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46일째; 구룡령~갈전곡봉~연가리골샘터~조침령(20.3km)
2010년 10월 22일 금요일, 맑음
어제와 마찬가지로 4시에 일어난다. 다리는 좀 뻐근하지만 몸 상태는 그런대로 괜찮다. 이 정도면 내일 하루 더 연장하여 한계령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원隊員도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한계령寒溪嶺까지 가면 한계령~동서울간 버스편을 이용할 수 있어 귀로歸路가 편할 뿐 아니라 다음 순례길에 이어가기도 좋아진다. 만일 한계령에 너무 늦게 내려가게 되어 서울가는 차편이 끊어지면 양양이나 강릉으로 가서 1박하고 일요일에 귀가하면 된다.
방에 널어 두었던 젖은 옷가지들이 양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말랐다. 속옷과 양말만 갈아 입고 겉 옷은 어제 입은 것을 그냥 입기로 한다. 양말은 비닐봉지에 담아 배낭에 넣어 둔다. 오늘 날씨가 좋아지면 양말은 배낭에 메달고 갈 참이다.
짐을 챙겨 내려오니 벌써 택시가 모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5시가 조금 지나 구룡령으로 향한다. 아직 주위가 깜깜하지만, 자동차 불빛에 비친 도로에는 다행히 안개가 별로 없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려나 보다.
구룡령을 오르는데..., 이 택시기사도 계속해서 예기를 늘어놓는다. 아마 이 지역 택시기사들은 공통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나 보다. 내가 예기를 거들면 말이 더 많아질 것 같아 잠자코 듣고만 있는다. "몇해 전에 양양에 사는 처녀 하나가 인제에 근무하는 군인을 만나러 주말마다 인제를 다녔는데 그때는 참 좋았습니다. 양양서 인제까지 5만원 벌이도 괜찮았고 또 아가씨를 옆에 테우고 다니는 기분도 좋았지요. 매주 토요일에 테워다 주고 일요일 날 테워 오곤 했는데..., 이 고개를 오르니 그때 생각이 또 나네요."하고 혼자서 예기를 이어간다. 나는 정말 얽빠진 여자 애가 다 있었구나 생각하다가 문득 '아니 '인제'라니 구룡령을 넘으면 분명히 홍천인데...?'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차는 여전히 깜깜한 비탈 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 차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했더니 "'조침령'이요 이제 얼마 안 가면 됩니다" 하는게 아닌가...!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나 싶어 "아니, '조침령'으로 가면 어떻게 합니까? 오늘 구룡령에서 시작하여 조침령까지 가려고 하는데, 지금 조침령으로 가면 어떻 하나요?" 나는 어의가 없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약간 짜증이 묻어났다. 그랬더니 "그렇게 많이 온 게 아니고 어차피 같은 요금인데..., 바로 돌려서 가면 됩니다. 그런데 왜 나는 조침령으로 알고 있었지..."하고 볼멘 소리를 한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기사 양반은 기름과 시간 낭비하고 우리는 아까운 아침시간 다 허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나요. 내가 어제 저녁 구룡령에서 전화할 때도 내일 아침에 다시 여기로 와야 된다고 했는데!"나는 내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기사의 일 처리에 화가 났지만 그 정도로 하고 말았다. '대간 순례를 하는 사람이...' 하며 마음을 가라 않힌다.
가던 길을 돌려 내려와 다시 구룡령九龍嶺에 오르는데, 갈전리를 지날 즈음 민박 집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어제 저녁과 달리 오늘은 안개가 없으니 도로 변에 세워둔 민박 안내판이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 어제 저녁, "민박을 하려면 양양 바닷가까지 나가야 됩니다."라고 하던 이 택시 기사의 말이 떠 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 택시기사는 이 지역을 처음 찾은 산꾼에게 정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제부터 조금은 찜찜했는데 엉뚱한 예기나 늘어 놓으며 구룡령으로 가는 것을 까먹고 조침령으로 오르다 차를 돌리고 부터는 이 택시기사가 영 못 마땅하다. 마음을 바로 쓰는 기사라면 어제저녁 우리를 제일 가까운 민박 집으로 안내하고 오늘 아침에 구룡령까지 테워다 주면 될 것을 자기 편리한 대로 우리를 늦게까지 36km 나 되는 양양까지 테워 갔다가 아침에 또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대간 순례大幹 巡禮중, 어쩌다가 택시 때문에 마음이 언짢아 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을 만날 때가 더 많았다. 특히 태백시에서 우리를 위해 본인 스스로 우리가 다음 내려올 곳에 숙소가 있다는 정보를 알아봐 주었던 그 무뚝뚝하던, 전형적인 감자바위 택시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잠시 언짢았던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그래도 어제 저녁과 또 오늘아침 우리를 위해 수고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지도; 구룡령~조침령]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서둘렀는데, 구룡령에 도착하니 거의 6시가 되었다. 어제 확인해 둔 산행 들머리에서 택시를 내려 산행채비를 하고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는 갈전곡봉 들머리로 들어서며 13차 순례巡禮 3일째 산행을 시작한다.
