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취(體臭)로 이어지는 사랑과 인연
사람은 누구나 향수처럼 꾸며낸 향기가 아닌, 몸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체취(體臭)를 지니고 살아간다.
각별한 사이에서 체취는 한 사람의 생애와 사랑을 통째로 기억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다.
사랑하는 이와 저녁 식사를 즐겁게 마친 뒤, 운치 있는 길을 함께 걸을 때 후각으로 전해지는 체취는 오래도록 마음을 흔든다.
어떤 향기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문득문득 삶의 깊은 곳에서 기억을 깨우곤 한다.
칠십대의 처제는 아들이 사십대 중반이 된 지금도, 갓난아기 시절의 젖비린내와 보드라운 살결의 향기를 정확히 기억한다며 힘주어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사랑하는 이의 체취는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사랑과 애착이 저장된 기억의 언어인지도 모른다.
내게도 체취에 얽힌 잊지 못할 사랑의 기억이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이삼학년 무렵, 잠시 할머니 집에 맡겨둔 적이 있었다.
가끔 시간을 내어 찾아가 함께 놀아 주곤 했는데, 어느 날 내가 두고 간 손수건을 아이가 꼭 쥐고는 “손수건에서 아빠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비로서 마음이 싸하게 저려 왔다. 얼마나 아빠가 그리웠으면, 그 작은 손수건에서 보이지도 않는 체취를 찾아냈을까. 지금이라도 딸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그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해 정말 미안했었다.”고.
딸에게 아빠의 체취는 곧 아빠에 대한 사랑이었고, 어린 가슴에 맺혀 있던 그리움의 온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체취는 때로 넘기 어려운 벽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체취는 민족과 기후, 음식 문화와 연령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글로벌 사업가들은 타인의 체취마저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성공한다고 말한다. 경제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체취조차 품어내지 못한다면 넓은 시장에서 깊은 인연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후각에 민감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런 사업가는 어쩌면 자신의 불편함마저 기꺼이 감당해 내는 그릇을 가진 사람이겠구나.’ 하고 말이다.
내게는 오십 년이 지나도록 마음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미안하고 부족했던 기억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채 사회생활에 뛰어든 나는 업무 경험도 부족했고 세상을 헤쳐 갈 힘도 서툴렀다. 누군가 따뜻하게 이끌어 주며 바른 길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기를 간절히 소원했었다.
하지만 내 부족함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정겹게 품어 주며 깊고 넓게 가르쳐 주는 스승 같은 상사나 선배는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서른 살 무렵, 한 실습생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내가 가진 업무 경험과 일 처리의 바른 길을 아낌없이 알려 주려 애썼다. 내가 초년생 때 받지 못했던 배려를 그에게 베푸는 일이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묘한 서글픔도 있었다. ‘왜 나는 정작 이런 따뜻한 가르침을 받아 보지 못했을까’ 하는 보상심리였을지도 모른다.
어느 무더운 초저녁, 실습생과 함께 냇가로 씻으러 가던 길이었다. 그때 나는 그 친구에게서 풍기는 남다른 체취를 느꼈다. 낯설고 이질적인 그 냄새를 나는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후로는 이상하게도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있기조차 힘겨워졌다. 실습이 끝난 뒤 그는 군에 입대했고, 휴가 중 그리운 추억을 안고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끝내 예전처럼 다정하게 그를 맞아 주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내가 미안한 마음에 어렵게 그를 다시 찾아갔을 때는 이미 그가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좋은 인연으로 오래 이어질 수 있었던 소중한 사람을 결국 내가 놓쳐 버린 셈이었다.
세월이 뼈아프게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체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끝내 넘어서지 못했던 인간적인 부족함이었고 미숙함이었으며, 사람을 있는 그대로 품어내지 못한 내 좁은 그릇의 한계였다.
아무리 머리로 이해하려 해도, 가슴으로 감당하지 못했던 내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사람은 눈으로만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다.
오래 입은 아버지의 땀 젖은 작업복에서,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에서, 그리고 아빠를 그리는 어린 딸이 두 손으로 꼭 움켜쥐었던 손수건 속 온기에서처럼, 우리는 체취 속에 담긴 사랑과 애착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체취란, 세월이 흘러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삶의 가장 깊은 정(情)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