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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마태복음16:1-12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제자들에게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왜 책망을 받았을까요? 그들은 모두 시대에 대한 영적 통찰력이 없었으며 특히 믿음이 없고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이 시대에 대한 영적 통찰력과 책임감이 없었음을 책망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시대에 대한 영적 통찰력과 책임의식을 가짐으로 이 세대를 구하고 내년에는 더욱 잘 세워 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그들은 시대의 통찰력 없어서 책망받았습니다. (1-12)
1-12절에는 시대 의식이 없는 몇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제자들입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지 못하고 그 시대의 영혼들을 전혀 깨워줄 수가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영적 세계를 믿고 몸의 부활도 믿었지만 그들의 신앙은 다분히 형식적이고 율법적이였습니다. 그들은 나름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지고 율법을 따라 살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행23:8, 행22:3). 예를 들어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착실히 드렸습니다. 그러나 영적통찰력이 없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영적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현실세계를 중시했습니다. 그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다 믿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부를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들역시도 자신의 이익에만 열심이였지 전혀 그 시대를 읽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시대를 읽고 깨워가는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악한 마음을 품고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시오." 그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수많은 표적을 보아왔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충분히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할 꼬투리를 잡기 위해 하늘로서 오는 다른 표적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이는 그들이 날씨를 분별할 능력이 있다면 그 시대를 읽을 줄 알고 능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기예보에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즐겁게 주말을 보내거나 여행을 하기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대의 흐름이나 역사의 변화를 알리는 사건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잠든 백성을 깨우고 병든 그 시대를 인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적 지도자로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백성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였지, 그 시대 백성들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백성들을 바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 자들이었습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영적 통찰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겉보기에는 에덴동산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동성애같은 악을 행하여 멸망 직전에 있음을 알고 간절히 중보기도 하였습니다.
서기 400년경 성 어거스틴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자신과 그 시대에 대해서 무책임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한 후 그는 시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거짓 이단 사상과 싸우고 잘못된 구원관과 싸우며 복음을 변명하고 확증하며 “참회록”을 쓴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싸워야 할 시대의 징조가 무엇입니까? 1) 이 시대는 누가 보나 거짓사상이 횡횡하고 거짓이단과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막시즘으로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어제 CNN 뉴스에는 한국군의 최대 적은 저출산율이라고 하였습니다.
2) 세계 곳곳에는 전쟁과 지진과 화산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큰 능력과 영광을 재림하실 징조입니다.
3) 다니엘서에는 말세의 징조에 대해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였습니다.(다니엘서12:4) 오늘날 KTX같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많은 사람이 얼마나 빨리 왕래하며, 지식은 얼마나 많아졌습니까? 인류가 이때까지 쌓아 놓은 과학지식은 15년 만에 바꾸어진다고 합니다.
4) 사도 바울은 딤후 3:1-4절에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가 되어 가고 있는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가까왔음을 알려 주는 징조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의 징조를 바르게 분별하게 되면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고, 이런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분명한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4절을 보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살아난 것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표적 중의 표적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메시야라는 표적이요, 승리의 표적이요 영광의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가 전한 메시지를 듣고 회개한 것 같이 그들도 이 표적을 보고 회개하고 그 시대를 잘 통찰하고 감당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치 않고 여전히 악하고 음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인하여 심히 슬퍼하시며 떠나 가셨습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일기예보를 왜 보십니까? 즐거운 주말을 보내기 위함입니까? 예수님은 오늘 우리가 날씨는 관심 있게 보면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 슬퍼하십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릇된 길을 가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전도하지도 않고 잡아주지도 않는 우리를 주님은 책망하십니다. 잡아주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자책하거나 회개할 줄도 모르는 우리를 보시고 슬퍼하십니다. 우리는 올 한해 시대의 징조를 잘 통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르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바르게 잡아주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수방관하며 한해를 보내다보니 전도의 열매가 심히 적습니다. 우리는 이를 마음아파하며 한해를 보내길 바랍니다.
