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시 65:1-13)
할렐루야! 지난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건강하시지요. 평안하시지요.
참으로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르 흐르고, 아무 일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에 빠질 수밖에 없는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싫고, 먹는 것도 싫고, 가만히 선풍기 바람 앞에, 누워 있고 싶은 그런 계절입니다. 이럴 때 짜증이 나기가 싶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기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더욱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대인의 가르침에 “혓바닥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버릇들이기 전에,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혀에, 감사가 깊게 새겨졌으면 합니다. 감사가 갑절로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고등부 여름수련회, 소망캠프를 앞두고, 그리고 아동부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오늘 읽은 시편 65편의 말씀을 통하여, 감사해야 할 내용들을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들을 다섯 가지나 고백하고 있습니다.
첫째,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아멘.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여 들으십니다. 신음한 자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고통당하는 자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힘없는 자의 눈물의 기도로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하시되,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8:32절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했습니다.
78년 전통을 자랑하는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의 원조 학화 할머니 호두과자를 아십니까? 혹시 드셔보셨습니까? 저는 아직 못 먹어 본 것 같습니다.
휴게소에서 파는 호두과자를 다 아실 것입니다. 심복순 권사님이, 천안에 호두가 많은 것을 최대한 이용해, 이것으로 과자를 만들었고, 이것이 히트를 쳐 천안에서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미국,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수출하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니까, 하루에 가격대별로, 50개씩만 판매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심 권사님이 1934년,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에, 남편과 함께 호두과자를 개발하여, 지금까지도 이 빵을 구워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두과자로 명예학박사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쓰신 책이 참 많은 감동을 줍니다. 그 제목이 “나는 다윗 왕보다 행복합니다”라는 책입니다.
그 책의 내용을 보면,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를 많이 흘려 성전건축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는데, 자기는 이런 조그만 풀빵장사를 하면서도, 주님의 성전을 10개나 지었기 때문에, ‘나는 다윗 왕보다 더 행복하다’라는 간증입니다. 성전건축 외에도, 수많은 교회와 신학생, 장애인들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는데, 천안에서 10번째 손가락에 드는 부자라고 합니다.
책에는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들어 있습니다.
신혼 초부터 계속된 남편의 바람기와 아들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한꺼번에 잃은 재산, 사랑하는 둘째 아들의 죽음, 신앙으로 이겨내고 호두과자를 만들어 구워 팔았습니다. 돈이 조금씩 들어오자 심 권사님은 하나님께 이런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업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버는 돈의 절반은 하나님의 것으로 믿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권사님의 기도를 들어 주셨고, 그의 기도대로 많은 선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일생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막을 내립니다. 만일 다윗의 인생에 기도가 빠진다면 다윗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비천한 목동이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도 기도했습니다. 나이 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도 그는 기도했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물리치고 난 다음에도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목숨의 위협을 느낄 때도 그는 기도했습니다. 전쟁의 한 가운데서도 기도했습니다. 평안하게 궁에 거할 때도 그는 기도했습니다. 행복했을 때에도 기도했고, 불행해졌을 때도 기도했습니다. 그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은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순간, 어느 상황, 어디에서도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도했고, 하나님은 응답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들으신다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반드시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가장 좋은 것으로, 적절할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숨질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합니다. 더욱 길게, 많이, 뜨겁게,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에 나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금요일 저녁, 교회에 나와 부르짖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남의 이야기나 간증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기도의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기도하면 모든 것이 놀랍게 변합니다. 나, 남, 우리, 가정, 교회, 국가가 새로워집니다. 혈기와 고집도 사라집니다. 사랑과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모든 일들이 쉽게 쉽게 해결됩니다. 다 이해되고, 용서가 되고,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더 크고 선한 뜻을 따라 하나님의 때에 응답되어 집니다. 실망도, 좌절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계속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한 만큼 남습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감으로, 이 무더위에 더욱더 은혜가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아멘.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라고 했는데,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헤매일 때에 주는 우리 죄를 모두 용서하셨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되,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생각하지도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가 많고, 클지라도, 다 용서하십니다. 