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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우영 작가방 원문보기 글쓴이: 나은 길벗
내 사랑 아라리요
양 창 국(소설가. 서울 지구문학회 회장)
1.
영감은 할멈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가역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치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
나는 온동 마을 촌장으로부터 ‘11월 10일 ~11일간 강원도 정선에서 열리는 2006 도원문학축제에 참석합시다.’ 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온동 마을은 대전지역에 거주하는 문인들의 친목모임으로 회원은 20여 명이다. 시를 쓰며 대전공업단지에 자리한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 홍보부서에 다니는 나는 2년 전에 수필가인 촌장의 권유로 온동 마을에 가입하였으나 회사 일에 쫓겨 1년에 두세 번 얼굴을 내미는 농땡이 회원이다.
정선 아리랑의 구슬픈 가락을 떠올리며 강원도의 가을 경치가 보고 싶어 도원문학축제에 가겠다며 휴가원을 내자 내 직속상사인 홍보부장은 이왕 정선까지 가는 김에 문학축제를 마치고 동해안까지 들려 강원도의 가을 풍치를 담아오라며 휴가 대신 출장처리를 해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축제 후에 동해안까지 들려야 하는 나는 자동차를 몰고 가려하였으나, 낙천적인 촌장이 이왕 온동 마을 절반이 정선으로 옮겨가니 동해안 가는 것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다 같이 기차를 타고 가자고 제의하여 나는 그의 뜻을 따랐다.
오전 10시 대전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소풍여행을 시작한 우리들은 제천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증산에서 빨간색 단청을 한 기관차 일 량이 파란색 띠를 두른 객차 일 량을 끌고 가는 아리랑 유람열차로 갈아탔다. 열차를 타고 승무원에게 현금으로 요금을 내며 시내버스를 타는 것 같아 신기했다.
카페식으로 내부를 꾸민 유람열차는 의자를 아예 창밖을 향해 배치해 바로 차창을 통해 바뀌는 경관을 볼 수가 있다.
관광 철이 지나서인지 열차 승객은 온동 마을 일행과 행사에 참석하는 문인 몇 분, 지역 노인과 아낙 몇 사람이 전부였다. 서로 안면이 있는 문인들이 짝을 지어 정담을 나누고, 아낙과 노인들이 왁자지껄 인사를 나누며 열차 속을 달궜다.
정선 아리랑 가락이 은은히 꼬마열차 안을 적셨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일행과 거리를 두고 한가한 마음으로 창밖을 보고 앉아있는 내 옆 빈자리에 지난여름 온동 마을 모임에서 처음 만난 30대의 여회원이 앉았다. 나는 그때 몇 사람 건너 앉아있는 그녀의 갸름한 얼굴과 쌍까풀 진 눈매에 끌려 그녀와 사귈 수 없을 까 하며 힐끔거렸었으나 모임이 끝난 후 그녀가 유부녀일 것 같아 더 이상 그녀를 쫓지 않아 그녀의 이름도 몰랐다.
“안녕하세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며 형식적인 인사를 하였다. 그녀의 얼굴이 화사했다.
“조 과장님이 안 나오시니 모임이 재미없었어요.”
그녀가 투정을 부리는 투로 말했다.
그녀는 내 이름과 직장을 알고 있다!
“아주 경치가 끝내주지요? 정말 오기 잘했어요.”
나는 그녀의 이름도 모르는데 그녀가 내 신상을 아는 것 같아 당황하며 경치를 핑계대고 말머리를 돌렸다.
“예. 정말 멋있어요. 더구나 조 과장님하고 이렇게 같이 가니.”
“좋은 경관 보시니 남편 생각도 나시고 아들 생각도 나시어 저한테 빗대어 말하시는 거지요?”
“조과장님이 부인 생각나시는 모양이지요. 아들 생각도 나고.”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삐지는 시늉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다.
“어, 저 홀몸인데 장가도 못 가게 부인 아들 타령이십니까?”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조 과장님은 저 시집도 못 가게 남편 아들 타령하시면서?”
그녀가 눈을 흘기며 앙탈이다.
“아……, 그럼….”
