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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줄거리
1920년대 말 원터 마을, 동경 유학생이던 김희준이 학자금난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소작인으로 농사를 짓는 한편으로 농민 봉사, 계몽 활동을 통하여 농민 지도자로서 위치를 굳힌다. 그를 중심으로 한 소작인들은 동네 마름인 안승학과 대결해 나간다.
마름 안승학은 그의 본부인을 서울로 보내 자식들을 교육시키도록 하고 자신은 첩 '숙자'와 함께 산다. 안승학과 '숙자'는 땅 '갑숙'이를 이씨 문중으로 시집보내려 하다가 '갑숙'과 '경호'와의 관계를 알고 앓아 눕는다. 왜냐 하면, '경호'는 읍내의 상인인 권상필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구장집 머슴 곽 첨지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갑숙'이는 가출하여 공장의 직공으로 취직한다. 그녀는 '옥희'라는 가명을 쓴다.
풍년이 들었으나 소작료와 빚진 것을 제하면 농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다. '갑숙'이와 친했던 '경호'는 집을 나와 생부를 찾고 역시 공장에 취직한다.
수재(水災)가 나서 집이 무너지고 농사를 망친다. 김희준을 중심으로 소작인들은 마름 안승학에게 소작료를 감면해 줄 것을 요구하나, 안승학은 이를 거절한다. 이때 공장에서도 '갑숙'(옥희)을 지도자로 한 노동 쟁의가 벌어지며, 김희준은 이를 돕는다. '갑숙'이는 소작인을 괴롭히는 아버지에 반대하여 김희준과 힘을 합친다. 김희준을 비롯한 농민들은 끝내 안승학의 양보를 얻어낸다. 그리고 김희준과 갑숙이는 이성간의 애정을 초월하여 동지로서의 사랑을 확인한다.
이기영(李箕永 1895-1984)
충남 아산 출생. 필명은 민촌(民村). 민생촌(民生村) 1922년 일본에 건너가 동경정치영어학교 수학. 1924년 <개벽>에 "오빠의 비밀편지"가 당선되어 등단. 1925년 카프에 가담. 카프 1차 검거 때 입건되었고, 2차 검거 때도 구속되어 1년간 감옥 생활. 194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 주도 월북. 1984년 병으로 사망. 대표작으로 단편 "농부 정도룡", "종이 뜨는 사람들", "홍수", 중편 "서화", 장편 "고향", "민간 수업", "두만강" 등이 있음
그는 한국 근대 리얼리즘 문학의 확립에 크게 기여한 작가이며, 프로 문학 내에서도 최고의 작가로 꼽힌다. 그의 작품 활동은 프로 문학의 발전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초기 작품인 "농부 정도룡"(1926), "민촌"(1926) 등은 신경향파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신경향파의 도식성과 추상성을 극복한 "홍수"(1930), "서화"(1933) 등은 노동자 계급의 관점에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카프 내에서 사실주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서 나온 작품 가운데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장편소설인 "고향"(1934)은 한국문학사에서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등장인물
* 김희준: 동경 유학생 출신. 농민을 결속시켜 안승학과 대결한다.
* 안승학: 마름. 새롭게 부상한 신흥 세력가
* 권상철: 상인. 고리대금업자
* 안갑숙: 마름 안승학의 딸. 아버지와 달리 농민을 돕는다. 희준에 대한 사랑을 동지애로 승화시킨다.
핵심정리
* 갈래: 장편소설, 농민소설
* 배경: 시간(1920년대 말), 공간(원터 마을)
*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경향: 카프 계열, 사회주의 리얼리즘
* 의의: 농민 중심의 대표적 농민소설.
* 제재: 식민 통치로 점점 피폐해지는 농촌 생활
* 주제: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농민들의 의식의 성장.
해설
<고향>은 1933년 11월 27일부터 1934년 9월 2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1920년대 중반 원터라는 충청도의 한 농촌을 무대로, 식민지 시대 일제의 착취와 그에 따른 농촌의 황폐화, 몰락한 농민이 노동자가 되는 과정, 그리고 빈농과 노동자들의 투쟁하는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김기진(金基鎭)에 회고에 의하면 연재 마지막 35, 36회분은 작가의 구속으로 김이 대신 쓴 것아라 한다. 카프 계열에서 쓰여진 농민 소설의 대표작으로서 노동 쟁의, 소작 쟁의 등 경제 투쟁, 농민 운동을 강조한다. 그러나 많은 도식성(圖式性)과 작위성(作爲性)이 드러난다.
무더위 속에서 농사일로 비오듯 땀 흘리는 '인동이' 모자(母子)의 모습과, 시원한 마루의 등의자에서 한가하게 부채질하는 마름 '안승학'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이 두 모습은 식민지 통치로 더욱 가난해진 농민 계층과 경제적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계층을 대표하고 있으며, 이들의 갈등과 해소가 이 소설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일본 유학생 김희준이 등장하여 가난한 농민의 구심점이 된다. 지식인 유학생은 농민 소설이라면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영웅적, 이상적 존재이지만, 김희준은 실패한 유학생으로 초라하게 등장하여 점차 자기 희생적 지도자로 변모하고 있다. 그는 두레를 결성하여 농민 의식을 변화시키며, 마름의 횡포에 맞서서 농민의 힘을 결집시켜 마침내 뜻을 이루고 있다.
