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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 놀러갔다가
과부 팔자인 대감의 딸의 액땜을 위해 보쌈 납치되었다가
기지를 발휘해 탈출했다.
자루에 담긴 채 절벽에서 던져지려는 찰나,
팔만 나올 수 있게 자루의 입구를 열어달라고 하곤,
신부가 마련해준 금붙이를 한 줌씩 꺼내 보여주고
좋은 말로 하인들을 얼러서 도망갈 길을 얻는다.
허리띠에 금붙이를 엮어놨던 하인들이 그걸 풀어서 줄을 만들어
절벽 밑으로 내려가게 도와줬는데,
다 내려온 김선달은 갑자기 줄을 확 잡아당겨
금붙이를 Get it하고는 그대로 달아나버린다.
극적으로 탈출한뒤 하룻밤 정분을 맺은 그 부잣집 처녀가
수소문끝에 평양에 와서 김선달과 알콩달콩 살림을 차렸다고 하고,
혹은 자기 집안의 죄과를 씻는 비구니가 되었다고도 한다.
평양 감사의 청으로
돈 한푼없이 한양으로 갔다가 물에 빠진 척해서
나그네 하나를 낚고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 일화는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의 유래가 됐다.
뇌물을 겸한 선물인 벼루를 정승에게 대신 가져다준다.
그런데 아들의 장난으로 혹은 주막에서 만난 한 기녀와
검열삭제를 하는 와중에 벼루가 떨어져서 깨졌다.
이후 한양으로 간 김선달은 정승집 문지기에게 일부러 시비를 건 다음에
그에게 밀쳐 넘어질 때 이미 깨진 벼루를 땅에 패대기쳐
박살을 내버린 다음 정승에게 벼루를 바치며 문지기 때문에 박살났다고
거짓말했다.
참으로 가장 쉬웠던 사기이며
이것은 사기의 범주를 벗어나서 완전히 자해공갈죄에 해당된다.
이 때 문지기는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무사할리는 없었을 듯.....
최고 절정은 더 말할 것도 없는 대동강물 사기 사건.
대동강 물이 자기 거라고 주장하면서
바람잡이에게 돈을 주고, 물을 퍼갈때마다 돈을 돌려받으면서
상인들에게 보여준뒤 상인들에게 대금 삼천냥
(정확하지 않지만 이보다 많을거라 유추됨-5명의 상인이 각자 1천냥씩 가지고
평양에 와서 재미지게 놀다가 4천냥이 조금 넘는 정도만 남았다는 버젼도 있다)
을 받고 팔아넘겼다.
이후 상인들은 대동강 물세를 거두려다가 물을 퍼가던 사람들한테
몰매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악독한 사기다!!
현대에도 이 일은 각종 사기극의 대명사 격으로 꼽히며,
현대로 따지면 악독한 사기죄에 속한다.
정신이 간당 간당한 곡물상을 상대로 한 사기 사건.
여러가지 곡물을 파는 노인의 앞에서 옷을 잡아 당기더니
"이게 뭐요?"라고 물어보니 노인이 "옷이오(오시오)."라고 대답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잣을 가리키고 "이게 뭐요?" 하니 노인은 "잣이오
(자다는 '잡숫다'의 하남 방언)."라고 했다고 주장하며
잣을 몇웅큼이나 집어먹었다.
지금도 결코 싼 편이 아니지만 당시 잣은 꽤나 고가의 식품이었다.
노인은 당연히 값을 치룰 줄 알았지만
김선달은 다 먹은 다음 머리의 갓을 가리키면서 "이게 뭐요?"라고 물었다.
노인은 "갓이오(가시오)."라고 대답했고,
김선달은 그 말을 듣고 그냥 가다가 노인에게 멱살을 잡히고,
결국 노인의 아들이 왔다.
김선달은 아들에게 오라고 해서 왔고 자시라고 해서 자셨고,
가라고 해서 갔더니 이게 무슨 짓이냐며 역정을 냈고,
정신이 오락 가락할 나이인 아버지를 모신 아들은
아버지가 정신이 나간 줄 알고 김선달을 보내줬다.
고가의 식품을 무전취식한 주제에 가족관계를 파탄내고
멀쩡한 노인을 치매노인으로 만들어버린 희대의 악질사기범.[2]
이후 만화 트라우마에서 빡친 장사꾼이 장미를 가리키곤
저기 난게 뭐냐고 묻자 김선달이 까시요라 대답해
복수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김선달이 갓을 가리키며 무어냐고 묻자
상인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며 옆 가게에 물어보고 온 뒤
"모자라는뎁쇼"라고 하기도..