나는 쩔쩔맸다.
“그렇게 저한테 관심이 없으셨어요?”
“잘들 논다. 끼어들다 뺨 맞겠다.”
여류 시인 매헌님이 큰 몸집을 흔들며 내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그녀가 매헌을 향하여 눈을 찡긋했다.
“과장님 회사도 구경했고, 시도 암송하는데.”
“미안합니다. 제가 워낙 무뎌서.”
“그러시니 사십이 다 되도록 노총각이시지요.”
“그렇게 됐네요. 주위에 이렇게 미인이 있는데 몰라보고.”
“정말 제가 예쁘게 보여요? 몇 번 신호를 보내도 모른 척하시던데…….”
몇 번 만났다고?
“제가 그랬어요?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저 산줄기 단풍 정말 멋있지요?”
나는 고개를 숙여 사과의 뜻을 전하며 화제를 돌려 그녀의 예봉을 피했다.
“네. 시가 절로 나올 것 같아요.”
협곡을 누비며 달리던 유람열차는 다리를 건너고, 터널을 지나고, 잠시 개활지를 보여주다가 또 협곡으로 들어서고, 다시 터널로 들어갔다. 정선아리랑 가락,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 덜커덩 덜커덩 바퀴 구르는 소리,……, 주변 경관에 취하며 나와 그녀는 서로 툭툭 치고 떠들며 정선역까지 갔다.
바람은 불수록 점점 추워져가고
정든님은 볼수록 정만 더 드네
행사장인 아라리 촌 입구에서 택시를 내리자 아담한 한옥 정문이 보였다.
무료입장이라는 안내문을 보며 정문을 들어서자 오른편에 기와집이 보이고, 왼편에 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이 우리를 맞았다. 여장군의 키가 대장군의 키보다 크다.
기와집에 들어서자 양반이 엎드려서 울고 아내가 팔짱을 끼고 남편을 나무라는 실물 크기의 동상이 마당 한편에 서있다.
200년을 넘은 소나무 널판으로 지은 너와집, 나무로 이어 지은 귀틀집,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은 굴피집, 대마 줄기로 이엉을 인 저릅집, 물레방아, 연자방아……,
만여 평의 부지위에 옛것들이 널려있다.
박지원의 풍자소설 양반전의 주요장면을 형상화한 구리 조각상들이 길 모퉁이에서 우리를 맞으며 촌 안을 구경하는 재미를 더했다.
정선 아리랑 가락이 촌내를 덮었다. 정선 깊은 산골짜기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반주하여 동동주 생각이 절로 났다.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 한번 오세요.
검은 산 물밑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중앙 광장에 가설한 무대 앞쪽에는 관객용 흰 의자가 줄을 지어 놓여있고, 무대 뒤편에 일렬로 배열한 책상위에 전국 각지에서 행사에 참석하러 온 문인들의 이름표가 죽 놓여있다.
산골의 해는 빨리 졌다. 겨우 오후 네 시인데 11월의 해가 서산에 걸려 추위에 떨고 있다.
민속공예단원 열 분이 막대기로 항아리 반대기를 치며 박자를 맞추며 정선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는 것으로 도원축제의 막이 올랐다. 그들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정선아리랑이 좋아 아리랑을 부른단다. 60대의 아낙이 선창을 하고, 50대의 아낙이 가락을 받았다. 그들의 신명이 하늘에 닿았다.
내가 내 이름표 뒤의 의자에 앉자 매헌이 다가와 “청춘남녀가 나란히 앉아야 보기 좋지.” 하며 저쪽에 놓여있던 시인 박민정이라는 명패를 내 옆자리에 놓았다.
목에 털이 달린 잠바를 입은 그녀가 내 옆자리로 왔다.
“이거 박민정 시인하고 나란히 앉아 사인회를 하게 되다니요!”
나는 이름표를 보고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고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같이 능청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반겼다.
“저도 시인 조남수님과 나란히 앉아 영광이네요.”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실내에서 행사를 할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양복만 입고 온 나는 옷 틈새로 파고드는 찬바람에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추워 보이시는데 오뎅 국물 가져다 드릴까요?”