가난의 문제, 계층 갈등의 문제를 단편적으로 제시해서는 프로문학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반성에서 1930년대 초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사실적 묘사와 생활 감각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이 작품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으로 쓰여진 최고의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브나로드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나왔지만, 브나로드 주창자들과는 달리 문화 운동으로서의 농민 계몽이 아니라 경제 투쟁으로서의 농민 운동을 강조한다. 이른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깔고 노동 쟁의 양상 . 소작 쟁의 양상, 그리고 양자의 결합 양상, 프롤레티리아 계급의 지도자상을 보여 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모은 문제는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투쟁에 의해서만 해결되고 있다. 이와 같이, 카프에서 요구하는 도식에 맞추기 위하여 많은 작위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희준과 갑숙의 만남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둘만의 개인적 애정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적 동지애가 중요하다는 관념적 원칙을 내세워 역시 프로문학다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악덕 마름의 딸 '갑숙'의 공장 노동자로의 변모, 그리고 소작인들의 집단 쟁의가 벌어졌을 때의 그녀의 행동 등은 너무 이상화되어 있다.
<소설 읽기>
고향
이기영
김희준이는 동경에서 나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오 년 동안에 고향은 놀랄 만큼 변하였다. 정거장 뒤로는 읍내로 연하여서 큰 시가를 이루었다. 전등, 전화가 가설되었다.
C 사철은 원터 앞 들을 가로 뚫고 나갔다. 전선이 거미줄처럼 서로 얽히고 그 좌우로는 기와집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읍내 앞 큰 내에는 굉장하게 제방을 쌓았다. 상리 안골에서 내리지르는 물과 봉화재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정거장을 휘돌아서 원터 앞들을 뚫고 흐르다가 읍내 앞 정남쪽으로 와서는 한데 합쳐서 큰 내를 이루었다. 세 갈래가 진 물목은 웅덩이처럼 넓게 패었다.
이 물목은 강물의 어귀와 같이 여울이 졌다. 그래서 홍수가 질때에는 물목이 벅차서 부근의 전답은 물론이요, 읍내 앞 장거리까지 침수가 되었다. 그런데 거기를 굉장하게 방축을 쌓아올리고 양쪽으로는 신작로의 가로수와 같이 '사꾸라' 와 버드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정자를 새로 지었다. 그러나 그동안 변한 것은 그뿐만 아니었다. 상리로 올라가는 넓은 뽕나무밭 개울 옆으로는 난데없는 제사공장이 높은 담을 두르고 굉장히 선 것이었다. 양회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밤낮으로 쏟아져 나왔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이 밭 가운데는 뽕나무가 약간 심기고 한 귀퉁이에는 잠언전습소라는 누에 치는 강습소가 빈약한 널판집 십여 칸 속에 붙어 있었다.
희준이도 그때 강습생으로 육 개월 동안을 다녀보았다.
그때 사용하던 제사기는 지금과 같은 전기장치가 아니었다. 원시적인 물레와 같은 손으로 두르는 기계인데 왼편에다 화롯불을 피워놓고 그 위에다 냄비를 올려놓고는 거기다가 고치를 삶아서 손으로 실끝을 찾아가지고는 자새에 달린 바퀴를 둘러서 감는 것이었다. 그는 그 뒤에 이 근대적 대공장을 견학하러 갔을 때에 자기의 전습생시대를 생각하고 격세지감이 없지 않았다. 수백명의 여공이 큰 공장 안에 일렬로 몇 줄씩 늘어앉아서, 일제히 번갯불 치듯 돌아가는 전기 자새에다 실을 감고 있다. 냄비 속에 있는 고치는 물고기 뛰듯 하였다. 그들은 눈 한 번을 팔지 못하고 고스란히 기계를 지키고 있었다. 희준이가 그날 저녁때 정거장에서 차를 내려서 본정통으로 새로 된 시가지를 보고, 앞내의 방축을 보고, 신설한 제사공장을 보고 놀란 것은, 자기가 어렸을 적만 해도 불과 몇백 호 되지 않던 시골 읍내가 아주 대도회지로 변한 것이었다. 그러나 희준이로 하여금 제일 놀라게 한 것은 그 동안에 자기 집이 변한 것이었다. 그는 고향에 돌아오기 전에도 자기 집이 원터로 이사간 줄은 알았다. 읍내집을 팔고 누구라던가, 그전의 소작인집을 사서 줄여 앉았다는 말은 모친의 편지로 듣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쩐지 예전 집이 보고 싶어서 그날 차에서 내리는 길로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희준이가 그 뒤에 이런 말을 하자 모친은 별안간 눈물을 텀벙텀벙 쏟고 비줄비줄 울었다. 읍내집은 비록 초가일망정 안팎채가 드높은 것이 큰집 살림을 하기에도 무난하였다. 그 집이 바로 장거리에 있었다. 그의 조부가 생존했을 때에는 사랑채에서 큰 객주 영업을 하였다 한다.
희준이가 중학을 마치기 수년 전까지 땅마지기나 남았던 것도 그의 조부가 모은 재산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 집을 찾아가서 보니 옛날의 집 모양은 간 곳 없고, 그 터전에 산작로만 넓혀졌다. 장거리를 넓히는 바람에 바깥채는 헐리었다. 안채는 새로 짓고 전방을 꾸민 모양이었다. 그때 희준이는 마치 길을 잃은 나그네와 같이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자기 집의 옛터를 바라보았다.
