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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반산자연휴양림 <<<
용담댐 금강 상류에 소재하고 있으며, 덕유산 맑은 물이 항상 휴양림을 돌며 흐르고 있다. 주변 환경이 수려하고
산세가 좋으며 천반산 등산로가 있다. 나무숲이 있어 시원하고 정감이 좋다. 단체모임에 적합한 장소이다.
# 참고 산행기[사네드레]
진안 천반산(640m)
*가막교매표소~당집~농가~서릉~할미굴~한림대~성터~마당바위~정상~동릉~안부~먹개골~당집~매표소 원점회귀
백두대간 상의 남덕유산(1,507.4m) 서쪽으로 약 1km 거리인 서봉(1,510m, 일명 장수 덕유산)에서 대간을 이탈해 북서쪽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은 약 5.5km 거리인 19번 국도가 넘어가는 솔고개에서 잠시 가라앉았다가 약 4km 더 이어진 다음 영구산(802.3m)을 빚는다. 영구산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약 8km 거리에 이르러 구량천과 금강 상류에 막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들어올려진 산이 천반산(646.7m)이다.
전북 진안군 진안읍, 상전면과 장수군 천천면 경계를 이루는 천반산은 주능선 일원이 소반과 같이 납작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생겼다는 설과, 땅에는 천반, 지반, 인반 이라는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 산에 천반에 해당하는 명당이 있다 해서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또 산 남쪽 마을 앞 강가에는 장독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하늘의 소반에서 떨어진 복숭아(천반락도 天盤落桃)라 하여 마을 북쪽에 있는 산을 천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천반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험준한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다. 여기에다 북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으며, 서쪽과 남으로는 금강 상류를 이루는 연평천(일명 장수천)이 휘돌아 흐르고 있어 천혜의 요새를 방불하는 산세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선조 22년(1589년)전라도를 반역향이라 하여 호남 차별의 분수령을 이룬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1546~1589)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여립은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나 선조 3년 25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선조와 서인들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 대동계를 조직하고 모악산 앞 제비산(현재의 김제시 금구면)에 머물면서 죽도에다 시설을 지어놓고 천반산에서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정여립은 선조 22년 역모로 몰리자 아들과 함께 죽도로 피신했다가 관군에 쫓기자 이 산에서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천반산에는 정여립이 성터와 망루로 사용하던 한림대터, 그가 뛰어다녔다는 뜀바위 등이 남아 있고, 군사를 조련할 때 사용했다는 거대한 돌솥이 묻혀 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동서만록>에 의하면 정여립은 평소에 천반산 아래 죽도를 자주 찾았기에 그를 죽도선생이라 불렀다고 하며, 더욱이 역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죽도로 피난 간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죽도의 비경을 즐기려고 나왔다가 관군에게 잡혀 억울하게 죽었을 뿐 자살로 조작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단종 때 왕위찬탈에 항거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송판서가 수도하였다는 송판서굴, 그리고 송판서의 부인이 살았다는 할미굴, 정여립이 친지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말바위 등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산 아래 신기 마을은 정감록이 예언한 10승지의 한 곳이다. 조선조 유학자인 유겸안이 겸안록을 통해 이곳의 지리가 호남 제일의 땅이라고 칭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반산 서쪽 금강과 구량천이 파(巴) 자처럼 돌아나가는 육지 속의 섬 죽도는 넓은 모래사장과 자갈밭으로 이뤄진 한 폭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천혜의 비경지대인 죽도는 세월따라 용담댐이 만수위가 되면 절반 가량이 수몰된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드라이브 코스
수도권에서 천바산 산행기점인 가막리나 연평리 신기 마을에 이르는 드라이브 코스는 대전~통영간 고속국도를 타고 장수 분기점에서 나와 장계를 거쳐 진안 방향으로 진입하는 코스가 지름길이다. 장수분기점에서 나와 번화가를 지나 26번 국도로 들어서면 곧이어 '진안 19km' 라고 쓰인 안내판을 지나간다.
이 안내판에서 5분 거리에 이르면 천천삼거리가 나타난다. 천천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굽도는 26번 국도로 3분 거리에 이르면 진안읍과 천천면 경계인 방고개를 넘는다. 방고개 마이산휴게소 앞에 '가막천 7km' 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다.
방고개를 뒤로하고 3분 거리에 이르면 왼쪽으로 '원촌도토리묵' 간판이 붙은 식당이 나타난다. 이 식당 앞에서 오른쪽 좁은 길로 들어가 고개를 하나 넘어서서 5~6분 주행하면 가막리 가막교 앞 매표소에 닿는다. 승용차는 매표소에서 곧장 이어진 도로 50m 거리 민박집 부근에 주차하면 된다.
