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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남산 정상에 있는 자물통 나무이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를 위하여 일차적으로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1395년(태조 4) 정도전(鄭道傳)을 대빵으로 해서 성터를 측정, 조사하게 하였다.
이에 정도전은 백악산,·인왕산,·남산, ·낙산에 올라 실측하여 이 네
산을 연결하는 성터를 결정하였고, 축조하였다.
그러면서 4대문과 4소문을
완성하였다.
4대문은 동쪽의 흥인지문(동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남대문), 북쪽의 숙청문을 말하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혜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사대문의 이름은 유교의 기본사상인 인의예지신를 기본으로 하여서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숙정문(肅靖門)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각 이름에 인의예지를 포함했는데 북대문은 숙정문(肅靖門)이라고 붙였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정치인들이 백성들이 똑똑해져서 정치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 구별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알 知자가 들어가 문이름을 것을 반대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어진 이름이 숙정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중안에 보신각(普信閣)을 세워 유교의 5상을 완성했다합니다
사실 이번계획은 서울성 전코스를 하루에 일주하는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체력 저하 기상상태 그리고 돌발상황에 대비해서 작년다녀왔던 구간은 일단 제외하고
모든 여건이 되면 당일 완주를 하려는 계획으로 출발한다
계획은 출발은 혜화문, 낙산, 동대문 , 광희문 남산 숭례문 서소문 서대문을 거쳐서 사직공원까지이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혜화역 1번 출구이다
약간의 빗방울이 뿌리고있었다
도착시간은 08:14분이다
약속시간보다 조금일찍이다
10여분을 기다렸다
조금 짜증이 날만할때다
내가빨리와서 그렇지 위안한다
그리고 약속시간 정확하게 나타난다
우리 출발점 혜화문으로 가기전
혜화동성당 담장 밖이다
대한조국 주권수호 일념비 이다
많이 다녔던길이지만 세삼 새롭게 보인다
위비에대한 설명이다
아마 일제때 우리 지식인들의 어떤 염원을 담은것 같다
해독 불능
혜화역에서 10분정도
삼선교방향이다
길건너 혜화문이 보인다
홍화문이라 쓰여졌는지 확인할수 없다
길을 바로 건널수 없어 담에 가기로했다
혜화문아 꼭 담번에는 갈꺼다
혜화문 건너편 서울 성곽 시작싯점이다
사실 이고 차타고 지나만 다녔던 곳이다
성곽 투어할수있도록 배려가 되있음도 이번에 처음 확인한다
자 이제 성곽투어를 시작합니다
오늘 같이 다니게될 곽광순입니다
그리고 나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을 기념합니다
처음만나는 성벽이다
오래된성벽이 잘 보존되어있음을 느겼고
조금은 설레이기도한다
지속적으로 성벽은 이루어져있고
가끔 이렇게 이정표도 되어있다
그리고 성벽옆으로 투어를할수있도록 길도 잘되어있다
물론 그 옆은 우리의 일상도 존재한다
성외과으로 돌고있었다
즉 서울이 아닌곳으로 걸었다는뜻이다
낙산 정상인듯하다
암문이있고
내부는 공원이다
산의 모습이 낙타 등처럼 볼록하게 솟았다고 하여 낙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풍수지리상 서울의 형국의 구성하던 내사산(內四山)의 하나로,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
옛날 도성 5대 명승지에 이름을 올린 낙산은 조선시대 때 문인들이 별장을 짓고 살 만큼 풍광이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져 왔다.
이곳이 정도전이 서울성을 계획했을때는 산 정상이었을것이다
지금은 마을을 이룬 서울의 하나의 동네이고
그사람들이 쉬고 운동하는 공원이다
낙산 정상을 내려오며 성곽과 서울시내를 같이 조영해본다
서울시에서 성곽보호에대한 안내문을 곳곳에 설치해놓았다
물론 보호해야지요
그리고 성곽에대한 설명입니다
사진으론 해독 불가합니다
설명과 나란히설치된 성곽지도와
년도별 성곽 축조방식의 설명입니다
작은돌로 쌓은것이 133년대
중간돌은 1400년도
그리고 큰돌로 개조한건 1600년도 입니다
계속적으로 무너지고 개축했었단 말이겠지요
낙산 공원을 내려오니 이화동입니다
난 이화동이 이렇게 높은곳에 있을질 몰랐네요
그런데 이 이화동이 마을 박물관이라네요
서울시에서 지원하고 주민들 협조하에 마을 전체를 박물관으로 개방했답니다
사실 개발당시 서울을 많이 간직하고있는 동네이갰기에 가능하겠지요
이화동 마을 지도는 담에 한번 더가봐야할꺼같아
첨부한다
아래사진은 지도12번에해당한다
이름은 "갤러리 그美 "이다
칠보 공예가 김미연씨의 작업공간으로 꽃, 새, 인물 등의 무늬가 새겨진 다양한 칠보공예 작품을 전시하고,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과정을 볼 수 있다.