[구룡령-갈전곡봉 들머리...]
[이정표]
어제는 진고개에서 왔고 오늘은 조침령까지..., 그러고 보니 구룡령이 중간지점이다.
[다가오는 1,100.3봉...]
[구룡령 옛길 정상...]
[구룡령 옛길]
56번 도로가 생기기 전 양양군 갈전리와 홍천군 명개리를 넘나들던 구룡령 옛길 정상까지 왔다. 뒤에 있는
무명봉 옆으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일출]
[갈전곡봉, 1,204m]
구룡령을 떠난지 2시간만에 갈전곡봉에 닿았다. 자그만한 정상석과 부산 낙동산악회의 정상 표지판이 걸려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대간 마루금 못지 않은 산마루 하나가 힘차게 뻗어가고 등산로도 뚜렸하게 나 있다. 또, 산꾼들의 표지리본도 많이 달려 있어 대간꾼들이 길을 잘 못들 우려가 있으나 다행히 이정표가 있어 대간길을 안내해 준다.
쉼터에 앉아 숨을 돌리며 22번째 지도를 편다. 이번 산행 중에는 하루에 한장씩 지도가 넘어가고 이제 백두대간 지도가 2장만을 남겨 놓고 있다.
지도에는 이곳 갈전곡봉에서 홍천군과 인제군의 군 경계郡 境界가 좌측으로 뻗어가서 가칠봉[1,204m]을 지나 구룡덕봉[1,388.4m]까지 가서 거기서 둘로 나뉘는 데, 하나는 왼쪽으로 꺾기어 개인산[1,341m]으로 빠저가고, 다른 하나는 인제군 상남면과 기린면의 면 경계面 境界를 만들며 방태산[주억봉, 1,433.7m]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산 마루금은 도道, 군君과 시市, 면面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
[갈전곡봉-이정표]
그러고 보면, 갈전곡봉은 양양, 홍천과 인제..., 3군郡이 만나는 삼군봉三郡峰이기도 하다. 갈전곡봉을 떠나
조침령을 향하여 내려간다. 이정표에는 조침령까지는 17.05km, 8시간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부터 대간 마
루금의 우측은 양양군, 좌측은 인제군이다. 여기서부터 조침령까지는 이름을 가진 산은 없고 여러개의 무명
봉들만 이어져 조금은 지리한 산행이 될 것 같다.
[대간마루 좌측으로 가칠봉~방태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1,016봉]
조금 전부터 좌측에서 가칠봉과 방태산이 '이 보게 대간꾼! 대간마루만 밟지 말고 이곳에도 한번 다녀 가게'
라며 따라온다. 이어서 오른 무명봉에는 누가 이름을 달아 놓았다.
[왕승골 안부]
이어서 이정표가 서 있는 희미한 갈림길에 닿았다. 양양시 왕승골과 인제군 조경동을 넘나드는 안부다. 쉼터에 앉아 쉬면서 젖은 양말을 꺼내 배낭에 메단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하여 벌써 땀을 흠뻑 흘리고 물도 많이 마시게 된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2시간 반 거리에 연가리골 샘터가 있다. 그 곳에서 점심을 먹고 물도 보충하여야 할 것 같다. 다시 948봉을 향해 순례를 하며 나는 현재 삶에 대하여 생각에 젖어 본다.
