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저편에는 : 퇴고본] 3. Why -2장
하리야 헌처크
2.
오옷! 투탕카 군이 질문을? 비록 <하나도 못알아 듣겠다>라는 질문이긴 했지만, 대담무쌍한 무식함을 인생의 승부수로 삼는 저 녀석이 어떻게 <추상적> 같은 단어를 사용한 질문을 던질 생각을 한 것이지?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고가는 많고 많은 추상과 사실(史實)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못 알아 듣겠다뇨? 호오. 이런. 투탕카 님께서는 제 이야기의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되십니까?]
지키루 씨는 환하게 웃으며 투탕카 군을 향한 전적인 호의를 펼쳐보였다. 안타깝게도 내 빈약한 추리력으로도, 그런 지키루 씨의 행동은 조금 전의 레디클 군에 대한 반응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행동이었다. 조금 더 과잉되고, 약간 더 과장된 친절과 호의.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잠시라도 추측해 보는 이런 순간에 메이지 양 쪽으로 시선이 살짝 향하는 것은, 여행하면서 생긴 버릇일 것이다. 내가 살던 곳, 잭슨빌 영지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 곳을 떠난 지금은 필요하게 되는 상황이 자꾸만 내 앞에 닥치니까. 지금 메이지 양은 투탕카 군을 퉁명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다요.]
엥. [어제부터 주욱 하이두 님의 말을 들어왔는데, 아무리 귀기울여 들어봐도 도대체 한 가지도 이해가 안돼요. 쓰으. 역사가 어쩌구 자기가 저쩌구 하시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도 하고 싶어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렇겠지. 그랬던 것이야. 그런 것이었군. 그런데... 그렇게 하나도 모른다고 다지는 녀석이 어떻게 그리도 열심히 고개를 세로 저었단 말이냐...
지키루 씨는 당황한 얼굴빛을 띄었다. 물론 그와 함께 자라온 나와 메이지 양은 당연한 귀결에, 이전까지 가졌던 투탕카 군에 대한 의심을 - 저게 미쳤나? - 깨끗하게 거두고는 - 그럼 그렇지! - 여상할 수 있었지만, 지키루 씨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잠시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갑자기 주섬주섬 품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품 속에서 손가락 마디 보다 조금 두꺼운 막대기를 꺼내어 든 지키루 씨는 거기에 짱돌 두 개를 타악, 탁 부딪쳐서 불을 붙였다. 메이지 양의 아버지가 즐겨 들이키시는 연초였다.
끼이익! 메이지 양이 지키루 씨 쪽으로부터 급속하게 멀어져가고 있었다. 메이지 양은 연초 냄새를 싫어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직업의 특성상 연초를 자주 들이키시는데, 그 냄새는 참... 역하고 또 기분 나쁜 무엇인가를 풍긴다. 그러니... 지키루 씨는 그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메이지 양을 보면서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역겨운 연초 냄새 때문에 그러신가본데, 이 연초는 플로레 영지의 특산품인 진달래향 연초입니다. 진달래 잎을 고이 갈아서 담바구 잎으로 감싸 만든 제품이죠. 아마 향긋한 꽃내음이 풍길 것입니다.]
지키루 씨는 보란 듯이 입에 문 연초를 가득 들이키고는, 맡으라는 듯이 그 연기를 공중으로 토해내었다. 아카시아 향기가 확 밀려들었다...
[조금 쉽게 제 얘기를 풀어서 말해보죠. 사람에 따라서, 역사를 길고 넓은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까 저 소년이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지키루 씨는 레디클 군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말하기를, 과거는 현재를 보는 거울이고, 미래를 여는 지도라고 하죠. 그것이 바로 역사를 길고 넓은 시각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지키루 씨는 연초를 입에 꼬나물고는 우리를 스윽 둘러보았다. 나도 덩달아 우리 일행을 스윽 둘러보았다. 뭐, 늘 똑같다. 투탕카 군이 눈을 번쩍번쩍 빛내고 있다는 것만 빼고는. 아마 저녀석, 세상의 종말의 원인이 되고 싶은가보다. 안하던 짓을 하면 세상에 종말이 올 징조라던데. 뚝. 앗! 저 녀석,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 그러더니 뒤로 넘어간다. 어허, 눈을 뜨고 잠들었군. 한 녀석 실격.
