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보봐르 작 위기의 여자

<PRE> [제목] 위기의 여자 [페이지] F01 小劇場 (소극장) 산울림 開館 (개관) 1周年 (주년) 記念 (기념) 劇團 (극단) 산울림 弟 30 回 (제 30 회) 公演 (공연) S. 보봐르 作 (작) 吳澄子譯 (오징자 역) 鄭福根脚色 (정복근 각색) 林英雄演出 (임영웅 연출) 危機(위기)의 女子(여자) 公演日時(공연일시) : 1986년 4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公演場所(공연장소) : 小劇場 (소극장) 산울림 -극단 산울림- (322-5915) [페이지] F02 등장인물 모니끄 <44> 주부 모리스 <45> 의사인 남편 이자벨 <44> 친구, 주부 랑베르 <50> 상담 여의사 뤼시엔느 <18> 학생, 차녀 부부외의 역은 한 사람이 겸할 수도 있다. 시일 구월부터 다음해 삼월까지 장소 모니끄의 집과 여기저기 무대 특별한 장치는 필요없고 장면에 따라서 분위기를 만들수 있는 간단한 소도구들이 있으면 된다. [페이지] 001 막이 오르면 어두운 무대에 조명 두어 줄기가 엇갈리며 이륙하는 비행기의 소음이 들린다. 탑승을 안내하는 아나운서 멘트가 들린다. 소음들이 한동안 뒤섞여 들리다가 가라 앉으면 이별하는 부부의 음성이 들린다. [모리스] 봐요 무쟁을 경유하는 비행기는 오번 출구야 모니끄 이쪽이야. [모니끄] 여보 난 웬지 불안해요 [모리스] 자 여기서 줄을 서야지 [모니끄] 혼자 떠나기가 아무래도 좀... [모리스] 미안해 여보. 정말 미안해. 일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바빠질줄은 몰랐어. 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까지 매해가던 여름휴가를 취소할 필요는 없잖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서 내 몫까지 즐기다가 와 줘요. [모니끄]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이상할까요? [모리스] 진정해. 무쟁은 처음 가는데가 아니잖아? [모니끄] 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안 놓여요. [모리스] 이젠 애들도 다 떠났으니 우리 둘이만 남은 새 생활을 [페이지] 002 차분히 설계해야 할거요. 여보 좋은 기회가 될거야. [모니끄] 그래서 나도 혼자 나서긴 했는데... [모리스] 미안해. 겨울 스키여행은 우리 꼭 같이 갑시다. [모니끄] 할수 없지요. 백혈병에 시달리는 인류를 위해서 당신을 양보해야지. 그럼 여보 [모리스] 잘 다녀와요. 모니끄. (정답게) 명심해둬. 당신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 안돼. 건강하게 돌아와야 해 [모니끄] (다정하게) 당신도 교통사고로 죽지 마세요. 검은 옷은 나한테 안 어울려요. 모리스 여보 다녀올께요 (탑승 안내 방송의 소음과 함께 다시 이륙하는 비행기 소리. 무대를 뒤 덮을듯 울리다가 사라진다. 조명도 사라진다. 어둠속에서 한동안 포근한 음악이 들리다가 밝아진다. 밤. 모니끄의 집 거실이다. 고급한 옷감으로 단순하게 디자인한 편안한 옷을 입은 모니끄가 밝은 얼굴로 전화를 받고 있다) [모니끄] 여보세요 (반갑게) 꼴레뜨 잠 깼구나. 어떻니? 열은 좀 내렸어? 저녁은? 장 삐에르와 같이 먹었어? 네 신랑 착하구나. 일찍 일찍 들어와서 네 시중도 잘 들어 주고... 아빤 아직 안들어오셨어 응. 여행에서 [페이지] 003 돌아와보니 더 바빠지신 모양이야 그래 무쟁에서 돌아온지 사흘이나 됐는데 아직 저녁한번 같이 오붓하게 들어본 일이 없단다. 약은 먹었니? 응 낮에 너의집에 갔다가 네가 약을 먹고 잠들었길래 대강 집안을 치워 놓고 왔어 할수있니? 주부가 병이 나면 집안 어수선해지는거야. 어쩔수 없지 뭘... 아냐. 너 깰때까지 기다릴수가 없었어. 저녁때는 다되고 아빠가 요새 지치신것 같아서 별식이라도 해 드릴 생각을 하니 장도 봐야겠고 해서... 그래 무슨 감기가 그렇게 독하니? 빨리 나아야지 응? 뤼시엔느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뉴욕이 너무너무 재미 있댄다. 그앤 에미 쓸쓸한건 생각도 안해 응... 그래... 이젠 너희들 시중들 일도 없어졌으니까 뭐든지 내 소일거리를 찾아야지. 불우 청소년을 돕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참가해 볼까 생각중이야. 지금? 글쎄 잠자리에 들까 뜰게질을 좀더 할까 생각하는 중이지. 아빠 가디간... 응 올이 굵은 회색실로 좀 큼직하게 떠볼려구... 원래 집에서 뜬옷 좋아하시잖니? 걱정마 곧 오실테니까... 응 이제 그만 끊자. 장 삐에르가 좋아하지 않을거야. 젊은 남자들은 제아내가 친정 식구들하고 너무 가까운 것도 질투한단다. 그래 그래 약 먹고 푹 자라. [페이지] 004 내일 낮에 들릴께. 응 안녕. (전화를 끊는다. 할일이 없어서 허전한듯 잠시 서 있다가 한옆으로 가서 전축을 킨다. 음악이 들린다. 뜨게질감을 들고와서 의자에 앉는다. 몇번 코를 세어보다가 차츰 뜨게질에 몰두한다. 음악이 한곡 끝난다.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모리스가 조금 지치고 긴장한 모습으로 들어온다. 모니끄 일어나서 걸어가 전축을 끄며) [모니끄] 모리스 지금 몇신줄 아세요? [모리스] <우울하게> 알지 세시야. [모니끄] 설마 여태까지 병원에 계셨던건 아니지요? 초저녁에 병원으로 전화를 했는데 받는 사람이 없었어요. 꼴레뜨가 열이 심해서 의논하려고 전화를 했었어요 [모리스] <천천히 웃옷을 벗으며> 꼴레뜨가 여전히 나빠? [모니끄] 심해요. 그런데 어쩌면 한번도 가볼 생각을 안하우? 솔직히 말씀하세요. 모리스 당신 요새 어디다 정신을 팔고 다니지요? 일때문에 바쁜것만은 아니예요. 노름이라도 시작했수? [페이지] 005 [모리스] 노름? 아냐. [모니끄] 그럼 밤 새워 술 마시고 한 풀일이라도 생겼어요? [모리스] <한쪽에서 술을 따르며> 아냐 [모니끄] <모리스의 웃옷을 집으러 가며> 그럼 애인이라도 생겼수? 어디 감춰둔 여자라도 있어요? [모리스] 응 <술 마신다> [모니끄] <옷을 걸러가며> 도대체 무슨일루... <멈취서서 돌아보며>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 [모리스] <침착하게> 당신 말이 맞다구... 여보 정말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 [모니끄] <옷을 걸고 돌아보며> 그게 누군데요? [모리스] 당신도 알거야. 변호사를 하는 노엘리 게라르 라고... <<[모니끄] <당황하며> 왜 하필 그 여자를... [모리스] 모르겠어.>> <<0>> [모니끄] 그 여자 설흔 여덟살이라던데... 과히 젊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잖아요? [모리스] <할말 없다는 시늉한다> [모니끄] <얼떨떨해서> 여보 농담이예요? [모리스] 아냐. 정말이야. 사실은 그동안 퍽 걱정했었어. <술 따르며> 당신한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하고... [페이지] 006 그런데 이렇게 물어줘서 정말 잘됐어. 감추고 말 안하기는 싫었으니까... [모니끄] <의자에 앉으며> 언제부터예요? [모리스] <술 마시며> 다섯주일쯤 됐어. [모니끄] <한참 쳐다보다가> 그래서 나 혼자 여행을 가게 했군요. 그동안 그 여자와 지내려고... [모리스] 미안해. 어쩔수가 없었어. [모니끄] <다시 일어나며> 그때 공항에서... 그렇게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더니... [모리스] 사실은 그때 털어놓고 말하고 싶었어. [모니끄] 그날 당신이 하도 초조해 하고 이상해서 난 불안해서 혼났어요. 막상 비행기가 뜨고 나니까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어요? [모리스] <불안하게> 신혼초에 당신이 말했었잖아? 만일 내가 배신하게 되면 슬퍼서 저절로 죽어버릴 거라고..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난 정말 걱정스러웠어. [모니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람이 어디 그렇게 쉽게 죽나요? [모리스] <살피며> 한잔 하겠어? [모니끄] 네 한잔 주세요. 너무 놀라서 난 제 정신이 아니예요. [모리스] <술 따라서 주며> 여보 정말 마음 상하지는 않았겠지? [페이지] 007 [모니끄] 아직 모르겠어요. <마시고> 좋아하는 사이면.... 어느 정도예요? [모리스] 같이 잤어. [모니끄] <아연하며> 나 여행간 동안? [모리스] <끄덕인다> [모니끄] 요새도 매일 만나요? [모리스] 아니 매일은 아냐. 당신도 알다시피 일이 정말 바쁘니까... 그렇게까지 자주 만나지는 못해. [모니끄] 일주일에 몇번? [모리스] <생각하며> 음... 네번 정도밖에... <가까이 앉으며> 모니끄 제발 단순하게 생각해 줘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무슨 변화가 있는건 절대로 아니니까... [모니끄]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모리스] 그럼 당신은 당신이고 노엘리는 노엘리야. 당신은 내 생활의 전부가 아니요? 한잔 더? [모니끄] 네 <받으며> 얘기해 보세요. 그 여자는 어떤사람이예요? [모리스] 알잖아? 