아쉽지만 너무 빨리온거지요
위지도 11번에 해당된다
"개뿔 (박물관)"이다 낙산성곽 근처에 위치한 적산가옥으로 이화동 주택의 역사와 구조·형태를 알 수 있는 건물 사진 및 도면, 스케치 등을 전시한다.
또한 지금까지 흔하게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형태의 와인오프너를 전시하여 이색적인 볼거리도 제공한다.
지도 9번에 해당한다
"이화동 마을박물관"이라 불리어진다
전체 마을박물관의 메인 전시관이다 이화마루 텃밭 옆에 자리하고 있다.
이화동 마을 주민들에게 기증 받은 사진자료와 생활도구, 이화동에 관한 추억이 담긴 주민과 서울 시민들의 영상물이 전시된단다.
말그대로 텃밭입니다
커다란 뽕나무가있는데
어제밤 바람에 일부 가지가 잘렸다
나무크기로 보아 오디 열렸을 때는 무척 분주했을거같다
박물관 벽면에 쇳대박물관 특별전을 알립니다
지도에 1번 건물이 쇳대박물관입니다
박물관 안내입니다
중요한건 사람이 살고있다는거지요
2000원정도는 투자해야겠지요
하지만 여기도 역시 10시이후에나 볼수있답니다
어느집 벽면에 그려진 그림이비니다
정말 삭막할것같은 산동네 골목길을 눈이 확뜨이게 만들었지요
둘이 부녀지간인것 같지요
이양반도 이런 딸하나 만들어 주었....
마을 구석구석이 앙증스럽읍니다
대장간을 가르키는 이정표입니다
그리고 그대장간의 문패이구요
창으로 안을 들여다봅니다
사실 시골 대장간 같지는 않군요
조소과 실습실이랄까?
마을에 구멍가게도 일반적인 모습이면 재미없겠지요
색깔 재목 그리고 그림이 물건을 꼭사고싶은 그런 가게입니다
그냥갈수없어서 막걸리 한병 사갑니다
이따 남산에서 한잔하려구요
동대문까지 내려가는 성벽은 중간에 이렇게 암문을 뚫어놓았읍니다
그때있던것인지? 최근에 만든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든 개구멍 같은건 있어야겠지요?
아파트가 흔한 요즘입니다
어렸을적엔 우리동네도 요런집이 많았었지요
언덕 높은곳 걸어오르기도 힘든곳에 그냥 우리동네 같은 이곳입니다
이높은곳에도 다 깨지긴했지만 콘크리트 포장은 되어있고
자동차들도 일열로 주차되어있읍니다
이제 시야가 많이 트여있읍니다
동대문도보이구요 새로 명물이된 동대문 디자인센터도 보입니다
그리고 동대문과 많이 접근했을때 한양도성박물관이란게 있네요
역시 시간전입니다
담에 한번 찾아봐야지요
그리고 오늘 동대문을 새롭게봅니다
그냥 차타고 지나가면서 아무의미없이 바라보던 그런 동대문이 아니고
조선 개국의상징인 서울성의 동쪽의 문으로
그동대문으로 가기위하여는 길을 세번 건너야합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서울시쪽에서본 동대문을 감상하고있지요
그동대문을 가운데두고 양방향 차들이 쉴세없이 달립니다
특히 남대문 화재이후 감시용cctv도 자기역활을 하고 잘하고있는듯합니다
길을 세번이나 건너서 문앞에 왔읍니다
그리고 기념해야겠지요
젊은 것이 대표로 찰칵입니다
그앞에 흥인지문에대하여 뭐라고 쓰여있네요
이잰 이런글이 잘안보이지요?
남쪽으로 성곽의 절단부도 다시봅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별로 느낌은 없어요
특이하게 이 흥인지문만 네 글자로 되어있다. 이는 고종 재위 때 한양 동쪽의 지기가 약하다는 이유로
그 기운을 북돋는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넉 자로 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처구니가 없다구하지요?
