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물고기를 얻고자 한 인간들은 꾀를 냈다. 청어의 천적인 물메기 한두 마리를 수조에 넣었다. 그순간 급해서 오는 동안 거의 다 죽었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얻고자 한 인간들 부터 물통 안에서는 잡아먹으려는 쪽과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쪽의 사투가 벌어졌다. 그러면서 숨 막히는 긴장상태가 유지되었다. 덕분에 수산 시장에 도착할 때까지 청어는 대부분 펄떡펄떡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천적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네 직장생활에서도 부조리한 상황은 종종 발생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지레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자고. 지혜롭게 연대해서 대응하자며 도전과 응전을 "청어와/물메기"로 은유하여 구호로 삼았다. 되돌아보니 순간의 효과는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센스 있는 멘트로는 꽝이었을 무색함이 느껴져 무엇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기가 올랐다. 그런가 하면 건배사는 늘 호주머니에 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으로, 갑자기 생긴 회식 등에서는 당황한 적도 있다. 어느 때는 살짝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지만 그런 때는 잽싼 순발력이나 임기응변이 요망되었다. 프랑스 말로 하겠다고 약간의 너스레를 곁들이면서 “드숑” 하면 “마숑” 하는 거였는데 나름 쓸 만했다. 사실 건배는 서양 문화에서 전해졌다. 잔을 세게 부딪쳐서 튀겨 오른 술이 서로의 컵에 섞이게 하는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였는데 당신의 잔에 독을 섞지 않았다는 신뢰의 확인이기도 했다. 잔을 부딪치는 또 다른 이유는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맨 처음 술을 만들 때 악마가 동참했다. 사람들은 그 악마의 악한 기운이 술잔에 남아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잔과 잔을 부딪쳐 "쨍" 소리를 냈는데 그 순간 술잔 속에 있던 악마가 놀라 달아난다고 믿었다. 우리나라는 그런 유래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건배 문화는 사회 전반에 배어있다. 어쩌면 답답한 일터에서 벗어나 숨통을 틔워주는 긍정의 발상일지도 모른다.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내면서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다양한 건배사로 서로의 삶에 원기를 북돋웠을 수도 있다. 어느 때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카르페Carpe/디엠 diem"을, 또 다른 장소에서는 잔을 높게 치켜들었다가 낮게 내리거나 앞으로 내밀며 "이상은/높게 "사랑은/깊게" "잔은/평등하게" 라고 강조하였다. 연말연시에는 "의사/소통" "운수/대통" "만사/ 형통”의 ‘통·통·통'을 내세워 여기저기서 건배하였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건배사는 조선시대 개혁 군주, 정조의 불취무귀 또는 무취불귀가 아닐까. 신하들과 술 마시기를 가 좋아한 정조는 ‘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라고 했다니 술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그랬을까. 취중醉中방담放談이나 진담眞談을 기대한 노련한 정치철학이었을지. 한편으로 주량이 적은 신하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임금님의 무취불귀보다 기억에 남은 건배사에 '깨·깨·께'가 있다. 이 세상에 맛있는 깨는 들깨다. 들깨보다 맛있는 깨는 참깨다. 참깨보다 더 맛있는 깨는 함께라는 의미이다. “들깨보다 참깨를 선창하면 "참깨보다 함께!"를 후창한다. 내가 만든 구호는 아니었지만, 직장을 옮길 때마다 주인처럼 한 번씩 활용하였다. “청어와/물메기"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최근 유행하는 건배사에 "따삐빠 따삐빠/따-삐빠 따삐빠가 있다. 멋진 인생을 꾸려가려면 모임에 나가서 시시콜콜 따지지 말자. 혹시라도 누군가가 따지고 들어도 삐지지 말자. 옛 동료나 친구들이 모이는 곳에 절대로, 절대로 빠지지 말자는 멘트에서 따삐빠를 따왔다. 가락까지 넣은 이 건배사를 명심하면 여생이 행복 만땅이란다.
빨간집 동창회의장이 한동안 어우러진 후에 회장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잔을 높이 들어 올린 후 “이것이 뭐셔?”라고 큰소리로 선창했다. 그가 아니라고 손사래 쳤던 술은, 술이 아니고 정情이었다. 회장의 속마음을 알아낸 친구들은 동창회의장이 떠나가라 후창했다. "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