희준이가 동경에서 나오던 그 날 저녁때 원터 동리는 별안간 발칵 뒤집혔었다. 동리 개는 있는 대로 다 나와 짖고 닭이 풍기고 돼지가 꿀꿀거리고 송아지가 네 굽을 놓고 뛰며 어미소를 불렀다. 그것은 인성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희준이를 만나보고 인사를 하자 한달음에 뛰어와서 선통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준이집은 물론 인서이집 안팎 식구와 업동이네, 김 선달네, 수동이네, 막동이네 그 외에도 누구누구, 거의 온 동리 사람이 옹기옹기 나와서 동구 앞을 내다보았다. 젊은 각시들은 울밑과 삽작 문 옆에 붙어서고 졸망구니들은 달음박질을 해서 골목 길거리로 뛰어나왔다. 이 바람에 닭이 풍기고 개가 짖고 송아지가 뛰고 돼지가 꿀꿀거린 것이다. 그런데 웬일이냐? 그들은 희준의 행장이 너무나 초라한 데 그만 놀랐다. 그들의 생각에는 그도 좋은 양복에 금테안경을 쓰고 금시계줄을 늘이고 그리고 짐꾼에게는 부담을 잔뜩 지워 가지고 호기 있게 들어올 줄 알았다. 그것은 그들뿐 아니라 희준의 모친과 그의 아내까지도. 한데 그는 시꺼만 학생양복에 테두리가 오골쪼골한 모자를 쓰고 행장이라는 모서리가 해어진 손가방 한 개를 들었을 뿐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지 오륙 년 만에 나오지 않았는가. 서울 가서 중학을 마치고 다시 일본까지 건너가서 유학을 하고 나올 적에는 그는 무엇이든지 장한 일을 하고 올 줄 알았다 ---- 그들의 장한 일이라는 것은 돈을 많이 벌었거나 무슨 월급자리를 얻었거나 그런 것인데 그는 아무것도 못한 것 같기 때문에.
"공연히 미친년같이 뛰어나왔지. 난 무슨 장한 행차나 들어온다구. 허허허 참! 우리 아들(역부)이 서울 갔다오는 길도 이보다는 낫겠구먼!"
변덕쟁이로 유명한 김 소사는 작은아들이 역부를 다녀서 그전보다 살기가 좀 낫다고 변덕도 그만큼 더 늘었다. 그는 지금도 체 머리를 흔들며 희준의 흉을 보느라고 입에서 게거품을 꺼내었다.
"글쎄유. 아마 돈도 좀 못 벌어 온게지유?"
"돈이 무슨 돈이야. 돈을 벌었으면 저렇게 초라한 꼬락서니로 들어오겠나. 비 맞은 장닭같이 후줄근하게."
"그 집도 아들 공부를 잘못시켰지. 그러기에 공부도 너무 시키면 못쓰는 게니. 식자가 우환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게야."
"참 그런가봐요. 그래도 그전보다는 것기가 훌떡 벗었는데유."
"그거야 딴 곳 박납을 많이 했으니까 그렇지."
김 소사는 쇠득이 처에게 말대꾸를 하고 나서 또 한 번 하하 웃었다. 그러나 희준이는 이런 것에는 도무지 상관도 없는 사람처럼 유쾌한 기분으로 마을에 들어왔다. 모친과 동리사람은 그의 이런 기분을 이상히 여겼다. 혹시 그는 일부러 어리손을 치느라고 이런 기분을 강작함이나 아닐까? 그들은 희준의 심정을 참으로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때 희준이는 진심으로 유쾌하였다. 그것은 오래간만에 고향에 돌아오는 기쁨보다도 그동안의 변천이 어쩐지 형용하지 못할 그런 쾌감을 자아냈다.
집은 읍내에서 살던 집에 비교하면 토굴과 같고 협착하다. 모친은 두 볼이 오무러지도록 더 늙고 아내는 보기 싫게 앙상해졌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그는 응당 슬퍼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외의 모든 것은 원칠이의 두드러진 코가 더욱 검붉게 두드러지고 입모습이 자물쇠처럼 꽉 잠긴 것과 아울러, 모든 것이 새 생활을 앞둔 고민과 같았다. 태아를 비릊는 산모의 진통과 같이 묵은 것은 한편으로 쓰러져간 것 같다. 그것은 다만 묵은 것을 조상하는 것은 아니었다. 묵은 둥치에서 새싹이 엄돋는 것과 같다 할까? 늙은이는 더 늙고 죽어갔으나 젊은이들은 여름풀과 같이 씩씩하게 자라났다. 어린아이들은 몰라보도록 컸다. 인순이는 색시태가 흐르고 인동이는 몰라보도록 장성하지 않았는가?
삼사 일 동안은 엄벙덤벙 지났다. 동리 사람들은 제가끔 희준이를 찾아왔다. 그의 집은 무슨 큰일이나 치르는 집처럼 사람들이 들랑거렸다. 그러나 그들은 미구에 발길이 드물어지고 희준의 집은 전과 같이 쓸쓸해졌다. 그의 누이동생은 그동안에 시집을 갔다. 그는 벌써 첫아기를 낳았다 한다. 네 살 먹은 아들은 낯이 설은 듯이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희준이도 마주 아들을 바라보았다. 난 후로 처음 상면을 하는 아들은 어쩐지 자기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였다. 어린아이는 비죽비죽 운다. 모친의 말을 들으면 그가 떠나던 이듬해 정월에 아내는 첫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정식아, 애비여! 애비한테, 그저 낯 가리나. 절 좀하지 않고."
