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Dubai)는 아라비아 반도 동쪽의 아랍에미리트연방(United Arab Emirates)을 구성하는 7개 토후국(土侯國)중의 하나이며, 아부다비에 이어 제2의 규모를 가진 도시로 제주도의 두 배 정도 크기이다. 두바이는 자유무역과 석유 생산을 중심으로 중동 전체의 경제중심 도시로 부상하였으며, 기적 같은 도시건축과 부동산개발로 알려져 있다. 2010년 1월 세계 최고 높이의 건축물로 등극한 162층 828m의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를 비롯해, 가장 호사스러운 최고급 호텔 부르즈 알 아랍(Burj al-Arab), 야자나무 모양을 본 뜬 인공섬으로 유명한 팜 주메이라(Palm Jumeirah) 등은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이 도시의 상징들이다. 사실 이 도시를 한 번이라도 실제 방문해 본 사람들이라면, 고층건물들의 경연장 같은 도시경관에도 놀라겠지만 원래 사막이었던 도시의 상당부가 야자수와 잔디, 각종 화훼류까지 녹화(綠化)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게 된다. 두바이는 1967년부터 석유를 생산했지만 매장량이 적어 지도자인 셰이크 모하메드의 국토개조계획에 따라 1995년 이후 70Km에 불과한 해안선을 1500Km까지 급속히 확장시켜 왔고, 꽃과 식물류 무역의 허브도시로도 성장하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세계 경제위기와 함께 두바이의 도시개발도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두바이의 쥬메이라 모스크(Jumeirah Mosque)로 아랍에미레이트의
대형 무슬림 회당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비잔틴양식으로 1978년 완공되었다.
부르즈 알 아랍(Burj Al Ara)은 1999년 문을 연 호텔로 총 38개층, 높이 321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텔이다.
페르시아만 해안에서 280m 떨어진 인공섬 위에 아라비아 전통목선인 다우(dhow)의
돛모양을 형상으로 건설되었다.
두바이 지하철은 아랍반도(Arabian Peninsula)에 건설된 최초의 도시철도 네트워크이다. 또한 ‘무인 완전자동 지하철’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지하철이라는 새 역사도 기록하고 있다. 2009년 9월 9일 9시 9분 9초에 영업개시 기념식을 가진 후, 첫 노선인 레드(red)라인의 대다수 역사가 운영되고 있으며, 두 번째 노선인 그린(green)라인은 2010년 10월 12일 시험운영에 들어가 2012년 완전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3개의 추가 노선이 계획 중에 있다. 두바이 지하철은 총 연장 52.1km의 레드라인 11개 역사를 오픈한 후 5개월간 천만 명의 탑승객 수송을 기록하였다. 앞으로 17.6km에 이르는 그린라인이 완전 개통되면, 두바이 지하철은 세계에서 완전자동으로 운행되는 가장 긴 지하철네트워크라는 타이틀을 밴쿠버 스카이트레인(Vancouver Sky Train)으로부터 확고히 물려받을 것이다. 두 개의 노선은 도시 중심에서는 지하로 건설되고, 중심부를 벗어난 곳에서는 대체로 고가구조로 건설된다. 레드라인의 예를 살펴보면, 25개의 고가역사와 4개의 지하역사, 2개의 차량기지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열차와 역은 스크린도어 설비와 함께 냉방공조시스템을 도입해 뜨거운 바깥과는 대조적으로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두바이 지하철의 운영은 두바이 도로교통국(Dubai Roads & Transport Authority)의 관리 하에 셀코(Serco)가 담당하고 있으며, 두바이 내 모든 공공교통량의 12%, 연간 3억 5천 5백만 명 수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바이 지하철 고가역사의 표준 형태이다. ‘모래물결’의 형상 같은
유기적 곡선미가 도시의 건축군과 대조적 랜드마크를 형성한다.(사진출처 www.aedas.com)
고가역사들은 박스형 구조를 감싸는 쉘 구조로 덮여있으며,
박스형 구조체와 쉘 구조 모두 기하학적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바이 지하철의 설계는 2005년 세계 최고의 설계사 중 하나인 영국의 에이다스(AEDAS)에 의뢰되었고, 총 3개의 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에이다스 싱가포르에는 프로젝트팀이 구축되었고 모든 역의 기본적 디자인과 부수적 구조가 함께 설계되었다. 그리고 버밍햄에서 차량기지 설계, 런던에서 3D 모델링이 구축되었다. 두바이 지하철역사는 지하역사와 환승지하역사, 고가역사 3개의 유형으로 표준화되어 설계되었으며, 실내디자인은 ‘땅’, ‘물’, ‘불’, ‘공기’라는 네 가지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해 각기 땅은 황갈색(tan), 물은 청색과 백색(blue-white), 불은 오렌지색과 붉은색(orange-red), 공기는 녹색(green)의 색채구성을 가지도록 표준화되어 있다. 설계사인 에이다스는 두바이 지하철역사의 디자인 콘셉트(concept)를 두바이라는 도시의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도시적 간결함’으로 밝히고 있다.