파티에서 몇번 봤을텐데? [모니끄] 그 정도루야 사람을 알수 있나요? [페이지] 008 [모리스] 이혼하고 지금은 혼자 살아. 열네살 먹은 딸이 하나 있지. [모니끄] 네. 내 친구 디아나의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 들었어요 [모리스] 놀랄만큼 지적이고, 개성적이며 재능이 있지. 여보 노엘리는 정말 대단한 여자야 <술을 따라 준다> [모니끄] <술 마시며> 어떤점에서요? [모리스] 적극적으로 인생을 산다는 점에서나 재능으로보나 비범함이 눈부시지. 변호사로써도 성공하고 있어요 [모니끄] 스캔들이 많은 사람들이잖아요? [모리스] 밖에서 활동하는 여자란 필요 이상으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마련이니까... [모니끄] 노엘리가 상대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화려하고 사교적인 사람들이라는데 어쩌다가 당신같은 샌님에게 관심을 갖게 됐을까요? [모리스] <흐뭇하게> 글쎄 [모니끄] 노엘리는 뭐래요? [모리스] <멋적게> 언젠가 내가 신문에 썼던 연재 칼럼에 크게 감명을 받았대. [모니끄] 맙소사... 그 글에... [페이지] 009 [모리스] <상처 받으며> 왜? 당신 마음엔 안 들었었어? [모니끄] 신문에 나는 글을 읽고 연애감정을 느낀다는건 좀 우습잖아요? 글이란 어차피 자기 자신을 미화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노엘리 나이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건 너무 자의식이 없어요 [모리스] <씁쓸하게> 그 사람은 사물을 편견없이 받아 들이는 능력을 갖고 있거든 [모니끄] 나는 편견을 갖고 사물을 본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모리스] 당신답지 않아. 비꼬다니... 또 줘? 지나치잖아? [모니끄] <미소하며> 결혼생활 이십이년만에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뜻밖의 고백을 들은 아내는 조금 과음할 권리가 있지 않겠어요? [모리스] <은근히> 여보 당신이 근래에 이렇게 매력있어 보이기는 처음이야. <전축을 키며> 연애시절처럼 우리 이 레코드를 들어볼까? <<볼까?>> <<0>> 어때? 항상 좋아했잖아? (음악이 대사를 방해하지 않는 정도의 크기로 들린다) [페이지] 010 [모니끄] 치사하게 아부하지 마세요. 이상한 얘기를 꺼내놓고... [모리스] (긴장이 풀려서) 당신이 이 이야기를 이렇게 편안하게 받아 들여 주어서 난 정말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노엘리와의 이야기를 내가 누구하고 제일 하고 싶었겠어. 보통사람의 경우엔 아내와 애인 이야기를 이렇게 한다는건 불가능 할거야 허지만 모니끄 우린 가능하지. [모니끄] 날 너무 믿지마세요 [모리스] (서성이며) 당신한테 말할게 있어 노엘리의 고백을 들었을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말해볼까? [모니끄] 해보세요. [모리스] 그렇게 멋있고 지적이며 세련된 여자에게도 내가 남성으로 어필할수 있었다는 사실... 난 정말... 이런 얘기 들어도 괜찮겠지? 십년은 젊어지는것 같았어. 청춘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랄까... 활력같은 것을 느끼겠더라니까... [모니끄] 동양의 무슨 만병통치약 처럼? [모리스] (행복하게) 당신도 이 기분 같이 느껴 줄수 있지! 안그래? [모니끄] 모르겠는데요. 난 마치 저녁 잘 먹은 후에 그게 상한 고기였다는 소리 들었을때처럼 속이 거북해요. [모리스] 당신이 이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여주니까 말하기도 쉬운데 노엘리와 내가 데이트 하는 날은 집에 들어오지 않겠어. [페이지] 011 물론 점심은 집에와서 먹고... 괜찮겠지? [모니끄] (어리둥절 하며 전축을 끈다) 네! 뭐라구요? [모리스] 결국 노엘리와 보내는 시간이 당신과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지는 않을테니까... 여보 당신 취한것 같군. 그만 들어가서 잡시다. [모니끄] 꼴레뜨 한테는 언제 가볼거예요? [모리스] 내일이라도 가봐야지 당신한테 털어놓지도 못하고 착잡한 기분으로 그애를 보러가기가 싫었어. 이젠 당신도 다 알게됐으니까 홀가분한 마음으로 뭐든지 할수 있을것 같애. 자 일어나요. [모니끄] 먼저 들어가세요. [모리스] 그럴까? (모리스 들어간다. 모니끄 일어나서 전축 옆의 탁자 가까이 와서 술을 한잔 따라서 든다. 조명이 변한다. 술잔을 손에 들고 생각에 잠겨 서 있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몸짓을 한다 다시 생각에 잠겨서 서있다가 객석 가까이로 온다. 객석을 향해서 친숙 [페이지] 012 하게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어조로 말한다.) [모니끄] 처음에는 당황해서 제 정신이 아니더니 차츰 착잡해지더군요. 화를 내어야 할건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구요. (정면의 응접탁자에 술잔을 놓고) 어떻게 이런일이 생길수가 있었을까요. 나이 마흔 네살... 결혼생활 이십이년에 이르기까지 전에는 한번도 이런일이 없었는데요. 성실성의 전형과 같은 모범 부부 <<...>> <<0>> 라고 불리우던 우리 한테 이런일이 생기다니.... (의자에 앉으며) 사흘밤 사흘낮을 혼자 생각하다가 결국 친구 이자벨에게 전화를걸지 않을수가 없었읍니다. 그애는...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남편이 바람을 <<부린>> <<핀>> 경험 말에요. (다시 일어나서 서성이며) 나하곤 인연이 없는 경험인줄 알고 있었는데 ... 결국 예외라는건 없는 모양이지요? (무대 안쪽까지 걸어갔다가 갑자기 돌아보며) 다음날 모리스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전화를 했는데 노엘리와 데이트를 한다더군요. 그때까지만해도 긴가민가 했는데 갑자기 노엘리<<의 존재가>> <<라는 인물이>> 우리 사이에 확실히 존재 한다는 생각이 들대요. (어이없는듯 웃으며) 밤이 되니까 이건 확실한 정도가 아니었어요. 습관이라는게 사람을 형편없이 약하게 길들이는 또 하나의 마약이라는걸 생각해본 일이 있으세요? 물론 네가 혼자 잔 경험이 아주 없는건 아니지요. [페이지] 013 나 혼자 여행을 간일도 있었고 그이가 출장을 간일도 있었고... 허지만 다른 여자와 자러가기 위해서 내옆을 비우는 일은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의자에 앉으며 호소하듯) 난 정말 놀라고 당황했어요. 텅빈 침대가 왜 그렇게 넓고 밤이 왜 그렇게 긴지 무섭기까지 하더군요. 모리스는 다음날 행복한 얼굴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노엘리와 어디에 갔었는지 무얼 먹었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자세히 이야기 했어요. 그이는 혼자만 즐겁고 싶지는 않으니까 내가 듣고 같이 즐겨주기를 바란거지요.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만 즐거움이 더 강해지는게 부부의 습관이긴 하지만 난 갈피를 잡을수가 없대요. 도대체 같이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이는 오늘은 돌아오지 않는다더군요. 어제는 나와 함께 지냈으니까 오늘은 노엘리의 날이라는 거지요. 사실 모리스는 놀랄만큼 공정한 사람 이랍니다. (말하는 동안 이자벨 경쾌한 모습으로 들어온다.) [모니끄] (일어나며) 이자벨 어서와 (부끄러운듯) 집안이 어수선하지? 미안해 아직 청소도 못허어. [이자벨] 웬일이니? 너같은 살림꾼이? [모니끄] 그만 혼비백산해서 말야. (무안한듯) 어떻니? 새색씨가 당한일도 아닌데 내가 너무 수선을 떠는 거야? [페이지] 014 [이자벨] (따뜻하게) 아냐 나이가 무슨 상관이니? 여자 한테야 아무튼 천지개벽 같은 사건인데? 허지만 좀 진정할 필요는 있겠다. 너 아주 흥분한것 같아. 맙소사 얼굴이 며칠 사이에... [모니끄] (당황하며) 그럴거야. 잠을 못 잤거든. [이자벨] 모리스는 계속해서 집을 비우니? [모니끄] 계속은 아냐. 하루 건너씩... 그이는 아주 공평<<하게>> <<0>> 하려 고해. [이자벨] 태도는 어때? [모니끄] 아주 상냥해. 내가 기분 상할까봐 퍽 마음을 쓴단다. [이자벨] 그렇게 서성대지 말고 여기와서 앉아봐. [모니끄] (앉으며) 말해봐. [이자벨] 넌 이일을 어떻게 생각하니? [모니끄] 모르겠어. 그냥 캄캄한 밤에 낯선 길에 내팽겨친것만 같아. [이자벨] (살피듯 보며) 비극적으로 생각 하는건 아냐? [모니끄] 처음엔 놀랐지만 지금은 모르겠어. [이자벨] 우선 있을수 없는 일이 아니라는건 알겠지? [모니끄] 보통 있을수 있는 일이니? [이자벨] 멀쩡한 남자가 결혼 이십이년만에 처음 바람이 났다면 [페이지] 015 상당히 양호한 편에 속한다. 보통<<을>><<은>> 더 일찍 더 자주 사고를 내. [모니끄] 그럴까? [이자벨] 너 모리스한테 화를 냈니? [모니끄] 그럴 정신도 없었어. 혼비백산했다니까... 난 좀 얼띠잖니. [이자벨] 잘했어. 