할머니가 손바닥을 치며 이리로 오라니까 아이는 어머니의 가슴으로 고개를 처박는다. 아내는 그것을 보고 빙그레 웃는다.
"정식이?"
희준이는 무슨 글자인지 몰라서 비로소 아들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는 우선 집안을 둘러보니 서글펐다. 게딱지 같은 토마벽에는 신문지 한 장도 바르지 않았다.
"그래 정식이! 정월에 낳았다고 제 큰애비가 정식이라고 지었단다."
희준이는 아무말 없이 때 묻은 자릿날을 들여다보고 앉았다. 고리타분한 흙먼지 냄새가 온 방 안에서 떠오른다. 늙은 모친은 장죽을 물고 있다고 희준의 눈치를 슬쩍 보며,
"인제는 집에 누가 있느냐. 쟤 큰애비도 따로 나고 했은즉 네가 착심을 해서 살림을 해야지... 내야 인제 죽을 날이 멀지 않았는데 바랄 것이 뭐 있으랴마는 네 댁이 불쌍하지 않느냐!"
모친은 나직이 한숨을 쉬고 나서 다시 말끝을 잇대인다.
"시집이라고 와서 너는 밤낮 저라고만 돌아다니닌 생과부라도 분수가 있지 도무지 그게 무슨 짝이란 말이냐!"
그는 다시 희준이를 곁눈질하며 치맛자락으로 코를 씻는다. 그의 머리는 어느덧 반백이 넘도록 희어갔다.
그는 지금도 벌써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웬일인지 그는 아들을 만나보면서부터 울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마치 울음보가 터진 사람처럼 잠자코 듣고만 있던 희준이는 별안간 열이 나서 부르짖었다.
"아니, 형은 그게 무슨 짓이야. 집안에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 그래 자기네 식구들만 살짝 빠져나간단 말이오. 다른 식구는 죽거나 말거나!
대관절 어머니를 누가 모시라고!"
"아이구 얘야, 그건 네 형만 나무랄 게 아니다. 여러 식구가 한 집에서 살 수는 없고 해서! 내가 시킨 것이야."
모친은 어쩔 줄을 모르며 큰아들의 애매한 것을 변명해 주려는 것처럼 애를 쓴다. 그는 목소리를 떨었다.
"아무리 어머니가 그리하셨더라도 나 같으면 그렇게는 못하겠소."
희준이는 생각할수록 서운하였다. 그러나 모친의 말을 들으면 농사라고 해마다 짓는대야 남의 빚꾸럭만 하고 소용이 없었다 한다. 몇 해 전만 해도 내 땅마지기나 있었더니 수다한 식구가 가만히 앉아서 그것만 파먹기 때문에 곶감 꼬치 빼먹듯 있는 대로 다 팔아먹고 나서 이곳으로 나앉은 뒤로부터는 남의 토지막 소작을 하는데, 형이란 사람은 책상물림으로 농사라는 물꼬도 볼 줄 모르니 그런 농사를 머슴 두고 지어서 무엇이 남겠느냐? 그래서 올해는 대여섯 마지기만 빼놓고, 농사치를 모두 내놓았는데 형은 그전부터 제 처가에서 오라고 했은즉 그렇게라도 분가를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처가살이를 보냈다는 것이다. 모친은 지금도 자기의 처사를 잘한 줄로만 믿었다. 희준이는 언제 나올 줄 모르고 그러니 여러 식구가 먹을 것도 없는 집안에서 그대로 옴닥옴닥하다가는 나중에는 농사도 짓지 못하고 할 수 없이 굶어죽는 경상이 눈앞에 보일 것이 아닌다. 큰아들의 처가는 견딜 만할 뿐아니라, 큰며느리는 벌써부터 따로 나자고 그 남편을 조르는 눈치가 보였다. 남들은 구구하게도 처덕을 보려드는데, 그렇다면 모친은 그들을 얼른 떼맡기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큰아들은 다섯식구나 된다고!
전후 사연을 자세히 들어본 희준이는 그럴듯하기도 하다. 동시에 그는 자기 형을 비웃었다.
'사내자식이 창피하게 처가살이를 하다니!'
희준이는 곧 이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모친이 어찌할는지 몰라서 억지로 참았다. 그의 형 명준이는 원래 성질이 고리타분하였다.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에 말뚝처럼 꾹 집안에만 처박혀 있었다. 형수는 그가 살림살이에 착실한 것을 탐탁히 아는 모양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아내를 잘 건사하는 좋은 남편이요, 자식을 잘 낳는 좋은 아버지였기 때문에.
'아직 삼십도 못된 이가 아들이 삼형제라나! 그런데 또 애를 뱄다고!'
희준이는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돼지같이 새끼만 쳤나?
"그애들은 제 내외끼리, 의가 어떻게 좋은지! 그런데 너희들은 왜 그 모양이냐? 한삼줄에 삼형제를 내리 낳고 또 태기가 있는데 궁합을 보니까 또 아들을 낳겠다는고나!"
