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나무>
집을 나설 때마다 마주치는 산딸나무,
계절 따라 몇 차례 몸을 바꿔도
느낌은 언제나 그대로다
사람의 아들 예수와 산딸나무 십자가,
그 기막힌 골고다 언덕의 사연
때문일까
귀가 때도 어김없이 나를 굽어보는
산딸나무
늦봄에 흰 십자가 꽃잎 턱에 맺히던 열매는
어느덧 영글어 검붉은 핏빛,
잎사귀 들도 붉게 물들었다
산딸나무 꽃은 왜 꽃이 아니고
열매를 받치는 십자가 모양의
꽃잎턱일까
잎도 열매도 때 되면 성혈처럼
붉어지는 걸까
꽃피우기 보다 오직 열매를 받치기
위한
꽃잎, 그 받들어진 열매 빛깔 따라
붉게 타오르다 지고야 마는 잎들
집을 나서거나 돌아올 때마다
나보다 먼저 나를 굽어보는 산딸나무,
단풍도 열매도 이젠 다 비워내려
하고 있다
<이슬방울>
풀잎에 맺혀 글썽이는 이슬방울
위에 뛰어내리는 햇살
위에 포개지는 새소리,위에
아득한 허공
그 아래 구겨지는 구름
몇 조각
아래 무덤덤 앉아 있는 바위, 아래
자꾸만 작아지는 나
허공에 떠도는 구름과
소나무 가지에 매달리는 새소리
햇살들이 곤두박질하는 바위
위 풀잎에
내가 글썽이며 맺혀 있는 이슬방울
(작가 소개)이태수:1947년.경북 의성 출생.시인.1974년<현대문학>등단.시집(그림자의 그늘)(우울한 비상의 꿈)(물속의 푸른 방)(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꿈속의 사닥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