나는 '08년, 3월 부산-김해경전철(주) 대표이사를 끝으로 현역에서 퇴임退任을 했다. 당시에는 이제는 현업現業에서 완전히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정리했다. 내 자신이 아직 일을 더 할 수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 여건상 이제 완전히 퇴역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땐 아직은 일을 더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하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나이에 대과大過 없이 퇴역하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청년 실업으로 사회가 어려움을 격고 있는 형편에 우리 나이에 현직現職을 떠나는 것은 억울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현직現職을 떠나고는 다시는 회사 주변을 기웃거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어쩌다 후배들의 초청으로 식사자리를 함께한 적은 있으나 일과 관련해서 회사를 찾은 적은 없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 선배들이 퇴직한 후에 후배後輩들을 찾아 다니며 무슨 부탁을 하고 해서 후배들이 일을 하는 데 부담을 주곤 하는 것을 보아왔다. 나는 그런 것들이 참으로 딱해 보였고 나는 다음에 저렇게 하지 않아야겠다 다짐했었다.
그런데, 내가 퇴직하고 얼마되지 않아 직장 후배 중 한 사람이 찾아와 자기가 운영하는 엔지니어링회사의 기술고문이 되어 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전직회사前職會社와 관계되는 일은 하지 않고, 다만 대관업무對官業務나 타회사와 관련되는 업무 중 도울 일이 있으면 돕기로 하고 이 회사에 적을 두기로 하였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고 있다.
[왕승골-이정표]
[군성群星의 흔적...]
948봉을 지나다가 대간 순례大幹 巡禮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군성群星의 흔적을 만났다. 표지리본이 낡은 것으로 보아 군성인群星人들이 지나간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러간 것 같다.
지난 35년의 세월...,직장인職場人으로서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한 마디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국내외國內外 도처를 뛰어 다니며 프랜트 엔지니어링과 건설建設 업무에 푹 빠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나의 손길을 거친 설비設備들이 세계 도처에서 돌아가고 있다.
포항과 광양 제철소에는 물론, 울산 산업공단을 비롯한 국내 산업 현장과, 중동의 쥬베일 공단, 브라질의 비토리아 등지의 해외프랜트 현장에서 내가 설계하고 건설한 설비들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난 세월이 그렇게 헛되이 흘러가지 않았다고 자위自慰하게 된다.
그렇지만, 나의 가슴 한켠에는 학창시절에 꿈꾸었던 것을 체우지 못한 아쉬움이 늘 자리해 왔다. 나는 학창시절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더라도 기업가企業家로의 진로는 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기업을 해 보았으면 하는 꿈도 없었고 또 나에게 그러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내가 학창시절에 이루고 싶었던 꿈은 유학留學을 갔다와서 학교에 몸 담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가 내게 찾아 온 때도 있었지만, 경제적 여건상 그러한 꿈을 접어야 했다. 그 꿈을 접은 후에도 문득문득 '젊은이 들과 호흡을 함께하며 자신이 공부하고 연구한 내용을 학생들과 토론해 가며 후학後學을 지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일까'하고 생각하곤 했다.
[968.1봉]
무명봉인 968봉에도 세라봉이란 이름표를 달아 놓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의 이러한 아쉬움을 늦게나마 해소해 줄 수 있는 계기가 우연찮게 찾아왔다. 금년 초年 初
군성 산요회 시산제를 남한산성에서 지냈다. 그날 숭실대학교 정찬수 교수가 "자네의 엔지니어링에 대한 경
험을 강의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해도 좋고 학부생을 대상으로 해도 좋고..."하는게 아닌가. 나로서는 의외의 제의라 좀 더 생각해 보고 연락 하겠다고 하고 돌아 왔다.
그리고는 몇주가 지났다. 그 동안 '이제와서 내가 과연 강단에 설 수 있을까'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많이 망
서렸다. 그러다가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여 엔지리어링업무를 처음 접할 때를 떠 올려 보았다. 나는 그때,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산업 현장 업무간의 괴리가 심한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내가 맞닥드린 용어用語부터 생소하여 '엔지니어링 업무' 를 익히는데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35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다행히 전기 엔지니어링 분야는 그동안 새로운 기기機器들이 개발되어 산업현장
에 적용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프랜트 분야의 전기엔
지니어링'을 공부하려면 '프랜트 엔지니어링' 전반에 대한 업무의 연관및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프랜트 엔지니어링은 오케스트라이고 PM은 그 오케스트라의 콘닥터에 해당한다' 고 생각해 왔다. 나는 PM[프로젝트 매니저]을 여러 번 경험했으므로 학생들을 지도할 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봉산으로 달려가는 백두대간...]
