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고개
기차를 가득 메운 젋은이들의 끊이지않는 이야기를 들으며 선잠을 자다가 영월역에서 내리니 1시 조금 넘은 시각인데 한옥처럼 치장된 역사에는 백열등만이 쓸쓸하게 불을 밝히고있다.
티브이가 켜진 맞이방에 들어가면 난방기도 가동되고있고 자판기도 있으며 의자가 넓어 몇시간 보내기에는 아주 적격이라 할 수 있는데 웬지 아무도 보이지않는다.
근처 가게에서 소주와 캔맥주 하나씩을 사서 가수들의 실황공연을 보며 조금씩 마시고, 의자에 누워 잠깐 지척거리니 5시인데 근처에는 문을 연 식당이 안 보인다.
택시로 시내에 나가 24시김밥집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택시로 상유암마을을 지나 해고개에 내리려니 눈이 많으니까 조심하라는 기사분의 말씀에 퍼뜩 어제까지 강원에 내린 폭설이 떠 오른다.(18,000원)
▲ 영월역
- 삼태산
랜턴을 켜고 통신탑과 밭을 지나면 저 멀리 민가의 개들이 벌써 짖어대고 수북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잡목숲을 헤치고 올라가니 간간이 표지기들이 나오며 길을 확인해준다.
능선만 가늠하고 올라가다 온양방씨묘지를 지나서 가파른 산길을 따라가면 허옇게 신설이 덮혀있고 미끄러워 연신 너머지며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노숙자 신세를 하면서 벌어놓은 아까운 시간을 다 까 먹는다는 생각에 짜증을 내다가 지맥을 밝혀오는 일출을 바라보며 나무들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822봉에 오른다.
사방으로 순백색의 눈꽃과 상고대를 이루고있는 능선을 따라가다 간벌된 나무들이 눈속에 숨어있는 사면에서 마구 미끄러지며 시든 억새가 가득한 안부로 내려간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가파른 능선을 힘겹게 올라가면 햇빛이 비치며 깨끗한 신설은 마치 영롱한 보석처럼 눈앞에서 반짝거린다.
구슬땀을 흘리며 삼태산(875.8m) 정상에 오르니 온 세상은 백색의 천국을 이루고있고 소나무들마다 그득하게 눈을 쓰고있으며 소백산쪽으로 시야가 트여서 설봉들이 장관을 이루고있다.
▲ 설원의 일출
▲ 822봉에서 바라본 삼태산
▲ 삼태산 정상
▲ 삼태산에서 바라본 소백산
- 무두리
쌓인 눈속을 한참 뒤진 끝에 삼각점(영월24/1995재설)을 찾아내고 반대에서 올라온 발자국을 보며 이정표가 서있는 눈길을 지나 밧줄이 걸려있는 바위지대들을 넘는다.
능선이 갈라지는 봉우리를 넘어서 발자국은 왼쪽 용바위골로 내려가고, 누에머리봉(864.2m) 정상으로 가니 3개의 정상석과 의자들이 놓여있지만 조망은 별로 트이지않고 나뭇가지사이로 마을만 내려다보인다.
갈림봉으로 돌아와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급사면 눈길을 엉덩이로 미끄러지며 내려가면 완만해지면서 쭉쭉 뻗은 낙엽송숲이 이어지고, 능선만 가늠해서 내려가니 임도가 나오는데 고라니 한마리가 껑충껑충 뛰면서 도망친다.
눈덮힌 임도를 오른쪽으로 따라가다 시멘트임도를 만나고 밭을 가로지르며 전면으로 보이는 산자락으로 가 까시넝쿨들을 헤치며 무작정 산으로 올라가면 박성태님의 표지기 한장이 걸려있다.
방향감각을 잃고 거꾸로 가다 돌아와 잡목들을 헤치며 왼쪽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무두리마을의 시멘트임도가 나오고 바로 앞에는 작은 건물 한채가 서있다.
▲ 정상석이 있는 누에머리봉
▲ 임도에서 바라본 무두리마을
▲ 임도에서 바라본 삼태산
- 469.5봉
거벽처럼 서있는 삼태산을 바라보며 임도를 왼쪽으로 따라가면 앞에는 무두리마을이 펑화스럽게 누워있고 앞에는 허옇게 눈을 쓰고있는 설봉들이 멋지게 시야에 펼쳐진다.
마을과 밭을 지나고 산불초소가 있는 봉우리로 올라가니 역시 조망이 좋고, 무덤들을 따라가다 능선으로 진입해서 고수골과 일광굴을 말발굽처럼 한바퀴 도는 산길로 들어선다.