그녀가 자리에 일어섰다.
“아 됐어요. 제가 가져올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어떻게 조 과장님이.”
그녀는 나를 주저앉혔다.
그녀는 행사장 옆 자리에 오늘 행사를 위해 마련한 임시 취사장으로 가서 폴리에스텔 주발에 뜨거운 오뎅 국물을 가득 담아 왔다. 플라스틱 수저 두 개도 가져왔다. 나는 뜨거운 국물을 목으로 넘기고서야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녀의 여성다운 자상함이 내 맘을 푹 적셨다.
민속공연이 끝나자 사회자는 펜 사인회의 시작을 알렸다.
무대 앞좌석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줄지어 앉아있는 작가들에게 우르르 다가왔다.
나는 내 앞에 서는 학생의 이름을 묻고 간지에 학생의 이름과 날짜를 쓰고 바로 서명을 해줬다. 금방 미리 준비해온 열권 시집이 날아갔다.
그녀는 다가서는 학생에게 “시를 좋아하세요? 시를 읽고 쓰시면 마음이 고와져요. 사는 것도 풍부해지고.” 하며 따뜻한 말을 건네고, 간지 빈 공간에 빼꼭히 마음을 담아 글귀를 적어주고 그녀의 이름을 정성들여 사인해줬다.
더 이상 사인할 책이 없어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가 사인하는 것을 건너다보며 그녀의 세심하고 자상한 마음씀씀이에 감탄하며, 그녀가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마음씨까지 아름다운 것을 확인하며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40년이 다 되도록 혼자 살아온 내 앞에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났다.
왜 생겼나 왜생겼나 네가 왜 생겼나
남의 눈에 꽃이 되도록 네가 왜 생겼나
추위에 떨며 해가 꼴깍 넘어간 뒤에야 공식행사가 끝났다. 사회자의 안내를 따라 주막으로 갔다.
바람막이 커튼이 외부공기를 차단하며 한기를 막았으나, 시원치 않은 난로불이 방안의 공기를 데우지 못했다. 나는 가열이 덜된 전기장판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며 데워진 골을 따라 엉덩이를 옮기며 얼어붙은 몸을 녹이려 하였다.
식탁에는 열 가지도 넘는 산채 나물이 깔끔하고 정갈하게 차려져있었다.
나는 정선의 별미라는 곤드레 나물밥을 주문하며 주막에 왜 막걸리가 없냐고 칭얼댔다. 주최 측은 지금 막걸리를 마시면 3부 행사에 지장이 있으니 3부 행사 후에 술을 들자고 했다.
큰 사발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쌀밥에 곤드레 나물이 섞인 곤드레 나물밥이 나왔다. 양념간장을 쳐서 먹던지 된 간장을 쳐서 먹으란다.
나는 양념간장도 쳐서 먹고, 된 간장도 쳐서 먹었다. 나물밥이 입안에서 스르르 녹았다. 나물밥의 감칠맛에 막걸리를 내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가셨다.
나는 문가에 앉아 있고 그녀는 안쪽에 앉아 있어 눈빛만 몇 번 아쉽게 보냈다.
뒤풀이 3부 행사는 아라리 촌에 연해있는 여성회관에서 열렸다.
민속악단의 정선 아리랑 공연에 이어 전국에서 모인 문인들의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부산에서 온 시인이 하모니카 솜씨를 뽐내고, 대전에서 온 수필가가 대금을 연주하고, 강릉에서 온 시인이 청아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고, 수원에서 온 시인은 기타반주에 맞춰 7080 세대 노래를 부르고,…….
박민정은 수줍은 몸짓으로 자작시를 낭송했다.
“우리는 항상 함께 있다. 박민정. 우리는 되새길 추억이 없는데, 너의 영상이 항상 내 곁에 있다.”
허공에 머물던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고, 마주 보고 좋아한다고 정을 보낼 수는 더더욱 없었는데, 너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항상 내 귓가에 맴돌고, 너의 맑은 눈빛이 내 가슴속을 채웠다. 애뜻한 사랑이 감싼 공간에서 항상 너를 느끼며, 인연의 고리에 매달리며, 손닿는 곳에 있으나 멀리 있는 너를 기다리며, 항상 너와 함께 있다.”