[연가리골 샘터]
이정표와 쉼터가 있는 연가리골 쉼터에 이른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물을 보충하려고 하는데 지도에는 샘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 망설였는데..., 누가 싸인펜으로 15m라고 써 놓았다. 대간 순례중에 점심으로 김밥은 처음이다. 점심을 먹고 대장隊長 혼자 물통 2개를 들고 샘터로 내려가 물을 한통씩 보충 한다.
그래서, 내가 할 강의 내용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할 강의講義는 전기분야의 어떤 학문이 되기보다는엔지니어링, 건설분야의 실무적인 이론과 나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지도하는 역할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야의 선배로서 앞으로 사회에 진출하여 나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학창시절에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대학 강단에 서게되는게 아닌가!
나는 정교수를 만나 강의를 맡아 보겠다고 했다. 기왕이면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3시간, 3학점에 해당하는 '프랜트 엔지니어링 전기설계'를 맡아 9월부터 강의를 하기로 하고 강의자료는 준비해 가면서 더 상의해 나가기로 했다.
[점심]
[고로쇠나무]
고로쇠 나무의 잎은 단풍이 좀 늦게 드는 듯..., 해마다 2월이 되면 광양제철소가 있는 광양에서는 백운산에서 채취되는 고로쇠 나무 수액을 마시려는 사람들로 그 지역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950.9봉]
[1,080봉 아래에...]
[1,080봉]
1,080봉에다 둘 산악회에서 '1,061봉, 힘내세요. 산님'이라 친절하게 명찰을 달아 놓았는데..., 누가 싸인 펜으로 '진짜 1,080봉' 이라 써 놓고는 "죽을래"하고 욱박질러 놓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다고 죽일 껏 까지야..., 이곳에도 동해펄프를 포함하여 표지리본들이 여러 개 달려 있다.
그런데, 막상 강의 자료를 준비해 가다보니 어려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지난 날 업무를 하면서 접해던 자료들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때 만일 오늘 같은 날이 있을 거라 예상하고 대비 했다면 정말 멋진 강의자료를 만들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내 기억을 더듬고 전직회사前職會社에 연락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또 책도 구입하여 참고하고 해서 강의자료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자료를 책자로 만들기 위해 숭실대 켐퍼스에 찾아갔다. 마침 정교수는 해외에 나가고 없었고 교문에서 직원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학교를 출입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40년의 세월이 훌쩍 가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자료는 한차례 수정을 하여 완성되었고 어느새 2달 가까이 강의講義를 하고 있다.
[대간꾼들의 흔적]
나무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나타나는 설악산...???
[단풍 군락지...]
[단풍 군락지...]
이번 순례 길에는 대간 마루금에 주종主種을 이루는 참나무들이 이미 잎을 다 떨구어내고 서둘러 겨울채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단풍 구경을 할 수 없어 아쉬웠는데..., 1,080봉을 내리는 길 양쪽에 단풍나무가 고운 자태로 대간꾼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준다. 지도에도 '단풍 군락지대' 라고 되어 있다.
나는 지난 9월 6일, 첫 강의 때 기억이 생생하다. 정 교수가 학생 수를 수업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며 15명으로 한정해 주었다. 나는 회사에서 직원들이나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이나 교육을 여러 차례하기도 했고 또, 외국 사람들을 상대로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한 적도 있으며 공무원들이나 금융인을 상대로 강연을 한 경험도 있기에 나는 강의에 대해서는 별 부담이 없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학생들을 상대로 3시간 수업을 한다는 것이 또 다른 부담과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는지 수업을 끝내고 나니 정교수가 톤을 좀 낯추는게 좋겠다고 했다. 정교수 생각에 '저러다 목이 온전하지 않을 텐데...,' 싶었나 보다.
어쨌던 월요일에는 아침부터 바쁘다. 9시에 강의가 있으니 집에서 7시 반에 나선다. 느슨한 생활을 하다가 약간의 긴장이 있어 좋기도 하고 또, 매주 월요일 정장을하고 바쁜 걸음으로 학교에 가서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준비하고 공부한 만큼 들어 주는 학생들이 있다는 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왕이리 갈림길-뒤돌아 보고 찍은 이정표...]