또다른 진입로는 장계에서 천천면 삼거리로 가기 전 오른쪽(북)으로 가는 719번 지방도를 타고 4km 거리인 연평리 연평초교를 지난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3km 거리에 이르면 신기 마을에 닿는다. 신기 마을과 가막리는 가막교로 연결되어 있다.
전주 방면에서는 진안에 이른 다음, 장계로 가는 26번 국도로 진입, 10km 주행하면 오천리 원촌도토리묵집 식당 앞에 닿는다. 식당 앞에서 왼쪽 좁은 길로 진입하면 가막리로 향하게 된다.
*산행코스
가막리 매표소 앞에서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 신기 마을 방면으로 굽돌아 나간다. 이곳에서 왼쪽 농로길을 따라 7~8분 거리에 이르면 외딴 농가 왼쪽으로 수백 년생 괴목이 숲을 이룬 작은 동산이 있다. 괴목숲 아래에 있는 당집은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당할머니께 제를 올리는 곳이다. 당집 위 동산 위 감투바위도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당집 왼쪽으로 이어지는 농로로 100m 거리에 이르면 파란 지붕 농가 앞에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앞에서 왼쪽 다리를 건너 파란 지붕 농가 왼쪽 길로 들어가 10분 거리에 이르면 등산로 안내판이 또 나타난다. 이 안내판 앞에서 오른쪽 사면 숲속으로 통나무 계단길이 있다.
급사면 계단길을 타고 15분 거리에 이르면 50m 길이 굵은 밧줄이 매어진 사면지대에 닿는다. 50m 길이 밧줄을 잡고 올라서면 천반산 서릉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뚜렷한 능선길을 타고 3~4분 오르면 왼쪽으로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왼쪽 길은 할미굴로 가는 길이다. 할미굴은 150m 거리로 5분이면 닿는다.
20m 절벽 아래에 깊이 5m 정도 패어든 자연석굴인 할미굴 속에는 미세한 물줄기가 흐르는데, 예전부터 안질에 좋은 물이라고 전해진다. 이 굴이 할미굴로 이름 지어진 것은 조선 세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보산 선생이 단종 문제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후학을 가르치는 몰두하다가 이곳에서 북쪽 50m 거리에 있는 굴속에서 은거하면서 부인과 동침을 금하기 위해 부인을 따로 이곳에 기거하도록 해서라고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송판서가 수도하면서 쌀 한 되를 부인과 나누어 갖고 부인에게 한 끼에 쌀 세 알, 생솔잎 세 개, 굴속 석간수 세 모금만 먹도록 했는데, 부인이 그 약속을 어기고 많이 먹어 부인의 쌀이 먼저 바닥이 나자 자신의 남은 쌀을 다시 반으로 갈라 부인에게 주어 함께 수도를 마쳤다고 한다. 1484년 세상을 떠난 송보산 성생 후손들은 지금 연평리 평지 마을에서 살고 있다.
할미굴에서 다시 삼거리로 나와 서릉을 타고 25분 가량 올라가면 '한림터대 0.1km, 죽도 2.8km, 천반산성터 0.3km, 할미굴 0.6km' 라고 쓰인 안내판이 나타난다. 안내판을 지나 3분 더 오르면 떡시루를 엎어놓은 형태의 바위봉인 한림대터에 닿는다. 한림대는 옛날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던 장소였다 전한다.
이곳은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이 터지는데 남족 아래로는 가막리와 신기 마을은 물론 그 사이를 흐르는 금강 물줄기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고, 서쪽 멀리로는 M자형을 이룬 마이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쪽 멀리로는 운장산, 복두봉, 구봉산도 시야에 와닿는다.
한림대를 내려서서 계속 서릉을 타고 10분 거리에 이르면 575.8m봉인 성터가 나온다. 성터 위에는 벤치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괜찮다. 성터를 내려서서 10분 거리인 안부를 지나면 노송 어우러진 암릉에 닿는다. 암릉으로 발길을 옮기면 왼쪽 아래로 S자 굽이로 패어 내린 구량천과 상전에서 동향으로 이어지는 도로, 그리고 장전 마을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기 시작한다.
구량천 협곡 건너로는 고산이 마주보이고, 고산에서 오른쪽 멀리로는 적상면 방면 국사봉 너머로 적상산이 가물거린다. 조망을 즐기며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10분 거리에 이르면 급경사에 매놓은 30m 밧줄을 잡고 내려선다. 내려서면 일명 마당바위로 불리는 바위안부를 지나간다.
