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장. 열반 얻을 중생은 없다
菩薩이 度衆生入滅度나
又實無衆生得滅度니라.
보살(菩薩)이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滅度)에 들게 한다지만
참으로 열반을얻을 수 있는 중생은 없다.
《註解》
菩薩 只以念念 爲衆生也일세.
了念體空者 度衆生也라.
念旣空寂者라면 實無衆生得滅度也.
此上은 論信解니라.
보살은 망념 하나하나를 중생으로 삼을 뿐이므로
망념 그 자체가 텅 비어 있음을 아는 것이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다.
망념이 텅 비어 고요하다면
참으로 열반을 얻을 수 있는 중생은 없다.
이 위에서는 ‘믿음과 깨달음에 대한 이해[信解]’를 말하였다.
출처: 선가귀감, 서산대사 지음, 원순 역해, 도서출판 법공양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7qHMGz3OX-c&list=PLwWQdPwuhgTxzQoXdjEnWEfya59GIWWW7&index=21
PLAY
법성원융무이상~~
마하반야바라밀_()_
원순스님 번역을 보면 제 마음에 좀 들지 않는 부분이 자주 나옵니다.
이번에도 그렇네요.
又實無衆生得滅度는 '참으로 열반을얻을 수 있는 중생은 없다'라기보다는 '한 중생도 실로 제도를 얻은 바가 없다',
즉 금강경 말씀처럼 보살이 무수한 중생을 제도한다 하지만, 한 중생도 실로 제도한 바가 없다, 이렇게 번역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네요.
지금처럼 번역해 버리면 자칫하면 열반경 이전의 일천제가 되어 버릴 수 있지요.
공의 상태에서는 구제할 중생도 구제하는 보살도 없습니다.
왜냐?
일념이 없으니깐요!
그러니 제도해도 제도했다는 생각이 없고,
제도 되어도 제도된 중생이 없어요.
그러니까 실무중생 득멸도, 인 겁니다.
菩薩 只以念念 爲衆生也도 지금처럼 '보살은 망념 하나하나를 중생으로 삼을 뿐'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문자 그대로, 보살은 오로지 생각 생각마다 중생을 위한다, 가 낫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보살은 생각생각마다 중생을 위하며 늘 본래 자리가 공함을 요지(완전히 알기에)하기에 (능히) 중생을 제도한다.
念旣空寂者라면 實無衆生得滅度也라... 이 부분은,
이미 공적한 자리에 있기에 중생을 멸도했다는 생각도 없다,
라고 저는 번역하고 싶네요.
원순스님 번역으로 이해 못했던 부분들을 쉽게 알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생각생각마다 오직 중생을 향한 보살의 마음~~~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사실, 이해안되어 갸웃했다가 댓글가르침을 보고 이해합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저도 그렇습니다.
보현 선생님 댓글을 보고서야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번역이란 건 섣불리할 게 아니라 정말 허공에서 외줄타는 심정으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근데 성경도 그래요.
정말 희한하게 번역한 부분도 많은데 그걸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기독교인들이 부지기수니....
배가 산으로 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