산죽지대를 내리는데 왕이리 갈림길이 나타났다. 우측으로 2km 정도 내려가면 오늘 아침에 지나온 56번 도로와 양양군 서면 왕이리가 나온다. 우측 참나무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56번도로는 홍천과 양양을 이어주는데 한동안 대간 마루금과 나란히 달려간다. 도로 옆으로 흐르는 후천은 양양 양수발전소 하부댐으로 흘러든다. 아직도 조침령까지는 1시간 40여분 거리가 남아 있다.
[830봉 쉼터]
830봉을 오를 즈음, 우측으로 지도에 나타나 있지 않는 송전送電 철탑이 하나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좌측에 사람소리가 들려 왠일인가 보았더니 그곳에도 철탑이 있고 철탑에 사람들이 몇 사람 있는게아닌가!
철탑에서 무슨 보수 공사를 하나 보다 하고 지나처서 정상 쉼터에 앉아 대원隊員을 기다리며 물도 마시고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아직도 조침령까지 1시간 반 정도나 남아 있어 어둡기 전에 조침령을 내리려면 시간 여유가 있는게 아니지만, 3일째라서 그런지 힘이 꽤 부친다. 이 지역은 전체적으로는 고도高度가 구룡령보다 낮지만, 높낮이 변화가 50~100m 정도되는 무명봉을 여러 개 넘어가고 있다.
[쇠나드리 고개...]
쇠나드리 고개에..., 여기에는 왼쪽으로 제법 큰 등산로가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라 1km쯤 가면 민박집이 몇 있는 인제군 기린면 쇠나드리 마을이 있다. 그런데 지도에는 '옛 조침령'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찻 길이 없을 때는 양양과 인제를 이리로 넘나들었다는 말인가? 고개에는 별다른 정보없이 덩치만 큰 이정표가 장승처럼 버티고 있다. 조침령鳥寢嶺은 '고개가 하도 높고 험하여 새들도 잠을 자가며 넘어간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 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쇠나드리 마을도 '새 나들이' 에서 유래된 것 같다. 실제로 지도에 새나드리라 표기된 곳도 있다.
[철탑공사 인부...]
철탑공사 작업자들을 만났다. 조금 전에 보였던 철탑이 현재 공사중에 있는 송전送電 철탑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철탑만 보였지 선로線路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직업 의식이 발동하여 이 사람들에게 '어디서 어디로가는 선로인지, 또 몇 볼트 선로인지' 물어보았지만 이 들은 별 이상한 걸 다 묻는다는 표정을 지을 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이 들은 양양 사람들로 802봉을 오르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우측 가파른 비탈에 있는 죽은 참나무 등걸에서 느타리 버섯을 따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구경을 한다. 어느새 해는 서산에....
[일몰...]
[조침령 418지방도]
802봉을 10여분 내려오자 좌측에 마을과 포장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쇠나드리 마을과 조침령을 지나는 418번 지방도로다. 이제서야 조침령에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 마지막으로 만나는 무명봉, 796봉을 지난다.
나는 정교수가 고맙다. 친구는 나에게 강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을 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월요일 오전에 강의시간을 잡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친구는 월요일 오전 강의가 없는 데도 학교에 나와 점심을 함께하곤 하며 '학생들에게 자네의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 이 들이 사회에 나가면 분명히 도움이 될 테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강의를 즐기면서 하라'고 나의 부담을 덜어 주는 등, 여러 가지로 조언해 주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정교수는 우리 동기 중에 숨겨져 있는 산꾼이다. 그는 이 지역 산악회에 오랜 기간 몸 담아 있으면서 백두대간白頭大幹을 여러 차례 다녔을 뿐 아니라 에베레스트도 정상까지는 아니지만 배이스캠프까지 몇 차례나 다녀 왔다고 하며 이번 겨울 방학 때도 네팔에 간다고 한다. 또 근래는 골프에 푹 빠져있는 듯하다. 언제 이수회에 새로운 멤버가 생길 것 같다.