커다란 전신주가 쓰러져있는 안부를 지나고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꺽어져 잡목들을 헤치고 내려가면 어상천과 이어지는 519번지방도로가 나오는데 막 제천에서 출발한 버스가 올라오고있다.
통신탑 옆으로 밭을 지나고 굽어보듯 서있는 삼태산을 뒤돌아보다 짧은 바위지대를 넘어 가파른 산길로 469.5봉에 오르니 벌목되어있지만 눈속에 숨어있을 삼각점을 찾아 보다가 금방 포기한다.
▲ 무두리마을을 굽어보는 산불초소
▲ 어상천과 이어지는 519번 지방도로
▲ 469.5봉 오르다 바라본 삼태산
- 550.5봉
간벌되어서 길은 없지만 조망이 확 트이는 474.9봉을 오르고 바로 오른쪽으로 꺽어져 안부를 지나 다시 봉우리에 오른다.
북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목장철선이 있는 산길을 내려가 임도를 건너고 합장묘를 지나서 봉우리를 연신 넘는다.
뚜렸한 길따라 허수아비들이 쓸쓸하게 서있는 밭을 지나서 참나무쟁이 포장도로로 내려가니 바람도 잔잔하고 양지바른 마을이 가깝게 보인다.
도로를 건너고 무덤을 지나면 왼쪽 사면으로 등로가 이어지며 다시 무덤을 지나 가파르게 이어지는 눈길을 따라서 봉우리를 오른다.
왼쪽으로 꺽어져 넝쿨과 덤불이 무성한 안부로 내려가니 마을사람인듯 발자국이 나타나고, 길도 없는 급사면을 치고 오른 522.5봉에서는 멀리 가창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벌목되어있는 능선을 뚝 떨어져 내려가면 다시 코가 땅에 닿을듯한 급사면이 기다리고, 베어진 나무들의 밑둥을 잡고 진땀을 흘리며 어렵게 550.5봉에 오르니 돌무더기 사이에 삼각점이 있고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기 시작한다.
▲ 참나무쟁이 도로
▲ 550.5봉 오르며 바라본 가창산
- 가창산
간벌된 나무들이 덮혀있는 능선을 따라가며 수시로 숨은 나무에 미끄러지고 무릎을 까이다 안부에서 가파른 눈길따라 무명봉에 오른다.
계속되는 벌목지대를 따라가면 펑퍼짐한 산길에는 온통 눈이 덮혀있어 방향잡기가 애매하고, 묵은 임도같은 길을 찾아 내려가니 무덤 4기가 누워있는 임도사거리가 나오는데 오랫만에 신경수님의 표지기가 반겨준다.
직진하는 임도를 조금 따라가다 능선으로 진입해 다시 벌목되어있는 급사면 눈길을 만나고, 진땀을 흘리며 힘겹게 봉우리에 올라가면 그제서야 앞에 가창산이 두리뭉실한 모습을 드러낸다.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가파른 설사면을 이리 저리 오르고 왼쪽으로 꺽어져 가창산(819.5m) 정상에 닿으니 삼각점(404재설/77.6 건설부)이 있고 시야가 트여서 삼태산과 지나온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 가창산 정상
▲ 가창산에서 바라본 삼태산
- 567.7봉
가창산에서 오른쪽으로 꺽어져 내려가면 흐릿한 잡목능선만 이어지는데 강풍이 몰아치고 눈보라가 날리며 성난 눈은 얼굴을 때리고 귓속으로 마구 들어온다.
발목까지 덮히는 눈길은 끝이 없이 이어지고, 하늘이 찟어질듯 불어제끼는 바람을 맞으며 까마득한 절개지에 올라서니 옛 광산터가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여 되돌아간다.
눈에 묻힌 길다란 쇠관을 따라 왼쪽으로 장치미저수지를 내려다보며 억새와 덤불들이 가득찬 안부를 지나고 얼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길도 없는 봉우리를 올라간다.
날카롭게 몸에 와 꽂히는 눈보라를 맞으며 능선을 따라가면 녹슨 이정판들이 보이고 다시 쇠관을 만나 내려가니 임도가 나오는데 방향이 영 이상하다.
임도로 내려서면 밑에는 광산같는 공터들이 파여있고 마루금이 왼쪽으로 나타나니까 아마 전의 봉우리에서 왼쪽인 북서 방향으로 꺽어지지 못하고 그냥 북쪽으로 직진했던 모양이다.
임도를 조금 올라가 능선으로 진입하니 제천시계종주 표지기가 보여서 몇년전 산우들과 아무런 지역연고도 없는 제천시계를 힘들여 종주하던 때가 떠 올라 씁쓰레한 웃음이 나온다.