지키루 씨는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투탕카 군을 꼬나보고 있었다. 꼬나문 입을 어이없다는 듯이 살짝 비틀어 벌리고는 투탕카 군을 제대로 꼬나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씨익 웃음지었다. 부담스러운 웃음인걸?
[하... 하..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까, 계속 하던 말을 해도 되겠지요?] 나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도대체 왜 물어본거냐!
[역사는 흔히 돌고 돈다고들 하죠.] 만다르크 씨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과거에 있었던 일이 현재에도 있고, 또 미래에도 일어나는 것이 인간이 살아온 발자취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배울줄 모르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씀 드리기가 조금 조심스럽지만, 후기 사회에 와서 이런 경향은 더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왜 갑자기 나를 보면서 이야기하냐, 저 사람.
[결국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운운하는 것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변명하기 위한 넋두리죠. 언젠가는 될거야. 우리도 잘 살 수 있을거야. 과거의 잘못을 현재에도 답습하고 있으면서 인간은, 끊임없이 변명하는 것이죠. <미래에는 좀 더>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연초를 한 모금 가득, 들이마시면서 그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짐에 불과한 과거 따위는 저 멀리 등 뒤로 던져버리고, 올지 안 올지 알 수도 없는 미래 따위에는 눈돌리지 말고, 현재만 봐도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반복되는 역사이며, 인간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반복되는 역사인 과거는 저 과거 속에 묻어버리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아니 내 인생에 존재할 지 안 할지도 모르는 그런 미래 따위는 도착해서 살피도록 하고, 우리는 지금 현재만을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인 나에게 초점을 맞추자는 겁니다. 나는 바로, 현재를 걸으면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이며, 과거의 잘못과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어버린 과거는, 또 닥쳐올 미래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역사를 만들어내는 나에 의해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바로 역사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만합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역사는 단순한 흥미거리 이야기에 불과하고, 수정이 불가능한 그 과거는 애물단지일 뿐입니다.]
..
[킁.] 만다르크 씨가 슬며시 콧방귀 뀌면서 끼어들었다. [그렇게 얘기하시면서도 옛날 이야기에 대해서는 해박하시더군요. 크, 크응. 단순한 흥미거리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지키루 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팔을 활짝 펼쳐보였다. 그러고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눈빛을 내게 보내며, 큰소리로 말했다.
[지적 호기심이 가지고 온 작은 결과물입니다. 옛말에 <모르는 것이 염병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키루 씨 께서는 단지 역사 속의 여러 사실들을 흘러간 옛이야기쯤으로 받아들이시고 계시는 겁니까? 그런 지나간 일들은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일 뿐입니까? 콜록콜록!]
이건 말이 진달래 향이었지... 처음에는 아카시아 냄새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독한 연초냄새로 끝을 맺는구만. 매캐한게 콧물만 주륵주륵 흘러내리게 하고 있다.
[아... 하핫. 연초 연기에 약하시군요. 이런, 제가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진작에 말씀하시죠. 어헛헛.] 어허헛. 아까 메이지 양의 거대한 반응은 주의를 기울이기에는 너무나도 소소한 반응이었냐? 메이지 양의 <온 몸으로> 보여준 연초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으면서. 나한테 보내는 저 느끼한 눈빛하며 주의를 기울이는 지나친 호의는 하나같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걸? 혹시... 나를 좋아하는거 아냐? [돌았구르르.] ...대담무쌍한 생각에 대해서 퉁명스러운 말이 들려왔다. 지키루 씨는 연초를 살며시 비벼 껐다.
[네. 잭슨빌 씨께서 지적해 주신대로, 저는 과거의 흔적은 단지 흔적일 뿐이며, 땅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부패물, 혹은 그 형상은 드러나지만 죽어있을 뿐인 화석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아무리 주의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고 해도, 다시 한 번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 혹시 기억하십니까? 저 북방의 데모크 공화국의 현 수상은 아메리카나 공화국과의 햇볕회담이나, 경제 위기에 처했던 공화국을 무사히 수습해낸 뛰어난 정치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세 명의 아들들이 그만, 아버지의 재임기간동안에 크게 한 탕 해먹는 바람에, 위대한 수상의 업적들을 <부패>라는 단어속에 매몰되어버렸습니다. 도대체 지금 수상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입니까. 과거에 데모크 공화국이 국가방위단의 단장의 쿠데타 이후에 독재에 시달릴 때, 그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평등과 민주를 부르짖으며 목숨을 건 투쟁을 하다가 얼마전에야 비로소 수상의 자리에 올라서 공화국의 경제적인 어려움도 극복하고 국가의 평등화도 이루지 않았습니까.]
