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거스님은 학승이시지요. 특히 우리나라 화엄의 대가이신 탄허큰스님 상좌시고. 탄허큰스님, 하면 화엄경을 빼놓을 수 없어요. 화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어려운 화엄경에 현토를 일일이 달아 학승이나 한문학자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화엄경을 한문으로 읽게 만드신 분이시지요.
역시 탄허큰스님 상좌이신 무비스님이 스승님이 다신 현토를 정리하신 게 우리가 염화실 카페에서 보는 80화엄경 원문입니다. 무비스님은 그 원문을 예전 한문 원전 놓고 공부하던 때에 비하면 "거저 먹기 또는 식은 죽 먹기"라 말씀하시지요. 그만큼 화엄경 원문을 쉽게 만드신 분이 탄허큰스님이세요.
무비스님은 선승이라기보다는 학승이십니다. 그러나 경전 해석은 문자만 가지고는 안 되고 본인 스스로 경계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일취월장하기에 스승이신 탄허큰스님도 늘 새벽에 참선하신 후 화엄경 번역과 연구에 들어가셨다 하지요. 그래서 아마 상좌들도 참선을 많이 하실 겁니다.
화엄경, 하면 탄허큰스님이고, 탄허큰스님 상좌들은 큰스님 밑에서 화엄경을 그야말로 다른 어느 스승님 밑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을 철저히 배우셨지요. 그러니 지금 혜거스님 화엄경 강의는 탄허큰스님 화엄경이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저는 탄허큰스님 화엄경 강의를 모르므로 확인은 못함).
그런데 같은 큰스님 제자이신데 혜거스님 강의랑 무비스님 강의는 좀 달라요. 무비스님은 물론 청량징관이나 이통현장자의 주장을 인용은 하지만 주로 경전 자체를 읽어나가시고요, 혜거스님은 지금 동영상에도 보듯 경전 자체보다는 청량의 주석과 이통현장자의 주석 위주로 해나가실 듯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스님의 강의를 계속 봐야 알수 있을테니 그때 말씀드리기로 하고...
그런데 저는 무비스님 같은 화엄경 강의가 더 좋고 실지로 더 낫다고 봅니다. 왜냐? 우리가 공부를 할 땐 참고서보다 교과서를 먼저 봐야 해요. 주석서 중심으로 공부하는 건 교과서는 안 보고 참고서를 먼저 보고 참고서만 보는 겁니다. 그러면 경전의 참뜻을 못봐요. 주석서는 어디까지나 주석을 단 사람들의 견해입니다. 그러니 화엄경 주석서 같은 경우도 사람마다 견해가 달라요. 비판도 서로 많이 합니다.
그래서 화엄강의가 무비스님은 크게 안 어려운데 혜거스님 강의는 처음부터 어려워요. 대방광불의 대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런 건 경전을 읽어 나가며 읽는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남이 느낀 이야기, 남의 경계를 이야기하며 강의를 해나가는 게 우리나라 대부분의 경전 강의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죠. 그래서 저는 이런 식의 경전 공부를 안 좋아합니다.
경전은 강의하는 분이 직접 부딪친 경계 위주로 풀어나가며, 당신의 그 경계가 객관성이 있는지를 다른 스승님들의 의견을 들어 검증하는 형식이 되어야지 남의 이야기만 잔뜩 풀어서는 글쎄...
청량징관이 법장현수에서 시작된 화엄을 완성한 면은 있지만, 징관의 견해라고 해서 100% 옳은 것은 아니겠지요. 통현장자의 신화엄론도 마찬가지. 가령 통현장자는 법장의 화엄 해석을 정말 통렬하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법장이 현수종으로 불렸을 만큼 화엄종에서는 절대적인 분인데 말이지요.
첫댓글 재가 불자들께 참선 공부를 많이 강조하신던데 혜거스님은 무슨 인연으로 화엄경 강의를 하시게 되었을까요?
강의 내용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라 신선하게 다가옵니다만 어렵네요. ㅜㅜ
대.방.광.불.화.엄.경!
혜거스님은 학승이시지요. 특히 우리나라 화엄의 대가이신 탄허큰스님 상좌시고.
탄허큰스님, 하면 화엄경을 빼놓을 수 없어요.
화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어려운 화엄경에 현토를 일일이 달아 학승이나 한문학자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화엄경을 한문으로 읽게 만드신 분이시지요.
역시 탄허큰스님 상좌이신 무비스님이 스승님이 다신 현토를 정리하신 게 우리가 염화실 카페에서 보는 80화엄경 원문입니다. 무비스님은 그 원문을 예전 한문 원전 놓고 공부하던 때에 비하면 "거저 먹기 또는 식은 죽 먹기"라 말씀하시지요. 그만큼 화엄경 원문을 쉽게 만드신 분이 탄허큰스님이세요.
무비스님은 선승이라기보다는 학승이십니다. 그러나 경전 해석은 문자만 가지고는 안 되고 본인 스스로 경계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일취월장하기에 스승이신 탄허큰스님도 늘 새벽에 참선하신 후 화엄경 번역과 연구에 들어가셨다 하지요. 그래서 아마 상좌들도 참선을 많이 하실 겁니다.
