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2,20-33
인생은 어차피 목숨을 담보로 한 투자임을 알면 인생이 단순해진다
‘한국 교회사 열전’에 따르면, 정 쁘로다시오는 개성의 명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내려와 신분을 감추고 새끼 꼬는 일을 하면서 미천하게 살았습니다.
30세경에 입교하여 부인과 함께 홍살문 근처에서 성사를 보기 위해 서울로 모여드는 교우들을 돌보았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타인의 밀고로 부인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배교를
강요하는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형벌과 형관의 감언이설로 배교하여 석방되었지만, 바로 후회하고 뉘우치며 다시 형조에 달려가 배교를 취소하고 죽기를 청합니다.
형조의 문지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굽히지 않고 형조판서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계속 조르는 바람에 결국 41세의 나이로 순교합니다.
가끔 이런 순교자들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죽고 싶어서, 죽기 위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주식 시장에서 수익에 확실한 때에 돈을 빌려 가면서까지 투자하려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은 밀알 하나로 상징되는 당신 목숨을 더 많은 생명을 얻기 위해 투자하셨습니다.
그 투자처는 아버지였습니다.
투자 방식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끊임없는 투자자임을 증명합니다.
유튜브에서 보니 자기가 키운 하마에게 물려 죽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하마를 자신이 키웠으니 하마가 자기를 물지는 않으리라고 믿었습니다.
또 다른 것에서 보니 개가 호랑이 새끼들을 젖 먹여 키웠는데 그 호랑이들이 커서 어미 개를
지켜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개가 되었습니다.
자기 주위에 호랑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하지 않고 가만히 두면 어떨까요? 썩습니다. 결국 인간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습니다.
그냥 놔두는 것도 일종의 투자입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2007)는 맥캔들리스라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무엇이든 잘해야 한다는 부모의 기대에 지쳐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아버지의 외도로 생기게 된 아들입니다.
그는 대학까지 졸업해 주고 가진 돈 모두를 기부하고 자유를 찾아 미국을 횡단하여 알래스카까지 갑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의 목적지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은 그에게 자유였습니다.
그러나 알래스카에 갇혀 “행복은 함께 나눌 때만 현실이 된다.” 라는 글을 남기고 버스 안에서 외로이 생을 마감합니다.
맥캔들리스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자유는 없었습니다.
외롭기만 했고 관계를 위해서는 일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투자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있습니다.
이것을 알면 인생이 쉬워집니다.
나의 밀알을 사랑이라는 땅에 묻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투자는 언제나 손실이 날까 두렵게 합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액을 한꺼번에 투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버린 것의 100배를 받고 죽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먼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청년 레지오를 하며 봉사하지 않았다면 사랑에서 오는 생명력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제가 되고 온전히 생을 봉헌하기를 결심하기까지 우리는 충분히 시험해 볼 기회가 있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투자라고 생각하고 내가 투자하는 생명에 가장 많은 열매가 맺히게 하는 대상에 투자합시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투자합니다.
투자법을 압니다.
어른이 되었다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요? 역시 아버지가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은 아드님이 당신을 위해 투자하게 함으로써 그 열매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제 우리 결단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