이런건 말하자면 결혼생활의 긴 도정속에 잠깐 일어났다가 해결되는 교통사고 같은거니까 고비만 잘 넘기면 돼. [모니끄] 그렇게 생각해? [이자벨] 그럼 처음엔 나도 세상의 종말이나 온것처럼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별게 아니었어 남자만큼 귀소본능이 강한 <<종류>> <<동물>> 도 없단다. [모니끄] 정말? [이자벨] 내생각엔 남자들은 우리 여자들이 생각하는것 보다 한결 더 단순하고 이기적이고 연약한게 아닐까 싶어. 목에 익은 오랜 결혼생활을 깨트리기엔 보통아닌 각오와 용기가 필요한데 어지간한 궁지에 물리지 않고는 그럴 엄두를 못낼거야. 알겠니? 아내가 사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비극을 만들거나 애인한테 발목을 꽉 잡혀서 달아나지 못하게된 경우 [페이지] 016 가 아니면 이혼같은건 대체로 생각도 못해. [모니끄] (담배 피우며) 결국 일시적인 사태란 얘기구나. [이자벨] 참을성만 기르면돼. 모리스도 노엘리의 정체를 알게돼면 곧 열이 식을 테니까 ... 아무튼 형편없는 속물아냐? 세련된 매너라든가 화려한 제스츄어로 남자들을 곧잘 현혹시키는 모양이지만 그런 가짜는 오래가지 못해. [모니끄] 그래도 모리스는 정신없이 빠졌단다. [이자벨] 연이중이니까 그렇겠지 그 여자가 자기의 업적이라고 입만 열면 자랑하는 랑빨 소송사건의 내막을 가르쳐주지 그러니? 그 여자는 자료나 수집하는 말단 조수에 불과 했는데도 마치 자신이 변호 한것처럼 으시대잖아? [모니끄] 내가 헐뜯는다고 생각할거야. [이자벨] 모리스한테 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좀 줄 필요가 있구나. 가만있어봐. 그 여자가 요새 또 다른 누구와도 데이트 한다는 말이 있던데... [모니끄] (흥미있게) 누구와? [이자벨] 알아볼까? [모니끄] 그래 할수있으면 ... [이자벨] 디아나가 잘 알거야. 그애는 한때 노엘리와 친했었으니까... [페이지] 017 참 노엘리가 딸을 얼마나 속물스럽게 키우는지 들은일 있니? 수영 승마 요가 같은걸 다 가르치고 옷도 고급 상표가 아니면 입히지 않는데 그런데도 그앤 제엄마 한테 불만이 많댄다. [모니끄] 딸들은 다 엄마한테 불만이 많지 <<뭘>> <<뭐>> , 우리 뤼시엔느는... [이자벨] 참 그애는 잘있대니? 편지는 가끔 와? [모니끄] 음 일이 그렇게 되니까 애들이 떠난 뒤에 일이 생긴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 뤼시엔느와 꼴레뜨가 집에 있을 때 이런일이 있었으면 어쩔뻔했니? [이자벨] 애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융통성 있단다. 어떻튼 엄마가 당한 사건이지 저희들이 손해볼 일은 아니거든. 꼴레뜨는 좀 나았어? [모니끄] 계속 그래 걱정이야. [이자벨] 이일 알고 있니? [모니끄] 아니 말 안했어 그앤 제 아빠를 하느님 다음으로 아는걸. [이자벨] (일어나며) 항상 명랑하고 상냥하게 대하고 참을성을 기르는것 ... 그게 바로 이기는 비결이야 알았어? 내일은 뭐할거니? [모니끄] 모리스가 밖에서 식사하재. [이자벨]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있으면서도 그만큼 너한테 마음을 [페이지] 018 쓰고 있다면 별루 걱정할일도 아니다. 얘 난 간다. [모니끄] (일어나서) 와줘서 고마워. [이자벨] (나가다가 돌아보며) 네가 노엘리 게라르보다 한결 매력있단다. 알고 있어? (파이팅 하라는 몸짓을 해보이고 나간다. 조명이 변한다. 모니끄 조금 안정된 모습으로 주변을 정돈한다. 잠깐 전축을 들었다가 신경질적으로 끄고 다시 천천히 방을 치운다. 전화벨이 울린다. 받는다.) [모니끄] 여보세요. 디아나 ... (웃음) 소문이 빨리도 퍼졌구나 어제 이자벨 한테서 들었어? 음... 난... 괜찮아. 그렇게 생각해? 집안에만 충실하면 적당한 바람기는 용인 해 줘야 하는거야. 이자벨의 의견과는 다르구나. 무얼 단념해? (웃음) 그럼 얘 우리 나이에 신혼시절 같은 기분이야 피차... 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편의 바람기를 인정해야 한다는건... 난 모르겠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야. 응. 모리스는 어제 ... 응? 아냐 낮에는 너무 바빠서 집에 점심먹으로 오지도 못해. 잘못봤을거야. [페이지] 019 노엘리와 그런 전시회에 갔을리가 없어. 그이는 전위미술을 싫어한단다. 시각적 새디즘이라고 경멸해. 그리고 노엘리와 무얼 했는지 나한테 다 얘기하는데 그런 얘긴 안했었어. (당황하며) 모리스는 거짓말 ... 안하잖니? 응. 괜찮아 고마워 안녕. (전화를 끊고 두손을 맞잡으며 산란해 한다. 조명이 더 침침해 진다.) [페이지] 020 [모니끄] (호소하듯 말한다) 디아나는 이자벨과 전혀 다른 의견을 갖고 있어요. 남자란 본능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니까 우리가 거기에 맞춰서 항상 새롭게 변모할 수 없다면 포기하고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는 거지요. 계산에 밝은 디아나 다운 말인데... 그다음 얘기는 ... 믿을수가 없어요. 요새 점심때 매일 그이가 노엘리와 함께 다닌다는 거예요. 바빠서 집에와서 식사할 틈이 없다더니... 그렇다면 나하고 지내는 시간보다 노엘리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것 아니예요. 거짓말까지 하면서 그렇게 싫어하던 전위미술 전시장에까지 드나든다니... 모리스에 대한 노엘리의 <<>><<영향력이>> 그렇게 <<>><<까지>> 대단한 걸까요? (어두워진다. 어둠속에서 계속 대사가 이어진다) [모니끄] 나는 이십이년 동안이나 같이 살았어요. 그이의 취미를 바꿀수가 없었는데 ... 아니 내가 그이의 취미에 적응해 갔었지요. 아니면... 처음부터 취미와 기호가 비슷해서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페이지] 021 (무대 한귀퉁에만 조명이 들어온다. 외출복 차림의 모니끄가 초라하게 식당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모리스 들어온다.) [모리스] 모니끄, 오래 기다렸소? [모니끄] (쳐다본다) [모리스] (앉으며) 웬일이요? 며칠사이에 얼굴이 몰라보게 상했으니 ... [모니끄] (변명하듯) 잠이 부족한가봐요. [모리스] 왜? [모니끄] (외면한다) [모리스] (감동하며) 그일로 괴로워하는구려. 여보, 이러지 말아요. 내가 말했었잖아? 우리 사이엔 아무 변화도 없다고... [모니끄] (눈물을 닦는다) [모리스] (손수건을 꺼내주며) 당신이 이러면 내 마음이 어떻겠소? 날 봐서라도 이러지 말아요. [모니끄] 미안해요. 허지만 견딜수가 없어요. [모리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겠소? 이번일은 내 직업처럼 내가 바깥에서 보내는 생활의 일부 [페이지] 022 분에 불과하다고.... [모니끄] 허지만 직장일로 그렇게 자주 집을 비우지는 않았잖아요? (상반신이 희미하게 보이는 웨이터가 음식을 갖다 놓는다) [모리스] 그건 처음에 말했던대로 불가피한 일이지 않소? 난 분명히 시간을 공평히 나누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아무리 바빠도 점심은 집에와서 먹도록 할까? [모니끄] 난 무서워요. 알수없는 함정을 향해서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한 것만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지요? [모리스] 충격이 너무 컸구려. 마음을 좀 단단히 가져줘요. 이번일로 당신이 불행해 진다면 난 견딜수가 없을꺼야. [모니끄] (진정하려 하며) 어떻게 하다가 이런일이 생겼을까요? 우리 처음 만났을때 서로 얼마나.... [모리스] 지금도 마찬가지야. (식사하며) 그때 내가 한말 기억해? 당신이 떠나면 난 죽어버릴거라고 매일 맹세했었지. 노엘리가 나타났다고 해서 당신을 잃을수는 없어요. 진정해줘, 좀더 마음을 쓸테니까... 왜그래? 전혀 식사를 못하는구려. [페이지] 023 [모니끄] 입맛이 없어요. [모리스] (침묵하다가) 상담의사를 한번 만나 보겠소? [모니끄] 왜요? [모리스] 갈등이 심할때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수도 있으니까 ... [모니끄] 난 당신만 있으면 돼요. [모리스] 일거리를 찾아보면 어때? [모니끄] 불우 청소년들을 돕은 일을 할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 [모리스] 부탁이니까 제발 객관적으로 생각해줘. [모니끄] (진정하며) 꼴레뜨는 어때요? [모리스] 좋아졌어. 아직 외출은 어렵지만... 그애는 뤼시엔느 같이 반항적이지 않으니까 당신을 만나면 위로해줄 수 있을거야. [모니끄] 애들 한테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모리스] 당신 좋을대로 해요. 들어봐, 아까 부탁해 놓았었지. 우리 음악이야, 좋지? (음악에 귀 기울이다가) 자 한잔 하겠어? [모니끄] (귀 기울이다가 미소하며) 누가 생선요리에 붉은 포도주를 들어요? [모리스] 파격의 멋이 있잖아? [페이지] 024 자, 당신도 맹꽁이 같이 굴지말고 들어봐요. [모니끄] 새로운 식사법 이군요. [모리스] 취미도 가끔 개선할 필요가 있으니까 .... [모니끄] 그래서 이젠 전위미술도 좋아지셨나 보지요? [모리스] (찔린듯) 내 뒤를 캐고 다녔소? [모니끄] 누가 전화를 해줬어요. 난 요새 친구들 사이에서 동정의 대상이예요. 설마 했더니 사실이었군요. [모리스] (화를 참으며) 겨울 휴가 여행 계획을 세워봐요. 