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토요일 강론>(2024. 3. 16. 토)(요한 7,40-53)
복음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40-53
그때에 예수님의 40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51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52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53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요한 7,45-52)”
최고의회가 예수님을 체포하라고 경비병들을 보낸 일은
앞의 3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라는
경비병들의 말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의 힘’에 압도되어서
감히 예수님을 체포할 수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체포를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입니다.>
경비병들이 예수님의 ‘말씀의 힘’에 압도당한 상황은
카파르나움에서 있었던 일과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루카 4,31-32).”
카파르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하느님의 힘’을
느꼈고, 그 힘에 압도당했고, 그래서 몹시 놀랐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갔던 경비병들도 예수님의 말씀에서
거역할 수 없는 ‘하느님의 힘’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라는 바리사이들의 말은,
예수님을 ‘사람들을 속이는 자’로, 즉 사기꾼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마태오복음 27장을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서
‘저 사기꾼’이라고 표현한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 27,63).
“최고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라는 말은, 자기들의 생각이 모든 일의
판단 기준이라는 뜻이고, 대단히 오만한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과 말씀이 ‘메시아의 일이며 말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믿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믿으면 ‘메시아의 일과 말씀’이고, 안 믿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거나,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경비병들은 ‘믿는 쪽’에, 또는 ‘믿으려고 노력하는 쪽’에 선
사람들이고, 최고의회 의원들과 바리사이들은 ‘안 믿는 쪽’에,
또는 ‘믿기를 거부하는 쪽’에 선 사람들입니다.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라는
말에서 ‘율법’은 넓은 뜻으로 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경(율법)을 모른다는 말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이라는 말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경비병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심판하고
단죄하는 말이고,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신성 모독죄를 짓는 말입니다.
최고의회 의원들과 바리사이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고, 경비병들은 그 권력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바리사이들이 하는 말은,
권력으로 ‘갑질’을 하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다.”와 같은 말입니다.>
51절에 있는 니코데모의 말은, 신명기 1장 16절-17절과
신명기 17장 4절을 근거로 한 말입니다.
그의 말은, 예수님을 변호하기 위한 말은 아니고, 최고의회가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한 것은 율법에 정해져 있는 절차를
지키지 않은 불법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변호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성전 경비병들을 비난하고 모욕한 것과
같은 말로 니코데모를 비난합니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라는
말은, “당신도 예수와 한패인가?” 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라는 말은, 니코데모가 성경을
모르고 있다고 비난하는 말이고, 경비병들에게 했던 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이라는 말과 뜻이 같은 말입니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라는 말은,
“예수는 갈릴래아 출신이니 메시아가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갈릴래아 지역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자기들의 생각대로 제한하려고 하는
‘신성 모독’ 발언이기도 합니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는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요나 예언자’는 ‘갓 헤페르’ 출신인데, 그곳은 나자렛 옆에
있는 마을, 즉 갈릴래아에 있는 마을입니다(2열왕 14,25).>
바리사이들은 경비병들에게는 권력의 힘으로 ‘갑질’을 했고,
니코데모에게는 ‘다수의 힘’으로 ‘갑질’을 하고 있습니다.
세속의 힘으로 남을 억압하는 갑질은 악이고, 어둠입니다.
다수가 ‘악의 어둠 속에’ 있고, 소수만이 ‘선의 빛 속에’ 있는
상황은 인류 역사에서 흔히 보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선과 악, 빛과 어둠’의 싸움이었습니다.
박해자들이 예수님을 죽인 일은, 악의 어둠이 선의 빛을 이긴
일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 동안의 일이었을 뿐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빛이 어둠을 완전히 물리치고 이긴 일입니다.
신앙인들은 빛의 자녀들로서, 그 빛을 받아서,
그 빛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요한 12,35-36).>
[출처] 사순 제4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