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원제 : All Mine to Give
1957년 미국영화
감독 : 알렌 라이즈너
출연 : 글리니스 존스, 카메론 미첼, 렉스 톰슨
패티 맥코맥, 알란 헤일 주니어
1970년대 우리나라 영화의 추세는 '감성과 신파' 였습니다. 국내영화로 1968년에 상영된 '미워도 다시 한번' 외화로는 71년 개봉된 '러브 스토리'의 영향으로 70년대는 슬프고 감동을 주는 영화들이 많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수입사들은 유명배우가 거의 나오지 않는 값싼 감성외화들을 수입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러브 스토리'는 메이저 영화였지만 '저 하늘에 태양이' '마이웨이' '선샤인' '사랑이 머무는 곳에' '세븐 얼론' '휠링 러브' '조이' '라스트 콘서트' 같은 작품들은 수입가가 비싸지 않거나, 심지어 TV 영화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랑의 스잔나' 같은 합작영화도 있었고. 그 대미는 다시 메이저 영화인 '챔프'가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감성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70년대 감성영화, 80년대 에로영화가 한국 극장가의 시대적 흐름이었던 셈이죠.
1957년에 만들어진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역시 이런 흐름을 타고 무려 20년이 지난 1977년 1월에 개봉되었습니다. 3-5년 후 개봉되는 경우는 흔했어도 이렇게 20년이나 지나서 불쑥 개봉되는 경우는 보기 드물었는데 그만큼 그 시대에 어울리는 감성영화였던 것입니다.
아직 10대에 불과한 한 소년이 썰매에 유치원생도 안되어 보이는 어린 여동생을 태우고 눈쌓인 끝없는 언덕길을 걷고 있습니다. 소년은 추위에 우는 여동생을 달래며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도대체 어디까지 인지 모르는 길고 험한 여정을 이어갑니다. 도대체 이 남매에게는 무슨 아픈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요?
눈쌓인 산길을 넘는 소년과 꼬마 소녀
두 어린 남매에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스코틀랜드에서 미국 중서부까지의 먼길을 온 부부
친적을 만나기 위해서 왔지만 친적은 사망하고 친적이 살던
집은 불에 타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망연자실한다.
폐허가 된 집터에 새롭게 오두막을 짓고
새출발을 하는 부부
마을 사람들도 이 새로운 젊은 이웃을 물심양면 돕는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부부
19세기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1957년에 영화화 한 것입니다. 머나먼 스코틀랜드에서 배를 타고 긴 여행끝에 미국에 도착한 로버트(카메론 미첼)와 조(글리니스 존스) 부부, 조는 임신중이었는데 두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삶을 정리하고 미국에 있는 친적을 만나러 먼 길을 온 것입니다. 하지만 친적은 이미 사망했고, 친척이 살던 집은 불에 타 버렸습니다. 돈도 없고 오갈데 없어 낙담하는 부부, 하지만 친절한 의사부부의 도움으로 그들은 타 버린 집터에 다시 오두막집을 짓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마을 사람들 여럿이 함께 도와주면서 그 새로운 주민의 삶을 격려합니다. 로버트는 목재소에 취업하고 나무를 베는 일을 하고 그렇게 부부는 가난하지만 나름 행복하고 소박한 삶을 시작합니다. 그런 와중에 6남매가 태어나고 장남 로비(렉스 톰슨)가 12살이 되면서 행복한 가족의 삶이 이어집니다. 좋은 이웃, 작지만 따뜻한 집, 애들도 학교에 보내고, 화목하고.....
이들 부부의 행복은 여기까지 였습니다. 먼저 세째아들 커크가 디프테리아에 걸려서 전염을 피해서 가족들은 잠시 떨어져 살아가야 했지만 로버트는 아이들을 열심히 돌봤고, 극적으로 커크는 회복됩니다. 하지만 그 대신 로버트가 중병에 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남기고 떠나버립니다. 조는 남편없이 꿋꿋이 아이들을 키우고자 하지만 장티푸스에 걸려서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나고 아직 어린 아이들 6명만 남게 됩니다.
엄마, 아빠가 떠나버린 아이들, 이 대목부터 영화는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애잔한 내용이 전개됩니다. 12살이지만 이미 철이 들고 소년 가장역할을 해야 하는 로비, 로비는 아버지가 일했던 목재소에서 잔심부름으로 일을 배우며 살아갈 수는 있지만 혼자서 어린 동생들을 돌볼수는 없다는 걸 알고, 5명의 동생들을 좋은 집안에 입양시키고자 합니다. 차마 동생들을 고아원으로 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이후 로비는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동생들을 한 명 한 명 입양시킵니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낼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면서 입양을 서두릅니다.
