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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태안읍에서 바닷가로 약20㎞ 떨어진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蟻項里)는 지형이 개미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고 하여 ‘개미목살’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한 지명인데, 마을주민들은 아직도 이곳을 ‘개미목’ 이라고 하고, 개미목을 줄여서 ‘개목’ 혹은 ‘개묵’ 등으로 부르고 있다.
1962년 아직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던 이곳 어촌에 한국은행의 고문으로 있던 42살의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 1921~2002)가 태안반도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서 2헥타의 토지를 매입한 뒤, 풀과 나무를 심기 시작한 천리포수목원은 2013년 9월 현재 18만평(60ha)에 세계 36개국에서 수집한 1만 4200여종의 다양한 수목이 곱게 자라고 있다.
국내 최초의 개인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은 1979년 재단법인이 되었고, 1996년에는 공익법인 인가를 받았는데, 1997년에는 세계목련학회를 유치했다. 1998년에는 국제수목학회 및 호랑가시학회를 유치하여 국제적인 학술교류와 정보교환을 했는데, 2000년에는 국제수목학회(International Dendrology Society)로부터 세계 12번째이자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Official Arboretum Merit)' 인증을 받는 등 국내에서 보다 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진 수목원이다.
오랫동안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나 후원회원에게만 개방하던 시크리트 가든은 각 식물들마다 손바닥만한 표지판에 외국어로 학명, 속명, 종명 등만 간단히 적혀있고, 방문객들에게는 풀 한포기, 지렁이조차 함부로 밟지 못하게 하는 등 철저히 학술적이고 자연 상태를 고수해오던 천리포수목원은 2002년 설립자 밀러(한국명; 민병갈)씨가 죽으면서 충청남도에 기부하자, 2009년 3월 1일부터 일반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세계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천리포수목원’은 서해안고속도로 서산나들목을 빠져나와 서산~태안 32번 국도를 달리다가 태안읍에서 만리포해수욕장과 천리포해수욕장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보이는데, 서울 남부터미널이나 동부터미널 등 전국 어느 도시에서 태안읍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간 뒤 태안시내버스터미널에서 천리포해수욕장행 시내버스를 타고 수목원 앞에서 내리면 된다.
관람시간은 4월부터 9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동절기인 10월부터 3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연중무휴 개장하는데, 입장료는 어린이 4000원, 청소년 6000원, 어른 8000원씩이다.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난 밀러 씨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는데, 해군에 입대 후 일본 오키나와에서 통역장교로 복무하다가 1945년 9월 한국에 파견된 것이 한국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1946년에 전역한 그는 다시 입국해서 1952년부터 1982년까지 한국은행에서 근무했는데, 1962년 태안반도의 토지를 매수하여 수목원을 만든 것이다. 초기에는 국내 자생종 수목 위주로 관리를 하다가 1973년부터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묘목과 종자를 수집하는데 나섰다.
1978년부터는 다국간 종자교환사업인 인덱스 세미넘(Index Seminum)에도 참여하여 각국 유명한 식물원과 수목원은 물론 식물재배농장, 식물관련 대학들과 잉여종자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외국 수종을 확보하는 한편, 매년 미국의 묘목경매장에서 신품종을 사오기도 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밀러 씨는 오로지 수목원 가꾸기에만 몰두하더니, 1982년 한국은행을 퇴직 후 모 증권회사의 고문으로 일했으며 1979년에는 아예 한국으로 귀화하여 민병갈(閔丙渴)이라는 한국인이 되었다.
그는 귀화를 반대하는 어머니의 승낙을 얻기 위해서 3년을 기다렸으며,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고 한다. 또, 귀화 후 어머니와 함께 이곳에 살던 5년 동안은 하루에 3갑씩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고 하는데, 1978년부터 우수한 학생을 장학생으로 뽑아서 외국의 유명한 수목원에 연수를 보내는 장학 사업을 비롯하여 지역사회개발, 불우이웃돕기에 힘쓴 공로로 2002년 3월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만 4200여 종의 수목을 보유하고 있는 천리포수목원에서도 가장 자랑하는 5대 수목은 목련, 동백, 호랑가시나무, 무궁화, 단풍나무 등인데, 목련 400여 종, 동백나무 380여 종, 호랑가시나무 370여 종, 무궁화 250여 종, 단풍나무 200여 종이나 된다.
수목원은 민병갈의 미국이름을 딴 ‘밀러(Miller)가든’을 비롯하여 생태교육관, 목련원, 낭새섬, 침엽수원, 종합원, 큰골 등 7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7개 지역 중 사실상 밀러 가든 만을 공개하고 있다.
4월이면 400여 종의 다양한 목련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수련, 수국, 가시연꽃, 상사화가 만발하며, 가을철에는 가을벚나무, 단풍나무가 아름다운 수목원의 매표소를 지나 구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긴 타원형의 수련(水蓮) 늪지가 있다. 늪지 건너편에 보이는 하얀색 콘크리트 건물 2채는 민병갈이 생전에 살았던 집으로서 지금은 민병갈기념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기념관 뜰에는 안경을 낀 그의 흉상이 있고, 내부에는 그의 일생과 주요 물품을 정리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또 천리포수목원의 사계절을 시청각으로 보여준다.
수목원 입구에서 왼쪽에는 수목들을 연구하고 번식하는 유리하우스들이 농촌의 비닐하우스처럼 큼지막하게 여러 동 세워져 있고, 해안가를 따라서 길게 만들어진 산책로 한가운데에는 해변을 조망할 수 있는 해변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곳은 아름다운 천리포 해변과 낭새섬인데, 천리포는 청정해안으로서 얕은 수심과 고운 모래로 여름철에 해수욕장으로 인기가 높다. 그리고 해변에서 약500m 떨어진 섬의 공식이름은 모습이 닭의 벼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닭섬'이지만, 민병갈은 마을주민들이 '낭새'라고 부르는 '바다 직박구리'가 절벽바위 틈새에 집을 짓고 살던 섬이라고 하여 낭새섬이라고 불렀다. 하루에 두 번 썰물 때에는 낭새섬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데, 낭새섬은 현재 천리포수목원의 소유로서 호랑가시나무 등 자생 상록활엽수들을 관리하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2009년 일반 공개를 한 이후 산림청으로부터 수목원전문가 교육과정 인증을 받았고, 2010년에는 국내 수목원 중 유일하게 농어촌공사로부터 'R-20(Rural-20) 관광명소'에 선정되어서 민박 형태의 힐링하우스인 한옥 5채와 양옥 6채에서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 또, 에코힐링센터(구 생태교육관)의 무궁화동산에 있는 유스호스텔형 숙박시설에서는 130명이 동시에 숙박할 수도 있는데,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태안반도를 찾는 피서객이 많은 피서철을 맞아 8월 17일까지는 폐장시간을 오후 8시로 늘리고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을 벌이고 있는데, 지난 7월에는 무궁화동산에서 각양각색의 국내외 무궁화 224품종을 전시했다. 8월부터 9월말까지는 빅토리아 수련 2종을 비롯하여 열대수련, 호주 어리연, 물 칸나 등 수련·연꽃 전시회인 「색&향기展」을 진행하고 있다.
모래가 곱고 깨끗하고 푸른 태안반도의 해수욕장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다가 수목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멀리서 일부러 수목원을 찾아오는 탐방객들이 더 많다. 그러나 일반에게 개방된 이후 점점 관광지화 되어서 예전의 조용하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