동대문의 기왓지붕을 4모서리에 사람이나 갖가지 기묘한 동물들의 모양을 한 토우(土偶 : 흙으로 만든 인형)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는데 이를 '어처구니'라고 한답니다
보이시죠?
비방울이 바람과함께 세어지기시작합니다
그리고 성곽의 흔적을 따라걷읍니다
서울의 새로운 명물이된 동대문 디자인센터입니다
축구장 야구장을 합쳐논 자리에 지어졌지요
높지는 않지만 웅장합니다
우주선과같은 모양으로 신비스럽기까지하네요
신비로움을 더해주기위해서인지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고
빗방울도 점점 세어집니다
곡선지붕을 뚫고보이는 동대문의 원조 터주대감인 밀레오레간판과
두산타워가 신비로움을 더해줍니다
그리고 옛날 축구장 제일 놓은곳을 지켰던 성화입니다
지금은 구닥다리이겠지만 예전에 전국체전때 성화불에 오징어 구어먹었다는 소리도 들었었는데
디자인센터를 돌아돌아 ㄱ길을 몇번 건너 광희문을 찾아 갑니다
저기 보이네요
광히문이요?
따로 설명 안드려도 동대문 남대문사이의 작은문인걸 아시계지요
성내 죽은사람은 이쪽문으로만 나갈수있었다지요
그래서 시구문이라 불리어지기도 했답니다
광희문 현판입니다
제가 보기엔 상당히 잘쓴 글씨인 것같은데
낙산부터 줄곳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던 카토릭 성지순례자 들입니다
기념사진 찍으시는때 잠시 얼굴 빌렸읍니다
사진작아서 초상권은 ??/
광히문부터 장충체육관 앞길까지는 성곽이 보이질 않군요
이미 사람들 삶속으로 깊히 빠져버렸나봅니다
복원도 힘들정도로
한독약품앞 횡단보도입니다
전면에 성곽이 보입니다
유리에 성곽 설명을 써놓았는데 볼수가 없네요
아마 이길이 신라호텔을 성곽안에 넣고 성곽 밖으로 연결된 길이듯합니다
야간에도 갈수있도록 야광으로 계단 표시를 잘해놓았지요
조금가니 이번에는 돌길로 산책길이 꾸며져있읍니다
아까 이화동에서본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있지요?
여기가 잘사는 동네인가봅니다
성곽에 바로붙어 현대식 특급호텔 신라호텔이 보입니다
옛닐과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입니다
좌측은 숲으로 우측은 600년된 성으로
파란색 계단을 오르면 바로 하늘에 닿을듯 보이지않나요?
정말 이길 만족합니다
서울서만 쭉 살아왔지만 난 이길 처음가는길입니다
아침에 밥안먹고 출발했지요
어느순간부터 배속에서 꼬록꼬록 소리가 납니다
아까 이화동에서 사온 막걸리 그리고 떡한조각씩 요기합니다
비피하며 먹기 딱 좋은곳입니다
딱 필요한지점에 있군요
요기하고 출발하는 데
우측에 타워호텔이 보이고
남산의 작은 봉우리들이 안테나와함께보입니다
그리고 성곽길 이번에는 이테원쪽 한남동이 훤히보입니다
꺼꾸로 이곳을 바라보곤했었지요
역시 반대를 행한다는건 재미있네요
타워호텔입니다
사실 어떻게 이런 호텔이 이런 녹지공간에 있겠읍니까?
군사정권때 가능했갰지요
지금이라면 어림없겠지요
타워호텔 옆으로 남산 n타워가 보입니다
오늘따라 남산타워가 더 멋있어 보이는건 내가 바로 그리로 가것이기 때문이지요
국립극장이있는 남산입구입니다
오늘이 아니라면 편안한길 순환도로 걸어서 가거니 버스타고 갔겠지요
하지만 오늘은 그런 생각 안함니다
오직 성곽만 보고 갈것입니다
국립극장은 이렇게 곁눈만 주고 통과합니다
지도 볼수있지만 그리 도움도 않됩니다
어렸을때 송충이 잡으로 단체로 왔던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정말 벌거벗은 산이었읍니다
한구루의 소나무도 벌레로부터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이었지요
우리가 잘살게 된만큼 산도 녹음이 깊어졌읍니다
남산의 성곽은 여지껏보았던 성곽과는 많이 다르네요
복원한것인지 예전부터있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힘든곳에 이작업을했을텐데 존경해야하나요?
