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 양규봉입니다.
오늘은 지인들과 함께 1박 2일로 다녀온 경주 역사 유적지를 함께 관광
하겠습니다.
신라천년(BC 57~AD 935년)의 수도인 만큼 불교유적과 왕경(王京)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고 유적의 밀집도나 다양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25년전 관광했던 추억과는 너무나 다른 유물들이 복원 발굴되고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새로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유적의 성격에 따라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 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왕릉을 비롯한 고분 분포지역인 '대릉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 중심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하여 불수 있다.
그러나 정해진 일정관계로 몇군데만 관광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SRT고속열차
우리 일행은 10월 22일 아침 8시 10분 열차를 다기 위하여 30분 전까지
도착하여 표를 인수하고 아침 도시락을 준비하여 바로 플랫홈으로 내려가
지정된 열차에 탑승하여 자리를 찾아 앉는다.
이 과정까지 개찰하거나 표 검사 없이 자동 체크되어 빈 자석이 나타난다.
안내에 의지했던 노인들의 관념은 자동화란 문명 앞에선 너무나도 크게
달라진 변화에 격세지감을 느끼며 경험에 의한 사고의 민첩성 이 뒤떨어짐을 느낄 수가 있었다.
SRT고속열차 식판 뒤의 1호~8호 차량사이의 편의시설 안내
일행이 대절한 10인승 리무진 차량
SRT 고속열차는 정해진 시간에 신경주역에 도착하였다.
(서울 ~ 신경주역까지 약 2시간 05분 소요됨)
경주시의 관광지도
탈해왕(박혁거셰), 진덕여왕, 성덕여왕, 무열왕, 등 24개의 왕릉과
김유신장군, 설총 등 유명인 들의 무텀이 지도에 보인다.
관광구역으로 나누면 1. '대릉원 일원' 2. '남산권 일때' 3. '보문관광단지' 경주 남동부의 4. '불국사 석굴암' 로 구분된다.
경주 관광의 중심지 일대 지도
경주 관광의 중심지로는 1. '대릉원(大陵苑) 일대', 2. '동궁(東宮)과 월지(月池. = 안압지(雁鴨池) 일대',
3. '월성(月城)=반월성(半月城)과 발굴현장', 4. '첨성대(첨성대) 근처'의 관광지를 안내한다.
가. 경주 대릉원(大陵苑)지구 관광
사적 제 512호(경북 경주시 노동동 261 등, 1944필지)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있는 신라초기 무덤들로 구역안에 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 등 일제 강점기에 붙여진
90~114(25기), 151~155(5기)호인 30기의 무덤이 밀집되어 있다.
대릉원(大陵苑) 입구
대릉원에 들어가는 매표소는 북문과 남문 두곳이 있다 . 우리일행은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가까운 북문으로 들어갔다.
대릉원 입구의 잘 익은 모과나무가 탐스럽다
Ⅰ. 황남대총
대릉원(大陵苑)의 '황남대총' 쌍봉릉
1973년에서 1975년까지 발굴 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길이 120m, 동서길이 80m, 높이 23m의 거대한 쌍 무덤이다.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남자의 뼈 일부와 많은 유물이 나왔다.
북쪽 무덤에서도 금관과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가 있는 은제 허리띠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Ⅱ. 천마총(天馬塚)
천마총 사적지 안내석
이글은 국토통일의 기상이 넘치고 민족문화가 찬란하게 꽃필 신라의 천년
고도 서라벌의 옛 터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신라의 통일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기리 보전하기 위하여 경주지구 개발의 대 영단을 내리셨다.
그 사업의 하나로 1973년 4월부터 9월까지 7개월에 걸쳐 천마총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대 능원이 정화되었다.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의 신라 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 천마총을 발굴조사가
끝난 뒤 원형대로 복원했으며 그 내부 안을 후세의 교육을 위하여 공개
하기로 하였다.
세계문화사에 찬연히 빛나고있는 우리민족 문화의 전통을 발전한국의 위대한
기상속에 재현코져하는 그 드높은 뜻을 여기 새겨서 길이 전하고져한다.
1976년 10월 문화공보부 문화제 관리국 제공
천마총 입구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밑 둘레가 157m, 높이가 12.7m로 비교적 큰 무덤에 속하며 왕 또는 왕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무덤 내에서 발굴된 유물은 천마도(국보제 189호). 금관(국보 제 188호). 관모(국보 제 189호)등 국보급과 보물급을 포함하여 11.297점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내부 축조방법 설명하는곳
무덤은 평지 위에 나무 널(목관木棺)과 껴 묻거리 상자를 놓고 그 바깥에 나무로 짠 덧널을 설치하여
돌덩이를 쌓고 점토로 꼼꼼하게 세운 후 봉분을 높게 쌓아 축조하였다.
유물 발굴될때의 장면
천마총 발굴은 황남대총 발굴에 앞서 발굴 경험과 발굴 지식을 쌓기 위하여 계획한것으로 발굴하였으며
1977년 4월에서 그해 12월까지 약 8개월 동안 발굴하여 유물 11.500여점이 출토되었고 광복 이후 처음으로 신라의 금관이 출토되었다.
금관이 발굴될때의 장면
천마총 유리잔(보물 제 620호)
높이 7.4cm 잔 위 지름이 7.8cm 인 유리잔이다.
유리잔 2개가 발견되었는데 그중 한개는 복원이 불가응할 만큼 파손되어 있었다.