묘지가 있는 안부를 지나고 가파른 능선따라 삼각점이 눈속에 묻혀있는 567.7봉에 오르면 벌목되어있으며 이제 제천과 가까운 왕박산갈림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 왕박산
567.7봉을 지나 오른쪽으로 억새덤불이 가득한 안부를 지나고 봉우리들을 넘어 가다가 방향도 틀리고 왼쪽으로 마루금이 보여 힘겹게 되돌아온다.
벌목되어서 가려져있던 능선으로 직진해서 봉우리들을 넘어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옷을 벗은 왕박산과 눈을 쓰고있는 날카로운 무등산이 모습을 보여준다.
뚜렸하고 좋은 길따라 돌무더기들이 쌓여있고 색동천이 걸려있는 조을치안부를 넘고 목장철선 따라 넓다랗게 무덤이 자리잡은 봉우리에 오르면 왕박산은 이제 지척이다.
잡목과 덤불들을 헤치고 산불지대를 내려갔다가 무인산불감시시설이 있는 능선갈림봉으로 오르니 몸을 날릴 정도로 강풍이 불어오고 해는 어언 뉘엇뉘엇 지고있다.
꺽어지는 마루금을 확인하고, 왕박산을 바라보며 임도로 내려가 밭을 지나고 다시 임도따라 올라가다 푸른 플라스틱통들이 놓여있는 사면으로 붙는다.
산불로 모조리 타버려 키작은 관목들만 서있는 까까머리 눈밭을 치고 올라가면 제천시너머로 용두산으로 이어지는 지맥의 흐름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송학산이 멋지게 솟아서 주위를 압도한다.
억새와 덤불들을 헤치며 왕박산(597.5m) 정상에 오르니 오석이 서있고 바람만 거세게 불어오며 아직 갈길 남은 산객의 등을 떠민다.
▲ 조을치 안부
▲ 능선갈림봉에서 바라본 왕박산
▲ 왕박산 오르며 뒤돌아본 능선갈림봉
▲ 왕박산 오르며 바라본 용두산
▲ 왕박산 정상
- 서문리도로
갈림길로 돌아와 표지기들이 걸려있는 서쪽 능선으로 내려가면 산불이 났었는지 잡목과 까시덤불들이 빽빽하고 길도 보이지않는다.
갈림길에서 두번 연거푸 오른쪽으로 꺽어 내려가다 족적은 사라지고, 급한 마음에 밑에 보이는 도로를 겨냥하고 내려가다가 베어진 나무들과 까시덤불에 갇혀 고역을 치루며 옆의 능선으로 올라가니 표지기들이 나타나고 길도 좋아진다.
어둠컴컴한 송림을 천천히 내려가다 왼쪽으로 꺽어져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염소농장이 나오고 앞에는 차들이 굉음을 울리며 달리는 고속화도로인데 이제 날은 완전히 어두어진다.
랜턴을 켜고 지하 굴다리를 건너 수로따라 절개지를 올라가서 얕으막한 능선을 걸어가니 어둠속에 작은 구덩이들이 잇달아 나온다.
컴컴한 능선길을 따라가다 약간 왼쪽으로 꺽어서 돌로 쌓은 축대를 내려가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서문리도로이며 여기에서 조금 남은 뱃재까지의 길은 포기하고 산행을 접는다.
오른쪽으로 도로를 내려가니 무도2리의 민가들이 보이고 계속 내려가 다리를 건너 38번국도로 진입하는 정류장에서 제천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옷 매무새를 챙기고, 길 찾기도 까다로운데 눈이 많아 어려웠던 산행을 무사히 끝냈다는 생각으로 소주 한잔 마시고 있으려니 바람은 더욱 냉랭해지고 희끗 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첫댓글 신설에 고생하셨습니다. 31일 무료하여 급작스레 몇명산우와 흥정산줄기를 눈맞으며 진행했는데 킬문님도 역시 그 눈때문에 성가셨나봅니다.산행기록...감사...차후 영춘진행시 유용한 자료로 참고하겠읍니다.
흥정산에는 눈 많지 않았습니까? 호젓한 곳인데 요새는 펜션이다 허브농장이다 해서 많은 시설물들이 들어와 계곡을 망치고 있더군요...
팬션이 너무많이 너무깊게까지 들어와서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흥정산 등로입구인 곧은골상단부까지 산기슭을 헤치고 들어섯거든요. 산은 호젓한데 계곡은 너무 번잡스러울것 같습니다.
굴곡세고 독도 어려운 구간에 눈까지 설상가상의 구간 / 고생하셨슴다...
앞으로는 구간이야 뚜렸하겠지만 대중교통편이 안 좋아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길게 끊을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