모친은 부러운 듯이 '마치 너희도 어서 그렇게 나주렴!' 하는 말과 같았다. 희준이는 픽 웃었다.
"자식만 자꾸 나면 제일이우?"
"무슨 말이여. 이십 전 자식이요, 삼십 전 천 냥이라구, 자식두 농사와 같으니라, 때를 놓치면 낭패하는 게야."
사실 그의 노파심은, 큰며느리는 아들을 잘된 김장무 뽑듯 하는데 작은며느리는 짝 잃은 해오라기처럼 외롭게 지내는 것이 보기에 민망하였다. 큰아들 식구는 한방 안에 고스란히 모여서 재미있게 오손도손 사는데, 작은며느리는 옷 입은 채로 동그마니 윗목에서 꼬부리고 자는 꼴을 보면 그는 부지중 눈물이 핑!, 돌았다.
한집안 식구라도 설움은 각각이다. 큰며느리는 단잠이 들어서 코를 쿨쿨 고는데, 자기와 작은며느리는 서로 자는 체하지마는 아래윗목에서 올빼미처럼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그래 그는 죽은 영감을 생각하고 며느리는 멀리 떠나 잇는 젊은 남편을 그리워했다 ---- 그들은 코고는 소리에 두 눈이 점점 반송반송해졌던 것이다.
'저년이 지금 제 서방 팔을 비고 누워서 저렇게 코를 골 테지... 하에.'
어떤 때 모친은 공연히 이와 같은 당치않은 투기를 하고 속으로 웃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윗목에서 옹송그리고 새우잠을 자는 작은 며느리의 경상을 볼 때 그는 더욱 심정이 사나워지고 사지가 떨리었다. 자기가 그럴 적에야 젊은 아이들의 마음이야 오죽하랴? 저 애는 지금 남 몰래 우는지도 모를 것 아닌가 ---- 그럴 때는 그만 방망이를 들고 큰아들 방으로 쫓아들어가서 자는 년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늘씬하게 두들겨 패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났다. 작은 며느리가 정식이를 나 후로부터는 그들에게 이런고적은 덜하였다. 며느리도 그 아들에게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니 말이지, 자기가 큰아들을 따로 내보낸 것은 물론 가난한 집안 형편상 한집 속에서 살 수 없는 것이 첫째 조목이었지마는 외떨어진 작은며느리 꼴이 보기 싫어서도 그리한 것이었다. 그들 큰아들네도 한집에서 살기가 불편한 점이 많아서 나가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하기야 그들이 나간다고 작은며느리가 별안간 외롭지 않을 턱도 없겠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따로 난 뒤로부터 작은며느리의 태도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전에는 늘 침울한 기색으로 묻는 말도 잘 대답하지 않던 사람이 그 뒤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비로소 제 집같이 탐탁히 알아서 살림에 재미를 붙이는 모양 같았다.
'사람이란 그저 제것이래야만 흡족한 모양이야.'
희준이가 나온 뒤로 며느리는 아주 딴 사람같이 변하였다. 그는 이마에 주름살을 펴고 목소리도 명랑해졌다. 모친은 이런 생각을 하며 지금도 잠이 안 와서 궁싯궁싯하였다.
밤은 어느 때나 되었는지 닭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새벽녘의 서늘한 기운이 문안으로 기어든다. 그는 벽을 안고 돌아 누웠다. 그는 그대로 잠이 안 와서 일어나 않았다. 그는 머리맡에 둔 성냥갑을 더듬어서 담배 한 대를 피워물었다.
며칠 후에 명준이는 희준이가 왔다는 말을 듣고 동생을 보러왔다. 그는 아들 삼형제와 만삭이 된 배를 안은 아내를 앞세우고 왔다. 아이들은 안 데리고 오려다가 작은아비를 못 본 지도 오래고 해서 모두들 왔다고, 그는 인사를 하고나서 모친에게 이런 말을 했다. 명준이는 그동안에 못 알아보도록 노성하였다. 그는 아래턱에 수염이 펄펄 날리고 구레나룻이 한 치나 길었다. 둥그런 얼굴에 두 눈은 조그마한 것이, 마치 두디웅박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다. 그것은 더욱 그의 메주볼 진 아래턱이 그렇게 보였다. 타원형의 해맑은 얼굴을 가진 희준이와는 아주 딴 모습과 같이 그는 지금도 찰완고처럼 구식을 지키는 모양이다. 아이들을 일일이 절을 시키고 자기도 모친에게 절을 하였다.
희준이는 어쩐지 절하기가 어색해서 그만두었다. 형은 아우의 손을 잡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부르짖는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네가 얼마 만이냐? 왜 나올 때에 통지도 없었니."
그들 내외는 참으로 근친온 부부처럼 떡을 하고 술을 받아서 짐꾼에게 지워왔다. 현금 오 원은 희준에게 무엇을 해먹이라고 큰아들이 꺼내 놓았다. 그래 모친은 신이 나서 좋아했다. 그는 이웃 노인들을 청해다가 떡을 나누고 술을 권했다.
