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세기의 미드필더 베론
 
 
 
카페 게시글
○ 자유 게시판 스크랩 -대국굴기-독일
★머래~~★ 추천 0 조회 20 09.11.23 20: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유럽 각국은 1648년 ‘웨스트팔리아 평화조약’ 을 체결하고 조약에 의거하여 독일 신성로마제국을 314개 우방국가로 세분, 자체 정치를 구현하게 했다. 그러나 1806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침입으로 독일 신성로마제국이 해체가 되는데 독일 제국의 최대 우방국인 프로이센과 오지리는 프랑스에 참패한 후, 프로이센 국토 절반과 1.5억 프랑에 달하는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에 의해 분열 된 독일은 1814년 나폴레옹이 유럽 각국으로 구성 된 프랑스 반대동맹에 의해 침몰한 후, 영국과 러시아 주도의 38개 우방국으로 구성된 ‘독일연방’ 이 설립된다. 나폴레옹의 침입으로 독인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제창 된 자유와 평화사상이 전파되었으며 하나의 통일 된 자유 국가 설립의 기반이 마련되어 통일국가 재건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정치 통일을 실현해야만 프랑스와 영국에 대항할 수 있었던 독일은 통일은 점진적인 평화박식을 통해야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1834년 1월 1일 프로이센 주도 하에 독일 관세동맹이 설립되었고 이로 인해 상품, 자본, 노동력의 자유 유통을 실현시켰다. 19세기 중엽에는 관세동맹지역의 공업 총생산량이 영국과 프랑스 다음으로 큰 규모를 차지하면서 독일은 경제통일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그러나 1848년 자산계급 민주혁명이 실패하면서 독일은 평화적 민주 방식을 통한 통일정치의 실현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비스마르크는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프랑스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키는 방향으로 외교 정책을 폈다. 그 후 1866년 프로이센-오지리 전쟁이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나면서 오지를 독일 연방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4년 후 1879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독일 통일의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가 되었다. 그리고 1871년 1월 18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통일 독일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비스마르크의 뛰어난 외교 수단과 군대의 힘을 통해 완성된 결과물이었다.

 

통일 독일은 망국 된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독일은 인구, GNP, 광물 생산량, 철도 건성 등 산업의 다양한 부분에서 프랑스와 영국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독일이 성장하게 된 원동력은 과학과 교육을 초석으로 비교적 평화적인 환경 아래 국가 궐기를 단행한 결과였다. 프로이센은 홈불트 대학을 비롯한 현대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국민 교육과 기술 개발의 초석을 다졌다.

 

비스마르크는 국가가 경제 발전을 추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영국의 자유방임 시장경제의 폐단을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비스마르크가 선택한 발전 모델은 국가가 정책을 제정하고 전반적인 운영 방향을 선도하며 국가의 힘으로 전 세계 최초의 사회복지제도룰 확립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강력한 군대에는 동의하지만 군에 의한 국가의 영토 확장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1890년 비스마르크를 이어 윌리엄 2세가 황제로 등극한 후 독일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선진 과학기술과 프로이센 군국주의를 긴밀히 결합한 독일제국으로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1913년 독일은 영국을 능가하며 미국 다음의 세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게 되는데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1914년과 1939년에 세계 제 1*2차 대전을 주도하며 인류 문명사에 가장 암흑하고 침통한 역사를 남겼다. 세계 제 2차 대전에서는 25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연방독일과 민주독일로 분열이 된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연방독일은 독일 파쇼에 의해 박해를 받은 수해자 및 그 유족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였고 1970년 10월 새로 취임한 연방 독일의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뱌 유태인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참회를 했다. 또한 교육부는 사표 폭행의 역사를 교과서에 실어 차세대 교육의 초석으로 삼았다. 즉, 독일은 암울했던 역사의 반성을 통해 안정적인 민족 부흥을 다시 한 번 일으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결국 이런 노력들이 성과를 얻게 되는데 1990년 10월 41년간 분열 된 독일이 평화 통일을 실현하게 된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통일 후의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극복하고 미국과 일본 다음인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였다. EU의 주요 회원국으로 독일은 유럽의 중심부에서 자국의 경제적, 정치적 통일을 이룩하며 현재는 세계 강대국으로 다시 한 번 우뚝 섰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