잣을 실컷 먹은 김선달은 드디어 배탈이 났다.
급해진 나머지 한 대가댁에서 뒷간을 쓰자고 하니
문지기가 텃세를 부리며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돈 닷 냥을 주고 시원하게 뒤를 본 김선달은 본전 생각이 나서
하루 종일 뒷간에 앉아있는다.
그 댁 주인마님이 돌아올 시간이 되자 애가 탄 문지기는
결국 강탈한 닷 냥의 몇 배를 돌려주고서야 김선달을 쫓아낼 수 있었다.
80년대에 출판되었던 한 소설에는 문지기의 애타는 속을
'이놈의 늙은이가 똥을 주워서 도로 처먹나?'라고 적어놓았다...
절에 놀러갔더니만 그날 사또가 기생들 데리고
한밤중에 놀러와서(스님들이 곤란하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스님들과 짜고 산신령인 척 해서 사또에게 참기름 바른 쥐똥을 먹이고,
자기 혼자만 배불리 먹고 다른 스님들은 굶기는
(물론 자기 대접이 후하지 않았던것도 있었던것 같지만) 주지를 놀려먹는등,
그의 사기질은 높으신 분들이라도 가리지 않아서
단순 비겁한 인물로만 보이진 않은 듯.
좀 긍정적인 케이스로는
친척 잘만나 지방의 대 부호들의 재산을 강탈하던 인물에게
자신과 친하던 안장자(안부자 - 소설에 따라서는 박광서) 행세를 하면서
"사실은 영의정과 친분이 있다"라고 하여
돈도 돌려받고 노자도 넉넉히 따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대로 그도 한방 먹은 에피소드도 있다.
동문수학했던 옛 친구가 고을 사또가 되어 부임해 왔는데,
자기에게 인사를 늦게 왔던 것을 기분 나빠하여
그 친구가 복통이 났다는 얘기를 듣자
쥐똥에 참기름 묻힌 것을 약이라고 속여서 그 친구에게 먹였다.
그 친구는 속았다는 걸 알고는 국화주를 준비해 놨으니
같이 마시자고 김선달을 초대해서는 자기 오줌을 국화주라고 속여
김선달에게 먹여서 복수하고는 허허 웃었다는 이야기.
판본에 따라서는 스캇물 수준의 내용도 있다.
친구인 사또가 쥐똥 약을 먹고는 조금만 힘을 주면 바로 발사되는
지경까지 이를 때 국화주를 마시자고 김선달을 초대해서
'나한테 치질이 있는데 괜찮은지 어떤지 좀 봐 달라'고 하여
김선달에게 자기 항문을 들이대고
냅다 얼굴에 더러운 것을 싸지르고는
'자네가 보내준 쥐똥이 든 국화주 맛이 어떤가?'라며 복수를 완결했다는
줄거리다.
참고로 또 다른 판본에서는 김선달이 자신을 푸대접한 절의 중들에게
콩을 한말 갈아 먹고 이 짓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한양 선비들과 동행했는데 선비들이 쓸데없이 트집을 잡아
내기를 걸어서 물을 긷던 동네 처녀의 거시기를 보자고 한다.
김선달은 포도청장 행세를 하며
'너와 같이 생긴 처녀는 분명 XX가 두 개이니 몽땅 잡아들인다'며
무섭게 으르대어 결국 처녀의 속옷을 벗기고 만다.
내기에 이긴 김선달은 선비들의 돈주머니를 몽땅 털어서 평양까지
호의호식하며 갔다.
어떤 책에서는 받은 돈주머니를 죄다 울고 있는 처녀에게 주고
"미안하오. 우리 장난이 심했소.
이걸로 나중에 혼수품이라도 마련하시구려." 하고 혼자 쓸쓸히 다시 길을
가는 버젼도 있다.
이 경우 겉만 번지르르한 선비들의 더러운 작태에 대해서 저질 이라며
분노하는 김선달의 속마음이 백미.
어느 복날 동네 가난뱅이들이 둘러앉아 말로 개고기를
권커니 잣거니 하는 것을 보고 공짜 개고기를 먹여준다고 한다.
