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19, 2026 연중 29주 월요일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Oct 19, 2026
-하느님의 작품 의도와 우리의 선(善)의지가 일치하는
오늘 독서 말씀에서 ‘한때(once)’라는 말이 눈에 들어와 ‘한때’ 묵상 곧 우리 인생은 너나없이 ‘한때 인생’이라는 묵상을 해봤습니다. 이 말은 우리 인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인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한때는 이렇게 살았지만 저렇게 살게 되고, 한때는 저렇게 살았지만 이렇게 살게 되는 그런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너나없이 다 한때 인생을 사는데 문제는 그것이 회개일지 타락일지가 문제입니다. 한때 죄 가운데 살았지만 회개하여 은총의 사람으로 살 수도 있고, 한때 신앙인답게 살았지만 어떤 계기로 죄 중에 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오늘 독서는 에페소 신자들이 개과천선한 사실을 얘기합니다. “우리도 다 한때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을 뜯어보면 하느님의 큰 사랑 덕분에 죽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면 죽었던 우리는 어떤 것이고 살게 된 우리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육신 생명이 죽었다가 다시 살게 된 것은 아닐 것이고, 기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는 그런 뜻일까요? 그렇게 얕은 뜻이 아니지요. 욕망을 따라 사는 바람에 우리의 정신이 죽어있었는데 다시 살아난 것일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시시 정신을 살아야 하는데 그 정신이 죽어있다가 프란치스코 파스카 800주년을 보내는 올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시시 정신이란 프란치스코 지녔던 정신이고 프란치스코로 하여금 성령에 취해 살게 했던 그 정신인데 죽어 없던 그 정신을 되살리면 우리도 성령에 따라 살게 되겠지요. 아무튼 에페소 신자들은 한때 육의 정신으로 욕망에 따라 살던 사람들인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신 사람들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진짜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오금박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얼마든지 다시 육의 정신이 들어차 욕망대로 살 수 있는 존재들이지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살리신 그 생명과 사랑의 삶을 계속 살라고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작품답게 살아야 한다고 오금박듯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만들어진 작품이요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담겨있는 것이고 작가의 의도에 맞게 살려는 우리 의지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하느님의 의도와 우리의 선(善)의지가 일치하는 그런 영적인 삶을 살기로 다시 마음먹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