그녀는 자작시를 낭송하며 나를 향해 막혔던 그녀의 마음을 품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에 열기가 오르고 얼굴이 뜨거워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내 얼굴은 식혀줬으나, 정염을 식혀줄 수는 없었다.
3부 순서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주막으로 자리를 옮겨 동동주를 비우고, 소주를 안주삼아 정선 골짜기에서 채취한 산나물의 향취를 즐겼다.
마주보고 앉은 그녀와 나는 술기운에 젖어가는 도수에 따라 사랑의 도수도 올라갔다. 손을 뻗어 닿을 거리였으면 손과 손으로 얼굴과 얼굴로 사랑의 전류를 주고받았을 것을!
11시가 훨씬 넘어 잠자리가 배정됐다. 방이 여러 개인 기와집은 온동 마을 차지였다.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차가운 밤바람을 거스르며 숙소로 갔다.
“멋있는 밤이지요?”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런 밤은 밤을 새우며 만리성을 쌓아야하는데.”
“하늘에 별이 없어요. 맑은 하늘이면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을 텐데….”
하늘이 캄캄했다. 일기예보대로 비가 오려나보다.
“하늘엔 별이 없지만 저는 알퐁스 도태의 별을 찾았는데요.”
술에 취한 내 가슴속에서 사랑의 밀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럼 별을 안고 주무실 수 있겠네요.”
“그런데 별이 다가올 것 같지 않아요.”
“잠이 들면 별이 살포시 가슴으로 내려와 안길 거예요.”
“정말이겠죠?”
기와집 문에 들어서며 촌장이 “여자 분들은 안방을 써요.”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그녀의 답을 듣지 못했다. 촌장은 나와 같이 문간방을 쓰자고 했다.
여자들이 떠들며 안채로 들어가고, 나는 더 이상 그녀와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촌장은 남은 술을 마저 비우러 주막에 가자고 하였으나 나는 혹시 그녀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있을 수 없는 기대에 목을 매며 방을 지켰다.
미닫이 장위에 잘 개어서 포개놓은 요를 내려 바닥에 깔자 요 두 장이 방바닥을 온통 덮었다.
기와집에 하나 뿐인 공동 화장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려 간단히 씻고 방에 들어와 이불 속에 들어가니 온돌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왔다. 나는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안채에서 나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기와지붕을 흔들었다. 그 속에 그녀의 목소리도 있었다. 나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잠을 못 이루는데 그녀는 나를 잊고 웃고 떠드는 것 같아 그녀가 미워지려 하였다.
문틈으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한겨울에 자리끼를 방 윗목에 놓고 자면 자리끼가 팅팅 얼었었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 어머니는 내가 늦게 찾은 별도 못 보시고 차가운 땅 속에 계시다.
안채가 조용해졌다. 그녀도 잠이 들었나?
나는 안채를 바라보고 누워 그녀도 나를 가슴에 안고 잠들 것이라고 상상하며, 그녀를 내 품에 폭 안고 온돌에서 전해오는 따뜻한 온기를 즐기며 잠에 빠졌다.
2.
나는 창밖에서 터지는 웃음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기지개를 켜며 시계를 보니 7시가 넘었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마당으로 나갔다. 온동 마을 식구들이 아침 공기를 마시며 재잘대고 있었다.
나는 무리를 향하여 “잘 주무셨어요?” 하고 몰아서 인사를 하였다.
잠결에 들은 후두둑 소리가 비오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마당은 축축하고 하늘은 더 없이 맑았다. 나는 정선의 아침 공기를 다 삼키려는 듯 허파 가득히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여 마셨다.
“잘 주무셨어요?”
무리 중에서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단풍이 물든 산을 배경으로 밝게 웃는 그녀가 너무 청순하여 눈이 시렸다.
“민정씨도 잘 주무셨어요?”
나도 모르게 인사에 정이 가득 담겨졌다.
“지금까지 주무신 거요?”
그녀가 사근사근 말했다.
