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
벼슬을 저마다 하면
김창업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될 이 뉘 있으리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北邙山)이 저러하랴
아희야 잔 만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어구풀이
-농부될 이 : 농사군이 될 사람.
-뉘 : 누가
-의원(醫員) : 오늘날의 한의사.
-북망산(北邙山) : 중국 낙양의 북쪽에 있는 산이름인데, 한(漢)나라 때 이래로
묘지(墓地)가 되어 있다. 묘지 또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일컬음.
♣해설
-초장 : 벼슬을 사람들마다 다 하려고 하면 농사 지을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중장 : 의원이 어떠한 병이든지 다 고치면 북망산천(北邙山川)의 무덤이 저
렇게 많을 수가 있겠느냐?
-종장 : 아희야! 잔세 술이나 가득 부어라. 나는 내 곧은 마음대로 실컷 술이나
마시면서 살아 볼까 하노라.
♣감상
작가 김창업은 부친 김수항(金壽恒)과 형 김창집(金昌集)이 다 영의정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자신은 벼슬을 싫어하여 자연에 묻혀 농사를 지으며 서예·문장 등에 전념
하다가 일생을 마친 청렴결백한 선비이다. 이 시조는 그의 형 창집(昌集)이 자꾸 벼
슬이 높아져 가고 가문이 점점 융성해져 감을 보고 불안해 하며 향촌으로 들어가 은
거하며 지은 것으로, 인생(人生)은 유한한 것이고 입신출세도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
이 아니니 술이나 마시며 전원에 묻혀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체념과 달관을 노래한
시조이다. 즉 작가는 하늘이 정해 준 운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인간의 과제인 동
시에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소개
김창업(金昌業, 1658~1721) : 자는 대유(大有), 호는 노가재(老稼齋), 또는 석교(石
郊), 본관은 안동(安東), 숙종 때의 한학자(漢學者)로서 영의정이던 김수항(金壽恒)의
넷째 아들. 숙종 7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을 싫어하여 전원생활을 즐기
었다. 동교(東郊)에 집을 짓고 농사로써 생애을 꾀했으며, 그 집을 노가재(老稼齋)라 이
름함. 형 창집(昌集)이 중국 사신으로 갈 때에 청나라 북경에 다녀와 그곳의 풍물 등
여러 가지 일을 기록한 「연행일기(燕行日記)」를 지었으며, 그 밖의 저서에 「노가재집
(老稼齋集)」이 있고, 산수·인물 등 서화에 뛰어난 솜씨가 있었음. 그 밖에 시조 3수가
전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