모란봉에서는 동네 돈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술상을 차려 놓고
개고기를 삶고 있었는데
김선달은 그들에게 다가가 '미친개를 먹으면 미친놈이 돼서
서로 물어뜯는다'고 슬그머니 겁을 주니까
꺼림칙해진 사람들이 서로 눈치만 보자 김선달이 먼저 시식을 해보고는
미친개 흉내를 내며 사람들을 물어뜯으려고 대드니까
사람들은 몽땅 달아나버렸고 김선달은 가난뱅이들을 불러
술과 개고기를 포식한다.
집안에 시량(쌀과 장작)이 떨어지자
마을의 부인들을 모두 불러모아 구월산으로 단풍놀이를 간다.
단풍놀이 중 한 바위에서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며
자신의 과거 죄과를 모두 고백하고는 '여기에서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구월산에서 해를 입는다'고 위협해 각자 자신의 부정행위며
불륜을 털어놓게 한다.
마을로 돌아온 뒤 귀에 담아두었던 불륜 행위를 빌미로
시량을 얻어다 연명한다.
자신의 조카가 장님 고리대금업자 패거리의 돈을
도박(혹은 오입질)에서 날리고 난처한 지경에 처해
김선달에게 도움을 청한다.
김선달은 마을 사람들과 작당하여 평소 악명높던 장님 패거리를
혼내주기 위해 집 한켠에 엉성한 가건물을 세운 뒤
장님들을 초청해 가건물 밑에서 돼지비계를 구워대
냄새만 풍겨서 잔치여는 척만 한 다음
장님들이 기다리다 잠들자 가건물 밑에 사금파리(깨진 사기그릇 조각)를
쌓아두고 장님들의 코끝에 이상한 액체를 발라놓으니
잠에서 깬 장님들은 이상한 냄새를 가지고 서로 싸우다가
가건물을 무너뜨렸으며 김선달은 장님들에게
그릇값으로 돈을 잔뜩 뜯어내 조카의 빚을 갚아주었다.
어느 한겨울밤에 산골짜기를 헤매다가
조난당할 위기에 처한 김선달이 간신히 불이 켜진 누추한 집에서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들에게 후한 대접을 받는다.
고향이 어딘지 밝히던 중 평양 산다는 말에 이 아버지가
"그럼 혹시 김선달을 아시오?"하고 묻는데
알고보니 이 아버지는 김선달의 팬이었다.
겨울이 지나가면 노부를 모시고 김선달을 뵈러 갈 예정이라는
효자 아들의 말을 듣고 낯이 붉어진 김선달이 신분을 밝히자
아버지는 거의 영웅 대접하듯 자기가 캐낸 산삼주까지 꺼내
김선달을 대접하면서 그의 재미난 이야기를 청해 들으며
긴긴밤을 재미나게 보냈다.
뭐, 소문을 통해 김선달의 일화를 들은 사람들이니
연예인이 자기 집에 와서 몰래카메라 찍은 것과 다름 없는
충격과 즐거움일듯.
그를 지칭하는 수식어 '봉이'가 생긴 이유.
시장에 갔다가 악덕 닭장수를 보고 한 번 혼내줄 생각으로
어수룩한 척을 한다.
닭장수는 그를 속여서 이건 닭이 아니고 봉이라면서
10냥(닭 한마리 값은 1냥)이라고 값을 속인다.
김선달은 닭을 사서는 고을 원님께 가서 봉을 바치러 왔다고 고한다.
봉이라는 말에 기대하던 원님은 수탉을 보고 화를 내고
원님 모독죄라며 곤장 12대를 치는데,
12대를 맞고서야 김선달은 "닭장수가 봉이라고 해서 샀는데!
아이고! 닭장수야! 나 죽는다!"하고 소리를 친다.
원님이 자초지종을 물으니 "다른 닭보다 훨씬 크고 빼어난 닭이 있어
그게 무슨 새냐고 물으니 닭장수가 봉이라고 했습니다.
봉은 귀한 새라서 원님께 바치려고 샀는데
몇번을 물어도 닭장수가 봉이라고 했습니다."라고 해서
원님은 갸륵한 백성의 마음을 못알아준 자신을 탓하며
악질 닭장수를 잡아오라고 명을 내린다.
폭리를 취해 봉잡은 줄 알았던 닭장수는
기세등등한 포졸까지 끌고 온 김선달에게 데꿀멍.
