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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믿는 믿음에서 깊이 익어가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에는 계절이 있다. 어린아이의 믿음이 있고, 청년의 믿음이 있으며, 장년의 믿음이 있다. 물론 연령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이 성숙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여러 계절을 지나온 장년에게는 젊은 시절과는 다른 믿음의 깊이가 요구된다.
젊을 때의 신앙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열정적인 믿음이었다면, 장년의 믿음은 지나온 삶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젊을 때에는 하나님께 무엇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했다면, 장년이 되어서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존 웨슬리의 구원의 순서(Ordo Salutis)는 장년의 믿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웨슬리에게 구원은 한순간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삶 전체를 이끌어 가는 은혜의 여정이다.
선행은총에서 시작하여 회개와 믿음, 칭의와 신생을 거쳐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나아가며, 궁극적으로 영화에 이르는 구원의 여정은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장년의 믿음은 “나는 얼마나 오래 믿었는가?”라는 질문보다 “나는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야 한다.
1. 장년의 믿음은 선행은총을 기억하고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이다
웨슬리의 구원론에서 출발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찾아오신다. 이것을 웨슬리는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으로 설명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깨우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믿음 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은혜이다.
특히 장년의 신앙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고백이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우리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내가 열심히 일했고, 내가 가정을 지켰고, 내가 교회를 섬겼고, 내가 어려움을 견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과거를 다시 바라보면 고백이 달라진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장년의 믿음은 이 고백에서 깊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앞을 바라보며 달려갔다. 그러나 장년이 되면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지나온 세월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해야 한다.
질병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계셨고, 실패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계셨으며, 가정의 어려움과 사업의 위기, 관계의 아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장년의 믿음은 감사의 믿음이어야 한다.
그러나 감사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나온 삶을 돌아볼수록 우리 안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죄와 상처와 욕심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해야 한다.
여기에서 회개가 필요하다. 웨슬리에게 회개는 신앙생활의 초기에 한 번 경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계속해서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운다. “주님, 아직도 제 안에 내려놓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제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직도 제가 붙들고 있는 욕심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이다.
장년의 믿음은 자신을 변호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는 믿음이다. 그리고 회개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웨슬리에게 믿음은 단순히 교리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장년이 될수록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든다. 젊을 때에는 건강도 붙들고, 재산도 붙들고, 사람의 인정도 붙든다. 그러나 인생의 시간이 흐르면 건강도, 재산도, 사람도 영원히 붙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소망이라는 사실을 더욱 깊이 깨닫는다.
장년의 믿음은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깊다. “주님, 이제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장년의 믿음이다.
2. 장년의 믿음은 칭의와 신생의 은혜를 넘어 성화와 거룩함으로 자라가는 믿음이다
웨슬리의 구원의 순서에서 칭의(Justification)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간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웨슬리의 구원은 칭의에서 끝나지 않는다. 칭의가 죄책의 문제를 해결하는 은혜라면, 성화(Sanctification)는 죄의 권세와 부패를 극복하고 인간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키는 은혜이다.
웨슬리에게 신앙의 목표는 단순히 “죄 용서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장년의 믿음에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교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우리는 신앙의 외적인 모습에 익숙해질 수 있다. 예배드리는 것도 익숙하고, 기도하는 것도 익숙하고, 찬송하는 것도 익숙하다. 교회 직분도 맡고 여러 사역도 감당한다.
그러나 신앙의 외형이 자라가는 것과 내면의 거룩함이 자라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장년의 믿음은 외적인 직분보다 내적인 성품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얼마나 오래 교회에 다녔는가보다 얼마나 온유해졌는가가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보다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말씀 앞에서 얼마나 자신을 내려놓는가가 중요하다. 웨슬리가 말한 성화는 바로 이러한 변화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커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나는 것이다.
특히 웨슬리가 강조한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은 장년의 믿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인간이 실수도 하지 않고 약점도 없는 완벽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장년의 신앙은 이 사랑의 성숙을 향해야 한다. 젊을 때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했다면, 장년이 되어서는 “내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가? 내가 인정받지 못해도 섬길 수 있는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가? 이것이 성화의 실제적인 모습이다.
