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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럭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지만 안전의식이 부족한 아이들은 피하지 않는다. |
비옥한 토지에 자라던 나무들이 사라진 그곳은 마치 사막 같았다. 바람이 불어 올 때마다 몸을 웅크려 봤지만 모래 섞인 바람은 몸 여기저기로 파고들었다. 마냥 길을 걷는데 경적소리가 급하게 울린다. 뒤를 돌아보니 육중한 몸체의 트럭이 굉음을 울리며 질주하고 있다. 몸을 돌리려 했지만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결국, 공사용 칸막이에 매미처럼 몸을 붙였다.
트럭이 지나간다. 건축 폐기물 따위를 실은 트럭에서 떨어진 먼지가 날린다. 이번에는 막을 수 없다. 코와 입으로 고스란히 스며든다. 손으로 막아보지만 역부족이다. 걷기 시작한지 10분도 안됐는데 지쳐 버린다. 이번에는 트럭 여러 대가 쉬지 않고 쫓아온다. 그래도 쉬지 않고 걸어간다. 방음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건물이 보인다. 마치 사막에 세워진 외로운 성처럼 보인다. 주변에는 단 하나의 건물도 없다. 모퉁이에 간판이 보인다. ‘천보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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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정지구의 외딴섬, 천보초등학교 |
담장 넘어오는 공사먼지, 아이들 무방비
“코를 풀면 먼지가 나와요”
2008년 옥정지구 기반공사가 시작되면서 철거대상 지장물에서 제외돼 존치된 천보초등학교는 많은 피해를 받기 시작했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비산먼지가 학교 담장을 넘기 시작한 것이다.
LH공사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학교에 방진벽을 쳤지만, 바람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건물을 철거하거나 작업을 할 때마다 먼지가 바람에 실려 운동장을 넘어왔고, 가끔은 아이들 코를 아프게 하는 냄새가 울타리를 넘었다.
학교 앞에서 만난 한 학생은 “먼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자주 기침을 하게 됐다”며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코를 풀면 먼지가 나온다”고 말했다.
동두천ㆍ양주교육청 관계자는 “날아온 먼지를 정화시키기 위해 내년 예산을 배정해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할 계획이다”고 말하면서도 “먼지가 워낙 많기 때문에 필터를 일주일에 한번은 갈아야 할 텐데 효용성이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먼지가 발생하는 공사구역이 매우 광범위 하다”며 “시공사 측에 먼지를 줄이기 위해 살수차 사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먼지 발생을 막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근본적인 대책이 없어 옥정지구 공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학생들은 먼지구덩이 속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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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불과 1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건설 자재가 가득하다. |
여기저기 개발 한창, 쉴 곳 없는 아이들
문구점 하나 없는 ‘교육환경’
그래도 학교에 있는 동안은 안전한 편이다. 교사들이 책임지고 아이들의 안전을 보살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밖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들로 가득 차있다. 학교 쪽문에서 1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건물을 철거한 건축 잔해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건물에서 떼어낸 유리창들은 깨져 날카로운 단면이 그대로 노출돼 있고 건물 잔해로 보이는 돌덩이에는 철근이 박혀있다.
또한 쪽문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깊이 2m의 구덩이까지 있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접근을 통제하는 안내문이나 가림막은 찾아 볼 수 없다.
다행히 심각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자칫 아이들이 뛰놀다가 넘어지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옥정지구를 조성하면서 학교 앞 문방구와 분식집 등 그나마 아이들이 놀고 쉬며 이야기 하던 곳이 사라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학교 앞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마땅히 놀 곳이 없어 폐자재 더미에서 놀다가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 된다”며 “아이들이 접근을 못하도록 울타리라도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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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 1.3m 위험 천만한 통학로, 아이들의 유일한 하굣길 |
폭 1.3m 통학로, 안전펜스도 없어
통학로 옆에는 대형 트럭이…
학교가 끝나면 학교 앞은 부모나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마땅한 곳이 없어 도로와 인접한 흙더미에서 차를 기다리기 일쑤다.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트럭이 굉음을 내고 지나갔지만 개의치 않고 흙장난에 빠져있다. 아이들은 “너무 많이 봐서 트럭이 무섭지 않다”고 태연스럽게 말했다.
저학년의 경우 아직 안전의식이 부족해 트럭이 큰소리를 내고 다가와도 겁을 내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가 매일 차로 등하교를 시켜준다는 한 학생은 “아빠가 절대 걸어서 집으로 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부모의 심정을 대신 전했다.
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걸어서 통학하는 학생들에 비해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천보초의 경우 거리가 가까운 세창아파트 거주자가 많아 대부분 학생이 도보로 통학로를 이용한다. 아이들이 걷는 1Km 가까이 되는 이 길은 학교 앞 10m에 설치된 보행자용 안전펜스를 제외하고는 아무 안전장치도 없어 매우 위험하다.
게다가 통학로 폭은 1.3m 정도여서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걸어가다가 도로 쪽으로 밀려나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친구와 함께 걸어가던 2학년 A군은 “장난을 치다가 도로로 떨어진 적이 몇 번 있다”며 “트럭이 달려와서 빠르게 피했지만 무서웠다”고 말했다.
또한 통학로에는 가로등 하나 볼 수 없는데, 이는 LH공사가 학생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옥정지구 공사를 위해 전신주를 서둘러 철거했기 때문이다. 밤은 생각 않더라도 아침에 안개가 짙게 끼면 가로등마저 없어 운전자들이 보행자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통학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는 내년부터 통학버스를 학생들에게 지원할 예정이지만 통학로를 정비하지 않은 스쿨버스 운행이 근본적 대책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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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자제에는 날카로운 철근이 삐져나와 아이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 |
속 타는 천보초등학교, 대책 없이 준공 때만 손꼽아
사업 잇단 지연… 위험상황 언제까지?
LH 옥정사업단 관계자에게 통학로와 관련한 안전대책을 물어봤지만 “계속적으로 학부모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에 날리는 비산먼지에 대해서는 “당초 설계보다 강화한 방진벽을 설치했다”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학부모와 학생, 교사들만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천보초등학교 손진홍 교장은 “공사로 위험한 곳이 너무 많아 항상 학생들의 안전이 염려된다”며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도록 시와 LH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이러한 피해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옥정지구 준공이 2013년으로 이미 2년이 미뤄졌고, LH의 재정 위기와 공동주택지 미분양 사태로 상당기간 지연될 우려가 있다.
천보초등학교 학생들은 양주의 시민이고 미래의 꿈나무다.
만약 눈으로 봐도 뻔한 문제로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시민들의 거센 반발과 울분에 직면할게 자명하다. 시와 LH는 만사 제쳐두고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기본적 책무가 무엇인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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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과후 기다릴 마땅한 곳이 없어 트럭이 왕래하는 곳에서 차를 기다리는 아이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