오히려 자기가 봉이 된 것을 알고 체념하고는
닭곰탕이라는 뇌물을 써서 포졸들에게 자신을 놔달라고 한다.
그리고 김선달에게는 예순다섯냥
(곤장 1대 = 10냥 -> 120냥 +원래 닭값 10냥 -> 130냥 <-포졸이 그냥 둘 다 운이 나빴으니
반만 받으라고 함) 을 빼앗긴다.[5]
위의 대동강 사기극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이야기.[6]
한겨울에 얼어붙은 호수에다가 젖은 짚단을 잔뜩 깔아놓고
추수한 이후의 논인 것처럼 속여서 팔아먹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봄이 되어서 매수자가 다시 찾아와 보니 논은 없고
웬 호수만 덩그러니 있었더라는 이야기
일부 판본에서는 위의 대동강물 사기극과 연결해서
대동강 유역의 기름진 땅을 한양 상인들에게 팔아넘기곤,
봄에 와서 보니 대동강물 이었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모 90년대 만화판의 마지막에 수록된 이야기인데,
한 부자(정확히는 '좌수'로 표기)가 지인들을 초대하여 술판을 벌이면서
10만 냥이나 되는 돈으로 안되는 것이 없다고 하자
김선달이 발끈해서
자기는 아무리 돈을 받아도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한 부자는 과연 숙이나 안숙이나 보자면서
3천냥을 바로 준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자, 이제 고개를 숙이시게나'라고 하지만
김선달은 3천냥이나 있는 자신이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다고 하며 거절한다.
그러자 부자는 1만냥을 주지만 김선달은 당연하다는 듯이 무시한다.
부자는 결국 전 재산의 절반인 5만냥을 내놓으며 고개를 숙이라 하지만
김선달의 대답은...
'좌수님과 저의 재산이 같은데 제가 무엇하러 고개를 숙입니까?'
마지막에 욱한 부자가 5만냥을 마저 내놓지만
그걸 태연자약 하게 먹어버린 김선달은
'전 10만냥 부자이고 좌수님은 알거지신데 제가 왜 고개를 숙입니까.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유유자적하게 빠져나가게 되고,
대문을 나서고야 자신이 알거지라는 현실을 자각한 부자는
버선발로 뛰쳐나가다 문턱에 걸려 볼썽사납게 뒹군다.
그리고 김선달의 마지막 대사가 압권이다.
'좌수님이 제게 10번 절을 하신다면
이 10만 냥 짜리 전표를 돌려드리겠습니다.'
가게 주인이 팔다 남은 쉰 죽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에
김선달이 판매를 도와주겠다고 자청했다.
이 때 시골 양반이 죽을 주문하자 김선달은 죽을 줄때
이 사람이 초맛은 모를 테니 초는 치지 말라고 했더니
그 양반은 거드름 피우는 성격이 있어서
'나도 초맛은 아니 초 좀 쳐오게'하니까 김선달이
'죽에 초를 쳐서 먹는 건 서울 사람들 식성'이라고 얘기하자
그 손님은 잔말 말고 초나 더 쳐오라고 했다.
그 다음에 나온 죽은 쉬었던 데다가 초까지 쳤으니 맛이나 오죽하랴.....
그래도 시골 사람은 '역시 죽은 초를 쳐야 제 맛이군'이라고 말하면서
억지로 한 그릇을 다 비웠지만,
그 뒤 그 사람의 속은 아마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2016년 7월 봉이 김선달을 다룬 영화가 개봉된다.
봉이 김선달(영화) 문서 참조. 김선달을 맡은 건 유승호.
봉이 김선달 이야기
봉이 김선달이 평양 살 때, 근처에 참 웃기는 양반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이 양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색하기로 성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위인인 것이,
저는 좋은 집에 살고 기름진 음식 먹으면서 온몸에 비단을 둘둘 감고 살아도
남한테 썩은 지푸라기 한 올 적선한 적 없었구나.
그러면서 세상에 저 혼자 잘난 줄 알고 사느라고 아주 거드름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서,
어쩌다가 나들이라도 할라치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번드르르하게 치장을 하는데,
말총갓 쓰고 옥관자 달고 비단공단 바지저고리에 직령도포 떨쳐입고 옥양목 행전 치고
녹피갓신 신고 뒷짐 지고 팔자걸음에 건들건들 우쭐우쭐, 세상에 이런 고달이 없네그려.
이런 양반을 하루는 봉이 김선달이 개울가에서 딱 마주쳤던 것이다.
