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느낄 수 없는 제대로 된 VR 체험
VR 영화의 극장 상영 시대가 시작됐다. 롯데시네마가 VR 시네마 9편을 모은 ‘VR 영화 특별상영전’을 연 데 이어 CGV가 VR 멜로드라마 <기억을 만나다>의 단독 개봉에 나섰다.
한국 극장업계를 이끄는 두 개의 멀티플렉스 체인이 잇따라 VR 영화를 상영했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선댄스영화제, 칸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들이 VR을 영화 기술의 일부로 받아들인 지금, 국내 극장업계도 발 빠르게 대세를 따르고 있다. 소규모 VR 전용 상영관이 아니라 더 큰 자본, 더 좋은 설비를 갖춘 극장이 VR 산업에 뛰어든다면,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위해 두 멀티플렉스 극장은 VR 영화를 2D로 편집해 스크린에 띄워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벗더라도 얼마든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관객을 배려했다. 헤드셋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극장 사운드 시스템, 극장들이 특별히 공 들이고 있는 최고급 시트 등도 무시하지 못할 장점이다. VR 시네마 시대를 열고 있는 두 극장의 전략과 더불어 향후 본격적인 VR 시네마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풀어야할 과제는 무엇인지 점검해봤다.
롯데시네마, “관객 반응 보며 신중하게, 특별전 형식으로 도입하겠다”
롯데시네마는 롯데시네마월드타워 6관에서 ‘VR 영화 특별 상영전’을 개최했다. “그동안 국내외 영화제나 박람회 등에서만 접할 수 있던 VR 영화 콘텐츠를 극장 상영해 일반 관객들도 접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 이번 상영전의 취지였다. 지금까지 제작된 VR 영화 중 9편을 선정한 이번 상영전에선 송윤아 주연의 공포 스릴러 <나인 데이즈>를 필두로 6편의 실사 VR 영화와 3편의 애니메이션 VR 영화가 선보였다. 또 다몬게임즈 김영호 대표가 ‘VR시네마와 플랫폼’을 주제로 강연에 나서는 등 VR 콘텐츠를 극장에 접목하기 위한 업계 관계자들의 고민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번 상영전은 네 개 업체가 손잡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롯데시네마와 함께 삼성전자가 HMD와 스크린 역할을 하는 갤럭시 스마트폰 등 기술 부문에서 협력했고 콘텐츠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진행한 VR 영화 제작 참여사들이 중심에 섰다. 또 운영 시스템은 다몬게임즈(
pgmangames.co.kr)가 맡았다. 롯데시네마 프로그램팀 강승혁 리더는 “네 개 파트의 참여자들이 상의해 상영작을 선정했다. 최대한 다양한 장르,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상영작 9편은 크게 실사와 애니메이션으로 나뉘는데, 실사의 경우 국내 작품과 해외 작품을 아울렀고,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역사물과 판타지 등 장르를 다양화했다. 또 관객들이 극장 좌석에 앉아 HMD(삼성 기어 VR)를 착용한 상태에서 관람해야 했기 때문에 360도 VR이 아닌 최대 270도 작품을 선정했다.
이번 상영전을 시작으로 롯데시네마는 앞으로 VR 영화의 발전을 지켜보며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승혁 리더는 “실제로 상영을 해보니 HMD를 나눠줄 스태프, 상영 중 초점이 맞지 않거나 불편을 느끼는 관객을 도와줄 스태프 등 추가 인력이 필요하더라. 장비 투자 문제도 있다. 이번에는 삼성과 협업했지만, 만약 정기 상영이 시작된다면 온전히 이를 극장이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그 비용 부담을 능가할 만큼 수익성이 담보되는 콘텐츠가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극장의 VR 영화 상영은 콘텐츠 생태계가 조성되는 시점과 맞물려 확산되라는 전망이다.
CGV, “4DX VR 통해 시장 선점하겠다”
반면 CJ CGV는 VR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다. 극장 상영 시스템을 개발, 판매하는 CGV 4D PLEX를 통해 전 세계 500개 4DX 상영관에 VR을 접목하는 ‘4DX VR’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3월 22일 열린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 기자회견에서 4D PLEX 이노베이션 유영건 팀장은 “그동안 4DX는 몰입형 극장 시스템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작년에 선보인 4DX with SCEEN X에 이어 올해는 VR을 접목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려 한다”면서 “가상현실(VR)은 가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선 시각적 요소만으로 부족하다. 4DX가 제공하는 촉각, 청각, 후각 효과를 결합함으로써 진정한 가상현실을 구현할 수 있다. 집에서 느낄 수 없는 제대로 된 VR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4DX VR의 첫 번째 상영작으로 <기억을 만나다>(제공/제작 ㈜바른손이앤에이, 공동제작 ㈜이브이알스튜디오)가 선정된 이유도 특별하다. 곽경택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로 나서고 VR 영화 <보화각>을 연출한 구범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번 영화는 뮤지션을 꿈꾸는 우진(김정현)과 배우 지망생 연수(서예지)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린 청춘 멜로다. 구범석 감독은 “흔히 VR이라고 하면 어드벤처, 액션, 호러 장르를 떠올리는데 연출자로서 바라본 VR의 장점은 감성적 교감에 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확신이 더 강하게 들었다. 교감이란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가 로맨스다. 앞으로 많은 관객들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VR의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기억을 만나다>의 러닝타임은 국내 VR 영화 중 가장 긴 38분이다. 극장 상영작임에도 360도 화면으로 만들어졌다. 애초에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4DX 효과팀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다. 유영권 팀장은 “4DX VR 모션 효과는 기존 4DX 효과와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 4DX가 주로 액션이나 SF 등 장르에서 강한 진동, 흔들림, 카체이싱 효과 등 강렬한 모션을 풍부하게 썼다면 VR 영화에선 관객의 어지러움 등을 고려해 주인공의 감정선을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데 주력한다. <기억을 만나다>에서 우진과 연수가 첫사랑을 시작하기에 앞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우주 유영에 비유한 장면, 그리고 깊은 슬픔에 빠진 우진의 방 전체가 물속에 가라앉는 장면 등이 그렇게 탄생했다.
<기억을 만나다>를 시작으로 CGV는 4DX VR의 확대 방안을 고심 중이다. 유영건 팀장은 “전 세계 500개관의 4DX 상영관에 ‘VR 애드온 패키지(VR 상영을 추가로 할 수 있는 시스템)’를 만들어 제공하려 한다”면서 “관객은 VR을 극장에서 볼 수 있고, 극장은 부가적으로 VR 영화를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현재 VR 콘텐츠 제작자와 소비자 사이에 플랫폼이 따로 없는데, 4DX VR이 그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콘텐츠 수급에 대한 복안도 마련했다. 4DX를 통해 교류하고 있는 해외 유수 스튜디오와 협력해 VR 영화, 기존 영화의 VR 트레일러, 광고 영상 등 콘텐츠 파이프라인 확대 계획도 가지고 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전용 VR 시네마관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