쿠데타는 또 뭐냐. 데모크 공화국, 독재, 뭐 기타 등등의 어렵고 생소한 단어들이 우리 사이에 거미줄처럼 끈끈하게 얽혀있었다. 비록 내 마음은 거미줄에 걸려서 허우적대는 해파리같은 어이없는 마음이지만, 나는 절대로 움츠러들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염병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뭐, <아는 것이 힘줄이다>라는 말도 있으니까. 먹을 수없어 버려야하는 질기디 질긴 힘줄. 아는 것이 그렇게 쓸데 없기도 하니까. 모른다는 사실에 크게 위축되지 말고 힘껏 살자! 그런데... 어째 내가 투탕카 군 같은... 에이, 모르는 건 나중에 만다르크 씨에게 물어보면 알게 되겠지.
아무튼 넓은 세상에 나오니 떠도는 이야기들도 많고, 알아야 할 것들도 많구나. 하여튼 지키루 씨는 줄기차게 말하다가 한숨 돌리며 새 연초를 다시 입에 물었다. 그러나 연초에 불은 붙이지 않고 그냥 문 채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현 수상의 세 아들이 저지른 <홍삼 밀수 사건>이, 전임 수상 아들의 <멸치잡이 어장 인허가 비리> 사건과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는 것을 보면서, 바로 몇 년 전에 지나친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현 수상과 그 아들들에게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못했음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고작 5년이 흐른 후에 다시 반복되는 그런 역사적인 과오를 보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나간 역사가 현재의 거울이다? 하하핫. 그럴리가요.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왜냐. 인간은 결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끄으응...] 만다르크 씨가 신음성을 흘렸다.
[그렇다면, 하이두 아저씨는 과거는 화석이고, 미래는 불분명일 뿐이다라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역사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미래를 보여주는 지도라는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레디클 군의 질문... 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존에 역사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질문인 듯하다. 지키루 씨는 그의 입에서 연초를 잡아 빼내었다. 그리고는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 같은 시선으로 레디클 군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내가 너의 질문에 왜 대답해야하냐>는 식의 눈을 하고는.
[얘야.] 언뜻 듣기에는 자상함과 애정을 담은 듯한 단어에, 그러나 그 뒷면에는 한없는 권위와 오만의 무게를 담아서. [나는 아저씨가 아니란다. 나를 앞으로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도록 해라.] 권위 위에 권위<적>인 저울추를 하나 더 얹어. [나를 앞으로는 <서기님>이라고 부르도록 해라.] 만다르크 씨와 같은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군, 지키루 씨는. 그러고 나서 지키루 씨는 소리 없는 입모양으로 말했다. [천한 것!] 그리고 그 입모양은 내게만 보였고 나만이 보고 있었다.
천한 것이라... 지키루 씨는 레디클 군을 자신과는 무엇인가 틀린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소년이 고아라는 것에 대해서 못마땅한 심사를 가지고 있는가? 비단 고아라는 신분이 그의 잘못은 아닐터인데,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한 것인가? 회당의 감독님이 말했던 것처럼, 이 곳 플로레 영지는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자격을 남달리 따지는 곳이라서 그런 것일까? 지키루 씨에게 그런 것이냐고 물어봐야 하는지 고민하는 동안, 풀이 죽은 레디클 군이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죄송합니다. 지키루 서기님. 만다르크 아저씨는 서기님과 같은 서기이면서도 한번도 자신을 그런 호칭으로 부르라고 한 적이 없어서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 [크르르...] 메이지 양이 통명스럽게 슬며시 웃음지었다. 만다르크 씨도 슬며시 미소짓는 것 같았다. 레디클 군의 반격이겠지? 지키루 씨는 약간 당황한 듯한 얼굴로 소년을, 그리고 만다르크 씨를 강렬하게 쳐다보았다. 아니, 노려본게 분명하지?