계속해성 성곽길을 오릅니다
성곽길 총250미터구간에 200미터를 올랐다구요
그래도 힘드는군요
마지막 힘을 다해서 오르고있읍니다
이제250미터쯤 왔겠지요
이제 하늘이 열리고 성곽이 바로 눈앞에 보입니다
이런 시멘트를 많이 사용했군요
부자집 담장 같지요
그래도 성곽길 보호하자는 말 아닐까요?
다시 버스와 만나고 바로 눈앞이 정상입니다
정말 중국사람들 많이있네요
그틈을 뚫고 남산 팔각정과 꽃하트 앞에서 포즈잡고 지념합니다
그리고 한장더 섹시한 몸매 들어내고 한장더
사람바꾸어 찍으려하는데
또 중국사람에게 밀려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똑같은 포즈로 찰칵
그리고 섹시한 배 드러내고 찰칵
바로 n 타워 앞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느라 얼굴에 열이 팍팍 납니다
한남동쪽 바라보는곳입니다
자유로이 앉아 즐길수있는곳이지요
물론 음식도 먹을수있구요
우린 잠시 바람으로 얼굴을 식힙니다
그래도 젊은 사람은 땀이나도 멋있지요?
코너 돌아서 얼쇠나무가 있읍니다
일반 나무는 아니겠지요
꼭 쓰레기 조형물같기도하고
참 대단한 조형물입니다
이거 누가 한사람이한게 아니기에 더욱 돗보입니다
저도 조형물 앞에서 포즈취했지요
5000원주고 사서 붙이기는 아깝고
그냥이렇게 기념 합니다
자물통은 사랑의 상징인가보지요
참 많은 자물통이 남산의 상징입니다
마누라와 함께오진 않았지만
마눌 생각하며 우리결혼했어요에 사진 남깁니다
말안통하는 중국여자 쫒아내고
그자리 앉으려하니
바지가 젖어듭니다
엄청난 자물동입니다
프랑스 쎈강의 퐁데자르 다리에 사랑의 자물쇠이렇게 있었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걸려있어 그무게를 못이켜 2.5미터구간의 난간이 주저앉았다는 해외토픽이 있었읍니다
여기도?
자물통의 종류도 시기도 그리고 글씨도 개성이있지만 이렇게 모여있으니
똑같이 보입니다
남산하면 팔각정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왜소해보입니다
낙서가 디자인의 일부가 되는세상이지요
여긴 봉화대 문짝인데
빈자리가 없읍니다
봉화대를 마지막으로 정상을 마감합니다
하산깅도 성곽을 따라 내려갑니다
여기도 시멘트로 성곽을 고정했네요
남산 잠두봉 포토아일랜드입니다
아마 서울시내 전경을 찍기 좋은곳인듯합니다
일기 관계로 시야가 좋지않읍니다
그래도 서울서 오래살아서 이정도면 어디가 어딘지 구별이갑니다
카메라 렌그 테스트입니다
물방울 이너무 많이 매쳐있어서
닦았거든요
잘닦였네요
그리고 소공동 새내를 바라봅니다
어둠에 자동자 뒷등이 야간 같이 밝게 빛납니다
분수대자리입니다
지금은 뭔가 발굴작업중입니다
담장을 보고있는 비오는날 벤치가 상당히 이상하게 다가옵니다
이것이 맞는건가?
ㅇㅖㅅ날 어린이 회관 건물이지요
정말로 없이 살던시절 어린이들을 위한다고 지은 건물이지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애들 ....
안중근의사도 잠시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산하는길입니다
LG사옥도 보이고 힐튼호텔도 보입니다
그리고 새로쌓은 서울성도 보입니다
사실 저건 성이라 볼수없지요
그냥 성곽을 흉내낸 조형물이랄까?
하여간에 고증에따라 남대문까지 연결한 성곽이겠지요
어째든 가까이보면 조금은 실망인데 멀리 보니 성같네요
서울의 여러성을 다니며 복원과 개축에대한 생각을 자주합니다
이렇게 남산을 끝냈읍니다
시원하게 활시위을 당겨봅니다
시원합니다
그냥 하나 끝낸거지여
하나입니다
남대문시장 칼국수 유명한집이있다던데
못찾았어요
그냥 이집이아닐수도있지만
30년 전통이랍니다
맛이요?
감격스럽진 않아요
그리고 남대문입니다
최근 아픈상처를 많이격었지요
국보1호 남대문인데
역시 새로 복원했기에 국보1호 붙일 자격이있나요?
