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적 성취와 개인적 불안
-영화 <로스트 도터>와 <베르히만 아일랜드>-
1.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은 이제 보편적인 상황이 되었다. 과거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수많은 분야들에 여성들이 진입하여 특별한 성취를 보이고 있다. 직업적 의미에서 성차별은 이제 해서는 안 되는 불문율로 정착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유리 천장’이라 명명되는 미묘한 장벽이 그들을 억압하고 있으며, 사회적 조건 속에서 여전히 차별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사회적 영역의 중심으로 들어선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행동과 가치 에 대한 압박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보게 된 두 영화 <로스트 도터>와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여성들의 사회적 욕망과 심리적 불안을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2. <로스트 도터>는 학문적 성공을 위하여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끔찍한 짐으로 여겼던 대학교수의 회한과 고통이 휴양지에서 우연하게 보게 된 어린아이의 실종 사건을 통하여 재현된다.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영화감독인 커플이 새로운 작품의 영감을 위해 방문한 스웨덴의 명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고향 섬에서 겪게 되는 여성 감독의 불안이 그려진다. <로스트 도터>에서 여교수의 갈등은 양육과 학문 사이의 부조화이다. 학문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공부에 집중해야 하고 다른 교수들과의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의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들의 존재는 때론 끔찍하게까지 여겨지는 것이다. 결국 교수는 아이들을 버리고 가출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히는 트라우마로 남아있게 된다. <베르히만 아일랜드>의 여감독은 새로운 시나리오에 집중하기 어렵다. 작품 속 작품으로 표현된 그녀의 시나리오의 여주인공 또한 오랜 연인과 우연하게 새롭게 만나 다시 만남을 시작하고 쉽지만 그녀의 아이가 그들 사이를 가깝게 하는 것을 방해한다.
3. 그녀들을 괴롭히는 것은 미묘하지만 실질적인 불안으로 나타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생기면 양육의 책임은 우선 여성에게 주어진다. 사소한 일을 할 때에도 여성들이 책임져야 할 것은 명확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부담으로 작용한다. 비록 똑같은 전문적인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것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에서는 차이가 있다. 그런 불안과 불만이 영화 속에서는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이 원하는 위로와 연대의 감정이 남성들에게 무시되고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을 때의 안타까움도 여성들의 시선을 통하여 표현된다. 전통적인 여성의 일을 넘어선 여성들이 겪게 되는 불안과 고통이 여성 감독의 공감을 통하여 재현되는 것이다.
4.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쓰기 쉽지 않다. 영화가 주는 강렬한 느낌이 솟아올라야 짧은 글이라도 자연스럽게 기록할 수 있지만, 여성주의가 보여주는 영화는 이해되지만 설득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자연적, 사회적 조건의 한계일 수도 있다. 여성들이 자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할 수 있는 행위가 다양한 조건에 의해 한계를 체감하고 사회의 부정적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겪는 불안의 묘사는 다른 고통과 비교할 때 대단히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든 자신의 자유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을 때 세계의 어떤 변화와도 상관없이 그것은 심각한 고통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름 성공한 여성들의 실존적 고민일 수도 있다.
5. 하지만 이들의 고민은 사회적인 성취를 이뤄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자유의 결핍이다. 자유를 누리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결핍의 예민함이다. 지금은 아직도 ‘자유’ 그 자체의 가치도, 의미도 모른 채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는 수많은 존재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말할 수 없는 자’들의 고통을 더 파헤쳐야 할 시점이다. 어쩌면 ‘배부른 고민’이라는 비아냥을 동반할 수 있는 불안과 고통의 모습은 진짜 파괴적이고 실질적인 고통과 불안의 영역을 망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인간은 동질적인 상황에 쉽게 동조한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은 당연히 이런 성공적인 여성들이 겪게 되는 불안과 차별에 주목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더 큰 고통은 은폐되고 침묵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6.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작은 고통에 주목하는 것이 큰 고통에 대한 참여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감각과 인식은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여성 감독이 만든 두 영화는 여성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하였거나 성공하기를 꿈꾸는 여성들이 만나게 되는 사회적 장벽과 불안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분명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위는 진짜 중요하고 필요한 것에 대한 망각을 초래할 것이다. 여성주의 영화 뿐 아니라 특정 집단의 고통을 과도하게 묘사하는 작품들에 대한 불편함은 특정함을 통해 보편적인 고통의 세계를 인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함이 보편성을 대표하는 오만함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마치 ‘개를 보호하는 것’이 생명과 동물에 대한 존중을 대표한다고 포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첫댓글 - 자연 생태계 속의 인간,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인간만의 불평(?), 아니 인간만의 저항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