그들이 있는 동안 집안은 또 한 번 떠들썩하였다. 이웃 여자들은 틈틈이 마실을 왔다. 그들은 희준이 모친에게 아들들을 잘 두었다고 연신 칭찬이 벌어졌다. 그럴 때마다 모친의 입은 떡 벌어졌다. 사실 작은아들과 큰아들 식구가 이와 같이 한집 속에 모여보기는 영감이 죽은 뒤로는 근래에 처음이다. 그래 그는 만면희색을 띠우고 이웃사람들에게 지나온 소경력을 일장설화하였다. 그는 오 년 동안이나 굽이굽이 서려 담아두었던 말을, 누구 보고도 하지 않던 말까지 지껄였다.
그는 오래 그리던 아들을 만나 보자 그동안에 울음보가 터지듯이 참았던 말보마저 터진 것이다. 모친은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별안간 박성녀를 쳐다보며 묻는다.
"인성 어머니도 투기해 보았어?"
"투기유?"
곰방대를 물고 앉았던 박성녀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난 그런 것 해 볼 처기가 어디 되었어야지유."
"하하! 동생이 젊었을 때에 작은마누라도 안 얻었던가베."
"그 고지식쟁이 작은마누라를 얻을 주변이나 되겠디유."
"워낙 그럴 게야. 여북 점잖아야 관운장님이라고 했을까. 하하! 그런데 참 죽은 영감이 언젠가 한 번은 살살 꾀겠지."
모친은 신이 나서 또 이야기를 꺼내며 담배를 부시럭부시럭 담는다. 마실꾼들은 마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리두 야단인가?'
하는 것처럼 넋을 잃고 그의 입을 쳐다본다.
윗방에서는 쇠득이 처, 막동이 형수, 백룡이 누이 방개가 주인동서와 붙어앉아서 무슨 이야기를 소근거리다가 아랫방에서 웃음통이 터지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큰동서는 배가 불러서 헐떡인다.
"뭐라구 꾀었어유?"
"응! 작은마누라를 얻자고 꾀순단 말이지."
"하하..."
업동이네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하두 꾀이기에 모른척 했지. 그랬더니만 아니나다를까 어디서 하나를 얻어왔는데... 이놈의 담배가 왜 안 탈까? 황새 늦새끼처럼 키가 멀쑥한 사람을 얻어왔더구먼. 업동이네도 보았던가?"
업동 어머니는 아들을 무릎 앞에 앉히고 흥미있게 듣다가,
"난 못 보았시유."
"참 못 봤겠군. 인성 어머니는 보았지! 그려, 보았어. 그런데 난 마찬가지여. 그저 심상하더군! 혼자 있을 때나 별다르지 않게 지나겠어! 아, 그래 하루는 해가 이 위에 올라오도록 이것들이 아무 기척도 없구먼! 그래도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하고 지금 기다리고 있는 판이지. 설마 나오겠지 하고. 아니 그래도 깜깜 무소식이로구먼!"
"그게 웬일일까?"
박성녀는 눈을 휘둥그러니 뜨고 이야기꾼을 쳐다본다.
"글쎄 들어봐. 그래 문을 열고 아랫방을 무심히 내려다보니까 신발 두 켤레가 나란히 놓였는데 사람은 도무지 기척도 없단말야."
주인이 이야기를 잇대자,
"아이구메나."
업동이네는 벌써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방비한다.
"아, 그걸 보니까 별안간 열이 벌컥 나는데,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단 말이지. 그래 고만 화로를 번쩍 들어서 며내붙이고 동이를 번쩍 들어서며 내붙이고 한바탕 야단을 치지 않었겠나베!"
아래윗방에서는 별안간 웃음통이 터졌다. 그는 두 손으로 화로와 동이를 들어서 며내붙이던 시늉까지 해가며 여러 사람들을 더욱 웃기었다.
"참 별일 다 보았어. 내둥 아무렇지도 않었는데 신발 두 켤레가 방문 밖에 나란히 놓인 것을 본 것이 어째서 그렇게 열이 났던지 몰라... 그래 나 혼자 속으로 그랬구먼! 참 이상한 일도 많다. 어째서 그때는 그랬던가? 아마 투기라는 것을 그래서들 하나부다 그랬어... 하하."
"하하하..."
"호호, 시앗싸움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구, 누구나 왜 안 그렇겠어유."
"그래두 난 그때까지 투기가 무엇인지 몰랐거든!"
그는 명주 수건으로 진무른 눈가를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한다. 모두들 웃어대서 얼굴이 빨갛도록 상기가 되었다.
"그래 어떻게 했어유? 문짝을 떼고 드잡이가 났던가유?"
"어데 차마 그럴 수가 있는가베. 그래 나 혼자만 야단을 쳤지.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제야 쫓아나오며 형님 왜 이러느냐고 만류하겠지."
"하하! 워낙 그건 잘못했군유. 아니 아프지도 않은데 그랬어유?"
"아프긴 어디가 아파."
윗방에서 듣고 있는 큰며느리도 빙그레 웃고 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무얼 그래여. 서모를 다려온 뒤로부터는 잠을 못 주무시는 것 같던데. 한번은 밤중에 창문을 뚫고 내다보며 엿을 듣지 않으셨남.'
마실꾼이 흩어지자 모친은 큰아들이 있는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명색만은 세 개나 되었다. 명준이는 건넌방에서 낮잠을 자고 희준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집에는 잠시도 붙어있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읍내 있는 손을 끌고 와서 부산을 피웠다.