장년의 믿음은 성공의 믿음에서 성품의 믿음으로, 업적의 믿음에서 사랑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은혜의 수단을 통해 계속 이루어진다. 말씀과 기도, 성찬과 예배, 금식과 교제, 자비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해서 거룩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장년의 신앙은 멈추어서는 안 된다. “나는 오래 믿었으니 이제 충분하다”가 아니라, “주님, 남은 생애에도 저를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야 한다.
3. 장년의 믿음은 영화의 소망을 바라보며 사랑과 섬김으로 인생의 마지막 계절을 살아가는 믿음이다
웨슬리의 구원의 순서는 결국 영화(Glorification)를 향한다. 성화의 최종적인 완성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이 땅에서 거룩함을 추구하지만 완전한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성된다.
이것은 장년의 믿음에 놀라운 소망을 준다. 인생의 후반부가 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몸의 힘이 예전 같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도 줄어든다. 사회적인 역할도 달라지고,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것을 경험한다.
이때 믿음이 없다면 인생의 후반부는 상실의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 세상은 나이가 들수록 끝에 가까워진다고 말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영광을 향하여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장년의 믿음에는 종말론적인 소망이 있어야 한다. 죽음은 믿는 자의 마지막 실패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웨슬리에게 이러한 소망은 현실을 도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을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아는 사람은 오늘을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 언젠가 하나님께 결산할 것을 아는 사람은 오늘 더욱 사랑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주님을 만날 것을 아는 사람은 오늘 주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장년의 믿음은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남은 시간을 나를 위해서만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 남은 시간을 과거를 후회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를 축복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남은 시간을 사람에게 인정받는 데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충성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여기에 장년의 사명이 있다. 젊은 사람에게는 힘이 있다. 그러나 장년에게는 경험과 지혜와 간증이 있다. 젊은 사람은 앞으로 갈 길이 많다. 그러나 장년은 이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 시간이 많다.
그러므로 장년은 다음 세대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겨야 한다. “내가 살아보니 하나님이 옳으셨다.” “내가 지나와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컸다.” “내가 실패해 보니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러한 고백은 어떤 책보다 강력한 신앙교육이 된다.
장년의 믿음은 이제 나를 위한 믿음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웨슬리의 성화론에서 거룩함은 언제나 사랑과 연결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거룩한 삶이다.
그러므로 장년의 믿음이 깊어질수록 말은 부드러워지고, 마음은 넓어지고, 손은 따뜻해져야 한다.
교회에서 오래 믿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의 연륜이 깊을수록 판단보다 이해가 많아져야 한다. 하나님을 오래 섬긴 사람일수록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해야 한다. 이것이 장년의 믿음이다.
맺는말 ― 오래 믿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믿는 사람
존 웨슬리의 구원의 순서는 단순한 신학적 도식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어떻게 변화되고 성숙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신앙의 여정이다.
선행은총으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다. 회개를 통해 우리는 죄에서 돌이킨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든다. 칭의를 통해 죄 사함을 경험한다. 신생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간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하여 사랑 안에서 성숙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선다.
이 구원의 여정에서 장년의 믿음은 특별한 위치에 있다. 장년은 이미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많은 기쁨을 경험했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사람을 얻기도 했고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세월을 하나님의 구원의 순서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구원의 길 위에서 인도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장년의 믿음은 지나온 세월을 자랑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그리고 남은 생애를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 지금까지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은 생애 동안에도 저를 더욱 거룩하게 하시고,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다음 세대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게 하소서.”
장년의 믿음은 인생의 마지막 장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를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게 그 은혜를 전하며,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믿음의 계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래 믿는 것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깊이 믿어야 한다.
깊이 사랑해야 한다. 깊이 거룩해져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웨슬리의 구원의 순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결국 하나이다. 구원은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은혜를 받았지만 더 큰 은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믿음을 가졌지만 사랑 안에서 더욱 성숙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향하여 걸어가야 한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수고와 눈물을 내려놓고, 마침내 주님의 품 안에서 완전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장년 성도들이여, 지나온 세월을 감사하라. 현재의 믿음 안에 굳게 서라. 그리고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이 고백이 우리의 마지막 고백이 되기를 소망한다.
경기연회 남양지방회 원천교회
곽일석 목사(iskw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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