“네. 별을 안고 별을 꿈꾸며 잤어요.”
어제 헤어지며 나눈 말이 떠올랐는지 그녀의 귓불이 빨개졌다. 나는 그녀의 볼을 꼭 찔러 주고 싶은 충동을 팔을 휘둘러 맨손체조를 하며 잠재웠다.
“여기 양반전 모형들 다 보셨어요?”
그녀가 물었다.
“대강.”
“그럼 아직 아침 먹을 때까지 시간 있는데 찬찬히 볼래요?”
그녀가 앞장을 서며 자연스럽게 두 사람만의 데이트를 유도했다.
“이 동상은 양반이 천량 빚을 지고 고민하는 장면인데 양반이 마누라한테 꾸지람을 들어요. 옛날에 양반 마누라가 양반에게 큰소리 칠 수 있었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돈 같이 써놓고 왜 남편을 나무라죠?”
“남자가 바람피운 모양이지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쾌청한 공기를 가로지르며 촌내에 늘어선 동상을 돌아보며 안내문을 읽고 코멘트 하며 이른 아침 데이트로 사랑을 키웠다.
가는 허리 고운 맵시는 눈에도 삼삼하고요
정든님 음성 자취는 귀에도 쟁쟁하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9시를 지나 주최 측에서 마련한 아라리요 관광버스를 타고 관광에 나섰다.
매헌님이 먼저 버스에 올라 민정의 옆자리에 앉으며, “내가 여기 앉아 밉지요?” 하고 나에게 농담을 던졌다.
동승한 문화해설사가 정선 역사를 시작으로 정선 아리랑 유래를 설명했다.
“정선 아리랑은 고려가 망한 후 송도에 은신하던 선비 중 일곱 명이 이곳으로 은거지를 옮겨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산나물로 주식을 삼고 한시로 그들의 비통한 심정을 담아 한시를 지어 율창으로 부르곤 하던 것을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소리 가락에 실려 불렀으며 그것이 정선 아리랑의 시작입니다.………, 1971년 강원도 무형 문화재 1호로 지적되어 체계적인 전승과 보존으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으며, 어제 보신 공연은 아마추어 분들의 솜씨였으며 정선 5일장에 오시면 정선아리랑 창극을 보실 수 있으며 정선을 좀 더 아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정선장은 2, 7일이니 꼭 다시 들려주세요.”
해설사는 우리를 나전역으로 데려갔다. 나전역은 역사만 덩그렇게 서있고 매표원도 승무원도 없는 무인역이다. 하루 왕복 세 차례 정선 아리랑 열차가 오가며 옛 추억과 낭만을 실어 나른다.
나는 역사를 나서 플랫폼으로 걸어가며 역 입구에 서있는 민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환한 웃음으로 답해줬고, 그녀 옆에 서있는 매헌 선생이 손을 흔들었다.
내가 역사 안벽에 써있는 ‘뽀찌 ♡ 우찌’ 낙서를 보고 있을 때 그녀가 내 곁에 다가왔다.
“나는 뽀찌, 민정씨는 우찌.”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이 장난꾸러기.”
그녀가 내 팔을 툭 치고 저만치 달아났다.
이리 오게나 저리 오게나 내 옆으로 오게
수삼 년 그립던 손목을 다시 잡아보자
해설사는 우리를 아우라지역으로 안내하며 천연기념물 259호인 어름치의 산란할 때 모습을 본 따 만든 카페가 구경거리라고 설명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열차 객실을 집어삼킨 어름치 두 마리가 비스듬히 서있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일행은 어름치 모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나는 사진을 찍자는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어름치 옆구리에 뚫린 문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패스트푸드점이 보였다. 나는 인테리어가 잘 된 객차 안을 둘러보며 프랜치 프라이 1인분을 주문했다. 두량의 객차를 이어놓은 카페 내부를 구경하고 돌아오자 프랜치 프라이가 나왔다. 나는 따뜻한 봉지를 들고 다음 칸 객차의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봤다.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그녀가 뒷문으로 들어왔다.
“사진 안 찍으셨어요?”
그녀가 내 앞에 앉으며 말했다.
