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부터 예고되었던 수퍼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했습니다. 절기의 영향으로
한반도와는 상관이 없어 다행이었지만 언젠가 우리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칩니다. 산업 활동을 통한 이산화탄소의 증가 혹은 태양활동의 극대기,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지구의 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것과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재난중 하나를 목도하고 있고 우리가 조성해놓은 거주지의 삶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이옌’의 최대 풍속이 105m/sec 라고 합니다. 2002년 우리나라에 상륙했던 ‘루사’가
41m/sec 이었고 2003년 ‘매미’의 경우 61m/sec 이라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엄청난 바람으로 인해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낳았습니다. 특히 ‘매미’의 경우 부산항에
있던 골리앗 크레인 6기를 무너뜨려 경악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리고 아파트유리창
파손 건수가 어마어마하게 발생을 했습니다. 태풍이 올라올 때 유리창을 보호하려고
테이프나 신문지를 붙이는 것이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기억은 선명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태풍의 위력에 몸서리는 쳤지만 사람들은 더 높고
더 멋지며 가격이 더 오를만한 아파트를 열망했습니다. 그 결과 40층 이상의 고층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탄생합니다. 2005년부터 생긴 고층건물은 내진설계가 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위험한 풍압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지금 공사 중인 ‘롯데 슈퍼타워(123층)’의 내풍
설계는 최대 70m/sec 으로 했다고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이옌’의 최대 풍속은 105m/s
입니다. 그리고 ‘롯데 슈퍼타워’는 지금까지 가장 강했던 태풍 ‘매미’의 풍속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필리핀이 저리 피해가 컸던 것이 집이 튼튼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이옌’이 우리 쪽으로 왔다면 해운대 해변에 줄줄이 세워진 초고층 건물들이
멀쩡하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건축설계는 수십 수백차례의 역학 실험의 결과를 기초
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이 땅의 어떤 초고층 건물이 최대풍속 105m/s 에 견뎌낼 것을
가정해서 지어졌겠습니까? 수퍼 태풍 발생의 조짐은 오래전부터 예측되어왔고, 이번에
처음으로 경험을 했습니다.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라고 외면할 수는 있어도 진실은
피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생존은 결코 요행이 아닙니다.
이런 위험이 비단 초고층 건축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란 걸 잊지 마십시오. 지난
수 십 년간 도처에 쌓아왔던 바벨탑이 균열하고 급기야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없이 반복된 ‘warning'이 자장가처럼 나른하게 들리는 순간이 바로 모든 것이 붕괴되는
출발점입니다. 이제는 모든 감각을 열어 다가오는 재난에 대비하십시오.
‘수퍼태풍’이 멀리 태평양 동 쪽 끝에서 33km/hour 의 속도로 서진하고 있습니다.
부디 폐허위에 썩어가는 시체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