이십일중에서 열흘은 노엘리와 보낼테지만 나머지는 당신과 갈테니까 ... 노엘리에게도 말해 놓았어. 당신이 스키를 좋아하니까 우리는 스키여행을 갈거라고.... [모니끄] 허락을 받았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모리스] (나무라듯) 모니끄. [모니끄] 좋아요. 다른 얘기를 합시다. [모리스] (즐겁게) 요새 무어 대륙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어. 당신 그런 얘기 들은일 없지? 태평양 밑에 가라앉았다는 전설의 대륙 말야. [모니끄] 노엘리는 알고 있던가요? [페이지] 025 [모리스] (참을성 있게) 그 사람은 상당히 박학다식해. 어떤 방면의 화제에도 막히는 일이 없어요. 끊임없는 자기 교육의 결과겠지만... [모니끄] 박학다식을 과시하려고 상식백과를 읽는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보통 사람은 아는걸 다 입밖에 내어서 떠들지는 않아요. [모리스] (준엄하게) 모니끄 . [모니끄] 미안해요. 난 정말 형편없는 질투쟁이 같군요. [모리스] 멕시코에 아즈테크 문명이 생기기 전에 존재했던 신비스러운 문명이 무우대륙과 관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론을 어떻게 생각해? [모니끄] (자학적으로) 모르겠는데요? [모리스] 당신도 앞으론 지적인 일에 좀 관심을 갖어줘. [모니끄] 지금까지는 내가 무식하고 무지했다는 얘긴가요? [모리스] 그게 아니고 좀더 적극적으로 수준을 높이자는 얘기지. [모니끄] 여보, 학교에 다닐때 난 결코 당신한테 뒤지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요새도 당신한테 문화적으로 뒤지고 있다고 생각해본 일은 없어요. [모리스] 그만 둡시다. 우린 즐겁게 얘기도 할수없단 말이오? [페이지] 026 [모니끄] 미안해요, 또 실수했군요. [모리스] 일어납시다. 그만 . (두사람 나간다. 식당의 칸막이와 테이블도 반대쪽으로 퇴장한다. 음악, 사라지고 무대 전체가 밝아진다. 모니끄의 집 거실이다. 이자벨이 불안한 얼굴로 전화를 하고 있다.) [이자벨] 꼴레뜨? 나야 이자벨 아줌마 ... 그래 아프다는 말은 들었어. 좀 어떻니? 폐렴으로 가는것 같아? 아니겠지? 믿지마. 의사들이 얼마나 허풍을 잘 치는데... 엄마 거기 안갔니? 안갔어? 어젯밤에두? 이상하네 ... 알았어, 응 좀 그럴일이 있어. 몸조리 잘해라. 내가 한번 갈께. 안녕. (전화를 끊고 초조하게) [이자벨] 어딜 갔을까? 어젯밤 부터 내내 간곳을 모르겠으니 ... <<>><<설마...>> (수화기를 들고 전화건다) 디아나 얘, 아무래도 이상해. 꼴레뜨네도 안갔대, 어떻게 하면 좋<<>><<으>>니? [페이지] 027 네 짐작이 맞나봐. 타격이 너무 컸어. 얘 모리스가 일년이나 감쪽같이 속였으니 이 순진한 모범생이 얼마나 타격이 컸겠니? 더구나 노엘리가 모리스와 곧 결혼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다닌다는데 그 소문을 들었을지도 몰라. 그동안 두사람이 노엘리네 집에서 파티도 꽤 여러번 열었대잖아? 아주 어울리는 한쌍으로 말야. 네가 해봐. 시체 공시소에 어떻게 전화를 해? (모니끄 지친 모습으로 들어와서 듣고 있다가 스카프를 벗으며) [모니끄] 왜? 내가 물에라도 빠져 죽었을까봐? [이자벨] (놀라서 수화기를 놓는다) 모니끄, 너 어디 갔었니? [모니끄] (외투 벗으며) 여기 저기... [이자벨] 밤새도록? [모니끄] 응 [이자벨] 너무 걱정이 되어서 미치는줄 알았어. 디아나가 어제 밤에 전화를 했는데 네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강가로 가는걸 차타고 가다가 봤대. 동행이 있어서 내리지 못했다고 날보고 빨리 가보라는 거야. 뛰어나가 봤지만 어디 있어야지. [페이지] 028 오다가 삼거리 약방주인을 만났는데 네가 진정제를 큰병으로 사갔다는거야. 사람이 미치지 않겠니? 그럼 오늘 낮엔 어디 갔었어? [모니끄] (술을 따라서 마시며) 낮에 낄랑을 만나러 갔었어. 알지? 몇년전에 나한테 프로포즈 했던 화가 ... [이자벨] 맙소사. 모니끄 홧김에 뭐하려는 것도 아니겠고... 왜 만났어? [모니끄] 다른 남자한테는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싶었어. 그 사람은 아직도 날 원해. 허지만 모리스한테는 노엘리만 여자란다. 봐. 이자벨 내가 노엘리보다 밉고 늙었고 매력없고 무식하니? [이자벨] 무슨 소리니? 네가 백배는 예뻐. 남자들이 뭐 이쁘고 미운걸 아니? 그냥 제눈에 안경이지. [모니끄] (애처롭게) 처음엔 안그랬는데 거울을 보고 있으면 점점 자신이 없어져. (외면하고 눈물 닦으며) 걱정 시켜서 미안해. [이자벨] (눈치보며) 디아나가 그러는데 확실하지 않대. 노엘리가 또 누구와 데이트 한다는 것 말이야. [페이지] 029 그 출판업자 부인이 그러는데 자기 남편의 상대가 유명한 여류 변호사라는것만 알지 이름은 모른다고 한대. (위로하며) 모니끄, 우리가 어쩌면 사태를 잘못 판단했는지도 몰라. 좀 침착하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지켜볼 필요가 있을것 같애. <<>><<어쩌면 지구전이 될지도 모르니까- . 어때, 기분 괜찮니?>> 그럼 난 갈께... 좀 쉬어봐. 응? (모니끄 끄덕인다. 이자벨 정답게 모니끄를 끌어안고 나간다. 모니끄, 술잔을 놓고 마구 흩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지친듯 말한다.) [모니끄] 아무래도 난 병이 나는것 같아요. 안자고 안먹고 걸어다녀서 그런지... <<>><<속이 텅빈것 같더니>> 사흘전 부터 까닭없이 출혈을 하는데 멎지를 않는군요. 방에 텅빈 침대에 혼자 누워 있으면 내 목숨이 피와 함께 새어나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렇게 누워서 어둠에 파묻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떻게 하면 모리스를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요? (두손을 호소하듯 내밀었다가 쪼그리고 앉으며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페이지] 030 모리스 사나운 기색으로 들어온다. 가방을 팽개치듯 놓고 가까이 와서 탁자위에 놓인 책을 들여다 보며 거칠게 뒤적인다.) [모리스] 날개돋힌 뱀이라... 케쓰알코아틀인가? (책을 던지며) 갑자기 멕시코 전설에 흥미가 생겼나? 이런식으로라도 노엘리와 맞서 보려는 거요? [모니끄] (바로 앉으며 냉담하게) 그건 제임스 죠이스의 작품이고, 당신과 노엘리의 그 우스꽝스러운 무우대륙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당신 왜 나를 모욕하지요? [모리스] 왜냐고? 당신 뭐하러 낄랑을 만났지? 만나서 무얼했어? 내가 모를줄 알았어? [페이지] 031 [모니끄] 만나서 술을 마셨어요. 춤을 추고... 얘기를 했<<지>><<어>>요. [모리스] 무슨 유치한 짓이야? [모니끄] <침착하게> 나도 당신처럼 내 여성적 매력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낄랑 한테는 내가 아직도 탐나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자예요. 그래도 나는 비참하고 아무 위안도 받지 못했어요. 이것도 역시 내가 노엘리를 의식해서 한 데모라고 생각하세요. [모리스] (모멸하듯) 좋아 그건 덮어놓고 다음 얘기를 합시다. 왜 사람을 풀어서 노엘리의 뒤를 캐는거요? [모니끄] 뒤를 캐요? 누가요? [모리스] 디아나를 시켜서 노엘리의 뒷조사를 하는 것을 노엘리가 모를줄 알았소? 무슨 추한 짓이요? 같은 여자끼리 가엾지도 않소? 몹시 상심합디다. 당신 때문에 나는 노엘리 앞에서 얼굴을 들수가 없었어. [모니끄] (어이없어서) 왜요? [모리스] 내 아내라는 사람이 그정도 밖에 안된다는걸 노엘리 앞에서 차마... [모니끄] (벌떡 일어나며 엄하게) 입다무세요. 모리스. 그 여자의 스캔들에 화가나신 모양인데 그건 너무 <<멀>><<널>>리 [페이지] 032 퍼진 얘기라서 뒷조사를 할필요도 없었어요. 그 여자의 행실이 어떤지는 당신 입으로 나한테 말해준 일도 있을텐데요. [모리스] (경멸하듯) 당신들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앉아있는 여자들의 저속함이란... [모니끄] 뭐라구요? [모리스] 밖에서 전문적인 일을하며 가치있게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면 뒤 따르지는 못하겠으니까 공연히 질시하고 헐뜯고 자신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짓밟으려 하지 않소? 내가 사랑에 빠진 고등학생 같소? 노엘리의 장단점을 모르고 있을것 같아? [모니끄] (어이없이 보다가) 그렇다면 그 여자가 단순한 속물 갈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아<<신>><<실>>텐데요. [모리스] (모니끄의 팔을 쥐며) 당신 지금 그말 취소해. [모니끄] 왜요? [모리스] (위협하듯) 내앞에서 노엘리를 모욕하지 말란 말이요. [모니끄] (뿌리치며) 그 여자는 당신 앞에서 나를 모욕할 수 있어도 나는 할수없다는 건가요? 모리스 당신 내가 더 소중해요? 그여자예요? [모리스] (주춤하며) 물론 당신이야 허지만 노엘리도 그만큼 [페이지] 033 소중해. [모니끄] 양보엔 이제 신물이 나요. 