그런데, 이번 학기의 절반이 지난 지금, 나의 강의를 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로 미흡하기만 하다. 한 마디로 내가 원했던 강단에 설 기회는 왔는데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과제를 내기가 과제를 하기보다 어렵고 시험문제를 내기가 시험을 치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도 실감하고 있다. 나는 남은 기간, 강의를 잘 마무리 하여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나에게도 보람 있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을 다 할 생각이다.
[조침령 터널위...]
나무로 된 다리가 나타났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다리 아래로는 418번 지방도, 조침령 터널이 통과한다.
[조침령 옛길]
임도 비슷한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양양 철탑공사 작업자들이 차를 새워 놓고,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비포장도로에 서서 방금 내려온 대간마루 날머리와 비포장도로를 사진에 담았다. 공사 작업자들이 이 곳을 좀 알고 있으면 도움을 받을까 하고 몇마디 예기를 해보았다.
"조침령 터널이 어디쯤 지나가나요?"
"글쎄 여기서는 모르겠고 여기서 차를 타고 제법가야 터널이 나옵니다."
나는 가던 길을 가리키며, "이 길을 따라가면 조침령 옛 길이 나오나요?"
"글세요 우리는 여기에서 더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어디로 가려고 그러십니까?"
"우리는 조침령 터널까지 가서 옛길을 따라 왼쪽으로 조금 가다가 있는 민박집에서 오늘 자고 내일 다시 점봉산쪽으로 산행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터널까지도 한참 가던데 그러지 말고 우리 차를 타고 터널까지 가지 그래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기서 차를 타고 가면 내일 다시 여기까지 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 터널까지 가면 옛길이 나올테고, 또 418번 도로로 내릴 수 있겠거니...' 생각 했다. 지도에 보면 '나뭇꾼과 선녀'라는 민박집이 대간마루에서 터널 옆, 인제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거기서 묵고 내일 다시 대간마루로 올라 순례를 계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철탑공사 인부들과는 헤어지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조침령 정상]
5분 정도 평탄한 길을 가자 좌측에는 헬기장이 우측에는 조침령 표지석이 나타난다. 어느새 6시, 대간마루에 어둠이 찾아든다. 빨리 옛길을 찾아 조침령을 내려가야 하는데...,
[조침령鳥寢嶺, 770m]
그런데 이어서 좌측에 요 근래에 세운 듯한 '백두대간 조침령鳥寢嶺' 표지석과 그 옆으로 잘 다듬어진 등로登路가 이어지는게 아닌가. 지금까지 내가 따라온 비포장길은 이 등로登路의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고 있다.
나는 날은 어두워지는데 순간 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이 조침령을 내려가야 하나?' 잠시 망서리다 일단 산길로 접어 들어가 보기로 한다. 어쩌면 조금 더 가면 터널이 백두대간 아래로 지나지 않을까...? 그런데, 산길을 들어서 몇 걸음 옮기자 바로 등로 옆에 '위치 표시목' 하나가 나타났다.
[현위치 표시목...]
현 위치 표시목은 작지만 꼭 필요한 정보를 모두 갖고 있다.
우선, 처음으로 점봉이란 산 이름을 만난다. 그러니까 '점봉 32'라면 점봉산點鳳山에서 시작하여 32번째 표시목이란 뜻이다. 표시목에 따르면, 조침령을 0.1km지나왔고 단목령까지는 9.8km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이 표시목을 보자 뭐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가 조침령을 지나 점봉산까지 가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새삼 지난번 영취산을 지나 육십령까지 가야만 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의구심을 갖고 몇 걸음 앞에 있는 언덕에 오르니 눈 앞에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올라서서 양양쪽을 바라 보았더니 어느새 어둠이 깔려 있고 멀리 양양 시가지에 불빛이 하나 둘 들어 온다.
그런데, 전망대 아래쪽에서는 자동차들이 불빛을 달고 조침령으로 찾아 들고 있다. 새들이 둥지로 찾아들 듯이..., 그런데 가만히 보니 차들이 우리가 이미 지나온 훨씬 뒤쪽 산마루 아래로 사라지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여기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그렇다, 우리가 따라온 비포장 도로가 바로 '조침령 옛길'임에 틀림없다. 나는 조침령 옛길 이라면 그래도 차가 다녔을 터이니 포장도로인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비포장도로인 것이다.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인제에서 양양으로 가려면 저 비포장도로 다닌 것이다. 그렇다면, 저 길을 따라 인제쪽으로 내려가야 지도에 있는 '선녀와 나뭇꾼' 민박집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오던길을 되 돌아 조침령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조금전에 철탑공사 인부들의 차가 있던 곳까지 오니 자동차도 사람들도 이미 떠나고 없다.