둘째, 제자들은 믿음이 적어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호수 건너편으로 갔을 때 제자들이 떡 가져 오기를 잊었습니다. 이때 마침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6) 예수님은 제자들이라도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그 세대 영혼들을 잘 이끌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악영향으로부터 보호하고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의논한 후 예수님이 떡에 관해 말씀하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못알아듣고 그들은 떡을 가지고 오지 않은 일로 예수님께로부터 책망 받으면 어떻게 하나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문서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전혀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8) 결혼문제가 있는 자는 모든 것을 결혼문제와 관련시켜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떡 문제에 즉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떡과 관련시켜 생각했습니다. 떡 문제는 장래 안정(security)문제입니다. 그들은 장래에 대한 염려로 심령이 막히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젊고 미래가 창창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재가 좀 힘들더라도 좀 더 높고 좀 더 고상한 것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누룩의 의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침투해서 전체를 부패하게 만든다는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많이 연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자기들만이 최고라는 자부심에 빠져서 모든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그들의 교만과 아집과 편견이 누룩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룩으로 말미암아 순수성을 잃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바리새인 같은 신앙이 될까 염려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처음 예수님을 따를 때 그들은 순수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사모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충만했습니다. 이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때로 배고프고 피곤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우는 기쁨이 있었고 성도들을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의 마음에도 조금씩 누룩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큰가? 경쟁심과 알력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 인간적인 욕심이 틈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눈은 오직 예수님께 집중되기보다 이런 저런 인간적인 생각으로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흐려져 가는 것을 보시고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처음에 예수님믿고 말씀을 배울 때는 순수하고 진실했었습니다. 눈동자가 살아있었고 배우고자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순수하고 열정적 이였습니다. 그러나 7년, 10년 정도 되다보나 아는 것은 많아지고 머리는 커지다보니 말은 많아지고 생각도 많아지고 이런 저런 인간적인 생각만 많이 하게 됩니다.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헌신하고 충성하기 보다는 앞뒤를 재고 따지고 계산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어느새 형식적인 누룩이 침투했습니다. 누룩이 침투하기 시작하면 그 마음이 무뎌져서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서 영적인 통찰력이 약해집니다. 이것은 영적인 백내장과도 같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우리 내면을 살펴보고 내 안에 인간적인 누룩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지는 않는지를 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너희는 누룩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 우리가 묵은 누룩으로 말고 --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 5:7,8)” 우리교회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각자가 묵은 누룩을 제거하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만을 섬기고자 몸부림치는 내적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의 능력이 살아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에 감격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그들은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책망을 받았습니다. 9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냐?" 그들은 "열 두 바구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물으셨습니다.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더냐?"(10) 그들은 다시 합심하여 "일곱이니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예수님이 책임지시고 먹여주시고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믿음도 없었고 깨닫지도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심하게 책망하시면서 믿음을 가르쳤습니다. 이는 믿음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면 "어찌 내 말함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바리새인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보수 신앙인들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었던 부활을 우리도 믿고 천사가 있는 것도 믿고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일부 성도들은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을 믿고 있을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들로서 하나님은 믿었지만 부활된다는 것은 믿지 않았고 천사가 있는 것도 믿지 않았고 사후세계 즉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러다보니 이 땅에서 잘 살아야 한다고 여기는 현세주의자이며 기복신앙인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현실세계만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부를 축적하고 주말이면 놀러 다니기에 급급했습니다. 우리들중 일부는 분명 사두개인처럼 하나님을 믿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무엇보다 이 시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얼마나 교묘하게 마귀가 다음세대들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또한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하는지 분별하여야 합니다. 얼마나 교묘하게 안일하게 만들고 얼마나 교묘하게 방심하게 만들고 얼마나 교묘하게 속이는 비법을 잘 캐치하여야 합니다. 마귀들이 우리 양떼들을 어떤 방법으로 주님과 떼어놓고자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속이고 있는지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교회다니니까 구원받은 줄 알고 안심하게 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기복신앙으로 이끌고자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해를 보내면서 고통하는 이 시대를 분별하는 통찰력이 없었고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여있었음을 회개하십시다. 그리고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인간적으로 계산하고 나약하여 도전하지 못했던 점들을 회개하십시다. 말씀의 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의 누룩과 세상누룩을 주의하지 못했던 점을 회개하면서 한해를 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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