당신을 그 여자와 나누어 갖을 생각은 없으니까 양자택일 하세요. 나예요? 노엘리예요? [모리스] (화내며) 유치하게 굴지마. [모니끄] 그 더러운 속물갈보 때문에 더 이상 나를 희생시키지 마세요.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치사한 허영심과 이기주의로 뭉쳐져 있는지 모르겠어요? 유명한 여류 변호사와 연애를 할 수 있다는 값싼 허영심 때문에 나를 짓밟는게 아녜요? 당신이 한심해하는 그 살림이나 하는 여편네 덕분에 허여멀쑥한 차림으로 나가서 노엘리 게라르 따위를 만날 수 있다는걸 몰라요? [모리스] (폭발하듯) 당신이야말로 이기주의의 화신이란걸 모르겠소? 당신의 그 집요함에 시달려서 나나 애들이 얼마나 괴로움을 당해왔는지 모른단 말이요? 당신이 의기주의 덕분에 내평생이 어떤꼴이 되었는지 한번 돌이켜봐. [페이지] 034 [모니끄] (놀라며) 뭐라구요? [모리스] 당신이 결혼초에 나하고는 상의한번 하지않고 덜컥 애를 가져버려서 인턴을 그만두고 회사 의무실에 취직을 해야만 했을때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생각이나 해봤어?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묶어서 내 개성이나 인생에 대한 야망은 철저하게 파괴하고 말았지. 평범한 월급장이 안이한 월급봉투 전달자로 만들어 일상의 틀에 박아넣는데 성공했단 말이요. [모니끄] (수세에 몰리며) 꼴레뜨를 갖게된게 나혼자만의 책임이었어요? [모리스] 십년전에 내가 견디다 못해서 시므까 <<>><<자동차>> 회사에서 종합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을때도 얼마나 반대했어? 내가 어떤 방향으로든 내 입장을 향상시키려고 하면 당신은 끌어내리지 못해서 몸부림쳤지. 식구들이 당신 손아귀를 벗어날 기미만 보이면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잖아? [모니끄] 수입이 안정된 자리에서 불안정한 자리로 옮기겠다는데 살림하는 여자가 어떻게 반대를 안해요? [모리스] (격하게) 한마디로 말해서 당신은 모범적인 주부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을 짓밟고 유린하는데 평생을 바쳤어. [페이지] 035 지긋지긋 하지도 않소? 당신의 희생물인 꼴레뜨를 한번 봐요. 우수한 화학자로 키울 수도 있는 아이였는데, 시집이나 가는게 무슨 큰 출세인것 처럼 부축여서 중퇴를 시켜버렸지. 그애는 너무 양순해서 당신한테 항거 한번 못하고 꺾였어. 뤼시엔느는 꺽이지 않으려고 뛰쳐나갔지. 좀더 오래 데리고 있을 수도 있었는데, 결국 당신이 내쫓아버린 거요. 이 모든 행패를 헌신적인 아내, 희생적인 엄마의 탈을 쓰고 해치워냈지. 당신의 희생과 헌신이 얼마나 철저한 이기심에서 나온 건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겠소? [모니끄] (어쩔줄을 모르며) 식구들에 대한 내사랑을 그렇게 모용하지 마세요. [모리스] 착각하지마. 그건 사랑이 아니라 추잡한 아집이야. [모니끄] 그렇게 증오하면서 날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어요? [모리스] 몰랐어? 십년전에 직장을 옮기는 일로 대판 싸운 이후 난 한번도 당신을 사랑해본일이 없어. [모니끄] (타격 받으며) 거짓말... [모리스] (잔인하게) 고백하는 김에 말해두지만 그동안 내가 사랑 [페이지] 036 했던건 노엘리 뿐이 아냐. 어린 간호원 빼르랑과 이년. 남아메리카에서 온 금발의 여환자와 일년... 노엘리와는 십팔개월 동안이나 사귀어 왔어. [모니끄] (히스테리를 일으키며)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그럴리 없어요. [모리스] (당황하며) 모니끄. 모니끄 여보 정말로 다 믿지는 않았겠지... 홧김에 한 거짓말이야. 진정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거짓말이야. [모니끄] (운다) 그것두 거짓말이야. 당신은 나한테 거짓말만 했어요. 모리스 난 당신을 믿을수가 없어요. [모리스] 정말 지금 한말은 다 거짓말이야 진정해줘. 어두워졌다가 이내 밝아진다. 마리 랑베르 의사의 방 무대 한쪽의 의자에 모니끄가 지친 모습으로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랑베르 무대 안쪽의 책상앞에서 침착한 어조로 말한다. [랑베르] 이런 경우 침묵은 자기파괴의 지름길 이예요. [페이지] 037 모니끄 기운을 내어 이야기를 합시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었잖아요? [모니끄] (느리게) 네 선생님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전 도움이 필요해요. 모리스는 믿을 수 없고 친구들도 도움이 안돼요. 무분별한 동정으로 아픈데를 난도질하니까 오히려 더 괴로워요. 절 도와주세요. [랑베르] 우선 당신이 당신을 도와야지요. 자 생각나는대로 얘기해보세요. 두분의 결혼생활을 처음부터... [모니끄] (조금 바로 앉으며) 모리스는 친정 아버지가 개업하신 병원의 통근조수 였는데 우리는 첫눈에 반했었지요. 그이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가정이 몇번이나 풍지박산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따뜻하고 안락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했지요. 그 사람은 몇번이나 나한테 영원히 정절을 지키겠다는 사랑의 맹세를 시키곤 했어요. 물론 자기도 했구요. 그이가 너무 좋아서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하는데 이의가 없었어요. [랑베르] 첫아기가 생긴것은 두사람중 누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세요? [페이지] 038 [모니끄] 둘이 다 날짜를 착각했을 뿐 이지요. 그이는 내탓이라고 생각하지만... [랑베르] 그래서 인턴과정을 포기했기 때문에 한을 품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모니끄] 아뇨. 만약 그랬다면 아기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랑베르] 남편이 전에도 그런 식으로 비난한 일이 있던가요? [모니끄] 아뇨 전혀... [랑베르] 어느쪽이 먼저 권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세요? [모니끄] 모르겠어요. 나는 아니니까... [랑베르] 당산한테 연애사건이 있었던 일은 없나요? [모니끄] 비슷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모리스도 분명히 아는걸요. 내가 자기외의 다른 남자한테 전혀 관심이 없다는걸... [랑베르]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갖도록 했지요? [모니끄] 자기와 애들만이 내 전부라는걸. 왜 모르겠어요? [랑베르] 그래서 자신을 누이와 같은 입장으로 만들어 버리셨군요. 남자들은 너무 헌신적이고 편안한 아내는 어머니와 누이와 아내의 복합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아니면 자기의 못난 분신으로 생각하던가... [페이지] 039 자기 아내를 남앞에 내세우기 싫어하는 남자들의 심정은 대강 그렇지요. 왜 하필 노엘리 게라르씨가 상대가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모니끄] (벌떡 일어나며) 그게 바로 내가 묻고 싶은 거예요. 그 여자는 우수하지도 않고미인도 아니예요. 정직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아요. 취미도 저속하고 유행만 따라다니고 하나를 알면 열개를 아는체 떠벌릴 재능이 있을뿐 지적이지도 않아요. 그런데 모리스가 어떻게 그런 여자에게 반할 수 있을까요? [랑베르] 타인의 연애란 원래 제삼자가 보기엔 불가사의 한것이니까요. 스키여행을 취소하신건 현명했어요. [모니끄] (다시 자리에 앉으며) 취소가 아니라 포기예요. 열흘쯤 불안정한 행복을 누리다가 그여자에게 쫓겨서 산을 내려오긴 싫었으니까요. [랑베르] 그럼 남편은 지금 여행중이실텐데 가끔 연락은 해오나요? [모니끄] (담배 피우며) 가끔 이라니요? 그날 나한테 <<사납게>> <<심하게>> 한게 마음에 걸려서 매일 하지요. 잘 잤느냐? 아침 먹었느냐? 낮에는 무얼 했느냐? 자살이라도 할까봐 그런지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해요. 나는 그이들이 어떤 자세로 전화를 하는지 훤히 알수가 [페이지] 040 있어요. 비스듬히 앉은 그이 팔안에 노엘리가 인겨 있겠지요. 그리고 둘이 마주보고 웃어가면서 전화를 하는거예요. 대체 무슨짓일까요? [랑베르] 남편의 진실은 의심하지 마세요. [모니끄] 진실이라니? 그런데 무슨 진실이 있어요? (일어선다) [랑베르] 사랑이 그런것처럼 진실에도 여러 종류가 있답니다. 왜요? 점더 이야기 합시다. [모니끄] 이자벨이 집에 와있을거예요. 그애는 아직도 자신이 커다란 도움을 주고있다고 믿고 있답니다. 나도 부탁해둔게 있어요. (나간다. 랑베르 의사의 방 부분만 비추던 조명 사라지고 거실 쪽이 밝아진다. 모니끄 지친 모습으로 들어와서 흩어진 매무새로 주저 앉는다.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피운다. [페이지] 041 전화벨이 운다. 