경비초소가있읍니다
직업이 하나 더생겼네요
그리고 네비따라 상공회으소 담장으로 갑니다
건물지면서 허가조건이 담장을 성곽과 최대한 비슷하게 하라는 조건이었나봅니다
여지껏본것과는 많이다른 성곽 모습이 되었읍니다
그냥 무늬만 성곽인거죠
도심 건물이 흡연 금지검물이 되면서 많은사람들 이곳 성벽에서 흡연하나봅니다
간절하게 금연요청하는글이 보입니다
중앙일보건물 앞입니다
남대문과 서대문사이의 작은문 서소문이지요
소덕문이라했다가 후 소의문으로 변했답니다
이문때문에 이곳지명이 서소문이 되었지요
그곳 바로옆 국민은행 앞이다
시위병영터라 쓰인 안내석이다
시위병영은 임금을 모시던 부대이다
경호실이랄까?
일제에의해 해산되고 이들이 항일에 가장먼저 앞장선 사람들의 주축이된다
그리고 길건너 왼쪽건물이 배재학당이다
우리나라 오래된 학교중하나이고
그앞에 향나무 역시 540년 된 향나무이다
그자리에서 우리나라 흥망을 지켜본 나무이다
바로 오른쪽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예전 법원건물을 개조해지은 미술관이고
오래된건물로 예전 법원건물의 특색인 현관부분만 존치시키고 내부는 모든것이 현대식으로 바뀌었단다
그리고 덕수궁 돌담길과 만나는 정동이다
이곳에서 이화여고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역시 성곽은 안보인다
이화여고 예원중학교 사이의 길이다
옛 MBC 건물에서 고려병원(현삼성강북병원)사이 이곳은 서대문이있던자리이다
서대문은 숙종때 새로 짓다시피했서 개축하면서 새문이라불렀다.
새문안 교회라는
역사 깊은 신문로의 교회가 새문을 이어 받은 이름이다.
오늘날 신문로라는 거리 이름은 새문을 한자로 쓴것이다.
난 신문사가 많아서
신문로인줄로 알았었다
사진은 삼서강북병원이다
강북병원을 지나면 서울시 교육청이있다
그리고 송월동 예전에 작은집들은 모두 헐렸다
성곽은 깨끗하게 복원되었고
그아래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저 성곽 안쪽은 예날 기상청 자리였었다
지금도 기상청 분점으로 쓰이는듯하다
성곽을 복원하며 공원도 조성된듯하다
중고교시설 이곳에서 살고있던 친구가있었다
그때 이이곳은 판자촌이었지
많이 변했구먼
성곽 역시 밑둥이돌만 옛것이고
복원이아니고 현대 석공의 집장사 집같이 지어졌다
그공원끝이다
악보종이같은 스텐 판이있다
가서보니 홍난파 봉숭아다
아마이곳에 홍난파 생가가있나보다
그리고 그옆에 또다른 노래비 고향의봄이다
그리고 도져히 종로구라고 생각할수없는 산동네언덕을 오르고있다
길도 잘못들어 뒤돌아가기도했다
은행나무다
상당히 오래된듯하다
그렇군요 권율장군 집터입니다
또 그만큼 오래된 은행나무일것이다
헤메고 다시가고를 몇번 드디어 성곽이 나온다
어! 눈에 많이 익은곳이다
그래 여기 인왕산 입구다
지난번 내려온
그런데 어떻게 큰길 건너왔지?
오늘은 체력이 고갈되어서 여기까지만 하련다
지난번 여기까지왔었기때문에 공식적으론 완주한거다
그리고 하산하니 터널이 나온다
여기가 어디?
아 맞어 사직터널이다
우리가 터널위를 통과했구먼
그래서 길안건너고 인왕산 입구 도달할수 있었군요
오늘 처음 나와 동참한 곽소장 마무리하시죠
이양반도 한손들어 마무리합니다
전철타러가는길
자전거 인력거가있네요
정동극장에서하는 배비장전 선전하는 차군요
우리 곽소장 여기한번 태워줍니다
정동극장이면 거리가 꽤 되는데
이친구는 반쪽만 했잔아요
담기회 같이 마무리하기로 약속합니다
나같은경우 평생을 서울서 살았읍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 한바퀴 돌았는데도 감회사 새롭읍니다
역사공부도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이웃도 보고
정말 일석이조의 여행었읍니다
나머지구간 갈때는 성곽구조에대한 공부좀 하고가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