[만다르크 서기님.] 지키루 씨가 목소리에 힘을 담아 만다르크 씨를 불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책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시고, 엄격하고 위엄있게 행동하셔야죠. 도대체 서기란 직책이 얼마나 중요하고 책임감 있는 자리인 줄 모르십니까? 그런 직책에 어울리는 권위를 행사하셔야죠.]
권위는 중요한 것이지. 그렇다고 열심히 권위를 세울 필요는 또 뭔가?
[풍. 풍풍.] 만다르크 씨의 흥겨운 웃음소리가 가득 메아리쳤다. [제가 알고 있기로, 서기란 직책은 <왕국의 신민을 위해 한결같이 자신을 낮추며, 봉사하고 섬기는 자>라고, 잭슨빌 장군이 초안을 잡았던 <왕국공무원법> 제 8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푸웅. 저는 그렇게 모든 신민에게] 그러면서 슬며시 레디클 군을 돌아다보았다. [자신을 낮추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푸웅.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지, 만다르크 씨는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그리고 지키루 씨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테고.
[권위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세운다고 세워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킁. 남들에게 우러름당하고, 존경받는 것은, 자신이 세우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세워주고 존경하고 권위를 부여할 때, 그 권위는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크응.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세우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혹은 자신의 위치나 임무에 대한 권위는 더이상 권위가 아니라 건방이죠.]
만다르크 씨의 통렬한 한 방! 저렇게 과격한 사람이 아닌데, 만다르크 씨는 지키루 씨의 기분을 상하게 할 정도로 말하고 있었다. 마치 레디클 군이 당한 무안을 되갚아주겠다는 것처럼. 그렇게, 만다르크 씨와 지키루 씨는 묘하게 얽혀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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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 분위기가 어색하군요.]
엥. 그런데 저 녀석은 언제 일어난 것이냐. 묘하게 얽혀 있는 그 사이로 투탕카 군이 어느새 슬며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지키루 씨의 옆에서 알짱거리고 있었다.
[에, 그러니까 <내>가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국은 지나간 옛 이야기나, 아직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다가올 시간 따위는 접어두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 스스로가 지금의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면서 역사를 만들어갈 때, 과거도 미래도 의미를 가진다는 말인가보군요.]
... 정말로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모두 할 말을 잃고는 어이없다는 태도로 투탕카 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도 쳐다보았다. 아니, 자다가 봉창을 두들기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저 녀석은 저렇게 사람의 기존 관념을 무참하게 짓밟으면서 봉창을 두들겨대냔 말이다. 지키루 씨는 열심히 봉창을 두들기는 투탕카 군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어이 없을거야. 지키루 씨도.
[킁. 조금 부연해주실까요?]
만다르크 씨가 슬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적절할 때 두들겼다. 만다르크 씨는 자신이 내어 뱉은 과격한 말을 적당히 수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래서 적당하게 웃음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키루 씨는 얼굴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투탕카 군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에 휘둘리고 있으니. 사실, 나같이 자주 봐오던 사람도, 투탕카 군의 모습에 가끔은 당황할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크음. 어쨌든]
오오, 저 말 속에는 평상의 의미를 넘어서는 거대한 의미가 담겨져 있는 듯 하다! 어쨌든, 이라니! 저 투탕카 군의 행위는 누구도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기에 얼렁뚱땅 대강대강 넘어가야만 하는 <어쨌든>인 것이리라!
[역사는 그런 것이죠. 예를 들자면, 잭슨빌 장군이 품고 있던 이상이 실제로 이루어져갔다는 후기 시대 개막기의 모습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단지 그 때의 이상이 의미를 잃어버린 구호와 상징으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살아 생동하는 현실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이, 현실 속에서 어떤 유용한 기능도 하지 못하는 흘러간 옛 추억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까. 결국 과거는 죽어 없어진 형체 없는 망령일 뿐입니다. 단절되고 분리된 인간 발자취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그런 의미의 역사는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기실 역사는 현재에 충실한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歷史>가 아니라 <力事>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래는...]
[미래를 왜 벌써 신경씁니까?]