어느새 6남매를 키우는 단란한 가정
하지만 그들에개 닥칠 불행을 누가 알았으랴
예기치 못한 아버지의 죽음
후반부 20여분은 정말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여동생을 데리고 이웃을 방문하여 입양시켜 달라고 간절히 이야기하는 로비의 모습이 정말 애처롭습니다. 입양을 거절해도 문제지만 입양을 받아준다고 해도 함께 살던 정든 동생들과 긴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 다행히 마을에는 친절한 가족들이 많았고, 로비의 동생들도 떼쓰지 않고 순순히 로비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어른들보다 철든 아이들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굉장히 슬프고 애틋한 내용이지만 확실히 우리나라 영화와는 많이 다른게 울고 짜고 뭐 그런 장면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부모들의 죽음도 유언과 같은 말을 하는 장면 이후 바로 장례식 장면으로 넘어가고, 우는 장면을 극도로 절제한 신파라고 할까요? 그런 부분이 오히려 더 슬프게 와닿습니다. 각각의 가정으로 입양되어 헤어지는 장면에서도 울고 껴안고 뭐 그런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여동생이 인사도 없이 가버리네' 그런 대사 정도.
똘똘한 외모의 로비의 꿋꿋한 행동이 많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특히 마지막 남은 여동생을 16킬로나 떨어진 먼 곳으로 데려가서 입양시키려고 떠나기 전 다른 여동생이 입양된 집 창문을 슬며시 바라보며 여동생이 행복하게 그 집 가족과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심하는 모습은 정말 애틋합니다. 눈 쌓인 험한 산길을 썰매 하나를 이끌고,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하염없이 걷는 장면, 참 감동적이고 애잔합니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몸져 누운 슬픈 현실
고아가 된 6남매
제 동생을 제발 입향해 주세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지만 아이들을 입양시키는 과정까지만 보여주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습니다. 마지막 여동생을 입양시킨 로비가 어두워진 눈길을 쓸쓸히 썰매를 끌고 돌아가는 뒷모습의 엔딩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자동차도 없는 시대였고,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목재소는 아주 먼 거리이기 때문에 동생들을 만나러 오기도 힘든 상황. 12살짜리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시련이었습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한 가정이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애틋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착한 마을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그들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부부, 하지만 뜻하지 않은 병으로 아이들만 남기고 떠난 부모, 그런 아이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입양되는 아이들. 아주 슬픈 이야기죠.
1977년, 무려 20년만에 개봉되었지만 감성영화의 강세를 몰아 1977년 외화 흥행 10위안에 들었고, 서울 단관극장에서만 2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였습니다. 아버지 역으로 카메론 미첼이 등장했는데 저에게는 '회전목마' '거인' '모델 연속살인' 등 주로 악역 이미지로 연상되는 배우입니다. 50년대 주로 활동했고, 우리나라에도 제법 많은 영화가 개봉되었지만 조연이 많았습니다. 아내 역의 글리니스 존스도 톱 스타급 배우는 아니고 '메리 포핀스'의 조연으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아이들 역의 배우중 다른 유명영화에 출연한 경우가 있는데 장남 로비 역의 소년은 '왕과 나'에서 데보라 커의 아들로 출연했습니다. 장녀 애나벨 역의 패티 맥코맥은 1년전인 1956년 '배드 시드'라는 영화에서 사악한 소녀 역으로 인상적 연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동생들을 차례 차례 입양시키는 맏아들 로비
새로운 가정에서 부디 행복하기를....
걱정마, 꼭 좋은 집안에 보내줄께
입양된 여동생이 새로운 가정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로비의 모습이 꽤 슬프다.
어린 여동생을 썰매에 태우고 먼 여정을 떠나는
12살 소년의 마음은 과연 얼마나 슬플까
뭐 우리나라 영화였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을 때 대성통곡하는 장면으로 눈물 한바가지는 쏟았을 것이고 각각의 동생들이 입양되는 장면에서도 헤어지기 싫다며 껴안고 울고 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한 30분은 더 길어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한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신파 정서와는 달리 서부 개척시대에 온갖 험한 과정을 겪으면서 죽음,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던 그런 아메리카적 분위기가 서로 상이한 것 같습니다.
1977년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했고, TV에서 방영되기도 했지만 나름 희귀작이 된 고전이었는데 2009년에 DVD로 출시가 되어 다시 만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설정을 보면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세븐 얼론'과 많이 비슷하지만 훨씬 더 잘 만든 영화입니다. 두 영화 모두 어린 아이들이 부모를 모두 잃는 내용이지만 '세븐 얼론'은 초원의 집에서 아이들끼리 꿋꿋하게 새 삶을 시작하는 내용이고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는 반대로 서로 헤어지는 내용이지요. 두 편 다 19세기에 있었던 실화를 영화화 한 감성 드라마인데 '세븐 얼론'은 흥행에 실패했고,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는 크게 성공했다는 점도 다릅니다. 70년대 감성시대에 뜬금없이 치고 들어와서 관객을 흡입한 50년대 할리우드 감성 고전이었습니다.
ps1 : 여러 서부영화들의 분위기와는 달리 동일 시대의 이야기였음에도 미국 중서부지대의 소탈하고 친자연적인 분위기가 서정적으로 느껴진 부분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밉니다.
ps2 : 입양에 대한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된 작품이라는 것이 남달랐습니다. 핏줄을 과도하게 중요시여기는 우리나라의 정서에 일침이 될 수 있을만한 내용입니다. 그놈의 핏줄이 뭐라고.
ps3 : 확실히 19세기까지는 전염병이 참 무서운 존재였네요. 지금은 장티푸스나 디프테리아 같은 건 예방과 치료한 병인데.
[출처]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All Mine to Give 57년) 어느 가족의 슬픈 이야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