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시시대 5
비서갑신모
『신사기』에 비서갑신모께서 처음으로 누에를 쳐서 비단을 만들었다고 나오는데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부상국인 것으로 보인다. 상전벽해라는 전설이 부상국과 관련있다면 황해는 육지였을 때 부상국의 뽕나무밭으로 비단제조의 핵심지였을 것이다.『신사기』에 나온 비서갑신모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비교적 짧은 기록이지만 이 기록 속에는 천년 넘게 왜곡되어온 상고사의 진실이 있다.
또 비서갑신모에게 명령하사, 길쌈을 맡게 하시며 이르시기를, 옷이란 추위와 더위을 막는 것이요, 귀하고 천함을 표시하는 것이니, 여인들의 작업으로서 가위질하고 바느질하여, 백성들에게 베풀어 줄지어다.
又命匪西岬神母 主紡績 曰 衣禦寒暑 表貴賤 作女工 乃剪乃縫 用施於民.
비서갑신모께서는 처음으로 누에를 쳐서, 길쌈하는 법이 생겼다.
神母 始蠶 紡績興
중국기록에는 복희씨가 비단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신화로 읽는 중국의 문화』에는 관련기록을 인용했는데 다른 사서에서의 기록이 희박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복희가 누에를 쳤다. 《로사(路史)ㆍ후기(后紀)》5 나주(羅注) 인용(《황도요람(皇圖要覽)》) - 『신화로 읽는 중국의 문화』金榮權著, 임진호譯, 문현, 2010, p120
중국기록에 태호복희로 태호와 복희를 동일시했고, 태호는 부상국의 태제이니 대황조인 치화주 환검때 비단을 만들었다는 기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사기』와 『로사』의 기록은 일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사기』<오제본기>의 기록인 황제의 황후인 서릉씨가 누조이며 비단을 최초로 만든 사람으로 여긴다.
황제는 헌원 언덕에 살면서 서릉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가 누조(嫘祖)이다.
黃帝居于軒轅之丘而娶于西陵之女是為嫘祖為黃帝正妃,
이는『대대례기(大戴禮記)』<제계(帝繫)>의 기록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며, 『세본(世本)』<작편(作萹)>에는 황제의 신하인 백여가 옷을 만들었다고 하니 백여는 누조를 도와 의상을 만든 여성 신하로 보인다.
백여가 옷을 만들었다. 여는 황제의 신하이다.
伯餘作衣裳。太平御覽。宋注。餘。黃帝臣也。
이러한 기록을 참고해서인지『세종실록』<오례五禮>에도 선잠단에 대해 설명하면서 선잠은 서릉씨라고 하였고『영조실록』43년(1767)년 1월 18일의 기록에는 영조가 직접 “선잠은 서릉씨”라고 말한 기록이 나온다.
승지에게 친잠 의주를 읽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선잠은 황제 헌원씨의 황후인 서릉씨이다.”
命承旨讀親蠶儀詿。上曰先蠶黃帝軒轅氏皇后西陵氏也。
하지만 고고학에서 황제이전 시기의 비단과 누에고치들이 발견되었기에 『사기』의 누조관련 기록보다는 『신사기』의 비서갑신모의 비단 기록이 더 정확함을 알 수 있다.
양사오문화에서 기원전 4000~3000년경의 누에고치가 칼에 잘려진체 발견되었다. …… 허무두문화에서 기원전 4000년경 원시적 베틀 조각이 발견되었다. ……
The earliest evidence of silk was found at the sites of Yangshao culture in Xia County, Shanxi, where a silk cocoon was found cut in half by a sharp knife, dating back to between 4000 and 3000 BCE. …… Fragments of primitive loom can also be seen from the sites of Hemudu culture in Yuyao, Zhejiang, dated to about 4000 BCE. Scraps of silk were found in a Liangzhu culture site at Qianshanyang in Huzhou, Zhejiang, dating back to 2700 BCE.: 위키피디아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인 양쯔강 하류 유적의 6~7천년전으로 생각되는 누에벌레 디자인이 조각된 작은 컵, 물레, 비단실, 비단천조각 들은 양잠업이 더 일찍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혀준다.
More recent archeological finds - a small ivory cup carved with a silkworm design and thought to be between 6000 and 7000 years old, and spinning tools, silk thread and fabric fragments from sites along the lower Yangzi River � reveal the origins of sericulture to be even earlier.
: http://www.silk-road.com/artl/silkhistory.shtml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옥누에비녀 역시 황제의 누조나 단군의 비서갑하백녀보다 이른 시기에 누에가 키워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http://wdzzshyf8.blog.sohu.com/163031837.html
고고학의 연대측정이 맞는다면 비단은 황제의 정비인 서릉씨 누조이전인 부상국의 비서갑신모때 발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양쯔강 유역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부상국에서 비단이 제조되었음을 의미한다.
부상국은 1만리 영역이므로 홍산문화, 산동반도의 여러 동이족 문화 등도 부상국에 포함된다.