지키루 씨는 그의 목소리에 냉소적인 감정을 가득 얹어서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의 거대한 발자취는 필연적으로 미래를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륙의, 아니 온 세계의 유일한 지성체이자 세계의 지배자인 인간의 지향점이 바로 대륙의 미래이며 세계의 장래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걸어가다보면 도달하게 될 미래에 배려할 시간을, 지금의 한 걸음 한 걸음에 투자한다면 한 번 디딜 때 더 힘껏 더 멀리 디딜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 걸음 디디는 것도, 세밀하게 생각한다면 미래의 모습이겠지만, 현재에 접속한 미래, 그것은 바로 현재와의 연관성 아래서 그 의미를 가지므로, 실은 현재나 다름 없을 것입니다. 그 <다음의 한 걸음>에 모든 정력과 열정을 쏟아붓는 것이, 훨씬 뒤의 인간 미래를 위한 더 큰 진보를 예정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인간은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습니다. 사상이 혹은 기술이 이전의 시대와는 다르게 더 많이 진보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단 말입니다. 혹시 얼마전 아메리카나 공화국의 한 과학자가 제시한 <절대성 이론>을 아십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을 절대적인 공간으로 설정한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과는 다른 공간의 창조가 가능하다는 이론 말입니다. 그 얼마나 파격적인 가설입니까? 그것이 사실로 증명된다면, 우리 인간은 이 우주의 지배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그리고 인간은 바로 지금, 그 가설을 증명함으로써 생명을 부여하는 현재적인 일에만 매진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나온 시절이나, 다가올 시간따위는 등 뒤로 던져버린채.]
절레절레.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속으로만 가로저었다. 그러나... 투탕카 군은 열심히 가로젓고 있었다. 오호... 가로젓는 고개를 따라 휘날리는 머릿결이 꼭 노래하는 사람의 머리 돌리기하는 모양 같은걸? 그렇다면... 메이지 양이 몸을 절레절레 저으면 온 몸의 털로 하는 거니까 몸통 돌리기가 되는 것인가. 풍!
[... 하... 하하... 남의 머리통에 젓가락을 꽃고 그러냐... 우어억!]
아프다... 젓가락이 창이냐! 왜 머리에 꽃힌다냐...
[어... 어... 메이지 씨, 왜 잭슨빌 님의 머리에 이런... 자. 자. 피를 좀 막고.]
다양한 행위예술이 펼쳐지는 이런 분위기, 지키루 씨는 내 머리에 흐르는 피 - 진짜 꽃혔다니까! - 를 닦으랴, 하던 말 계속하랴, 정신 없이 분주할 것이다. 에구 머리통이야...
[이런 시대의 발견이... 아이, 왜 피가 계속 흐르는거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현재의 진보가 미래를 담보하는 것이지... 가만 좀 있어보세요... 자꾸 움직이지 마시고... 흘러간 옛 이야기가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레디클, 가서 수건하고 파란약좀 가지고 올래? ... 그런 전통적인 역사관은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킁. 그렇다면, 당신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당신의 역사관이라기보다는, 당신의 지향점이로군요?]
[지향점이라뇨, 만다르크 씨?]
일순, 조용했다. 수많은 말들과 오만가지의 이론, 그리고 셀 수 없는 시선과 사유들이 오고갔지만, 대화 한 마디 한 마디는 고요와 정적을 오고 가면서 공간을 울리고 뒤흔들었다.
[킁. 내가 역사의 주체가 된다는 말은, 하이두 서기의 말을 들으면서 판단하건대,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중에서, <과거>와 <미래>를 향한 시선은 거두어 들여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주어진 현재의 상황에 충실하자는 아주 현실적이고 교훈적인 의미를 주는 동시에, 또 다른 의미에서는 현재의 역사적 흐름 속에 자신을 대입시킴으로써 자신이 걷는 발걸음을 미래를 향한 인간 발자취의 시작점이자 선두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욕망과 소망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삐이익!
[집을 나간 마침표를 찾으러 잠시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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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화에서의 소외감을, 의자를 뒤로 소리나게 끌면서 던지는 한 마디 말로써 충분히 표현하였다고 생각하였다. 투탕카 군이 일어나는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어딜가, 응?]
[씨이.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해야할 것 아냐. 뜬금없는 진리문답같은 대화 들이나 해대고. 무식하다고 우릴 무시하는거야 뭐야, 그치, 투탕카 군?]
