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장의 사진이 여러분들께서는 별 의미가
없어보일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겐 어릴적 너무도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소중한 사진이랍니다.
저 사진속의 주인공인 내아우
성일가 간직했다 내게 보내준 저 사진
배경속에는 지금도 또렸히 기억하는 많은
추억이 담겨있습니다.
이곳은 어릴적 내가 자란 둔창 도장원 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 길건너에 동천똘 또다른
널빤지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우측에 윤석이네집이 있었고
그길로 그냥 내경쪽으로몇발짝 가다보면
옆에 희복이네집도 있었지요.
사진에서보이는 논길 은 예전에
소펀,대펀,둔창 친구들이 내경국민학교를
다니기위한 가장 가까운 길이었으며
그다리 앞에서 데설굿은 희복이 왕수가 지키며
대펀,소펀 여자친구들을 괴롭혔던
그 문제의 장소이기도합니다.
병희가 언젠가 얘기하기를 희복이의 횡포가
무서워 그길을 지나지못하고
내경 갯뚝을 거쳐 삥삥돌아
집에 간적도 있다고 말했는데
정작 그행위를 자행한 희복이는
그런 사실이없다 적극 발뺌을하니
50년이 훌쩍지난 지금 이제와서
그사실을 밝힌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한것.(^_^)
횡포를저지른자는 즐거운 추억
그걸 당한자는 괴로운 추억이었지만
이제는 모두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길,,,,
그시절 변변한 놀이 시설이 없는 시절이기에
이곳은 나의 유일한 놀이터이자 수영하기좋은
워터파크였지요.
무더운 여름 발가벗은 (빤스를 입었는지
안입었는지는 기억안남 ㅋ)
몸으로 헤엄치며 개구리,물방개,물뱀들과
함께 놀았고, 커다란 고무다라 타고 쭈그러진
노란 양재기 두개로 노를저어가며
깔대미에 붙어있는 우렁이잡이도 또한 쏠쏠한
재미가 있었지요.
그 고무다라는 나같은 숙련된 조교가 아니면
아무나 타지는 못했지요. ㅋ ㅋ
처음 탈때부터 중심을 잘잡고 타지않으면
그냥 뒤집어져 엎어지기가 다반사였으니까요.
(캄보디아어린이들의 양은다라배 타는모습이
나 어릴적 고무다라 타던 모습과 붕어빵.)
그때는 환경오염이란 자체를 몰랐기에
헤엄칠때 나는 그 시궁창의 퀘퀘한 냄새도
지금도 확실히 느껴지지만 그러려니
아무렇지않게 생각하고 하루종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지칠때까지 놀았어도
큰 병앓이 없이 자란걸보면
확실히 오염이 적었던지 없었던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한여름철 장마나 소나기가
지나고 나면 저 널빤지 다리위에서
흐르는 물에 사둘이라는 삼각그물을
담그고있다 잠시후에 들어보면
한가득 하얗게 팔딱팔딱 뛰는
붕어,송사리,메기,미꾸리등이 가득올라왔고
가끔씩 자연산 장어,민물새우도 덤으로
잡혀올라와 주린배를 채워주고 영양을
보충해주는 일용할 양식이 돼 주었지요.
지금은 없어못먹는 보양식 미꾸라지는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있어 그냥 버리던지
아니면 삶아서 소,돼지,닭 먹이로 사용했지요.
지금은 토종참붕어는 많이 자취를 감추고
떡붕어가 대세를 이루고있지만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 배를딴 참붕어에
묵은지를 넣고 각종양념을넣어 만든 붕어찜은
지금도 입에 침을 고이게하는 별미중의 별미가
아니었습니까?
먹고남은 씨알이 굵은 참붕어는 쪄서 말려
나중에 우리들 도시락 반찬으로 또한
일품이었구요.
옥수수 애벌레잡아 벼이삭을 훓어내고
그걸로 묶어 물속에 담그면 송사리가
쉴새없이 물어 톡톡 잡아당기면 튀어올라오는
재미가 정말로 쏠쏠 했지요
잡은 송사리로 매운탕과 아욱과송사리를
된장과 함께풀어넣어 끓인 된장국의
그 구수한맛 모두 기억하실겁니다..
그러나 저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장소임에도 가슴아픈 추억도 함께 서려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때는 상수도 시설이 없어 동네 몇군데
물둠벙(그당시는 그냥샘이라고부름)을 파서
봄 농사철 예당수리조합물 내리면
그때 가둬놓았던 물을 가라앉혀 물지게로 져서
부엌에 뭍어놓은 물독에 넣어 다시
흙탕물을 가라앉혀 식수로 사용했었지요.
그 둠벙에는 개구리 뱀들도 자유롭게 헤엄치며
여유롭게 지냈지만 누구하나 그걸 잡거나
쫓아내지않고 자유롭게 우리와 함께
공생했지요.
우리집에서 가장가까이에 있는 둠벙은
지금은 고인이된 이순호 친구 의 집에
있었는데 우리집은 그곳을 이용했습니다.
※ 여기서 잠깐 이순호 친구 에대한
애닮은 사연 소개합니다. ※
이 친구는 우리와 함께 내경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야 중학교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은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11호를타고 최초로
인간이 달에 착륙했다해서 그 기념으로
임시공휴일로 쉬었는데 그날 갯벌가서
이합을 잡고 나와서 잡은이합 닦으려고
새로갯벌을 막은 내포원장 물고랑에
들어갔다가 미끄러지면서 헤어나지 못하고
14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 친구와 여름날엔 항상 바깥마당에
모기불펴놓고 밀대방석 깔고앉아 밤하늘의
달을보고 별을세며 얘기하고 노래하며
즐거워했던 절친중의 절친이었기에
그 안타까움이 더했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국민학교 4학년때일이었습니다.
엄마가 내 바로 아래동생이 잠든걸 확인하고
순호네 둠벙에서 물지게지고
물을뜨러간사이에 동생이 깨서 울면서
엄마를 찿아 나왔나 봅니다.
그런데 이동생이 울면 특징이 하나있었습니다.
이동생은 울면 울다 숨쉬고 또 울고
그러는게 아니고 몇번울다 입술이 파랗게
질리면서 까무라치는 성격이있었습니다.
(나 또한 똑같은 증상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마도 그날 자다말고 나와서 찿던 엄마가
없으니까 울다 지금의 저 다리옆에서 까무라쳐
또랑에 빠진거 같습니다.
엄마가 돌아와 그걸 발견하고 꺼내 보았으나
그애는 이미 숨을거둔 상태였고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울었던지지금도 그기억이 생생합니다.
내가 하두 울으니까 나를 염려해주던 고모님이
잿무덤에 묻어두고 있으면 다시 깨어난다고
거짓말로 나를 위로하며
그동안 큰집에 있으라며 데려다 주었고
나는 큰집 사랑방에서도 그동생의 죽음이
믿기지않음에 하염없이 울고있었습니다.
그동생이 살아있다면 아마도
올해가 환갑이나 62세정도 될겁니다
그당시 울고있던 나의 귓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 한곡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하더군요.
노래의 내용은 모르지만 멜로디가
어린 나의 아픈마음을 파고드는데.
12살 어린나이에 들은 음악이지만 지금도
기억이 또렸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음악을 들으면
항상 마음이 아립니다.
그곡이 바로 이곡
https://youtu.be/hS-vBtclq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