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 위기현상에 대한 신학적 반성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자연과 인간의 갈등을 접근하는 새로운 관점에 있다. 이는 창조신앙에 관한 전통적 패러다임을 신학적으로 새롭게 반성하는 것이다.
게르하르트 리드케(G. Liedke)는 「생태신학」에서 두 종류의 갈등을 제시했는데, 하나는 균형적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비균형적 갈등이다. 여기서 생태계와 인간의 갈등은 비균형적 갈등에 속한다. 리드케의 설명에 따르면, 비균형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두 단계의 접근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먼저 갈등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연합적 전략”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 동안 생태계는 인간의 폭력에 의해 지나치게 불균형을 경험해왔다. 그래서 기독교신앙의 전통적 교리를 성찰하고 재해석하여 그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은 그 첫 번째 작업인 균형을 시도하는 일이다. 로즈메리 류터(Rosemary R. Reuther)가 “에코페미니즘과 신학”(1994년)에서 주장한 대로, “착취와 지배의 관계를 상호 지지의 관계”로 바꾸는 작업이나,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가 「생태신학」(1994)에서 “가난을 가장 큰 환경문제”로 규정한 것도 이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시각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생태계문제가 사회정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사회정치문제와 함께 일어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런 작업은 불가피하게 기독교신학에서 신관의 변화와 전통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게 되었다. 셀리 맥페이그(S. McFague)가 하나님을 단순히 초월적 존재로 보는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면서 초월성을 견지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적 시각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물론 이런 범재신론적 시각은 자연을 “하나님의 몸”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이, 자연숭배사상이나 범신론의 문제점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것이 과연 건강한 성서적 이해인지 끊임없이 의심을 받았고, 모순적이며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국 창조신앙에 대한 신학적 반성은, 그 성패와 관계없이, 전통적 패러다임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과연 그 신학적 반성이 성서적 계시에 어긋나지 않는 새로운 틀을 마련할 수 있을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이 인간중심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성서는 여러 가지 대안적 관점들을 얼마나 지지해주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매튜 폭스(Matthew Fox)가 주장했던 “창조 중심의 영성”(the creation-centered spirituality)을 복음주의 입장에서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견제장치로 작용했다. 그가 말하는 창조 중심의 영성은 “‘그[자연] 안에 존재하는 신성’을 발견”하고, “‘자연과 대화’할 뿐 아니라 ‘자연과 함께 창조’하며, ‘인간과 모든 피조물 안에 존재하는 우주’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과 우주는 합일하여 하나의 우주로 존재하게 된다”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이 반대로 자연중심주의나 자연의 신성화로 대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주장은 명백히 성서의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서는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주종관계로 선언한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신 10:14),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레 25:23).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성서의 사상은 창조세계에서 인간의 올바른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 말은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고 그것을 마음대로 파괴하고 독점할 수 있는 권리가 인간에게 없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며, 동시에 피조물을 신성시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생태계 위기를 초래한 원인과 책임이,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기독교의 창조신앙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그로 인해 야기된 자연에 대한 인간중심적 태도와 행동에 있다면, 신학적 반성은 창조신앙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해석해왔던 창조신앙을 어떻게 패러다임을 달리하여 생태신학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문제해결의 주요한 관건이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26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