[어... 너 화장실 가려고 일어난 것 아니었냐? 기왕에 화장실 가는거 같이 갈려고 그런건데. 그런데... 그러고보니까... 넌 이미 자면서 일을 봤다는... 데... 헤... 헤... ... ... ... ... ...]
[미안흐르르. 아직까지 자빠져서 잔다고 에집퉁이 막 뭐라고 그러는데, 너가 늦게 내려온 것이 단순히 자는 것 때문은 아니었자느르르. 그래서, 오해를 풀어주려고 말한다는게 그만 사실을 말해버렸즈르. 너가 그만 그래버렸다구르르...]
[아하하하! 다 큰 어른 녀석이 이불에 실례를 저지르다니! 아하하하... 하하하...]
쪽팔려 더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자리를 박차 오르고 바로 방으로 도망와 버린 나를 달래려고 메이지 양과 투탕카 군이 내 방으로 쪼르르 따라왔는데... 이건 달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물엿을 입에 붙이는 짓거리나 다름없다. 달래는건지, 염장을 지르는건지. 이런 식으로 할거면 올라오지 않아도 된단 말이야! 그냥 식당에서 밥이나 먹으면 되는데... 그러고보니, 아아... 그 자리에 어린 레디클 군도 있었잖아. 이제 나는 이 일행 속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것인가. 흑!
[쓰으! 난 곧장 잭슨빌로 돌아가버릴꺼야! 메이지 양, 널 믿은 내가 잘못이지. 어떻게 너가 그렇게 투탕카 군 같이 입 싸게 그럴 수가 있어? 누군 실례를 저지르고 싶어서 저질렀나? 내 시상하부의 감각 통제가 원할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벌어진 불가항력적무의지침상방뇨 행위인데 그걸 그렇게 방네동네 소문을 내야 속이 시원하겠어? 그러고는 위로한답시고 지금 내 방까지 올라온 모양인데, 이게 지금 위로하는거야? 놀리는거지! 나가버럿!]
[아하하하~ 난 위로하러 온 것 아닌데?] 나쁜 자식, 투탕카 군! [난 너 놀려먹으려고 왔지롱~! 옛날에 내가 학교에서 일을 저질렀을 때, 마치 자기 일처럼 즐거워하고 기뻐하던 너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단 말이야. 냐하하하~ 하하하~ 나도 마치 내가 당한 일처럼 즐거워해주마! 딩가딩가~]
쩌업. 그러고보니 저 녀석은 즐겁기도 할 것이다. 나도 투탕카 군이 학교에서 작은 볼일을 참다가 - 무슨 내기였을 것이다. 물 한 양동이 먹고 화장실 누가 오래 안 가고 버티나, 내기 - 다 큰 나이에 그만 큰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을 때, 마치 내 일처럼 즐거워하고 기뻐하였었으니까. 쿠쿡. 작은 것을 참는데, 참다가 참다가 왜 큰일을 보냐고. 핫핫하. 메이지 양도 그 때 생각이 나는지 퉁명스레 웃음짓고 있다.
[맞아. 그러고 보니 그러기도 했었지, 우리. 그 때는 참 즐거웠었어. 하하!]
나는 투탕카 군을 향해 묵직한 주먹을 날리며 말했다. 그 때는 즐거웠었지만, 지금은 전혀 즐겁지 않으므로.
내 주먹과의 조우로 바닥에 누워버린 투탕카 군의 뒤편으로, 만다르크 씨가 문가에 서서 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끄응. 갑자기 에집퉁 씨가 주먹 한 방에 쓰러지는 바람에 다음이 제 차례인줄 알았죠. 크킁. 제게 마침표를 상실시킨 죄를 묻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크크킁.]
창백해졌던 얼굴색에 다시 제대로 돌아온 만다르크 씨는 가볍게 코웃음쳤다.
[킁. 제가 좀 말을 복잡하고 길게 하는 편이라서 그러니 이해해주세요, 잭슨빌 씨.]
[그런데...] 기왕에 아까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까 그 말들이 무슨 말이냐고 물어야겠다.
...
그런데 아까 무슨 말을 나눴었더라? 흐음. 기억이... 기억이...