주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로, 다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기 있게, 진실하게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주께서 회개한 자에게,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대 기독교의 고전으로 읽히는 ‘영광의 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짐 엘리엇은, 세상적으로 보면, 참으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는 휘튼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학교에서는, 20대 후반의 명석한 그에게, 교수직을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높은 지위도, 세상적인 명예도, 해갈해 주지 못하는 깊은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열정을, 가장 부가가치가 놓은 일에 투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땅의 마지막 살인부족이었던 에콰도르 아우카족의 영적 필요를 채우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밀림 속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를 식인종으로 오해한 아우카족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28세였습니다. 1956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산술법으로, 도무지 계산이 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투자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 쓴 일기 속에서, 우리는 엘리엇이 무엇을 위해, 자신의 귀한 생애를 내던졌는지,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붙잡아도 붙잡을 수 없는 헛된 것을 위하여 투자하기보다는 영원히 빼앗기지 않는 영광을 위하여 투자하는 삶을 미련하다고 하지 말라.”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게 보냈는지를 판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영원한 투자를 위해, 미지의 땅에, 열혈 청년의 순수와 열정을 묻었던 엘리엇의 눈으로, 우리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됩니다. 진정한 투자는, 붙잡을 수 없는 헛된 것,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것을 위한 투자가 진짜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생명을 얻는 일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내 삶의 진액을 한 방울도 헛되이 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짐 엘리엇의 부인인 엘리자베스가, 남편의 뒤를 이어, 그곳에 들어가 복음을 전합니다. 남편을 살해한 부족에게 들어가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죄의 은혜를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신명기 33:29절을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 용서함을 받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며,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택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아멘.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셨다”고 하는 것은 “주의 뜰에서 하나님과 영적인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많을 사람들 가운데, 택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게 하신 은혜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 또한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뜰에 거할 수 있는 행복도, 주님의 택함이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뜰에서, 교회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으로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택함 받은 자의 은총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름답고 올바른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주의 성전에 나와, 찬양과 예배를 통해, 다윗은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이 기쁨과 만족은 성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영적인 기쁨과 감사입니다.
다윗의 일생은,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왕노릇하는 것을 다윗이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되고 난 다음에 골치 아픈 일이 쌓이고 쌓였습니다.
신하들의 권력 다툼, 자식들의 쿠데타, 권력의 매너리즘에 빠져 타락했습니다.
어떤 분은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잘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대통령 자리가 그리 좋은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대통령에 나오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그 책을 보면, 모른다고 합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생각’이라는 책을 썼는데, 아마 아직까지도,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 생각만 하다, 끝날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분! 한 나라의 왕이었던 다윗이 가장 기뻐했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살 맛 나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출입할 때입니다. 천막으로 지어지 볼품없는 성전이었지만, 다윗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바로 하늘의 신령한 은혜로, 위로 받고, 힘을 얻었습니다.
신앙의 사람 다윗의 일생에, 가장 귀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 마무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재료와 돈을 마련하는데 전력을 다합니다.
하나님의 전은 성도의 축복의 원천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축복받는 장소입니다.
시편 128편에,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성전을 통해서만, 복 받게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택하여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오고 싶은 곳, 언제나 머물고 싶은 곳, 언제나 마음의 위로를 받는 곳, 언제나 기도 응답을 받는 곳, 언제나 은혜의 강물이 넘쳐 흐르는 곳, 언제나 죄 용서함이 있는 곳, 언제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는 곳이, 바로 교회임을 기억하시고,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아멘.
하나님은 애굽 군사들의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 구원하심은 두렵고 떨리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고, 도움이 되십니다.
지금 영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개회식 장면을 보았는데,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헬기를 타고 경기장에 와서는 낙하산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물론 뛰어내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뛰어 내려겠지만, 참으로 멋있는 개회식 장면이었습니다.
바로 그 영국 여왕이 살고 있는 궁 앞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영국 궁 앞에, 요란스러운 교통정리가 있었습니다. 하얀 장갑을 낀 교통순경이, 지나가는 모든 차량을 전부 스톱시켰습니다. 통행인도 전부 멈추었습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사람들도, 발을 내려놓고 어떤 행렬이 지나가는가를 기다렸습니다. 틀림없이, 영국 여왕의 행렬일 것이라며, 여왕을 구경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이윽고 그 행렬이 지나가는데, 어미 오리가 열 마리의 새끼 오리를 데리고, 아장아장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오리들이 지나가게 하기 위해서, 왕의 행렬처럼,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차가 멈추게 되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어찌하여 우리를 보호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쌈도 않고, 농사도 짓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먹여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살 때에, 주위의 많은 대적이 있었으나 보호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냈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습니다. 안팎으로 정치적 음모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구원받았습니다.
