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믿음의 동역자분께
Buenos días
주제성구 창세기 1장 31절
-삶의 예찬
언젠가 '가을의 전설' 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뉴욕의 현란한 단풍이 가을을 수놓아 화면 가득 단풍내음이 가득 했다. 물론 한국의 단풍도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다. 특히 내장산 단풍의 귀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어제 예배를 위해 오후 교회에 도착하자 작별을 고하기 위해 떠나기에 앞서 운동장을 가득 매운 단풍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단풍은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지 않아 미색이 빼어나지는 않아도 붉은 옷을 차려 입은 자태는 볼만하다. 성전을 열고 기도를 마치고 나오자 한 부형이 '목사님 단풍을 치울까요?' 하기에 '그냥 두었다가 토요일 오후에 치웁시다.' 했다. 이곳은 가을 겨울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가을 정취를 맛보고 싶어 그들과 잠시 이별을 늦추었다. 그러며 하늘을 올려보자 주님이 엄지를 세우고 고개를 끄떡여 주신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1:31)" 고 말씀해 주시는 듯 했다. 작금 세계는 어수선하다. 일본의 아베는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해 경제보복을 단행했고 조국의 정치권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또 사고 소식이 수없이 들려온다. 그렇지만 나쁜 뉴스에 초점을 맞추어 인상만 쓰고 있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이럴 때일수록 어디에 서서 몰려오는 태풍을 피할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진다. 술친구를 만나면 술꾼이 되고 도박을 좋아 하는 친구를 만나면 도박꾼이 된다. 또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는 말도 있다. 위기일수록 우리가 찾고 의탁해야할 곳은 바로 주님의 품이다. 시련이 연속되어 힘이 빠지고 아무 소망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리 힘겨워도 1세기 예수를 믿으며 믿음을 지켜낸 초대교회 성도들 보다는 형편이 좋을 것이다. 감히 ‘이겨 내세요‘ 말씀을 드리면 어떤 이는 ’네가 내 입장을 알아?‘ 하실 수도 있다. 물론 소상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힘이 되어 드리고 싶다.
첫째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면 만사는 오케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빗으시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허락하셨다. 행복하고 형편이 좋을 때는 가정과 부모의 은공을 기억 못하기고 한다. 매일 새벽 깨워주고, 한 숟가락이라도 먹이기 위해 따라다니며 밥을 떠먹여주고 책가방을 챙겨주었던 엄마의 손길을 귀찮아했다. 그러나 집을 떠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때를 만나면 엄마 품이 얼마나 따뜻했었는지 알게 된다. 특히 남자들은 군대에 입대하고 나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우치게 된다.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9)” 고 했다. 또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한다고 했다. 마찬가지 먼 타국에 와서 살면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고 힘겨운 일이 생길 때면 조국이 얼마나 필요하고 내 나라가 반듯해야 함을 살갑게 깨우친다. 그래 해외에 나가야 애국자가 된다는 말도 있다.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이 버릇없는 아이를 보거나 품행이 단정한 아이를 보면 ‘뉘 집 자식이냐?’ 고 물었다. 지금 가정 경제가 파탄 직전이고 회사에서는 나가라고 하는데 몸까지 실실 아픈 삼중고를 겪고 있는데 감히 ‘괜찮아 힘내세요.’ 말 해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더 부서지기 전에 주님 품으로 피하세요.’ 라고 한 마디는 꼭 해주고 싶다. 하나님은 집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를 매일 매 순간 기다리고 계신다. 폭우에 날개가 젖은 참새가 둥지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나와 당신도 힘겨워 죽기 일보직전이라면 머뭇거리지 말고 주님 품으로 들어가자.
둘째 함께 하는 사람과 즐거움을 나누라. 어느 시인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글에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고 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구절이다. 우리가 공기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옆에서 무한 사랑을 주었던 편한 사람의 존재를 나중에야 깨우치고 그때를 회상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가수가 부른 ‘있을 때 잘해’ 가 많이 불린 이유일 것이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 하셨느니라. (눅11:23)” 말씀처럼 주님은 단 한순간도 당신의 시야에서 나를 놓치신 적이 없다. 다만 내가 주님을 찾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어렵고 힘들어도 내 옆에 있어주는 그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고 낙망 중에도 함께 웃음을 찾고 즐거움을 나누기 바란다. 옆에 아무도 없다면 그 순간은 주님이 예비한 시간이다. ‘이제 나하고만 만나자’ 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바란다.
“나를 사나랑 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8:17)” 잠언기자는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다고 했다. 지금 우리 앞에 먹구름이 몰려온다면 비 맞을 염려를 하지 말고 도로에 먼지가 날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된다. 하나님 입장에서 당신은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않을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지금 환난을 거뜬히 이기도록 기도로 응원한다. ‘화이팅!’ 할렐루야 ^^ 성경읽기 8월 2일 마태복음 11 - 18장
원종록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