올려놓은 캡쳐 화면뿐만 아니라 스님의 강의 자체도 들어보세요.
무슨 인연으로 뒤늦게 화엄강의를 하시는지가 나옵니다.
화엄경, 하면 탄허큰스님이고, 탄허큰스님 상좌들은 큰스님 밑에서 화엄경을 그야말로 다른 어느 스승님 밑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을 철저히 배우셨지요. 그러니 지금 혜거스님 화엄경 강의는 탄허큰스님 화엄경이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저는 탄허큰스님 화엄경 강의를 모르므로 확인은 못함).
그런데 같은 큰스님 제자이신데 혜거스님 강의랑 무비스님 강의는 좀 달라요.
무비스님은 물론 청량징관이나 이통현장자의 주장을 인용은 하지만 주로 경전 자체를 읽어나가시고요,
혜거스님은 지금 동영상에도 보듯 경전 자체보다는 청량의 주석과 이통현장자의 주석 위주로 해나가실 듯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스님의 강의를 계속 봐야 알수 있을테니 그때 말씀드리기로 하고...
그런데 저는 무비스님 같은 화엄경 강의가 더 좋고 실지로 더 낫다고 봅니다.
왜냐?
우리가 공부를 할 땐 참고서보다 교과서를 먼저 봐야 해요.
주석서 중심으로 공부하는 건 교과서는 안 보고 참고서를 먼저 보고 참고서만 보는 겁니다.
그러면 경전의 참뜻을 못봐요.
주석서는 어디까지나 주석을 단 사람들의 견해입니다.
그러니 화엄경 주석서 같은 경우도 사람마다 견해가 달라요.
비판도 서로 많이 합니다.
그래서 화엄강의가 무비스님은 크게 안 어려운데 혜거스님 강의는 처음부터 어려워요.
대방광불의 대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런 건 경전을 읽어 나가며 읽는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남이 느낀 이야기, 남의 경계를 이야기하며 강의를 해나가는 게 우리나라 대부분의 경전 강의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죠.
그래서 저는 이런 식의 경전 공부를 안 좋아합니다.
경전은 강의하는 분이 직접 부딪친 경계 위주로 풀어나가며, 당신의 그 경계가 객관성이 있는지를 다른 스승님들의 의견을 들어 검증하는 형식이 되어야지 남의 이야기만 잔뜩 풀어서는 글쎄...
청량징관이 법장현수에서 시작된 화엄을 완성한 면은 있지만, 징관의 견해라고 해서 100% 옳은 것은 아니겠지요.
통현장자의 신화엄론도 마찬가지.
가령 통현장자는 법장의 화엄 해석을 정말 통렬하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법장이 현수종으로 불렸을 만큼 화엄종에서는 절대적인 분인데 말이지요.
오늘 혜거스님의 강의에서 나오는 원효스님 이야기는 제가 보기엔 뭔가 잘못 알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원효가 의상보다 먼저 화엄 주석을 한 거는 아닐 겁니다.
원효도 화엄 주석서를 낸 건 맞지만
원효는 화엄보다는 기신론에 빠졌던 분이시지요.
물론 화엄 주석을 현수법장보다 먼저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의상이 중국에서 귀국했을 때 화엄에 대해서 자문을 의상에게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 원효 화엄과 의상 화엄은 많이 달라요.
지금 우리나라 화엄은 의상 후손들인 셈인데, 그래서 그런지 의상대사께서 실천을 많이 강조하셨다 주장들 하지만,
제가 보건데 의상은 실천은 강조하셨는지 모르지만 구체적인 화엄수행법은 발견을 못하셨어요.
보현을 강조했다는 이야기도 저는 모르겠고요.
그런데 원효는 다릅니다.
원효는 바로 보현!을 보셨어요.
그래서 화엄경을 <보현교>라고도 하셨지요.
화엄사상, 특히 보현사상은 중국 당나라 때 현실 중시 실천 불교 붐을 일으켰던 삼계교에 특히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한번씩 강의 캡처 사진을 올려주시면 원본 동영상을 보고 생각해야하는데 그냥 편하게 슥 읽고 지나가는 일이 많으니 죄송합니다. 짧은 댓글에 이렇게 긴 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 1강에서 스님은 부처님은 우리와 다른 분 이라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그 의도는 알겠습니다만,
화엄을 강의 하시며 그런 말씀을 하시는게 제 마음에 안 듭니다.
부처님은 우리와 다른 분이 아니지요.
부처님이 보이시는 그 뛰어난 정진 용기 자비 그리고 서원 ...
그 모든 것이 본래 우리의 소식인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 가십니까?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
부처님이나 중생이나 한치 다를 바 없고,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이라
부처님이 이루신 모든 성취, 보여주신 모든 경계 역시 우리 모두의 마음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소식이다...
라고 이해는 합니다만.....다른 숨겨진 뜻이 있는지요?
@법혜 모를 때는 달라도
알고 나면 다 같죠
부처와 중생
아라한들이 다르다 생각 하는게 소승불교
부처와 중생
아라한들이 한치도 다름이 없다는 게 대승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