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가 되면 이 땅의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단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온 세계의 열방들이 하나님께 나아오게 된다고 성경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19:16~25의 말씀은 이러한 일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19:16 이후에 나오는 “그 날”은 그 당시에서 멀지 않은 특정한 날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19:16~25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그 당시의 특정한 날보다는 마지막 종말의 때를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것이 더 분명해집니다.
애굽은 유다의 땅으로 인해 두려워할 것이며, 애굽 사람들은 힘이 없는 여인들처럼 두려월 떨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9:16, 17). 이스라엘(유다)을 향해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보고 두려워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애굽 땅에서 가나안 방언을 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9:18). 가나안 방언은 가나안에 살던 족속들의 방언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방언, 즉 히브리어로 말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9:18). 다섯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매우 작음, 매우 적음을 의미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성읍 중에서 아주 적은 수의 성읍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는 “멸망의 성읍”이라고 칭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멸망의 성읍”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있기에 학자들 중에는 성경을 옮겨 적어 사본을 만들면서 글자 모양이 비슷한 하나를 잘못 표기하여 “태양의 성읍”을 “멸망의 성읍”이라고 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멸망의 성읍”이라고 불리는 성읍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읍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섬기면 멸망의 자식들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들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19 이후에는 더 놀라운 예언이 기록됩니다. 애굽 땅의 중앙에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이 있겠고, 애굽의 변경에는 하나님을 위한 기둥들이 세워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실제로 BC 400년에 엘레판틴(Elephantine)이라는 도시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이 세워졌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엘레판틴은 레온토폴리스(Leontopolis)와 같은 성읍으로 봅니다. 그리고 애굽 사람들이 대적으로 인하여 고통받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애굽에 하나님 자신을 알리셔서 하나님께 나아와 제물과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9:20). 하나님께서 애굽을 치시더라도 다시 고치셔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며(19:22), 애굽과 앗수르가 서로 교통하며, 애굽과 앗수르가 함께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9:23). 그리고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와 더불어 세계 중에 복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과 애굽, 앗수르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9:24, 25).
이 말씀은 이사야나 그 이후에도 그대로 실현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종말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굽과 앗수르는 이방 민족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가 이르러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열방들이 주님 앞에 나아와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19:20에 나오는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이 오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열방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도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를 통해 그 당시의 상황과 나라들을 예로 들어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20:1~6의 말씀은 앗수르에 의해 블레셋도 멸망하고, 애굽도 함락될 것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베옷을 벗고, 신을 벗고 3년 동안 지내게 하십니다. 이사야가 이러한 퍼포먼스(Performance)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게 한 때는 앗수르의 왕 사르곤(Sargon) 2세가 다르단(Tartan)을 블레셋의 중요 도시인 아스돗(Ashdod)으로 보내어 점령하게 한 해였습니다. 다르단은 앗수르의 군대장관(Supreme commander)을 일컫는 직책의 이름입니다(20:1). 그 당시 블레셋은 앗수르의 침공을 막기 위해 구스(Cush) 사람으로 애굽의 파라오(Pharaoh)였던 샤바카(Shabaka)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샤바카는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였지만, 블레셋의 왕인 야마니(Yamani)를 앗수르의 왕인 사르곤에게 넘겨주고 맙니다.
이사야가 속옷만 입고,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보냈던 3년(햇수로 3년)은 블레셋의 아스돗이 앗수르의 침공으로 함락될 때까지의 시간을 보여준 메시지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애굽과 구스의 백성이 앗수르의 침공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예고하고 있습니다. 애굽과 구스의 백성이 벌거벗겨져서 수치스럽게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나라들과 사람들이 강력했던 애굽과 구스가 그렇게 참혹한 모습으로 앗수르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면서 20:6에서는 “우리가 앗수르의 공격에서 우리를 구해달라면서 그토록 의지했던 나라인 애굽과 구스가 이런 참혹하게 수치를 당하고 있으니 우리는 어디로 피할 것인가?”라고 한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밖에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아무리 부강한 나라. 강력한 나라를 의지한다고 해도 모두 부질 없는 것이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로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도 어느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물질이나 권력, 명예, 의지할만한 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헛것처럼 될 것입니다. 의지할만한 다른 것을 찾기보다는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오늘도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