귀찮은듯 받는다.) [모니끄] 여보세요. (부드럽게) 꼴레뜨... 어떻니? 후유증이 오래 가는구나. 아직 외출 할 수 없다니까 조심해야지. 응? 왜? 꼴레뜨 왜 우니? 얘기 들었어? 누구... 디아나 한테서? 흥분하지 마라. 난... 괜찮아 일방적으로 아빠를 비난하지 마<<라>><<0>>. 아빠 말씀을 듣고 난 뒤에 판단해 무슨 소문? 내가 진정제를 너무 사간다고? 큰 병두 나고? (웃음) 그래 진정제를 좀 많이 먹어. 허지만 과용해서 죽기야하겠니? 큰병은 아니고 건강이 좀... 나빠졌지. 아무튼 타격이 컸으니까... 참 꼴레뜨 하나 물어볼께 있는데 너 혹시 엄마 때문에 서둘러 시집을 <<간>><<갔>>다고 생각해본 일 있니? 말하자면 내가 너무 간섭을해서 네 인생을 망쳤다고... 아냐? [페이지] 042 그런일 한번도 없었어? 그래 꼴레뜨 나도 너를 사랑해. 그런말 물은 이유는 다른날 설명할께. 그래 안녕. (전화 끊는다. 전화하는 동안 무대 한쪽에서 종이 몇장을 들고 들어오며 말한다.) [이자벨] 집에 있었구나. 모니끄 이번주 주간지에 난 이주일의 운세를 읽어 봤어? 우습게 알지마. 쪽집게 처럼 맞을 때도 있다? 이번주 네운세는 아주 고무적이야. 봐. 이번 <<>><<주 사수좌의>> 운세는 사랑의 승리랜다. 근사하잖아? 누가 아니? 산에서 모리스와 노엘리가 대판 싸웠을는지? 아니 누가 미친척하고 딴지를 걸어서 스키 타는 노엘리 발목이나 콱 부러뜨려 줬으면 좋겠다. [페이지] 043 [모니끄] (담배 피우며) 모리스가 얼마나 열렬히 간호를 해주겠니? 오히려 이쪽이 손해야. 글씨로 점친다는 사람은 뭐래? 그 얘기나 해봐. [이자벨] 필상학이란건 원래 장래를 점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성향을 분석해서 자기 스스로 앞일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래. (종이를 보며) 그 사람이 네 글씨를 보고 내린 분석내용을 보면 넌 굉장한 장점을 지니고 있대. 안정감있고 솔직담백 하며 타인을 극진히 생각해주는 헌신적인 성격이래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부담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대. 그리고 소유욕이 강해서 타인의 생활을 함부로 침범하기도 한다는 거야. [모니끄] 모리스의 비난과 일치하는구나. [이자벨] (종이를 되적이며) 노엘리는 더 우습단다. 그 여자는 야심가이고 거짓말을 잘하며 남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만 아주 감수성이 강하고 재기발랄하며 정열적이라는 거야. [모니끄] 요컨데 매력만점 이라는 얘기야? 그 사람 얘기 믿을수 없다. 얘. 다른 사람을 알아봐. [이자벨] (삐쭉하며) 이사람이 제일 비싼 사람이야. 디아나네 동네 사는 짚시를 빼놓고는... 참 디아나 얘기 들어봤어? [모니끄] 아니. [페이지] 044 [이자벨] 노엘리가 그러는데 이번 여행에서 돌아오면 아주 모리스와 함께 살거라고 그랬대. 그래서 지금 사는 집을 팔려고 내놨대. 새집으로 이사를 가면 모리스와 함께 집들이 파티를 할테니까 와달라고 청했댄다. (망설이며) 나두 청하겠다고 그랬대. 거절만 하지 않으면... 난 ... 거절 안한다고 그랬어. 너 화났니? (모니끄 얻어맞은듯이 의자에 깊이 쭈그리고 앉는다) [이자벨] (눈치 보다가) 나 그만 갈께. [모니끄] 고마워. 안녕! (모니끄 담배를 비벼끄고 일어나서 전축을 켠다. 술을 한자 따라 들고 의자로 온다. 음악이 흐른다. 술을 마시고 불쾌한듯시 전축을 돌아본다. 갑작스러운 몸짓으로 전축 가까이 가서 주먹으로 전축을 때린다. 판을 내려서 미친듯이 주먹으로 치고 발로 밟는다. 어두워 지면서 랑베르 의사의 방이 밝아진다. 랑베르 의사 나와서 책상앞에 앉는다. 모니끄가 흩어진 모습으로 들어온다.) [모니끄] 선생님께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이는 돌아올까요? [랑베르] 우리는 우선 확실한 이야기만 하도록 합시다. [페이지] 045 [모니끄] 확실한건 모리스가 떠났다는 사실밖에 없어요. 왜 떠났는지, 내가 무얼 그렇게 많이 잘못했는지 그가 과연 돌아올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요. 그런데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요? [랑베르] 십년전 직장을 옮길때 심하게 반대를 당한데 대해서 남편이 한을 품었으리라고 생각해본 일은 없나요? [모니끄] (자리에 앉으며) 네, 그이가 말할때까지는 몰랐어요. [랑베르] 그 싸움이 있던 날, 당신이 진정했을때 남편은 어떤 태도를 보였지요? [모니끄] (담배 피우며) 나를 달래주고 위로하면서 다 거짓말이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더군요. [랑베르] 그리고? [모니끄] 나는 스키여행을 포기한다고 말하고 그이가 주는 진정제를 먹고 잤어요. [랑베르] 그이후 당신은 계속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있군요? [모니끄] (비참하게 웃으며) 완전히 절망에 빠진것도 아니예요. 그이가 때때로 희망을 주는걸요. 절망과 희망 사이를 애매하게 오락가락 하는건 완전한 절망에 빠진것보다 더 괴로워요. 마치 나치의 고문수법 같지 않아요? 노엘리에게 완전히 빠져있으면서도 나를 단념할 수 없다는 거예요. 노엘리는 그이와 아주 함께 살려고 집을 내놓았다는데 그이는 오늘 아침에도 전화를 했어요. [페이지] 046 "여보 잘잤어? 오늘 출발하니까 곧 만날수 있을거야... " 하고... [랑베르] 그렇게 애매한 이유로 남편을 비난하지는 마세요. 모리스씨가 당신한테 처음 저지른 최대의 잘못은 십년전의 싸움 직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건데... [모니끄] 무슨 뜻이지요? [랑베르] 당신이 더이상 자기를 버리고 가족만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도록 제지했어야 했다는 말이지요. [모니끄] 마치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막았어야 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대체 당신들은 주부가 가족을 위해서 사는것이 무슨 망칙한 죄나 되는것처럼 알고 있나요? [랑베르] 모든 사물에 양면이 있듯이 희생이나 헌신 역시 권리 침해 라던가 유린의 다른 측면이 있으니까요. [모니끄] 당신의 얘기는 길수록 모리스의 논조와 같아지는군요. 살림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세요? 가족중의 한사람이 철저하게 자신을 버리고 각종 전문적인 기술을 발휘하며 스물네시간 헌신해야만 겨우 겨우 유지되는게 보통 수입을 갖는 가정의 살림이라는걸 아세요? 제입에 넣기 위해서 고기 한<<칼>><<번>> 마음놓고 사는 <<아낙네>><<주부>>가 있는줄 아세요? 저 자신을 위해서 비싼 음악회의 표를 사는 [페이지] 047 주부가 <<흔히 있을 것>> <<흔할것>> 같나요? [랑베르] 왜 그렇게 하지 않지요? 이유야 어떻튼 자기를 지키지 않는게 가장 큰 범죄 일수도 있다는것.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모니끄] 누구로 부터 나를 지켜요? [랑베르] 당신 자신으로 부터지요. 무조건의 헌신과 사랑이 받는쪽에 때로 견딜수없는 부담을 느끼게 한다는<<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니끄] 마치 모리스와 말을 맞추기라도 한것 같군요. [랑베르] 당신의 철저한 헌신과 신뢰가 가끔은 당신과 상대방 양쪽을 함께 타락시키는 함정일수도 있다는건 어떻게 생각하지요? [모니끄] (담배 피우며)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 어쩔수없이 온종일 동동거리며 일해야하는 우리들 죄많은 주부들은 다같이 가족 사랑을 참회하고 물에라도 빠져죽어야만 하겠군요. [랑베르] 사랑이라던가 헌신, 자기희생이라는 <<칼>><<말>>은 자칫하면 소유욕과 이기심의 다른 이름으로 쓰일수도 있답니다. 우리는 어떤 악이나 범죄로부터 자기를 지켜야하는거나 마찬가지로 선의나 사랑으로부터도 자기를 지켜야하는 거지요. 특히 자기자신으로 부터 자기를 지킨다는게 중요해요. 모니끄! 사랑에 인생의 모든것을 걸지 [페이지] 048 않도록 십년전에 모리스씨가 당신께 진실을 말했어야 했다는 말이지요. [모니끄] 어떤 진실을요? [랑베르] 어쩌면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진실 이지요. [모니끄] 모리스를 만나신 일이 있군요. [랑베르] 애매한 추측은 하지 마세요. 우리는 당신의 문제를 분석하는 중이잖아요? [모니끄] (일어선다)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군>><<아>>요. (랑베르 의사 방의 조명이 사라지고 모니끄의 집 거실이 밝아진다. 모니끄 초췌한 모습으로 들어와서 천천히 외출복을 벗는다. 벗으면서 말한다) [모니끄] 이자벨, 디아나, 꼴레뜨, 모리스처럼 랑베르 의사도 결국은 도움이 되지 않는군요. 그 사람들은 자기들식으로 말하고 나는 또 나 좋은대로 듣는거지요. 평범한 주부로써 살림에만 몰두해온 지난날들이 그렇게도 문제가 되는걸까요? 서로 극진히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데 미래의 파탄을 피하려고 미리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일을 만들어 고독하게 살았어야만 했을까요? 