개울이라야 그저 징검돌 대여섯 개 놓을 만한 것이다마는,
마침 며칠 동안 비가 퍼붓다가 갠 뒤끝이라
벌건 흙탕물이 그득하여 건너자면 허리께나 제법 적실 지경이라,
이 귀하신 양반이 어찌 옷을 적셔 가며 개울을 건널 것인가.
곁에서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고 있는
김선달을 보고 점잖게 한 마디 내놓으신다.
“에헴. 거 뉘 집 장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보아하니 팔다리 힘으로 먹고사는 데 이골이 난 듯한데,
그 힘 잠깐 쓰고 돈푼이나 벌어 볼 생각 없으신가.”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더냐. 눈치 빠른 봉이 김선달이 벌써 무슨 수작인지
그 속셈을 환하게 꿰었지마는 짐짓 모르는 척 딴전을 핀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터이나,
소인은 무식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그럴 테지. 뱁새가 어찌 황새걸음을 따르며 참새가 어찌 봉의 말을 알아듣겠는가.
내 알아듣게 말을 하지.
자네가 나를 업어다가 이 개울을 건네 주기만 하면 그 삯으로 돈을 주겠다, 이 말일세.”
“그럼 진즉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요. 그래, 얼마를 주실 작정입니까?”
“엽전 반 푼이면 족하겠지마는 돈을 쪼갤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 큰맘 먹고 한 푼 줌세.”
이 인색한 양반, 제 집 돈궤에 돈이 썩어나는 치레로 보면
한두 냥쯤 거저 준대도 탈날 일 없으련만,
달랑 한 푼을 치면서 무슨 큰 선심이나 쓰듯이
반 푼이면 족하다느니 큰맘 먹었다느니 하는 건 또 무슨 수작이냐.
아니꼽고 더러워서 침이나 퉤퉤 뱉고 돌아설 만도 하다마는, 봉이 김선달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쓰다 달다 말 한 마디 없이 그 웃기는 양반을 들쳐업었네그려.
들쳐업고 가기는 간다마는 그 걸음이 온전할까.
아니나 다를까, 개울 한가운데 이르러 김선달이 걸음을 딱 멈추고서 슬슬 수작을 내어놓는구나.
“샌님, 안됐지만 여기서 내리셔야겠습니다.”
어허, 이런 낭패가 어디 있나. 벌건 흙탕물이 그득한 개울 한복판에서
잘 차려입은 양반더러 다짜고짜 내리라니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등에 업힌 양반 얼굴이 그만 하얗게 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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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사람아. 여기서 내리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지금 제 발밑에 큰 잉어가 한 마리 깔렸습니다. 이놈을 잡으려면 손을 써야 할 것인데,
사람을 업고서야 어찌 손을 쓰겠습니까?”
“아니, 그까짓 잉어가 무슨 대수야? 사람부터 업어 건네야 할 것 아닌가?”
“아니지요. 등에 업은 샌님은 한 푼짜리지만 발밑에 깔린 잉어는 줄잡아도 닷 냥짜리니
잉어가 대수지요.”
이쯤 되니 몸이 달고 속이 타는 건 양반 쪽이지.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서 내리라는 게 말이나 되나?
여기서 내리면 옷 적시는 건 둘째치고 자칫하면 흙탕물에 휩쓸려 황천 가게 생겼단 말일세.”
“그거야 소인이 알 바 아니지요.
소인은 그저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한 푼짜리 사람을 없어 건네려고 어찌 닷 냥짜리 잉어를 놓치겠습니까?”
이쯤 되면 제아무리 인색한 노랑이라도 흥정을 안 할 도리가 없으렷다.
“그래, 그래. 알았네. 내 돈을 더 낼 터이니 어서 가세.”
“얼마를 더 내시겠습니까?”
“두, 두 푼 냄세.”
“어허, 샌님도 셈을 할 줄 안다면야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래, 두 푼을 보고 닷 냥을 버리란 말씀입니까?”
“알았네, 알았어. 내 닷 푼 냄세.”
“닷 푼이라니요? 말귀를 그렇게나 못 알아들으십니까? 안 됩니다.”
“그, 그러면 내 큰맘 먹고 한 냥 냄세. 그러니 딴말 말고 어서 가세.”
“안 되지요. 한 냥을 받아도 엄청 손해 보는 겁니다.”
