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창조하는 법/ 3.창조과정과 업보
불교에서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신구의 삼업으로서 이 세상을 만들어낸다 그랬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생각한 그것이 하나의 에너지가 되어서
그것이 이 우주 법계로 진동을 해 나간다는 것이지요.
즉 내 생각으로 내 삶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우리 삶은 어떤 절대자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내 삶을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설계하고 창조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주어졌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우리 마음은 그림을 잘 그리는
능숙한 화가와도 같아서 화가가 마음 먹은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내 현실 세계라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지요.
마음에서 일으키는 대로
현실세계를 그림 그리듯 그려나갈 수 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많이 들어본 듯한 그런 이야기인데요,
이것은 그저 내가 아는 이야기야 하고 덮어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적은 있을지언정
이것에 대해서 굳게 믿거나 진지하게 사유해보거나
그것이 정말 맞구나 라고 무릎을 쳐 본적은 사실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 생각할 뿐이에요.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하면
생각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때때로 몇몇 가지는 생각한대로 이루어지는 수도 있지만
세상이 어떻게 생각한대로 이루어지느냐, 그렇게 안 된다,
이렇게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일체유심조가 아니라는 쪽으로 굳게 믿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여러분의 삶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러분의 바로 그 생각입니다.
그 마음입니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서
내가 마음 쓴 대로 현실이 만들어지고 창조되는 것입니다.
또 마음 일으키는 것이 근본이 되어서 말로 가고
행동으로 감으로써 신구의 삼업이 바탕이 되어서
내 현실세계를 이루어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인간으로 태어났거나, 부자로 태어났거나
가난하게 태어났거나, 능력 있게 태어났거나
능력 없게 태어났거나 이 모든 현실의 모습이 내 과거의
신구의 삼업에 의해서 지금 만들어진 결과라는 말입니다.
업의 결과, 즉 업보(業報)로써
지금의 이 현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누가 만들어 주었겠어요. 내가 지은 업(業)에 따른
보(報)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만들어 주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그냥 신의 뜻대로 라든가
부처의 뜻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어찌 그렇게
부처나 신이 불공평할 수가 있겠습니까.
누구는 부유하게 태어나게 해 주고,
누구는 가난하게 태어나게 하고,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 두 살, 세 살 밖에 안 되었을 때
기아로 죽어가도록 내버려 둔다는 말이지요.
이런 사람이라면 자유의지를 가지고 뭔가 새롭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볼 여지가 없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죽으니까 말이지요.
닭장에서 한 달 만에 죽어서 무슨무슨 치킨이며
온갖 닭고기, 통닭으로 우리 입에 들어가고 있는 닭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태어나자마자 아무 힘도 못써본 채,
파닥거리지도 못해본 체 그냥 한 달 만에
죽어가지고 그렇게 도살을 당해야 되느냐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이 만듭니다.
내가 만들지 결코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이 마음의 힘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엄청나고 어마어마합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우리가 알아야 되는
아주 확실한 불변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불교에서는
이 세상이 공한 것이다, 환영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 이 세상은 공한 것이고 환영 같은 것이어서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듯 실체가 없는 것이지만
실체가 없는 그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단 말입니다.
고통 받는 사람에게
그 고통은 실체가 아니야 라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은 그 고통이 당장
자신에게는 실체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공(空)병에 걸려가지고, 깨달음 병에 걸려가지고
'모든 것이 다 공이야' 라고 쉽게 치부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일 당장 죽더라도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가난해지더라도 상관이 없고 고통 받아서
내일 당장 큰 병으로 죽어 가더라도 휘둘리지 않을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야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느냐,
그런 깨달음에 놓여 있느냐 그 말입니다.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방편법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을 잘 쓸 수가 있는지,
이 마음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이것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를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계속]
- 법상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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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나에마음은 작게변화하여 크게옴니다
감사합니다_()_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_()_()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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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