안부에서 5~6분 오르면 지나온 함림대와 암릉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를 밟는다. 분재와 같은 노송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전망바위에서는 남족 아래로 먹개골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로는 성수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성수산 왼쪽 멀리로는 남덕유산과 육십령이 시야에 와 닿는다.
전망바위에서 13분 더 오르면 벤치 세 개가 놓여 있는 천반산 정상이다. 삼각점(무주 314)과 화강암으로 된 정상비석이 서 있는데, 숲으로 조망이 시원하지 못한 것이 흠이다. 그러나 나뭇가지 사이로 동쪽 멀리 덕유산 줄기와 그 아래를 지나는 대전~통영간 고속국도가 보이는 것이 위안이 된다.
하산은 장전 마을 방면 북릉을 탄다. 북릉으로 약 100m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흐릿한 산길이 보인다. 이 길은 천반산의 모산인 영구산으로 이어지는 길이지만, 아직 등산인들이 다니지 않아 산길이 흐릿하다. 영구산 방면 능선길로 발길을 옮겨 25분 가량 내려서면 오른쪽 아래로 임도가 내려다보이는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오른쪽 사면을 타고 7~8분 내려서면 먹개골 임도에 닿는다. 양쪽으로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버린 임도를 따라 약 30분 내려오면 파란 지붕 농가 앞을 지나 당집 앞에 이른다.
가막교 매표소를 기점으로 당집~농가~서릉~할미굴~한리대~성터~마당바위를 경유해 정상에 오른 다음, 동릉~안부~먹개골~당집을 경유해 매표소에 이르는 산행거리는 약 7.5km로, 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교통 및 숙식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에서 1일 2회(13:20, 15:00) 운행하는 진안행 고속버스 이용. 요금 일반고속 10,900원, 우등고속 14,200원. 3시간30분 소요.
전주공영터미널에서 10분 간격(06:30~21:30)으로 운행하는 진안행 직행버스 이용. 요금 2,700원. 50분 소요.
진안버스터미널(063-433-2508)에서 가막리행 버스 1일 6회(06:10, 06:30, 09:20, 12:30, 15:00, 18:20) 운행. 요금 1,000원. 20분 소요. 가막리에서 진안행 1일 3회(10:40, 15:00, 19:30), 가막리에서 장계행 1일 4회(07:00, 09:00, 11:40, 17:00) 운행.
숙식은 매표소에서 죽도 방면 100m 거리인 쉼터민박(063-433-9198) 이용. 4~5인용 방 6실이 있다. 민박료 1실 30,000원(시즌 50,000원). 이 집에서 토종닭백숙(20,000원), 된장찌개백반(5,000원) 등을 판다.
죽도 방면 및 천반산 입장료 어른 800원(단체 700원), 청소년 군인 500원(300원), 어린이 300원(200원). 입장료는 시즌에만 받는다.
참고: 월간<산> 200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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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정여립의 황소울음 들리는 듯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에만 익숙해져 있는 내가 가가운 곳을 답사 여행지로 잡은 것부터 너무 너무 한가롭다. 아침 9시. 종합경기장에 나가자 군산에서 장교완 선생이 먼저 오고 윤영숙 선생 내외가 저만치서 걸어온다.
몇 차례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를 개의치 않는 그 마음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곧이어 광주에서 김현준 기자와 손동명, 김형곤씨가 도착한다.
구름 자욱하지만 먼 산들이 너무 가깝다.
진안의 물곡리에서 좌회전하여 '자연 발생 유원지 가막천' 이라고 쓰여진 팻말을 지나 제법 가파른 가막골재를 넘었다. 물곡리에서 가막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시원스럽게 포장된 뒤로는, 폭설이 내린 한겨울만 빼놓고 빙 돌아가는 수고로움이 사라지게 되었다. 조선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드리운 곳에 자리잡은 가막리 노인정을 지나 아랫가막리로 내려가면, 북서쪽으로 홍두깨 날처럼 길게 뻗은 산등성이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 천반산(640m) 쪽으로 향하면 신기마을이다. 청학동에서 살다가 실망하고 이상향을 찾던 중 이곳에 정착하였다는 김대중씨가 운영하는 명륜당학이라고 쓰여진 팻말을 지나 김진대씨의 집에 도착한다. 신발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어 '계십니까' 불러도 대답이 없고 물만 졸졸 흐른다. 몇 년 전만 해도 정월 초사흘 날에 당산제를 지냈다는 당산터가 남아 있지만 당산은 허물어지고 우거진 느티나무 숲만 무성하다. 길은 묵치, 또는 먹재라는 고개를 넘어가는 길로 뻗어 있고 그 들머리에 집 한 채가 있다.