“민정씨 주려고 이것 주문하느라…. 오늘 빼빼로 데인데 빼빼로 대신.”
나는 산줄기를 뒤덮은 단풍을 쳐다보며 어물거렸다.
“빼빼로? 아! 오늘이 11월 11일이네. 1이 네 개라 아주 좋은날이네요.”
“그래서 우리 이렇게 같이 있잖아요.”
“오늘 우리랑 바로 대전 안 가신다면서요?”
“네. 태백으로 무릉계곡으로 가을 경치를 더 보고 갈 계획입니다. 내일 일요일인데 저랑 같이 가실래요?”
“차도 없으신데.”
“마침 민예총에서 제가 기름 값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승용차를 하루 빌려줬어요. 내일 점심때까지만 돌려주면 되요.”
“멋지다. 같이 갔으면……, 집안 일 때문에 오늘 꼭 대전 가야해요.”
“넘 아쉬운데 이제 한곳만 더 보면 오늘 일정이 끝나는 것 같은데 안본 곳이 너무 많아요. 레일바이크도 타보고 싶고, 화암동굴도 가보고 싶고, 5일장도 민속 공연도 보고 싶고, 곤드레 나물밥은 맛봤으니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황기 백숙도 맛보고 싶고……, 오늘은 이렇게 헤어지지만 우리 다시 한 번 같이 와요.”
“정말요?”
그녀의 눈이 커졌다.
“내가 5일장 맞춰서 연락할게요. 그때는 제가 운전할게요.”
“좋아요. 식기 전에 꼭 연락해요.”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반듯이 들며 오른 손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손도장을 찍었다.
“아니 여기서 데이트해? 곧 버스 떠나.”
매헌이 다가와서 프랜치 프라이가 든 봉지를 나꿔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매헌의 애교를 환한 눈으로 전송하며 눈에서 눈으로 사랑을 주고받았다.
아우라지를 들리려든 당초계획을 변경하여 옥산정 돌과 이야기 수석전시장에 들렸다. 사는 것이 힘들고 고단할 때마다 아우라지에 나가 돌들을 주워 모아 별도로 집 한 채를 지어 수석을 전시한 인생을 달관한 전옥매 할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수석을 감상했다. 쥐, 소, 호랑이,……, 돼지, 12간지(干支) 형상의 수석을 보며 감탄을 하다가, 예수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님을 보며 탄식을 했다. 나는 저만치 앉아서 수석을 관상하는 그녀의 손을 마음속으로 꼭 잡고 하루도 다가기 전에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을 하늘에 감사하며 남녀 상열의 무늬가 새겨진 수석을 애정이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관광을 마치고 식당으로 가는 길에 도로변에 위치한 난향로원에 잠시 버스가 멈춰 섰다.
성인의 몸체만한 크기의 귀두를 들어낸 남근이 받침대 위에 놓여있고, 그 위쪽에 음부를 상징하는 구멍이 뚫린 손녀 바위와 할머니 바위가 놓여있다. 여시인이 귀두에 뺨을 대고, 수필가는 할머니 자궁에 팔뚝을 집어넣을 듯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해설사는 그런 자세를 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익살을 부렸다. 그녀와 나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눈을 끔벅하며 익살스런 미소를 주고받았다.
주막에서 반주를 곁들여 점심을 들며 문인들은 못다 푼 회포를 나누며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불렀다. 손수 운전을 해야 하는 나는 목에서 당기는 동동주를 멀리하고 묵묵히 식사를 했다. 그녀와 헤어져야하는 아쉬움이 커갔다.
식사를 마친 후 기차로 떠날 문인들을 태운 버스는 정선역을 향하여 떠나고, 나는 그녀와 다정한 작별인사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도매금으로 대전에서 다시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녀와의 짧은 이별이 아쉬워 그녀를 태운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그녀와 다음 5일장에 정선에 올 때는 어떤 관계로까지 발전하여 올 것인가 아름다운 상상을 하였다.
오늘 갔다가 내일 온다면 나는 안 따라 가지만
오늘 갔다가 모레 온다면 나는 따라가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