“아이고, 여보게. 그러지 말고 나 좀 살려 주게. 내 석 냥 낼 터이니
그놈의 잉얼랑 제발 잊어버리고 가세나.
내 이렇게 비네.”봉이 김선달이 그제야 못 이기는 체하고 발걸음을 옮기면서,
“어허, 오늘 참 손해가 많은걸. 닷 냥짜리 잉어를 놓아 주고
석 냥짜리 사람을 업고 가니 이런 오그랑장사가 또 어디에 있나.”
하더라는 이야기.
우리 나라 사람치고 봉이 김선달 이야기 한두 가지 안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봉이 김선달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의 이야기는 왜 그렇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나?
우리가 아는 바는 대개 이렇다.
김선달은 평양 출신 재주꾼으로 일찍이 벼슬하러 서울에 갔으나
서북차별과 세도정치의 벽 앞에서 좌절하고 스스로 건달이 되어
권력자와 부자를 곯려 주며 일생을 보냈다는 것이다.
김선달의 본이름이 김인홍이라는 이야기까지 전해지지만,
과연 그가 실존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본디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얼마든지 부풀려지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김선달과 비슷한 인물로 김삿갓, 정만서, 정수동, 방학중 같은 이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풍자와 해학에 능하다는 점이다.
보통 권세 있는 벼슬아치나 돈 많은 부자들이 풍자의 대상이 된다.
권세만 믿고 으스대는 양반, 백성을 속이고 등쳐먹는 수령, 지나치게 인색한 구두쇠,
겉으로 점잖은 체하며 속으로 호박씨 까는 위선자들은
누구든지 이들이 던지는 풍자의 칼날을 비껴가지 못한다.
권세에 억눌려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백성들은
이들의 별난 행적을 다룬 통쾌한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며 즐거워했다.
말하자면 김선달 형 이야기는 백성들의 고단한 삶에 한 모금 청량제와 같은 구실을 했던 것이다.
풍자에 해학이 곁들여지면 이야기는 한결 넉넉해진다.
풍자는 어느 경우에나 칼날을 숨기고 있어, 크건 작건 상대에게 생채기를 입히게 된다.
하지만 해학은 한바탕 시원한 웃음으로 그 생채기조차 어루만져 준다.
비록 상대가 우리를 다치게 하고 우리 것을 빼앗아갈지라도,
그저 한번 놀려주는 것으로 속을 풀자는 것이 해학의 참뜻이다.
이런 점에서 풍자와 해학은 ‘씻김굿’과도 같다.
맺힌 것이 있으면 풀고 막힌 것이 있으면 뚫자는 것이요,
상대를 쫓아내고 우리만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잘못을 일깨워 함께 잘 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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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다시 보자.
양반은 처음부터 신분과 재물을 무기 삼아 매우 불편한 거래를 텄다.
사람을 업어 건네는 노동력의 대가로 돈 한 푼이 정당한가를 따지기에 앞서,
멸시와 거드름으로 남의 인격과 자존심을 짓밟은 것은 용서하기 어렵다.
이 횡포에 대응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넘어가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슬쩍 비껴서 에돌아가는 길이다.
김선달은 물론 뒤의 길을 택했고, 보기 좋게 뜻한 바를 이뤘다.
애당초 거래를 튼 쪽이 양반이었으니,
김선달이 잉어를 핑계 삼아 도리어 가당찮은 돈을 우려내어도
양반으로서는 할 말이 별로 없게 됐다.
양반이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간 꼴이다.
이것이 풍자의 묘미다.
양반 처지에서는 억울하고 분하지만 대놓고 상대를 몰아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말 ‘제대로’ 당한 것이다.
속으로 뭔가 떨떠름하고 괘씸하지만
너털웃음 또는 쓴웃음 한 번으로 패배를 자인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정면 싸움’에 견주어 생채기는 크지 않지만 받아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이것이 바로 풍자의 효과다.
옛날 사람들은 이러한 풍자에 호탕한 웃음으로 버무린 해학을 곁들여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퍼뜨리며 스스로 아픔을 달래고 위안을 얻었다.
김선달 형 이야기가 온 백성들에게 사랑 받으며 끈질긴 전승력을 지니게 된 까닭이 이러하다.
풍자와 해학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불과 같다. 불은 불이되 겻불이다.
한꺼번에 화르르 타오르지 않고 은근히 온기를 내며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
불을 피운 사람의 마음은 물론, 건너편에 있는 상대의 마음까지도 녹인다.
