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체감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남편 슈조를 몇년 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살고 있는 70대 노인 모모코(다나카 유코)는 요즘 자꾸만 이상한 일들을 겪는다. 밥과 약을 먹고, 병원과 도서관을 들르는 단조로운 일상의 적막을 깨고 문득 시끌벅적한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낯선 남자들이 난데없이 이런저런 말을 건네고,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들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젊은 시절, 정략결혼을 피해 도쿄로 도망쳤던 모모코(아오이 유우)는 멀쑥하고 다정한 남자 슈조(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가정을 꾸렸다. 노인 모모코와 젊은 모모코는 서로를 마주하고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떠들썩하게 모모코의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남극의 쉐프> <딱따구리와 비> <모리의 정원> 등 잔잔한 일상 풍경을 배경으로 산뜻한 재치와 포근한 유머를 선보여온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신작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생의 마지막을 앞둔 채 홀로 지내는 노인 모모코가 과거를 돌아보며 삶의 기쁨과 슬픔을 곱씹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을 그려내는 영화다.
60대에 소설가로 데뷔한 와카타케 지사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158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을 만큼 뛰어난 매력을 지닌 원작 소설의 힘도 분명하지만, 원작을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영화화한 감독의 연출력이 영화를 한층 생기 있게 만들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 죽음을 앞둔 노년의 회한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우울하지 않은 톤을 유지하며 끝내 삶을 긍정한다. 원로배우 다나카 유코가 극에 안정감을 더하고, 아오이 유우와 히가시데 마사히로의 로맨스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글 박정원(영화평론가) 2021-07-09
씨네21 리뷰
<모리의 정원> 30년째 정원 밖으로 나가지 않은 모리에겐 그의 정원이 곧 세계고 우주다
노년의 화가 모리(야마자키 쓰토무)는 아내 히데코(기키 기린)와 함께 자신의 정원을 꾸미며 소박하게 살고 있다. 30년째 정원 밖으로 나가지 않은 모리에겐 그의 정원이 곧 세계고 우주다. 풀벌레와 송사리, 풀과 수초와 나무, 햇빛과 바람과 연못이 그의 친구이며 가족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모리의 평온하고 고요한 공간에 작은 소음을 만들어내는 손님들이 한두명씩 찾아오기 시작한다. 유명 화가인 모리가 쓴 간판을 얻기 위해 먼 곳에서 달려온 여관 주인부터 모리의 정원에 빠삭한 사진작가 후지타(가세 료)와 그의 제자 가시마(요시무라 가이토), 그외의 인물들까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남극의 쉐프> <딱따구리와 비> 등의 영화에서 다양한 풍경 속 일상의 순간을 잔잔하게 담아냈던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신작이다. 일본의 근대 화가인 구마가이 모리카즈의 말년을 극화했다. 인물이 정원 밖을 벗어나지 않는 설정이라 한정된 공간 안에서 진행되는데도, 영화는 생동감과 활력을 잃지 않는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벌레의 움직임과 나비의 날갯짓 등이 흥겨움을 더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엉뚱한 농담은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으나, 슬로 라이프 무비로서의 흐름과 분위기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신선 같은 노화가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한 야마자키 쓰토무의 저력이 인상 깊다. 2018년 작고한 원로 배우 기키 기린의 다정한 모습 또한 반갑다. 글 박정원(영화평론가) 2020-03-24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