조침령 옛길을 내려 오는데, 비포장도로가 곳곳이 파여 있어 승용차는 도저히 다닐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다. 도저히 차가 넘나들었던 길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험하다. 그리고 그 길이 꼬불꼬불하게 1.5km가까이 이어져 있어, 우리는 라이트를 머리에 두르고 지루하게 내려간다.
418번 포장도로까지 내려 왔더니 터널관리사무소 건물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근처에 잠잘 곳이 있는지 물었더니, 자동차로 15분 정도, 터널 쪽으로 오르면 민박집이 있단다. 아마 '선녀와 나뭇꾼'인 듯...
우리는 너무 지처 있어 지금 다시 도로를 따라 걸어오르는 것은 도저히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인제쪽, 쇠나드리 마을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오니 '쇠나드리 쉼터'라는 표지판이 연락처를 갖고 도로 변에 서 있다.
전화를 했더니 자기네는 요즈음은 민박을 하지 않으니 개천 건너 불을 밝히고 있는 집으로 가보라고 한다. 그래서 개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숲속 민박'이란 이름을 가진 집에 갔더니 민박이 가능하다고 한다. 50대 중반 쯤 되어보이는 부부의 안내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팬션형 방'에 들었다.
--오늘 총 산행시간; 13시간, 산행거리; 23km (백두대간; 20.3km)
나는 우선 저녁을 부탁해 놓고, 우리가 백두대간을 가고 있는데 내일이 이번 산행의 4일째로 마지막 날이며 한계령까지 가야하니 4시 반에 아침식사와 도시락을 부탁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아침식사가 어려우면 저녁에 도시락만 좀 준비해 달라고 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찬은 별로 없는데 그래도 괜찮으면 아침을 해드리겠다고 한다.
나는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부탁 드립니다. 조금 전에 조침령 정상에서 내려와 보니 제법 거리가 멀게 느껴지던 데, 내일 먼 길을 가야 하니 아침에 여기서 조침령 정상까지 걸어가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내려온 길을 또 오르느라 맥이 빠질 것 같으니 차로 좀 테워 주셨으면 합니다." 했더니, 남男 주인이 "거리가 제법되지요. 그리고 길이 험해서 대우가 없는 차는 오르지도 못합니다." 길이 험하다는 것은 조금전에 내려와 봐서 나도 잘 알고 있다. "댁의 차가 대우가 없나요?" "우리 차는 대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되도록 해봐야지요."한다.
안내된 방에서 샤워를 하고 거실로 나갔더니 저녁상이 차려져 있다. 산 나물과 느타리 버섯볶음, 맛 있는 시락국에 생선구이까지..., 배고프던 차에 저녁을 맛있게 먹는다. 느타리 버섯은 아주머니가 산에서 직접 땃다고 하는데 맛이 그만이다. 특히 이면수 구이가 얼마나 맛 있는지 이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하산주로 소주 반 컵에 얼음을 체워 마신다. 식사를 맛있게 하고 민박 비용으로 7만원을 지불했다. 이 지역에서는 방 값을 모두 5만원씩 받는다고 한다. 펜션이라 조금 비싸게 받는 감이 있으나 내일 아침 차편까지 부탁한 터라 많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방에 들어와 23번째 지도를 펴놓고 내일 갈 순례 길을 더듬어 본다. 내일은 단목령을 지나 점봉산을 오르고 한계령에 내린다. 드디어 내일은 대간 순례大幹 巡禮 길의 막바지인 설악雪嶽을 만나게 된다. 내일 내려가는 한계령은 전에도 여러 번 지나다녔지만 이렇게 걸어가기는 처음이다. 내일 설악산을 만난다는 설레임을 가득안고 잠자리에 든다.
|
첫댓글 손사장 드디어 가을 백두대간 계획을 실행에 돌입하네. 산우도 적극적으로 Close Up 되고(될만하지) 등산객도 만나고. 대단해 그런데 건강에 유의하고 무리는 하지 말도록...
過猶不及이란 말을 새기면서 모든 일정을 수립 실행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