하여 단군을 낳았다. 단군이 비서갑 하백의 딸에게 장가들어 부루를 낳아서 그가 북부여왕이 되었는데, 늙도록 아들이 없으므로 아들 낳기를 기도한 나머지 금와를 얻어 길렀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대를 계승하였는데, 대소에 이르러는 고구려 대신무왕에게 멸망을 당했다.”하였다. 그렇다면 단군의 세대는 단지 한 대를 전하고 끊어진 셈이다.
輿地勝覽引古記云 天神桓因使庶子雄持天符三印帥徒三千降於太白山頂
是時熊化爲女 神因爲昏生檀君 檀君娶非西岬河伯之女 生夫婁 爲北扶餘王
老無子 祈子得金蛙養之 夫婁死 金蛙嗣傳 至帶素爲高句麗大神武王所滅
然則檀君之世只一傳而絶
이익(1681~1763)의 주장대로 부루는 단군의 자식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2대 단군이 단군의 아들인 부루라고 주장한『환단고기』등의 기록에는 의문이 든다. 이익의 의문대로 부루는 단군의 아들이 아닌 북부여의 왕이며 아들이 아닌 자손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 해모수 역시 천제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하느님이 내려오셨는데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에는 의문이다. 홍익인세보다는 아들 낳기 위해 내려오셨다는 식의 내용이 되는데 예수가 독생자라는 설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한국과 중국 기록 모두 단군은 안 보이고 황천상제, 황천, 상제, 천제로 기록된 것은 기록의 객관성을 입증하는 것이고, 단군, 환웅, 환검 등이 아닌 황조 또는 대황조가 전통용어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황 또는 황조 또는 대황조 역시 인간들이 만든 표현이고『삼일신고』에는 신으로 나온다.
단군과 대황조는 1500여년의 년도차가 있으니 동일시하면 안된다.
* 단군정신@@@ 보다는 대황조정신@@@ 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치화주 환검이 다른 기록의 환웅이라면 1565년전이므로 약 6천년전이 된다. 그러므로 개천은 약 6천년전의 일이다. 『규원사화』에 언급되었듯 삼신일체 개념이 생기면서 혼동하여 단군왕검을 환검으로 오인하게 되었고 이러한 삼신일체를 받아들인 대종교에서는 단기보다 124년 앞선다는 개천연도를 사용함으로서 신시의 역사 1500여년을 지워버리고 있다. 학계에서도 역시 고조선을 국가연표의 시발점으로 삼았으니 신시의 역사는 없어진 것이다.
첫댓글 위와 같은 식으로는 아무리 해봐야...
오역의 연속으로... 해석은 왜곡되고... ㅉㅉ
님은 그런 자세를 견지하는 한.. 아마도 평생 그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오....ㅉ
먼저 자신의 명확한 기준을세우고, 객관적 시각으로...
중국사서면 중국사서, 우리사서면 우리사서를...
먼저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 다음에 그 시각 그대로 다른 쪽을 풀어야지...ㅉㅉ
그러면...
그제서야 서로 다르다고 느껴지던 것들이 같아 보이고 이해가 되기 시작할꺼요..
알려줘도 들으려 하지 않고
사실상 의미도 없고.. 알수도 없는 연대도..
뒤죽박죽 끼워맞추기로 혼자만의 길을 가니...ㅉ
더 말해 뭣하나..ㅉㅉ
동감이 갑니다! 삼신을 숫자 3으로 이해하는 것도 그렇고 "하느님 께서"에서 하느님을 신으로 해석 하는것도 역사의 관점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역사는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신이란것도 사람이 생각한 것이고...! 역사 자체가 사람이 만든것 이지요! 개나 동물이 만든것이 아니지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에서 글을 시작 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