그 서슬 퍼렇던 왕조 시대의 권력자들도 백성들의 풍자와 해학이 녹아든 이야기와 노래와 춤만은
너그러이 용납한 점이 이를 증명한다. 풍자의 칼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은근한 겻불마저 짓밟아 버릴 수는 없었을 게다.
이래저래 넉넉한 인심이 더욱 그리워지는 삼복 날이다.
하루는 봉이 김선달이
한 고을 주막의 남정네들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고을에 한 과부가 사는데 어떤 남자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복상사(腹上死)를 한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많은 선달은 그 즉시 집을 물어
그 과부가 산다는 집을 찾아갔다.
'이리 오너라' 하고 외치자
어여쁘게 생긴 아낙이 나오는 것이다.
'실례하오만 하루만 묵어갈 수 있을는지요'
이 아낙은 승낙을 하고 선달을 방으로 모시고 들어와서
술상까지 봐주는 것이 아닌가.
분위기도 무르익었겠다.
선달이 주막에서 들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요'
'그렇사옵니다'
'도저히 믿기질 않소'
'그럼 어찌해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내 직접 확인을 해보아도 되겠소'
'정 못 믿겠다면 하는 수 없지요
하오나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나도 사내 대장 부요!
허나 조건이 하나 있소'
'무엇인지요?'
'난 5분을 하고 1분을 쉬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도 되겠소?'
'그러시지요'
이렇게 해서 둘은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을 시작했다.
그런데 봉이 김선달은 말대로 5분이 지나자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1분이 지나서야 다시 들어와 일을 시작했고
다시 5분이 지나자 또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10여 차례가 지나자 아낙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가는 선달을 꽈악 움켜잡았다.
'나가지 마시와요'
'안됩니다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봉이 김선달의 목소리가 아닌 것이다.
아낙은 그제서야 촛불을 켰는데 역시 김선달이 아니었다.
'저 선달님은 어디 계시죠 ?
아낙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밖에서 표 팔아요!!'
초 친 녹두죽
김 선달이 한때 대동강 나루에서 녹두죽 장사를 했답니다.
나루를 끼고 돈벌이 하는 장사꾼을 상대로 녹두죽을 팔았는데,
그러다 보니 손님 가운데는 별별 사람이 다 있었나 봅니다.
한 사람은 시골에서 멧갓(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여 가꾸는 산)깨나 가지고 있는 산골 지주로,
나뭇짐을 내다 파는 길에 김 선달네 죽집에 가끔 들렀지요.
이를테면 죽을 먹을 때마다 꼭 한두 가지 트집을 잡고서야 먹었습니다.
자기는 옹근 죽를 청해 먹으면서 데리고 온 소작농군에게는 반 그릇짜리를 사 주었습니다.
김 선달이 이래저래 비위가 몹시 뒤틀려 있던 터라,
언젠가 한번 골려 주려고 벼르고 있었답니다.
김 선달의 비위를 상하게 하고서 무사한 사람은 아직 없지요.
그러던 차에 하루는 이 시골 양반이 소작인을 몇 거느리고 김 선달네 죽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문간에 들어서면서부터 비위를 슬슬 건드렸습니다.
다른 손님들 같으면 '죽이나 한 그릇 사 먹고 갈까. 녹두죽은 이 집 것이 제일 맛있더라.' 할 것인데
이 양반은, "죽이나 몇 그릇 팔아 주고 갈까.
녹두죽 맛이야 신통치 않지만 인정을 봐서 팔아 줘야지.
거 죽그릇 좀 후하게 뜨게나. 단골 손님을 몰라봐서야 쓰나."
하고 거드름이 상투 끝까지 올랐습니다.
김 선달은 "예, 예." 하면서 부엌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은근슬쩍 눈짓을 보냈지요.
부엌에는 한 사나흘 전에 팔다 남은 쉰 죽이 한 그릇 있었습니다.
이걸 그 양반에게 팔아먹을 작정으로 김 선달은 일부러 시골 지주 들으라고
부엌에다 대고 크게 소리를 쳐,
"단골 손님 오셨소. 죽그릇 좀 후하게 뜨오. 아직 초맛은 모르실테니 초는 치지 마오."
시골 양반이 들으니 괘씸하거든요.