부상국의 기록과 전설이 많이 남아있었을 당시에 사마천은 왜 황제의 정비를 누조로 보았을까? 『대대례기』등의 기록을 더 신뢰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도적 왜곡일까? 한국의 기록도 비슷한 실수(?)를 하였기에 의도적 왜곡보다는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된다.
『단군세기』에는 비서갑 하백녀를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하게 하였다고 나온다. 환검과 단군왕검을 동일시 하였기에 비서갑신모를 비서갑하백녀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納斐西岬河伯女爲后 治蠶 淳之治熙洽四表
『세종실록지리지』<평안도(平安道)> ‘평양조(平壤條)’에 “단군이 비서갑 하백의 딸에게 장가들었다”고 나오니 『단군세기』만의 오류는 아니다.
단군고기에 이르기를 상제 환인에게 서자가 있어 '웅'이라 이름 하였는데, 아래 세상으로 내려와 인간을 교화할 뜻을 가지고 있다가, 천삼인을 받은 뒤 태백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하였으니, 이 분이 곧 단웅천왕이다. 손녀에게 명하여 약을 마시고 사람의 몸이 되게하고, 신단수의 신과 결혼하여 남자 아이를 낳으니 이름을 '단군'이라 하였으며, 나라를 세우니 '조선'이라 불렀다. 조선, 시라, 고례, 남옥저와 북옥저, 동부여와 북부여, 그리고 예와 맥 등이 모두 단군이 다스리던 곳이다. 단군은 비서갑 하백의 여식을 맞아들이고 아들을 낳아 부루라 불렀으니, 이 분은 곧 동부여의 왕이다. 단군은 당요와 더불어 같은 날에 나라를 일으켰으며, 우임금이 도산에 천하의 제후를 모을 때 태자 부루를 보내어 알현하게 하였다. 나라를 거느린지 1천38년, 은나라 무정 8년 을미년에 이르러 아사달에 들어가 신이 되었으니, 지금의 문화현 구월산이다.
檀君古記云 上帝桓因有庶子 名雄 意欲下化人間 受天三印 降太白山神檀樹下
是爲檀雄天王 令孫女飮藥 成人身 與檀樹神 婚而生男 名檀君 立國 號曰朝鮮
朝鮮 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濊與貊 皆檀君之理
檀君聘娶非西岬河伯之女 生子曰夫婁 是謂東扶餘王
檀君與唐堯 同日而立 至禹會塗山 遣太子夫婁 朝焉
享國一千三十八年 至殷武丁八年乙未 入阿斯達爲神 今文化縣九月山
비서갑신모의 비(匪)는 대나무상자의 뜻으로 비단예물인 폐백(幣帛)을 담던 상자라는 뜻이니 비단과 연관된 한자이다.『신사기』에는 폐백상자라는 비(匪)로 나오고 다른 사료에는 비(非), 비(斐)로 나온다. 이 한글자만 보아도 사료의 정확성을 알 수 있다.
『제왕운기(帝王韻紀)』하권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에도 비서갑하백의 딸이라고 나온다.
《단군본기》왈 “비서갑(非西岬) 하백(河伯)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부루(夫婁)이다”라고 하였다. 동명본기왈 부여왕부루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서 산천에 대를 잇게 해달라고 제사지냈다. 임금의 마차가 곤연에 이르렀는데 큰 돌이 포악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돌을 돌려보라 하였는데 금색개구리형태의 아기가 있었다. 왕이 말하길 “하늘이 나에게 하사하여 대를 잇게 명하는도다”라 하고 태자로 세우고 금와라 이름지었다.
檀君本紀曰 與非西岬河伯之女 婚而生男 名夫婁。
東明本紀曰 扶餘王夫婁 老無子 祭山川求嗣。
所御馬至鯤淵 見大石流殘。王怪而使人轉石 有小兒 金色蛙形。
王曰 天錫我令胤乎 立爲太子 名曰金蛙。
위 기록을 보면 ‘단군-부루(대 끊김)-금와’로 이어지니 47대 단군이란 인식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우의정을 지낸 허목(許穆,1595~1682)이 편찬한『기언(記言)』의 <단군세가(檀君世家)>와 <관서지(關西誌)>에 “해부루의 어머니는 비서갑의 딸”이라고 나온다.
或曰解夫婁母非西岬女也。
혹왈해부루모비서갑녀야
부여의 왕 부루의 친부는 단군왕검이 아닌 천제 해모수이다. 그러니 해부루의 친모는 비서갑신모가 아니다. 단군왕검의 황후인 비서갑하백녀도 아닐 것이다. 모두 같은 비서갑출신이라고 이해해야 할까?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난 하백녀 역시 비서갑하백녀를 말할텐데 유화부인도 비서갑출신이란 말인가?
말하되, 나는 본시 황천의 아들이며 모친은 하백녀이다.