마당까지 고추와 참깨가 심어져 있지만 그 집도 역시 비어 있다. 시골로 갈수록 강가로 갈수록 빈집은 늘어나고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으니...
한 시절 전만 해도 중석광산이 있어서 호황을 누렸다고 하지만 지금은 폐광으로 길은 그저 임도처럼 어설프다. 그 길을 따라가니 등산로가 있었다. 천반산 산행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초입은 희미하다. 비가 내린 뒤라 바람은 불지 않고 풀섶은 흠뻑 이슬을 머금었다. 사람 지나간 흔적이 없어 과연 길이 있을까 의심한다. 한참 올라가자 등산로가 나타난다. 아! 가끔씩 못 믿는 이 마음이여. 그저 믿으면 될 터인데 나는 왜 믿지 못하고 늘 주저주저 하는 일들이 그렇게 많은가?
길은 완만하고 발아래 펼쳐진 금강 물 흐르는 소리는 청아하다. 그 사이로 며느리 밥풀꽃이 활짝 피었구나. 세월의 흐름을 누가 막으랴.
문득 비가 내린다. 비옷과 우산들을 꺼낸다. 하지만 금새 내리던 비는 다시 멎는다. 땀이 솟아나는 느낌이 든다. '그래 우리가 뭐 사우나 할 일이 있겠나'. 다시 비옷을 벗고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굵은 밧줄을 잡고 오르는 길 위로 가쁜 숨소리가 내려앉고 능선에 올라서자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어디로 갈 것인가 망설이다가 돌아가는 산길을 택했는데 한참을 돌아가자 큰 바위굴 앞에 당도한다. 송판서 굴이 맞을 듯 싶다.
천반산의 명물 송판서굴은 바위굴 2개가 15m쯤의 거리를 두고 서북쪽을 향하여 쌍굴을 형성하고 있는 자연굴로서 큰 굴의 길이가 7m쯤 되고 작은 굴은 5m쯤 되며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앉아서 쉴 만한 넓이다. 이 굴의 중간쯤의 바위틈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끊이지 않고 흐르는 약수라고 전해지는 한줄기 물길이 있는데 약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적게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굴의 이름의 유래가 된 인물인 송판서는 호는 보신이며 아호는 퇴휴제로서 연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438년(세종 20년)에 도승지에 올랐고 1449년 예조판서에 올랐는데, 그는 1456년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이에 항거하여 벼슬을 하직하고 처가인 장수군 계남면 방아재로 낙향했다. 그는 이곳에서 이조판서를 지내다가 먼저 낙향한 김남택과 한 마을에 살면서 낙산낙수하며 도학과 제자백가를 연구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다가 1484년에 죽었다. 그후 송판서는 이 고장 선비들의 추앙을 받아 장수 월강사와 진안 마령의 구산사에 모셔졌다.
낙향한 송판서가 은둔할 곳을 찾던 중에 도인의 안내를 받아 이 굴을 발견하여 학문을 연구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송판서가 이곳에 머물며 있는 날마다 하루 세끼의 식사를 누군가 몰래 갖다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난 후 송판서는 어느 여인이 식사를 가지고 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송판서가 그 여인을 붙들고 이유를 묻자 여인은 "천리 밖에서 왔습니다" 라고 말할 뿐 더 이상 한마디 말도 없이 홀연히 떠나고 말았다. 지금도 송판서 굴 앞산 정면에 각시굴이 남아 그때의 이야기를 전해줄 따름이다.
그뒤 이 굴은 죽도에 서실을 지어놓고 죽도선생이라 불린 정여립이 대동계원들을 거느리고 병마를 훈련하던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들은 나무 벤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를 보다가 다시 왔던 길로 돌아 나간다.
