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좋아하는
유민, 인웅, 서연, 시우, 지율, 지후, 윤태, 영호, 단희에게
편지 쓰기 공부를 했으니 나도 그 차례에 맞게 써야 하겠지?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를 나올 때쯤, 봄 절기가 시작하는 입춘이었어. 그래서인지 참 포근한 날들이 이어지더니, 너희들을 떠나 보내는 시린 마음에 찬바람마저 더하는구나. 꽃샘추위인지, 졸업시샘추위인지 모르겠지만, 참 춥다.
지난 해 이맘 때쯤부터 코로나19라는 무시무시한 바이러스 때문에 하고 싶은 것들, 많이 못해서 참 아쉬웠지? 맑은샘학교 선생님들은 늘 바쁘지만 이맘 때는 더 바빠. 너희들도 잘 알겠지만 바로 글모음을 하는 때라서 그렇지. 너희들이 지난 한 해 쓴 글들을 읽어보니, 코로나19로 재미난 것들을 많이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하는 글들이 많더라고. 나도 그랬어.
그래도 너희들과 한 모둠으로 산 2020년은 내게 큰 행운이었어. 오래 전부터 너희들과 같은 모둠으로 살고 싶었거든. 왜냐하면 음... 너희들이 푸른샘 때부터 살아온 모습들을 보아왔는데 참 멋있었거든. 이제야 고백하는 까닭은 가뜩이나 자신감이 넘치는 너희들이 너무 기고만장할 거 같아서 말하지 않았어. 아무튼 너희들은 어려서부터 참 멋있었어.
아니나 다를까 너희들은 정말 멋졌어. 너희들 덕분에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판굿을 해볼 수 있었고, 보름 동안 하동에서 살면서 농부님들 삶을 흉내내 보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고 팔당대교까지 하루만에 다녀오기도 했고, 텃밭을 날마다 돌볼 수 있었고, 수백만 원을 벌어서 맛있고 즐겁게 제주도를 다녀올 수도 있었고, 김장할 배추를 넉넉하게 심어 절임배추를 만들어 팔았고, 너희들이 그린 멋진 그림들로 달력을 만들고, 예쁜 학교 옷도 만들 수 있었어. 아 맞다. 길고양이를 돌보며 오해와 편견을 줄이고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새삼 알게 되기도 했어. 이밖에도 너무 너무 많지. 그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시끄러울 때 크게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살았으니 그것이 으뜸이고,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이나 다름 없지. 쉽지 않은 일들을 척척 해낼 때마다 참으로 멋진 어린이들이라고 생각했고, 참 고맙기도 했어. 너희들이 아니었으면 엄두를 내지 못할 일들이었어.
하지만 아쉬움도 있지. 너희들도 같은 마음일 거 같은데, 우리 재혁이. 아직도 재혁이 이름을 부르거나 떠오를 때면 가슴이 먹먹해.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것이 세상살이라고 하지만 재혁이와 헤어짐은 나에게도 너희들에게도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는 거 같아. 재혁이에게 미안하고, 재혁이 식구들에게도, 그리고 너희들과 깊은샘 부모님들 그리고 맑은샘학교 어린이들과 선생님들, 맑은샘학교 식구들 모두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 헤어졌으니 다시 만날 때가 있겠지. 그때는 환하게 웃으며 서로 얼싸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살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 만든 규칙 가운데 하나였는데, 기억하고 있을까? ‘하고 싶은 것도 하고, 해야 할 것도 하자.’ 참 좋은 약속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라산에서 내려올 때 너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차피 싫다고 해도 할 거잖아요.” ‘하고 싶은 걸’ 많이 하라고 떠들었으면서, 해야 할 것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잔소리하고, 해야 할 것들을 내 마음 대로 정하고...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도 졸업이 내 몸과 마음에 다가오지는 않아. 이 편지를 읽는 지금은 너희들이 떠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마 다음 주에 너희들 없는 깊은샘 방에 혼자 앉아 있다 보면 너희들이 떠났구나하고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겠지.
나는 너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맑은샘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은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해.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좋은 교육과정을 가진 학교가 드물고, 자연에서 많이 놀게 하는 학교가 적고, 일과 놀이와 공부를 하나로 이어가도록 하는 학교가 바로 맑은샘학교거든. 그리고 가장 좋은 거는 바로 우리 학교 선생님들. 때로는 동무들처럼, 때로는 어머니아버지처럼, 어떤 때는 짖궂은 장난꾸러기처럼 너희들을 웃기고, 울리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같이 놀고, 삶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해주셨던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으니 된 거 같아.
편지 길게 써서 읽는 걸 참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썼네. 또 한 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시우, 윤태가 좋아하는 투자 이야기를 하면서 마칠게. 사람들은 투자를 할 때,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잖아. 그런데 훌륭하신 우리 부모님들이 배움값 많이 내면서 왜 맑은샘학교에 너희들을 보내셨을까 하고 한 번 생각해봐. 왜 그러냐면 교육은 투자를 했을 때, 바로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거든. 바로 나올 수도, 한 달이 지나서 나올 수도, 1년이 지나서, 10년이 지나서 나올 수도 있는 거거든. 너희들이 맑은샘학교를 다니면서 온 몸과 마음으로 배우고 익혔던 것들이 언젠가는 너희들이 살아가는 동안 좋은 거름이 될 거야. 옛말에 뭇 농부들은 작물을 가꾸지만 상농부는 땅을 가꾼다고 했어. 너희들 좋은 거름을 많이 갖고 살아가니까 사람들이니 어딜 가더라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한다.
너희들이 맑은샘학교를 다닌 것이 큰 복을 받은 것이기도 하고 너희들과 함께 한 맑은샘학교 식구들도 축복을 받은 것이야. 특히 깊은샘 모둠 선생을 한 나는 우리 조상님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어.
잘 가. 그리고 가끔 놀러 와. 때때로 오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나중에 혹시 연락하고 싶을 때, 오랫동안 연락 안 하다가 연락하면 이상할 거 같아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 너희들이 연락하고 싶을 때 연락해. 그럼 언제라도 맨발로라도 달려 나갈게.
너희들과 함께 살아서 참 좋았다. 고맙다.
2021년 2월 19일 맑은샘학교 깊은샘 모둠선생님 최명희
첫댓글 뭉쿨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