[기억이 책받침으느르? 좀전에 바로 요 밑에서 했던 이야기를 기억못하구르르. 그러면서 뭐 마침표를 찾으러 간다니, 어쩌구 저쩌구 중얼중얼대기나 하고 그러니 에집퉁과 같은 놈이라는 소리를 맨날 듣는거즈르!] 아악! 투탕카 군과의 비교라니!
[아까 만다르크 씨께서는,] 메이지 양은 나에게 - 말로써, 아이스 군 본인과 투탕카 군이 동격이라니, 훌쩍 - 강펀치를 한 방 날리고는 만다르크 씨에게 말했다. [하이두 씨의 역사관은 일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소망으로 드러난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 맞즈르?]
오오, 맞다! 그것이었다! 흐음. 메이지 양이 나를 보면서 퉁명스레 씨익 웃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오오, 이제 나는 메이지 양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른 듯하다. 음하핫! 우리 이러다가 연애라도... 퍼억!
[크킁. 무슨무슨 관(觀)이라는 것이 그렇잖습니까. 크응. 자신의 생각과 의지가 들어가서 형성되는 자신의 가치. 킁. 그래서 흔히들 인생관이네, 세계관이네, 혹은 지금 메이지 양이 말씀하신대로 역사관이네 하는 단어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메이지 양의 거대한 주먹질로 나의 집중력은 극대로 고양되었다. 그러니 어줍잖은 질문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키루 씨가 말한 그... 그...] [자신의 발자구르.] [자신의 발자국을 현재에 묻어버린다는 말은 뭡니까?]
[끄응.] 만다르크 씨가 끙끙거릴때는, 말하기 민감한 경우나, 혹은 자신도 깊은 의문을 가졌던 부분, 혹은 묵직한 결론일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지렁이의 머리가 될지언정, 뱀의 꼬리가 되지 않겠다는 말인 듯 해요.]
지렁이의 머리?
[끙. 보아하니, 저 플로레 영지의 서기는 굉장히 큰 소망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크응. 그의 말 속에서 다 드러나지 않습니까? 킁. 물론 <현재>를 역사의 연속선상에 있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점으로 생각해서, 이 점부터 선을 그려나간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은 지극히 현실적인 역사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끙. 그러나, 그런 관점 뒤에는 자신이 역사의 굴레에 얽매여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핵, 혹은 역사의 시작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됩니다. 끄응.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세계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끙. 마치 옛날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중심으로 모든 세상이 움직인다고 믿었던 자기 중심적인 생각처럼 말이죠.]
똑똑! [저... 잭슨빌 님, 계십니까?]
푸욱! 갑자기 메이지 양이 웃었다. 님. 님. 저 소린 아무리 들어도 생경하다. 아버지가 작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님이라고 부르는 것이겠지만, 도대체 아버지의 작위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냔 말이다...
[들어오세요. 지키루 서기님.]
지키루 A. 하이두 서기는 문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무엇인가 보자기로 쌓여있는 뭉치가 들려져 있었다.
[저. 긴 여행 중에 몸이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아서 약품점에 다녀왔습니다. 약품사에게 증세를 말씀드렸더니] 푸욱! 메이지 양은 입을 막고 나를 힐끗거리며 심하게 웃고 있었다. 체엣, 왜 저러는거야? [이것을 착용하시면 될 것이라고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착용? 복용... 이 아니고?
나는 보자기를 끌러보았다... 그 속에는... 기저귀 몇 개가 들어있었다.
[저 밤에 꼭 착용하시고...] 푸푸푸풍... 풍풍풍... 후르르르... 하르르...
이건; 명백히 도배로군요. ^^;
어쩌다가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판랜도 많이 조용하군요. 저희 홈에 링크해 둔 환상소설 홈페이지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 조금은 위기인 듯 합니다.
다행히도, 저희 홈에는 괜찮은 작품들이 많아서, 그것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습니다. 물론.
판랜에도 괜찮은 글들이 많구요;
밤입니다. 좋은 밤 되시고.
행복하세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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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 읽기 Reading Fantasy http://ylpatae.nas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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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새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쿨럭! (아; 웬 기침이;)
짧은 사랑의 노래도 올려주세요오~
-_-a 그 초허접 잡글을요? 부끄러워서 안되는데용;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