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
비서갑하백녀의 이야기는 이 외에도,『동사강목(東史綱目)』,『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약천집(藥泉集)』 등에 “단군이 비서갑 하백의 딸에게 장가들었다.”고 나온다.
이러한 여러 기록으로 볼 때 조선시대까지 비서갑하백녀를 단군왕검의 왕비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해부루의 이야기와 고주몽의 이야기가 겹치는 것으로 보은 고대사의 시간압축으로 인한 신화화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비서갑은 어디일까? 임승국은 북만주 어디쯤으로 말하고 있으나 비단관련 유물이 나온 양쯔강 하류 부상국의 서쪽에서 찾아보자.
< 1. 양쯔강 중상류 서갑(서릉) 2. 갑모양 땅 Vworld구글어스캡쳐 3. 누조묘(개인제공) >
서갑(西岬)은 서쪽의 튀어나온 땅 곶의 뜻이다. 국내 정사(正史)기록과 중국자료에는 서릉(西陵)이라 하였으니 서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디에 위치했는지 찾아보자. 중국 호북성 의창시 서릉구(湖北省宜昌市西陵區)의 양자강에 방파제 같은 툭 튀어나온 지형이 있다. 곶모양(岬)의 땅에 있으니 비서갑의 갑(岬)은 땅모양에서 나온 지명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누조묘(嫘祖廟)가 있다. 중국기록에는 서릉으로만 나오고 서갑이란 표현은 찾아볼 수 없음에도 곶모양의 지형에 누조묘가 있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로사(路史)』에 관련 기록이 나오는데 황제가 남쪽으로 순례할 때 서릉씨가 돌아가셨고 누에치기의 시조이기에 선잠(先蠶)으로서 제사지냈다고 한다.
서릉씨에게 명하여 농사짓는 달에 누에치기를 권하게 하였다. 큰 화재가 있어 종자가 물에 젖어 부인들은 다시 앞치마를 두르고 몸소 뽕을 길렀다. 이에 실을 바치고 드디어 베짜는 공을 칭송했다. 그로 인하여 베짜는 일을 넓혀서 교외 사당에도 의복을 공급했다. 둥근 언덕에서 제물과 옥을 받쳐 하늘에 제사하고 창색을 취하였고, 사방과 연못에 제물과 옥을 받쳐 땅에 제사하고 황색을 취하였다. …중략…
원비 서릉씨를 누조라 말한다. …중략…
황제가 남쪽에 유람할 때 서릉씨가 돌아가셨다. 도식에 맞춰 제사하고 순행하였다. 그 누에로 인해서 또다시 선잠이라 제사한다.
命西陵氏勸蠶稼月 大火而浴種 夫人副褘而躬桑。
乃獻絲遂稱織維之功。因之廣織以給郊廟之服。
祀天圓丘牲玉取蒼 祀地於方澤牲玉取黃。…중략…
元妃西陵氏曰儽祖,…중략…
帝之南游 西陵氏殞 於道式祀於行。以其蠶故又祀先蠶。
비서갑신모의 비서갑은 북만주 어디쯤 일 수도 있다.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지명을 그대로 가져왔을 수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서갑모양의 땅이 양쯔강에 있으니 북만주보다는 이곳이 원래 비서갑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곳의 동쪽인 양쯔강 하류 부상국에서 비단관련 유물들이 발굴되었고, 상전벽해라는 말로도 미루어볼 때 비서갑은 서릉이 확실하다.
황제의 정비 누조와 단군의 왕비 비서갑하백녀는 모두 비서갑신모의 전설에서 비롯되었거나 아니면 하백녀 유화부인까지 모두 비서갑인 서릉출신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백가문은 황후를 여럿 배출한 명문가문이 된다.
『강희자전康熙字典』<손孫>의 설명에 직녀도 천제의 후손이라고 한다. 수천년간 왕가의 여인들이 비단짜는 모범을 보였듯 천제의 후손인 직녀는 당연히 비단을 짰을 것이다. 신화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는데 견우와 직녀의 전설의 주인공인 직녀는 역사상 어떤 여인이었을까?
《번우지》직녀는 천손이다. 《전한·천문지》직녀는 천제의 후손이다.
《番禺志》織女曰天孫。《前漢·天文志》織女,天帝孫也。
『산해경』<중차일십일산경>에 제녀라고 나오는데 직녀는 제녀일까?
다시 동쪽으로 50리에 선산이 있다. 그 위에 뽕나무가 있는데 … 제의 여인(딸?손녀?)의 뽕나무라 한다.
又東五十里 曰宣山。… 其上有桑焉 … 名曰帝女之桑。
첫댓글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런것은 무었인지요? 좀둔해서!!!
한/글에서 문서작성하고 복사해서 게시판에 글 썼을때 가끔씩 나타나는 HTML오류예요. 뭔가 잘못해서 그런거죠. 대개 빈칸 띄우기할때 생깁니다. 그렇게 보이나요? 제가 볼 때는 정상적으로 보이는데..
@홍익인세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난 글을 즉석에서 만 써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