잔은 청색의 투명한 유리로 기포가 보이지 않은 점으로 보아 높은 제작 기술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잔 두께는 일정치 않고, 압구쪽이 약간 밖으로 멀어져 있는 점으로 보아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나비모양 관모 꾸미개(보물 제 617호)
금제 접형관식 과모꾸미개로 금관을 쓸때 사용하는 관식(官飾)으로 분류된다.
용도는 정확한 해석이 내려져 있지 않는다.
관모(官帽)(국보 제 189호)=(관리들이 쓰는 지정된 모자)
천마총에서 발견된 국보급 관모(관리가 쓰는 정해진 모자)이다.
삼국시대에 착용을 한 우리나라 전통 관모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금으로 만들어 실제 쓰고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부를 상징하기 위하여 금으로 만들어 무덤에 묻었을 것이다.
머리에 쓴 천에 꿰매어 고정시킨 후 썼던 것으로 보이나 관 밖 머리쪽에 있던 유물상자 수장궤와 관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모양을 투각한 4장의 금판으로 구성하였고 상단은 둥글고 밑으로 갈 수록 넓어져 하단은 반 원형이 되어 양 끝이 처진 형태이다.
새모양 관모 꾸미개(보물 제 618호)
새날개 모양의 금제 조익형관식(金製鳥翼形官飾)으로 금관과 같이 착용하는 관식(官飾)으로 분류한다.
사용법은 미확실하나 관머리쪽에 있는 유물 보관함에서 발견되었다.
큰 새의 날개가 펼쳐있는 모양이고 밑은 방패모양으로 된 장식이 달려있다.
몸체와 날개에는덩굴문늬를 파 놓았다.
가장자리의 테두리와 줄기부분에는 세밀하게 점선을 찍어 얇고 긴금판이 힘을 받도록 했다.
표면 전면에는 지름 0.7cm정도의 원판을 400여개 정도 금실로 연결하여 매우 화려하다.
밑에는 장식이 없고 밑이 둥근 돌기부가 있으며 못구멍이 하나 있으나 어떤 방법으로 무엇에 고정시켰는지 알수 없다.
천마총 금관(국보 제 188호)
높이 32.5cm와 전형적인 신라금관으로 묻힌사람이 쓴채 발견되었다. 머리위에 두르는 넓은 띠 위에는 出(출)자형 모양이 3줄로 있고.
뒷면에는 사슴 뿔 모양이 2줄로 있는 형태다.
山(산)자형은 4단으로 위는 꽃 봉오리 모양이고 금관 전체에는 원형 금판과 굽은 옥을 달아 장식하였다.
금실을 꼬아 금판조각을 느러뜨렸으며 금판을 촘촘히 연결하였다. 아래로는 나무잎 모양의 늘어진 드리개(수식=머리에 꽃는 장식)가 두가닥 달렸다.
금관 안에는 내관이나 관을 쓰는데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널(관) 밖에서 다른 부장품(껴 묻거리)과 함께 발견하였다.
말걸이(등자 鐙子)
말을 탔을 때 두 발로 디디는 마구
말안장 앞가리개(전륜 前輪) 뒷가리개(후륜後輪)
금 동으로 만든 말 안장 앞가리개와 뒷가리개(前輪과 後輪)
삼국시대 우리나라와 무역을 했던 루트 지도
통일 신라시대의 불교문화의 교류와 무역이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사우디아라비아등 다수의 나라들과 교류를 하였음을 알수 있다.
천마도(天馬圖) 국보 제 207호
천마도의 크기 : 가로ㅡ75cm, 세로 : 56cm
진품은 오랜시간 땅속에서 변질되어 공기와 햇볕에 민감한 반응으로
중앙국립박물관이 특별 보관하고 3회정도 짧게 공개하였다고 한다.
천마도는 중앙에 흰색의 천마도를 그렸고 가장자리에는 흰색, 불근색, 갈색, 검은 색 선으로 당초문
(동글무늬 장식, 불교적인 장식 요소)로 장식하였다.
무덤에서 발굴된 것으로 보아 실제 장니로 쓰였다기 보다는 '죽은이의 영혼을 하늘로 실어 나른다'는
엣생각에서 비롯된 그림이 아닐까?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현제는 내부 구조를 볼수 있게 복원 하였고 유물은 복제품으로 전시하였다.
이 그림이 하늘을 나는 말 그림과 같다.하여 천마도(天馬圖)라 부르고 이 그림이 출토된 무덤을
천마총(天馬塚)으로 칭한다.
등자(말 걸이) 밑에 붙어있는 장니
말 양쪽 배에 말 발에서 튀기는 진흙을 막기 위한 가리개를 한자말로
장니(障泥 막힐장. 진흙니), 우리말로는 말 다래 라 칭한다.
이곳 천마총에서 나온 장니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었다.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장니에 그려진 천마도 이기에 한자말로는
백화수피제 천마도(白樺樹皮製 天馬圖) 또는
천마총 말 다래는 천마도가 그려지고 자장나무껍질로 만들었기때문에
백화수피제 천마도 장니(白樺樹皮製 天馬圖障泥)라 칭한다.
지금까지 출토된 천마의 부류는
1. 자장나무껍질로 만든 장니의 천마도 한쌍(白樺樹皮製 天馬圖)
2. 얇은 대나무살을 엮어 작은 구멍을 뚫고 금동판과 금동 못으로
붙여 장식한 천마도 한쌍(竹製透組天馬圖)
3. 옷칠한 재료로 만든 장니에 나타낸 천마도 한쌍 (漆器製天馬圖)가 발견되었다.
2018년 11월 10일. 월용이가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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