모친은 명준이를 깨웠다. 그는 큰아들의 처가살이 모양을 조용히 듣고 싶었던 것이다.
"얘야, 웬 나잠이냐! 고만 일어나!"
"응..."
명준이난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번쩍 떠보다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희준이는 어디 갔니?"
"몰러유, 아이 졸려."
"이애는 밤낮 어디를 다니는지 참 고르지도 못하다. 하나는 아낙군수고, 하나는 빨빨거리기만 하니. 대관절 넌 어떤 셈이냐?"
"뭐 어때유?"
모친이 흉을 보는 바람에 그는 나발주둥이처럼 입이 뚜해졌다.
"거기는 살기가 어떠냐 말이야."
"뭘 어떨 것 있수. 좋지유."
명준이는 모친의 묻는 의미를 알아챘는지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긁는다.
"너야말로 처갓집 말뚝에다 절할 위인이다. 사내자식이 계집에게 너무 죽어지내도 못쓰는 게야."
모친은 도끼눈을 뜨고 아들을 흘겨보다가 금시로 상냥해지며 목소리를 죽여서,
"네 장인 장모가 눈치나 안 보이데?"
"아니."
"올 농사도 짓고?"
"네."
"몇 마지나?"
"여나문 마지기."
"그것 아주 주었으면 좋겠구나."
모친은 나직이 한숨을 지었다. 그는 다시 소곤거렸다.
"네 아우는 네가 따루 났다구 섭섭히 알더라만 참, 그렇게 하기를 잘했느니라. 늬 식구가 그냥 있어 봐라. 먹을 것도 없는 집안에서 식구들만 옴닥옴닥할 테니. 그애는 빈털터리로 나왔단다. 어떻게 산다니!"
모친은 잠시 말을 그쳤다가,
"그애도 늬 아버지를 닮었나봐. 너무 헤퍼요!"
명준이는 아무말도 없이 앉아서 손톱으로 자리날을 긁는데 모친은 아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그의 턱을 쳐다본다.
그 이듬해 봄이었다. 정거장에서 북으로 떠나는 북행 열차가 우렁차게 기적을 불며 검은 연기를 솟구친다. 차는 성난 말같이 코를 불며 무거운 바퀴를 천천히 움직인다. 겨울은 패전한 군대처럼 물러가자 앞내에는 어느덧 얼음장이 풀리고 먼 산에 쌓인 눈사태도 녹았다. 한동안은 봄바람이 몹시 불어서 원터 동리의 초가 지붕을 모조리 불어 날리고, 신작로의 흙먼지를 일으켜서 행인의 눈코를 뜨지 못하게 하던 왜바람도 인제는 잠풍해졌다. 그리고 묵은 풀뿌리에서는 새싹이 엄돔았다. 따뜻한 봄해는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포근하게 대지를 둘러쌌다.
아물아물한 먼 산이 푸른 아지랑이의 벨을 쓰고 조는 듯이 하늘 밖에 둘러섰다 ---- 모든 것이 양지를 향하여 ---- 마치 어린아리가 어머니의 품 안에 안겨서 자모의 젖을 빨고 있듯이 일광의 가닥가닥을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때로 이는 산들바람에 어슴푸레 졸고 있던 나뭇가지와 풀잎들은 깜짝 깬 듯이 고개를 까댁인다.
희준이는 뒷동산에 앉아서 지금 떠나는 기차를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차는 볼 동안에 작아졌다. 누에같이 기다랗던 차는 번데기처럼 오그라든다. 장승재 마루턱을 올라가는 차는 개미가 기어가는 것같이 조그맣게 보인다. 그러자 차는 그나마도 안보이고 한 점의 검은 연기가 중천에 둥실 떴다, 마구에 연기도 사라졌다.
그밑에는 헤영 벌판이 대설대 같은 철둑 좌우로 휑하니 뚫렸을 뿐 대지는 금시에 질식된 것처럼 적막하다. 그래서 여울을 흐르는 앞냇물 소리도 뚝 그치고 위로 상봉 솜같이 피어오르던 흰구름도 까딱 않고 그대로 오똑 선것 같지 않은가! 지금 희준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그의 시선은 오직 한 곳 ---- 장승재로 뚫린 철사 같은 레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일은 일광에 비쳐 번쩍번쩍 빛난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작년에 지금 떠난 차를 타고 왔을 때 유쾌한 기분과 팔딱이던 기상은 지금도 기억에 떠오른다. 그런데 그것은 불과 사흘이 못 가서 없어지지 않았던가.
그는 그때 동경을 떠나올 때 차 안에서부터 여러 가지 생각에 얽히었다. 그는 실로 고향에 돌아와서 할 일을 궁리해 보았던 것이다. 그의 이런 포부는 현해탄을 건너서 부산을 접어들면서부터 더 크게 하였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철도 연선의 살풍경인 촌락은 그로 하여금 감개무량하게 하는 동시에 또한 그의 마음을 굳게도 하였다. 농촌은 오륙 년 전보다 더욱 황폐해지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는 고향에 돌아온 지가 벌써 일 년이 되어간다. 그동안에 자기는 무엇을 했는가? 하긴 청년회 일을 안 보지는 않았다. 그는 그곳 청년회의 집행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청년회란 무엇하는 거냐? 그는 처음 나와서 읍내 있는 청년회를 가보고 놀랐었다. 그것은 청년회인지 오락기관인지 모르기 때문에. 어떻든지 청년들이 모이긴 모였었다. 한편에서는 바둑을 두고 한편에서는 장기를 두고 그리고 마당에서는 한 패가 테니스를 치고 있다. 그들은 내기를 하고 있었다. 승부를 결단하자,
"가세."