녹두죽에 초 친다는 말은 처음 들었지만, '아직 초맛을 모르고' 어쩌고 하는 걸 보니
분명히 자기를 얕잡아보고 그러는 것 같단 말이죠.
"거 왜 내 죽에는 초를 치지 말라는 건가? 다른 손님 입만 입이고 내 입은 입도 아니란 말인가?"
발끈 성을 내어 쏘아붙이니 김 선달이 속으로 일이 잘 되어 간다고 웃으면서도 겉으로 무안한 척,
"녹두죽에 초를 쳐 드시는 것은 지체 높은 서울 양반님네 식성이라서~~."
하고 얼버무렸습니다.
시골 양반이 듣자하니 더욱 괘씸해서,
"사람을 업신여기는군. 나라고 초 맛을 모를까. 어서 쳐 올리게." 올커니!
"예, 예. 그럽지요. 여보, 시골 양반님 죽그릇에 초를 한 방울만 쳐 올리오.
서울 양반님네 죽그릇처럼 듬뿍 치지 말고."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왜 내게는 초를 한 방울만 치라는 겐가?"
"아무래도 식성에 맞지 않으실 듯하여."
"잔소리 말고 듬뿍 치라 하게. 내가 시골 살아도 입맛이야 서울 사람만 못할 게 뭔가."
"몰라뵈었습니다. 여보, 시골 양반님 죽그릇에 초를 듬뿍 쳐서 올리오."
김 선달은 겉으로 굽신굽신 하면서 속으로는 신바람이 날 수밖에요.
드디어 쉰 죽사발이 나왔습니다. 시골 양반이 한 술 떠 보니 얼마나 신지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습니다.
쉰 죽을 데워 놨으니 실 수밖에요.
그래도 지체 높은 서울 양반들 입맛을 따라가려먼 이쯤은 참아야지.
입은 실룩실룩 해가며 억지로 죽을 떠 넣습니다.
"초맛을 아시는 걸 보니 역시 지체 높으신 분은 다르군요."
김 선달은 이렇게 능청을 떨고 시골 양반은 쉰 죽 한 사발을 말끔히 비우고 나서,
"역시 녹두죽은 초를 듬뿍 쳐야 제맛이 나는군." 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저 양반 배탈은 안 나려나 궁금하네요
ㅎㅎㅎ
이상 풍자와 해학이었습니다.
유명한 일화로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재밌는 얘기가 있다.
김선달이 대동강가 나눗터에서 사대부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물장수를 만났을 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물장수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얼큰하게 한잔을 사면서
내일부터 물을 지고 갈때마다 내게 한닢씩 던져주게나
하면서 동전 몇닢씩을 물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 의관을 정제하고 평양성 동문을 지나는 길목에서
의젓하게 앉아서 물장수들이 던져주는 엽전을
헛기침을 하면서 점쟎게 받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모든 사람들이 수곤대며 살피고 있었다.
이때 옆전을 내지 못한 물장수가 선달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이를 본 한양인들은 대동강물이 선달 것인데
물장수들이 물값을 내지 못하게 되자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여
내일부터는 밀린 물 값까지 다 지불하여야 한다고
엽전준비에 야단이었다.
이를 참다 못한 한양상인들은 어수룩한 노인네 하나
다루지 못할 것인가 하면서 장수꾼들이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꼬득여 주막으로 모시게 된다.
술잔이 오가고 물의 흥정이 시작되었다.
선달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것이므로 조상님께 면목이 없어
못팔겠다고 버티면서 이를 물려줄 자식이 없음을 한탄까지 하였다.
한양상인들은 집요하게 흥정을 했다.
거래금액은 처음에는 1천냥이었다. 2천냥, 4천냥으로 올라가
결국 4천냥에 낙찰되었다.
당시 황소 60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당시의 매매계약서는
다음과 같다.
품 명: 대동강(대동강)
소유자 봉이 김선달
상기한 대동강을 소유자와의 정식 합의하에
금년 5월 16일자를 기해 인수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천하에게 밝히는 바이다.
인수자- 한양 허풍선
인수금액-일금 4천냥
인도자 - 김선달
선달은 못내 도장 찍기를 서운한 듯 도장 찍기를 주저한다.
그러자 상인들은 졸라대기 시작하여 결국 계약이 체결된다.
선달은 재산은 모으지 못했다고 한다.
워낙 풍류와 시를 좋아하고 어려운 서민을 보면
양반들을 골탕먹이고 뺏은 돈을 서민에게 나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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