디자인측면에서 두바이 지하철역사는 외형적으로는 사막의 도시라는 지역색채와 금을 거래하는 황금의 수크(Gold Souq)를 연상시키는 골드빛 황갈색의 유기적 피막으로 덮여있다. 형태적으로는 전체적 입면구성에 있어 모래물결의 형상으로, 45도 측면에서는 아랍의 아치를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씌운 듯한 역동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강렬하고 유기적 랜드마크의 지하철역사가 용인될 수 있는 것은 도시의 규모가 크고 건축물간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거대한 구조물이 다른 도시경관과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외관의 유기적 간결함과 달리 실내디자인 부분은 대부분 기하학적 도형을 중심으로 한 평면적인 부조(浮彫,돋을새김)와 주제에 따른 색채구성, 그리고 부분적인 선(線)적 조형(造形)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이슬람(Islam)의 조형방식을 상당히 이해하고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때로 다국적 거대 설계회사들이 어떤 지역 특유의 조형성을 명쾌하게 잘 끄집어내는 것은 타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 보이는 확연한 차이를 잘 구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시가지역인 데이라(Deira)지역의 지하역사 캐노피로 고가역사의 유기적 개념을 반영하되,
가로공간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스케일을 조정하고 있다. 아래 사진의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Innsbruck)
등산열차역사 캐노피처럼, 유기적 형태의 캐노피는 가로공간과의 관계에서 개방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두바이 지하철역사는 더위라는 자연조건에 따라 냉방이 중요하고 이로 인한 유기적 조형의
결합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바이 지하철 고가철도의 교각부분이다. 날렵한 조형을
표현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주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슬람의 조형은 흔히 ‘녹아서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의 융합(融合)적 성격이라고 평가된다. 본디 이슬람이 출현하기 이전 아랍 유목민들에게는 조형예술문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슬람의 조형예술은 정복한 주변의 지역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의 조형성은 중앙아시아나 이집트, 시리아, 페르시아 등으로부터 건축술과 공예, 직조기법 및 조형요소 등을 받아들여 기반을 구축하고, 그 위에 그리스나 비잔틴의 다양한 조형요소들을 첨가했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 조형은 특히 추상성이 강한데, 회화에서의 특징을 보아도 이슬람 회화는 인물이나 정물의 표현을 삼가하고 선과 색채구성을 통한 것이 특징이다. 유일신 알라를 신봉하는 이슬람에서 신상을 제작하는 것은 신을 모방하려는 불경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의 표현은 극도로 억제되며, 모든 조형적 표현에서 공통적 현상을 보인다. 따라서 입체감이 강한 표현기법보다는 다소 평면적인 부조가 발전하고 기하학적 도형을 중심으로 한 조형의식이 발전해 왔다. 이에 따라 꽃과 자연을 중심으로 하되 강렬한 추상성에 기반한 장식성이 전체적 조형의 경향으로 발전해 온 측면이 강하다.
레드라인의 데이라시티센터(Deira City Center)역 지하역사 진입부로,
차분한 전체 간접조명과 바닥의 강렬한 그래픽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데이라시티센터역은 전체적인 콘셉트로 ‘공기’를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벽면부에는 부조형태의
금속재를 모듈로 사용하여 공기방울 같은 다수의 원형을 연출하되, 원형띠 같은 경우는 광택가공을 하여
보다 강한 장식성을 표출하고 있다. 또한 높낮이가 있는 물결형태의 유리 블록이나 녹색을 사용하여
청량감과 시원함을 전달하는데 주목하고 있다. 소화전은 모두 벽면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매입되었으며,
표시사인은 긴급호출과 함께 눈높이에서 지각되도록 처리하고 있다.
승강장의 경우는 스크린도어부가 대체로 어둡고,
승강장 전체를 간접조명으로 처리하여 안정감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인 및 광고류는 폴형 구조체로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벽면의 강한 장식성을
가리지 않도록 배려된 것으로 보인다. 의자의 경우에도 미세한 펀칭을 통해 장식패턴을 주고 있으며,
바닥재, 벽면, 천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세세한 기하장식을 추구해 이슬람 조형성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 조형성의 재해석은 지하철역사에서 금속벽면과 유리 블록의 부조 또는 엠보싱(embossing) 표현의 소재사용, 바닥부에 표현된 다양한 선적패턴과 강렬한 색채의 벽면과 천장 마감재 구성, 대기의자 등의 섬세한 펀칭장식 등으로 현대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에 다소 생경한 것은 장식적 요소로 사용된 패턴의 복잡다단함과 우리의 배색(配色) 관념과는 전혀 다른 색채 혼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철 역사의 여러 부분에서 스테인리스 재질이 자주 사용되고 있고 반사체가 많아 시각적으로 다소 어지럽지만, 더운 도시에서 소재감이 주는 시원함의 ‘감각적 수용’을 위한 선택적 접근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반적 조형성과 더불어 두바이 지하철역사는 최신 지하철답게 소화전을 벽체와 일체화시켜 설계하거나 모든 시설물 색채의 통합, 정보디자인 체계의 합리적 배치 및 그래픽구성의 최신 트렌드 등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알 리가(Al Rigga)역의 승강장으로 ‘불’을 주제로 실내디자인 전반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붉은색과 오렌지, 노란색을 면적 배색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불꽃을 추상화한 곡선들을 바닥에
패턴으로 사용하고 있다. 금속재에는 불을 형상화하여 이글거림을 표현하는 부조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알 리가역의 대합실 상단부를 보면 불을 상징화한 조형물과 강렬한 천장면을 구성하고
바닥면에는 불꽃의 회오리를 추상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인포메이션부스는 최근의 경향을
반영하여 독립형 단독부스형태로 설치하고 멀리서도 찾기 쉽도록 상단부에 조명을 설치하고 있다 .
야간 이용 시 조도는 이용하는 동선의 바닥면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사인만 명확히 인지되도록 하고 있다.
두바이의 지하철역사는 오늘날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는 보편가치의 추구에 대응하는 지역적 맥락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은 실험이다. 가장 기능적 공간인 지하철역사에 고유의 전통적 조형성을 담는 노력은 의미가 있을지, 있다면 어떻게 담을 수 있을지 이제 우리도 논의하고 고민해 볼 때이다.
글, 사진 최성호 한양사이버대학교 공간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