하고 그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어디로 가자는가?'
그때 희준이는 덩둘하였다. 결국 따라가 본 즉, 거기는 음식점이었다. 이런 주식업에 비교하면 그래도 그들이 노동야학을 시작한 것만은 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역시 유명무실로 선생들의 태만한 행동은 학생들의 열성을 꺼지게 했다. 그때보다는 청년회꼴이 제법 쇄신된 모양이다. 그러나 희준의 안목으로 본다면 지금도 그것은 비빔밥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도 유흥 기분에는 백 퍼센트의 열을 띠고 나선다. 그도 그럴 것은 그들은 대개 장사치들과 은행 회사원들의 중산계급으로서 지식 정도로도 중학 한 개를 똑똑히 마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기는 공연히 헛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자식들과 무슨 일을 같이 한다고! 그 자식들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자식들이야! 쥐고리는 송곳집으로나 쓰지, 이 자식들은 거름도 못할 자식들인데 뭐."
이런 말은 희준이보다도 그들끼리 서로 욕하는 말이었다.
"이 고장이란 원체 할 수 없는 곳이지요. 팔도 모산지배가 모여 사는 곳이라 모두 본데없이 자라나서 부랑무식하고 아무것도 모르지요. 그래서 청년회가 있대야 그저 벌제위명이지요. 도무지 할 수 없는 인간들이라요."
희준이가 xx일보사 지국장인 장수철을 찾아가서 고향에 돌아온 첫인사를 하고 났을 때, 복장을 근대식으로 차린 그는 가장 점잖게 지사적 어투로 이런 말을 했었다. 그는 그때 청년회 위원장이라면서 마치 남의 말을 하듯 하지 않던가. 마치 자기는 그들의 류가 아니라는 것처럼.
그 뒤에 다른 청년에게 그의 위인을 들어본 즉, 그느 벌써 사십이 넘은 무기력한 선구자로서 비겁하기가 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언변은 좋다. 그 대신 실행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누구 하나 존경을 받지 못했다.
'사람이란 그저 그렇고 그런 게야! 지금 세상에는 특출한 사람이란 없는 게야!'
이와 같은 선입견이 그들의 뇌수에 박혔다. 사람이란 자기의 신념을 잃게 되면 바람에 불리는 갈대와 같이 향방 없이 흔들리는 법이다. 육 년 전까지 이 고을에서 지사로 존경을 받던 김도원은 구한국시대부터 사립학교 선생이요, 선각자였다. 그는 이 고을에서 선등으로 서울 배재학당을 졸업한 사람이다. 그의 제자도 수백 명이었으나 일경의 청년은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숭배하였다. 그런데 그느 면장질을 하다가 부정행위를 하고 쫓겨나서 지금은 술장사를 하고 있다. 그의 뒤로 기미년 통에 한때 사상가로 숭앙을 받던 최 목사는 어떤 불미한 일로 신도 중에서까지 신에 청년회가 있는데도 청년회를 읍내 청년회를 읍내 청년들이 따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소시민적 인생관은 사람에게 대한 신념을 부정하기까지 한 것이다.
희준이는 그들의 이와 같은 선입견을 위험시하였다. 그는 거의 일 년 동안이나 그들과 싸워왔다. 그는 어떤 때 스스로 실망하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자기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인물로 비관해본 적도 있었다.
'나도 그들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다. 나의 한 일은 무엇이냐?'
그의 이러한 생각은 모든 것을 다 집어치우고 멀리 해외로나 어디로나 가고 싶었다. 하나 그의 다음 생각은 그것을 물리쳤다. 그것은 마치 추수할 곡식을 문 앞에 두고 다른 곳으로 찾아가는 자기도피와 같기 때문에.
'나는 아직 한 사람 몫의 일꾼이 못되었다. 좀더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그는 다시 자기가 무슨 일을 해 보겠다는 것이 원체 외람된 짓이라고 반성해 보았다. 그러나 또한 공부를 한다면 어떡 공부를 더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또한 자기의 안일한 생활을 합리화하자는 용서치 못할 자기 기만이 아닌가? 무자비한 자기비판은 그를 아주 하찮은 존재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자기는 폐인같이 아무 소용 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 그는 가책에 견디지 못해서 답답증이 났다. 그런 때에 슬그머니 어떤 유혹이 독사처럼 머리를 쳐들었다. 음전이의 덜퍽진 엉덩이가 눈에 박힌다. 그는 야학을 가르칠 때마다 추파를 건네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석류 속 같은 잇속을 드러내고 웃었다. 그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고 몸을 떨었다. 그는 자기 아내와 음전이를 대조해 보았다.
'나는 언제까지 못생긴 아내를 데리고 살 의무가 있을까?'
별안간 그는 자기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천치다, 천치다! 천치 같은 소리를 또 할 테냐?'
그는 머리를 흔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벌떡 일어서자 그 길로 산 밑을 뛰어내렸다. 마을에 핀 살구꽃이 저녁 햇볕에 더욱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