오르막 길은 능선으로 이어진 길이지만 그리 팍팍하지가 않다. 얼마쯤 올랐을까. 시야가 환하게 트이고 우리가 지나왔던 가막리와 연평리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덕유산과 남덕유산을 돌아 장안산, 영취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절경에 취한 채 오르는 길에는 이름 모를 버섯들이 만개해 있다. 올라갈수록 나무숲은 적막하고 조금 나아가자 옛날의 등산로 길과 만난다. 천반산 정상, 죽도유원지, 가막리 가는 길이 갈라지고 언제 어느 때 누가 쌓았는지 모르는 성터가 있다. 여러 종류의 활엽수들이 쭉쭉 뻗어 있는 그 길에 가을 낙엽이 떨어져 내리는 날 찾아가보라. 실크로드라는 말이 무색한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이곳 천반산 기슭에서 살고 있는 사라들의 말에 의하면 땅에는 천반, 지반, 인반의 명당 자리가 있는데 이 산은 천반에 해당하는 명당이 있다 하여 천반산으로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신기마을에 사는 김진대씨의 말에 의하면 그가 이곳에 이사를 왔던 십여 년 전만 해도 오천여 평은 될 듯 싶은 평지가 펼쳐진 이곳에 세 가구쯤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잡목만 무성하고 군데군데 돌보는 사람 없는 듯 싶은 무덤이 남아 여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다시 길을 나와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향해서 깎아지른 벼랑 아래로 현기증을 참고 내려다 보면 안성천이 굽이쳐 흘러오고 십오분쯤 따라가면 뜀바위에 닿는다. 가을 천반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곳에 와서 보면 알 것이다. 붓끝으로 한 점 획을 그은 것처럼 강물은 이어지고 활활 타오르는 단풍은 차마 바라볼 수가 없을 만큼 아름답다.
이 천반산에 정여림 장군이 서 있고, 부귀산에는 관군이 서 있어 서로 싸웠다는 이야기와 함께 송판서 굴에서 정여립이 최후를 맞이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약 15m쯤 되는 이 바위와 20m 거리로 마주보고 있는 뜀바위를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정여립 장군이 훌쩍 뛰어 다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 바위에 서면 멀리 북쪽으로 덕유산, 남덕유산, 그리고 육십령, 장안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눈금이 선명하게 들어오고, 장안산, 덕태산 지나 마이산으로 이어지는 호남금남정맥이 눈 안에 가득 찬다. 마이산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에게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돌리면 구봉 송익필의 자를 따서 지은 운장산 자락 지나 구봉의 연봉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산 위가 소반과 같이 납작하다 하여 이름 붙은 산, 천반산 아래에는 남쪽 장수에서 흘러 내려온 장계천과 동쪽 무주 덕유산에서 시작되는 구량천이, 파(巴)자형으로 굽이쳐 흐르는 중간 지점에서 몸을 합하여 금강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그 합수머리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돌려지고 말았다.
나는 죽도가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환히 내려다 보이는 천반산의 능선에 앉아 기축년의 그 가슴 아픈 역사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 본다.
산길을 내려가 연평리 동향을 거쳐 수동리에 접어든다. 그렇다. 채만식의 빼어난 소설 <탁류>의 실마리가 금강에서 풀리듯이 죽도의 역사는 정여립에서부터 다시 쓰여져야 될 것이다. 죽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완공된 용담댐에 물이 가득 차면 진실로 고립된 하나의 섬이 될 죽도를 휘감아 도는 금강의 물길은 아직 맑다. 겨울에도 푸른 산죽이 많아 이름조차 대섬인 이 섬 아닌 섬 죽도 앞에는 말 잔등처럼 천반산이 우뚝 솟아 있다. 여름철에는 죽도 근처 금강물에서 지천으로 잡히는 쏘가리며 다슬기며 메기 등의 물고기를 잡아서 매운탕을 해먹기 위해 전주, 대전 사람들까지 줄을 이었는데, 그것은 이미 옛일이다.
옛 이름이 터일인 수동마을을 지나면 칼처럼 서 있는 바위 사이를 헤집고 작은 폭포가 나타난다. 병풍처럼 보여 병풍바위라고 했던 것을, 개간 붐이 한창이던 70년대에 가막리로 돌아가는 물길을 돌려 논을 만들기 위해 폭파해 버림으로써 이암폭포라는 폭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 그루 새푸른 소나무가 외롭게 서 있는 절벽 아래로 폭포가 흐르고 떨어지는 물소리는 깊고도 넓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정여립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이 죽도에 왔을 때에도 바람은 이렇듯 잔잔하게 가슴을 어루만지듯 불어왔을까? 나라 안에 제일이라는 하회마을을 감싸도는 물도리동이나 내성천변에 펼쳐진 의성포 물도리동에는 못미치지만 완벽하게 물이 휘감아 도는 죽도가 한 사람의 욕심에 의해 폭포 아닌 폭포로 변형되어 버린 것을 안타까워한다.
*교통
서울~진안까지 10시10분, 3시30분에 출발하며 요금은 10,900원이다(02-6282-0600 호남선 고속버스터미널).
진안~가막리까지 9시10분, 12시30분 있으며 요금은 1,000원이다(063-433-2508 진안시외버스터미널).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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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 천반산 [전라북도]
천반산 [장수군]
천반산자연휴양림 [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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