시편 23:4-5절을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그는 구원에 대한 감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땅에 사는 동안에, 평생 동안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죄악 속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틀림없이 내 영혼도 구원하여 영원토록 하나님의 집에 같이 살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흘러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땅이 광야입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신 것, 모든 위험에서 건지신 것, 또한 우리에게 도사리고 있는 신앙의 위험과 미혹에서, 대적들에게서, 우리의 신앙을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땅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땅을 돌보시고 살피십니다. 비를 내려 땅이 기름지게 하십니다.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고, 땅마다 곡식이 탐스럽게 열리게 하십니다. 곡식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10절을 보면,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어떻게 돌보십니까? 밭고랑마다 흡족한 비를 내려, 흙덩이를 촉촉이 적셔, 흙을 부드럽게 하시며, 싹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복을 주십니다.
11-13절을 보면,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복 주심으로, 결국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들의 초장에도, 이름 없는 들풀에게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주신 복으로 기름져 푸릅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손길 닿는 곳마다, 하나님 발길 닿는 곳마다 생명과 풍요와 치유의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가을에 풍성한 수확, 초장을 뒤덮은 양떼들을 보면서 “내가 농사짓고 양을 쳤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찌 결실할 수 있었으랴!”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셨습니다. 태양을 주셨습니다. 바람을 주셨습니다. 비를 주셨습니다.
일년 내 농사하고도 태풍이 한 번 들이닥치면 다 날아갑니다. 아무리 양떼가 많아도 탄저병이 돌면 다 죽여야 합니다. 분명 가을의 수확과 산업의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땅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면서, 교훈을 얻습니다.
여러분! 땅과 들풀, 새들까지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지 않겠습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를 위해 주셨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주셨습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아버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우리들이 피부로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7일 동안 바다 위에서 난파된 배 조각을 붙잡고, 사투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목숨을 유지해준 것은, 두 평 남짓한 뱃 조각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낮에는 태양열에 괴로워했고, 밤엔 추위와 죽음의 공포로, 절망했습니다. 갈증과 허기, 불안과 절망 가운데 있던 이 사람은, 7일 만에 구조팀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되어, 꿈에 그리던 가족의 품에 안겼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후, 사람들이 소감을 물었을 때,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 먹고 가정에서 편히 쉬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면 다른 일체의 것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정말 하나님의 은혜는 크고도 놀랍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자연을 돌보실까요? 자연을 돌보시는 것은 우리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땅에 맺은 곡식 누가 먹습니까? 과일은 누구의 것입니까? 결국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복을 받은 땅과 산들이, 즐거이 외치고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자연도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데, 더 큰 은총을 받은 인간이 감사하지 않는다면, 자연보다 못한 부끄러운 자가 될 것입니다.
김동인의 사초집을 보면, 고려 말년인 1430년 경, 과거에 급제하여, 세종대왕 때에는, 우의정을 지낸 바 있는 유관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생활이 청빈하였을 뿐만 아니라, 감사하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가 청빈한 생활을 하였던지, 우의정을 지내기 전까지만 해도, 자기 집 하나도 변변한 것을 갖지 못하고, 동대문 밖, 그것도 울타리와 대문도 없는 초가집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제때 지붕을 덮지 못하여, 군데군데 하늘이 보일 만큼, 구멍이 뚫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새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관은 조금도 불평하는 일이 없이, 매사에 감사하였습니다. 장마철이 되어, 비는 매일같이 내리고, 방 안에는 편히 누울 곳도 없이, 빗방울이 소리를 내며 떨어지게 되자, 유관 부부는 비가 새지 않는 곳으로, 이리저리 옮겨 앉으며, 비를 피하다가, 나중에는 너무도 많은 비가 쏟아지므로, 우산을 받쳐 들고, 마주 앉아서야, 겨우 비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이나 소동을 벌인 후, 기가 막혀 화가 나 있는 아내에게, 유관은 위로하여 말하기를, “여보! 그래도 우리는 우산이 있으니, 이와 같이, 심한 비를 피할 수라도 있는 것이 아니오. 우리처럼 우산도 없는 집이야, 지금 이 비에 오죽이나 하겠소. 그러니 감사하십시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불행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끝내 성공할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헬렌 켈러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놀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 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헬렌 켈러의 소망은 지극히 소박한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누릴 수 있는 평범한 것들입니다.
눈을 감고,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십시오.
“내가 받은 복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무더운 날씨에,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의 여유, 마음의 여유가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은 최고의 축복이며 행운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택하여 부르시고, 우리를 위하여 땅을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매일 매일 감사거리가 없는지 살펴보고, 감사가 갑절로 늘어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시고, 매일 매순간 지키시고 인도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귀한 일군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