그렇지 못해서 모리스를 잃게 되었을까요? (말하면서 옷과 스카프등을 여기저기 함부로 내던지고 술병과 술잔을 들고와서 객석 가까이의 의자사이 맨바닥에 주저앉는다) [페이지] 049 [모니끄] 난 이제 술하고 진정제의 도움밖에 바랄게 없을까요? 하루에도 몇번씩... 관속에 들어가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곤 해요. 어쩌면 그게 최선의 길일는지도 몰라요. 허지만... 방법을 모르는걸요. (중얼거리듯 말하다가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묻는다. 모리스 꽃다발과 가방을 들고 명랑한 모습으로 들어온다. 잠깐 멈춰서서 황폐해진 방안을 둘러보고 다가와서 모니끄를 본다. 놀라서 자책하며) [모리스] <<돌아왔소.>> <<여보, 나요.>> 모니끄, 당신 정말 병이났나 보구려. [모니끄] (쳐다보고 술 마시며) 어때요? 스키장엔 눈이 많이 왔던가요? [모리스] (술잔을 뺏으며) 난 형편없이 치사한 녀석이요. 당신이 이지경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일으키며) 자 일어나요. 여보. 의자에 편히 앉기라도 합시다. 믿을수가 없군. 사람이 보름사이에 어떻게 이토록 상할수가 있겠소? [모니끄] (의자에 앉으며) 당신한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동안 내내 그생각만 했다우. [모리스] (비통해하며) 무슨말? [모니끄] 십년전부터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왜 그때 진실을 말해서 내가 더이상 당신한테 헛된 사랑을 받치지 [페이지] 050 않도록 도와주지 않았지요? 너무 빨리 첫 아이를 갖는것에 대한 복수였어요? [모리스] 홧김에 한 거짓말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적은 한번도 없었어. [모니끄] 곰곰히 생각하니까 그때 언젠가 뤼시엔느가 아직 어려서인데 당신이 나한테 의학잡지에 취직하지 않겠느냐고 묻던 일이 생각나요. 나는 그때 거절했지요. 애들과 집안일을 돌보지않고 종일 나가서 일하고 받는 보수로는 너무 시시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왜 그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어요? 직장을 권한 이유가 있었을텐데? [모리스] 진실이라니... 여보 <<0>> <<난>> 항상 당신을 사랑했어. [모니끄] 그런데 딴 여자를 사랑할수가 있나요? 당신은 거짓말장이 예요. [모리스]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법이지 않소? 당신은 진종일 이렇게 앉아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던가 하고 자신을 난도질하는 모양인데 이젠 제발 그러지 말아요. 잘못이 있다면 나한테 있겠지. 당신이 무얼 잘못했겠어? 굳이 당신 잘못을 찾자면 나를 너무 믿어서 우리 사랑이 서로서로에게 너무 깊이 스며들어가서 마치 형제나 누이에게 느끼는것과 같은 그런 사랑으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정도요. [페이지] 051 [모니끄] (술을 마시며) 맙소사! 그건 또 미처 몰랐던 내 죄악이로군요. [모리스] 당신이 이렇게 무너진것을 보니 견딜수 없구려. 모니끄! 제발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일어나줘요. 날 좀 가엾게 생각해줘. 당신의 이 딱한 모습을 어떻게 참고 보란 말이요? [모니끄]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겠어요? [모리스] 우리 서로를 건질 방법을 몇가지 생각해 봅시다. [모니끄] 그런데 당신 오늘 노엘리한테 가는날 아닌가요? [모리스] (어깨를 안으며) 당신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노엘리가 뭐란 말이요? 봐요. 당신은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어요. 우선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면 어떨까? [모니끄] 정신과 의사는 싫어요. 그런데 왜 노엘리한테 안가지요? 당신들 사랑 싸움을 했어요? [모리스] 사랑? 내가 언제 진심으로 그 여자를 사랑한 일이 있었나? 우리 얘기를 합시다. 하루종일 내 생각을 하고있지 말고 단념하고 자기 일을 갖으면... [모니끄] 단념하라구요? 당신을? [모리스] 이 사태를 말이요. 우선 이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하지. 않겠어? [모니끄] 당신이 노엘리를 단념하면 어때요? [모리스] 그건... 용서해 주구려, 모니끄. [모니끄] 그럼 세번째 방법은 뭐예요? [모리스] 우리가 당분간 별거하는거요. [모니끄] (일어선다) <<0>> <<(놀라)>> 네? [페이지] 052 [모리스] (잡아 앉히며) 노엘리네 집으로 가겠다는게 아냐 여보. 우리는 이제 얼굴만 마주치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말다툼을 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짓 외엔 아무것도 안하잖아? 서로가 안정을 되찾고 일어날때까지 일단 거리를 두어보자는 거요. 난 이 방법이 제일 좋은것 같은데... 당신만 좋다면 오늘이라도 방을 얻어서 나가겠어. [모니끄] 노엘리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던가요? [모리스] (나무라며) 모니끄...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가엾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래. [모니끄] (외면하고 운다) 모리스 그런식으로 나를 버리지 마세요. [모리스] (끌어 안으며) 잠정적인 별거야. 우선 당신한테 이로울거야. 당분간 나를 보지 않으면... 당신 그동안 내내 굶었구려. 이렇게 말랐으니... 봐요 모니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꽃을 받아요 (꽃을 주며) 우리 결혼기념일이야. 당신이 좋아하는 장미야. [모니끄] (꽃을 보다가 받는다) 결혼기념이군요. 난... 잊고 있었어요 (억지로 미소하며) 장미는 언제봐도 예뻐요. [모리스] 우리 오늘은 두사람만의 조촐한 파티를 합시다. [페이지] 053 오붓하게... 당신한테 뭘먹이면 기운이 날까? [모니끄] 여보 제발 별거하자는 말은 하지 마세요. 난 그게 그대로 굳어질까봐 겁이 나요. 당신을 잃으면 난 살수 없을거예요. [모리스] 우린 시간이 필요해. 냉각기가 필요하단 말이요. 왜 내가 당신한테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거요? [모니끄] 당신이 짐을 챙겨들고 나가는걸 보면 난... 미칠거예요. (비참하게) 노엘리가 당신과 살집을 구하고 있다는걸 난 알아요. [모리스] (괴로워하며) 우리 둘이 있을때는 우리 둘만의 이야기를 합시다. 모니끄 우리 사이가 어떻게 변하던 나는 당신을 잃을수가 없어. [모니끄] 우리 사이엔 변함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었어요? [모리스] 사람의 사이는 변하는 거요. 세월이 흐르는데 어떻게.... [모니끄] (성급하게) 허지만 전에는.... [모리스] 당신이 나한테 그말을 하게했지. 허지만 사실을 똑바로 봐요. 모니끄 사람 사이란 변하는거야. [모니끄] (비명처럼) 정말 당신을 믿을수가 없어요. 모리스 (운다) [모리스] (신경질 내며) 우리만의 파티를 하자고 했잖아? [페이지] 054 왜 좀 더 즐거운 얘기만 할수가 없소... 이게 지옥이지 어디 사람사는 건가? 그러면서도 별거는 할수없다니... 지긋지긋 하지도 않소? 당신 뤼시엔느를 잠깐 보러 가구려. 그사이에 내가 나갈테니까... 전화벨이 운다. 모리스 받는다. [모리스] 여보세요. 아 노엘리... 우는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아냐 (부드럽게) 아냐 내가 나빴어 울지 말아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마 (급히) 노엘리? 노엘리... 여보 알았어 곧 갈께. [모니끄] (놀라며) 가다니요? 파티를 하자고 했잖아요? [모리스] (나가며) 미안해 여보. 이해해줘. 노엘리가 울고있어. 그여자는 감수성이 예민해서 흥분하면 자살할지도 몰라. [모리스] 나는요? 여보 나는... [모리스] 유치하게 굴지 말아요. 모니끄 나간다. 모니끄 경악해서 서있다가 얼굴을 가리며 천천히 주저 앉는다. 어두워 진다. 잠시후 무대 한쪽에 스폿. 라이트 들어온다. [페이지] 055 외투를 입고 스카프를 쓰고 발밑에 가방을 놓고서 모니끄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다. 잠시후 낮은 어조로 말한다. [모니끄] 비극은 갑작스럽고 짧을때는 화려해서 사람을 감동시키지만 길어지기 시작하면 누추해져 버려서 누구나 혐오스러워 하게 되지요. 모리스와 딸과 사위와 친구들. 모두가 이제는 무너져버린 내 모습을 보는것을 지루해하고 괴로워합니다. 사랑하던 개가 회복할수없는 상처를 입으면 괴로워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쏴죽이려고 마음 먹는것처럼 그이들 모두가 나를 미국으로 잠깐 보내기로 결정했읍니다. 진정제를 잔뜩 먹여서 비행기로 실어보내면 뤼시엔느가 공항에서 인수한다는 계획이지요. 그래봐야 소용도 없었겠지만 나는 항거하지 않았읍니다. 결국 뤼시엔느가 나를 도와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때문이지요. 그애는 어려서부터 내게 비판적이고 냉담했으니까 나에 대해서 충분히 객관적인 설명을 할수있을거라고 생각 했으니까요. 밝아진다. 뤼시엔느 발랄한 모습으로 들어와서 모니끄의 발밑에 놓여있던 가방을 치우고 들고있던 봉지에서 식료품들을 꺼내며 [페이지] 056 [뤼시엔느] 유치장에 엿 붙여놨수? 엄마. 이십층 높이에 너무 매력을 느끼지 마세요. 빌린 아파트니까 여기서 떨어지시면 내가 곤란해요. [모니끄] 네 친구는 갔니? [뤼시엔느] 응 내일 또 우리를 데리러 오겠대서 닷새동안 엄마를 뉴욕관광 시켜드린걸로 충분하니까 이제 오지 말라고 했어. 이제 우리끼리 다녀요 엄마 옷 벗으세요. [모니끄] 너한테 호의를 갖고 있는 모양이던데 그렇게 막하면 되니? [뤼시엔느] 상관없어요. 사랑에 빠지게 될까봐서 균형을잡으려고 사귀는 애니까... [모니끄] (옷을 벗으며) 무슨 소리니? [뤼시엔느] 마음에 드는 남자애를 만나면 난 얼른 다른 친구를 만들어요. 그래야 사랑에 홀랑 빠지지 않을수 있으니까... (옷을 받는다) [모니끄] 네 나이면 연애를 해도 괜찮찮아? [뤼시엔느] 사랑에 빠지면 어떤 꼴이 되는지 엄마를 봐서 다 아는데 왜 어리석은짓을 해요? [모니끄] 미래의 파탄을 피하려고 미리부터 사랑을 포기한단 말이냐? 그렇다면 넌 절대로 사랑을 사랑하진 못겠구나. [페이지] 057 [뤼시엔느] (옷을 걸며)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거지. [모니끄] 허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산다는게 무슨 소용이 있니? [뤼시엔느] 누구나 다 사랑을 엄마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모니끄] (의자에 앉으며) 네 그 못된점 때문에 너한테 기대를 걸었겠지만... 뤼시엔느 날 좀 도와주렴. [뤼시엔느] (웃는다) 아빠 목에 밧줄을 매어서 끌고 오라고? 미리 말해두지만 난 이일로 아빠를 비난할 생각은 추호두 없어요. [모니끄] (담배 피우며) 넌 아빠가 왜 날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뤼시엔느] (놀란듯) 엄만 사랑이 그렇게 오래가는건줄 알았수? 보통은 더 빨리 끝나요. 아빠는 사실 평균보다 양호한 편이야. [모니끄] 파탄을 이르키지 않고 끝까지 잘사는 사람들도 있잖니? [뤼시엔느]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엄마같은 입장에 빠진 사람도 많아요 [모니끄] (짜증내며) 그런 일반론을 들으러 너한테 희망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오진 않았다. 뤼시엔느, <<0>> <<사실을 알고 있으면 말해줘>> 아빠가 왜 날 버렸는지... [페이지] 058 [뤼시엔느] (냉담하게) 결론을 요구하진 마세요. 엄마. 우리는 살아있고 모든 사태는 진행중인데 잘잘못이 과연 어디에 있었는지 관뚜껑에 못박기 전에야 알수없잖아? 엄마. 잠깐.... 지금 술마시지 마세요. 약먹을 시간이니까... (물과 약을 갖고오며) 이번일로 엄마가 확실하게 덕본게 하나 있다우. 아주 몰라보게 날씬해졌어. [모니끄] (담배 끄며) 이번 일로 제일 괴로웠던것 중의 하나는 내가 아빠와 너희들의 인생을 망쳤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어. 사랑한답시고 매달려서 가정을 파괴하고 가족을 괴롭혔다고 아빠가 말했기 때문에... (약 먹는다) [뤼시엔느] 착각은 자유겠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엄마는 자신을 과대평가 한거야. 엄마가 남의 엄마보다 자상하고 희생적이고 오밀조밀 배려가 많아서 귀찮은것도 사실이고 그게 싫어서 내가 펄펄뛴것도 사실이지만 그게 다 예요. 엄마는 <<0>> <<엄마>> 이상도 이하도 아냐. 남편이나 자식들의 인생을 망칠수 있을만큼 대단한 능력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모니끄] 그럼 난 식구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했단 말이니? [페이지] 059 [뤼시엔느] 모범적인 엄마라는 한계 안에서 영향력을 끼쳤다는 말예요. 아빠가 그런일로 엄마를 비난했다면 그건 공평치 못해요. [모니끄] 그렇다면 난 이일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이니? [뤼시엔느] (담배 피우며) 왜 없어? 엄마는 엄마 자신한테 사죄하고 반성해야해요. 가족들로 부터 자기를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잖아? [모니끄] 식구들이 날 뜯어먹을 <<0>> <<조짐이라도 보이기 전에야>> 그런 생각을 하니? [뤼시엔느] 자기자신의 인생을 살 생각은 하지않고 남편과 자식들의 인생속으로 용해되어 스며들려고만 노력했단 말이예요. 그점에서는 일단 성공했지. 허지만 남편과 자식들이란 엄연한 개체예요. 그래서 흩어지게 되니까 엄마는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난거야. 그래서 비참한 처지가 되어서 주저앉아 있으면 우린 어떻게하란 말야? 감당할수 없는 괴로운 짐이 되지않아요? 아빠가 죄의식에 빠져서 달아난것도 나무랄수만은 없어요. 타인한테 짐이되는 인생<<을>> <<은>> 어떤 의미에서나 부도덕 해요. [모니끄] (담배만 피우다가) 뤼시엔느. 솔직히 말해봐라. 네 눈엔 내가 어떤사람으로 보이니? [페이지] 060 [뤼시엔느] 엄마로써? 여자로써? [모니끄] 아니 그냥 사람으로써.... [뤼시엔느] 엄마는 여자중의 여자예요. 조금 군살이 쪘지만 예쁘고 명랑하고 상냥해. 적당히 문화적이고 적당히 무식하고 가능하면 불우한 이웃을 도우려는 공덕심도 풍부하고... 나이가 마흔 네살씩이나 됐으면서 남편이 바람 좀 피운다고 말세나 된것처럼 절망하고... 그래서 아주 매력적이야. (전축앞에서) 엄마 <<0>> <<엄마>> 좋아하는 레코드들려 드릴께. 기운 내세요. 우리가 엄마와 아빠의 음악이라고 하던... 이것 말야. 음악이 들린다. 모니끄 짜증내며 벌떡 일어난다. 동시에 전화벨이 울린다. 뤼시엔느가 받는다. 뤼시엔느가 무대 한쪽에서 전화를 받는 동안 조명이 천천히 좁혀든다. [뤼시엔느] 여보세요? 아 아빠... 네 엄마는 여전해요. 방을... 구하셨어요? 언제? 어제 짐을 옮기셨어요? 어때요... 방은 깨끗해요? 그럼요 엄마는 믿지 않지만 저는 돌아오실 거라고 [페이지] 061 믿어요. 네 엄마는 내일 출발하실 거예요. 아빠가 비행기 표를 사셨었으니까 도착시간을 아시겠지요? 네 네 안녕.... 뤼시엔느가 전화를 받는 동안 둥글게 좁혀든 조명속에서 고문 당하듯 몸부림치며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듯이 격렬하게 우는 모니끄. 내내 음악이 들린다. 음악이 멎으면서 조명이 사라진다. 어두운 무대에 첫장면 처럼 조명 몇줄기가 엇갈린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탑승안내 방송이 들린다. [뤼시엔느] (소리만 들린다) 엄마. 이쪽이야. 여기 서세요. 칠번 출구... 네 아빠하고 언니한테 나오지 말라고 전화할께. 걱정 마세요. 비행기 안에서 약 먹는것 잊지 마세요. 안녕... 엄마 기운을 내세요.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 소리 무대를 뒤덮을듯 들리다가 차츰 사라진다. 무대 중앙의 스폿. 라이트 속에 지친 모습으로 서있는 여행복 차림의 모니끄. [페이지] 062 객석을 향해 천천히 말한다. [모니끄] 결국 두주일만에 나는 파리로 돌아왔읍니다.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않고 혼자 돌아왔읍니다. 그리고 좌절과 절망의 오랜 방황으로 부터도 돌아왔음을 알았읍니다. 사람이 절망의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도로 올라올수밖에 없다던 랑베르 의사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르지요. 나는 이제 어디에도 나를 도울 손길이 없다는것을 압니다. 내가 내 자신을 도울수 밖에요. 모리스는 셋방을 얻어서 떠나버리고 빈집은 캄캄하고 쓸쓸하게 마치 죽은 나무처럼 저기 서있군요. 모리스는 돌아올지도 모르고 끝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사랑에 모든것을 걸었던 지난날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사람은 결국 옳건 그르건 자기 방식 대로의 생을 살게 마련이니까요. 나는 아직 마흔 네살이고 저 굳게 닫힌 캄캄한 문뒤에는 어떤 모양일는지 모르는 내 미래가 있다는걸 나는 압니다. <<무섭긴>> <<두렵긴>> 하지만... 결국 내손으로 저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겠지요. 어떻튼 나한테 주어진 나의 삶이니까요. [페이지] 063 돌아선다. 역광으로 그림자가 무대 안족으로 길게 비쳐보인다. 무대 안쪽으로 한걸음 떼어놓음과 동시에 어두워진다. </P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