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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양반 |
할미 |
넷째양반 |
제대각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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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노 |
종가도령 |
수양반 |
말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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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양반 |
담비 |
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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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야류는 부산 수영동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이다. 수영이나 동래 지방에서는 탈놀음을 '야류', 또는 '야루'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것은 원래 '들놀음', '놀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야유(野遊)라고 적은 것이 음운변화로 야류, 야루 등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들놀음이란 들판에서 놀이한다는 뜻인데, 연희장소는 들판이나 시장의 넓은 빈터이다.
▶ 탈놀이의 내용 제1 전편 :'야류계'가 중심이 되어 경비의 마련과 탈 및 도구제작 그리고 놀이판을 설치한다. 수영야류는 시작은 음력 정월 초 3-4일경부터 13일까지 놀이를 한다.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한후 부정을 타지 않은 일정한 장소에서 탈과 도구를 만든다. 탈이 만들어지면 가면제(假面祭 : 탈제)를 지낸다. 14일 밤에 시박(원로들 앞에서 그동안 연습한 연기를 심사받고, 배역결정)을 한다. 대보름날 오전에는 수영 토지신과 영(營)을 수호하는 제당에 서낭제를 모신 다음 수영 사람들의 식수인 먼물샘에 고사를 지낸 후 최영장군묘제 (崔瑩將軍廟祭)를 지낸다.탈놀이의 시작은 길놀이로 시작된다. 선두에 소등대가 서고 풍악대, 길군악대, 팔선녀, 사자와 가마를 탄 수양반 등의 순서로 가장.가무.연등의 대행렬 을 한다. 2. 후편 : 탈놀이 제1과장 양반 : 무식한 하인 막둑이(말뚝이)가 신랄하게 풍자한다. 제2과장 영노 : 천상에서 죄를 짓고 지상에 내려와서 양반 99명을 잡아먹은 영노가 한 사람만 더 잡아먹으면 승천한다고 수양반을 위협한다. 영노가 제일 무서운 것이 '참양반의 호령'이라고 하자 수양반은 신이 나서 자랑하다가 잡아먹힌다. 제3과장 할미.영감 : 영감과 본처와 첩인 제대각시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가난한 가정생활을 표현하고 있다. 제4과장 사자무 : 사자가 범과 싸우다가 범을 잡아먹는다. 탈놀이를 마치고 나면 가면 소각제(燒却祭 : 불로 태우는 것)를 올린다.
수영야류에 사용되는 탈은 1)수양반, 2)차양반(일명 毛雨班), 3)셋째양반, 4)넷째양반, 5)종가도령, 6)막둑이(말뚝이), 7)영노, 8)영감, 9)할미, 10)제대각시, 11)범, 12)사자이다. 이 밖에 의원, 봉사, 향도꾼은 탈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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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중 |
말뚝이 |
왜장녀 |
눈끔적이 |
연잎 |
포도부장 |
옴중 |
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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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얄할미 |
상좌 (도련님) |
상좌 (서방님) |
샌님 |
신할아비 |
원숭이 |
취발이 (쇠뚝이) |
팔목중 | 경기도 양주 지방에 전승되는 탈놀이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 중심의 경기지방 즉 애오개(阿峴), 녹번(碌磻), 사직(社稷)골, 구파발, 퇴계원, 가은돌(玄石), 노돌(老乭), 송파(松坡), 의정부(議政府) 등지에서 연희되는 산대도감극의 한 분파이다. 양주별산대는 양주골에서 200년-150년 전부터(순종, 현종 연간) 해마다 4월 초파일과 5월 단오에 한양 사직골 딱딱이패를 초청하여 산대놀이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지방순회 또는 다른 핑계로 공연약속을 어기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것에 불편을 느낀 양주골의 신명이 있는 사람(주로 관아의 아전)들이 사직골 딱딱이패를 보고 탈과 의상을 제작하여 공연하였다. 그 뒤부터 이를 발전시켜 내려온 것이 양주별산대놀이이다. 연희시기는 5월 단오, 4월 초파일, 8월 추석의 명절과 기우제 때이다.
▶ 탈놀이의 내용 제1과장 상좌춤 : 두 명의 상좌가 등장하여 타령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제2과장 옴과 상좌놀이 : 옴중은 상좌를 조롱하다가 마침내 상좌를 쫓아낸다. 제3과장 옴중과 목중놀이 : 옴중과 목중이 서로 재담을 하다가 같이 춤을 춘다.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 : 연잎은 얼굴을 부채로 가리고 등장한다. 그러자 상좌1, 2, 먹중, 옴은 연잎의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간다. 그 후 연잎과 눈끔적이가 춤을 추다가 연잎은 퇴장하고, 눈끔적이가 혼자서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제5과장 팔목중놀이 : 제 1경은 염불놀이, 2경은 신주부 침놀이이다. 제 3경에서는 왜장녀가 목중들과 흥정하여 돈을 받고 애사당을 데리고 나오면 목중이 애사당을 업고 춤을 춘다. 제6과장노장놀이 : 노장이 파계하여 소무 1,2와 춤을 춘다. 제7과장 풍자탈 : 하인 말뚝이가 샌님을 조롱한다. 제8과장 풍자탈 : 미얄할미가 신할아비와 싸움을 하다가 할미가 죽게 되면, 무당이 진오귀굿을 한다.
▶ 탈의 종류 1)상좌 (2개 : 첫째상좌는 도련님역 겸용), 2)옴중, 3)먹중(4개), 4)연잎, 5)눈끔적이, 6)완보, 7) 신주부, 8)왜장녀(해산어멈, 도끼 누이 겸용), 9)노장, 10)소무(2개 : 애사당 또는 당녀 겸용), 11)말뚝이, 12)원숭이, 13)취발이(쇠뚝이 겸용), 14)샌님(언청샌님), 15)포도부장, 16)신할아비, 17)미얄할미이다. 총 인원수는 32명이고 겸용하는 가면이 있기 때문에 22개 내외가 된다. 탈은 약 70년 전 조선 시대 말부터 사직골 당집에 보관하고 해마다 손질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당집이 없어진 뒤에는 연희자의 집에 보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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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춤'은 우리나라 곳곳의 탈놀이에서 보이는데 그 가운데서 독립된 '사자놀음'으로는 단연 '북청사자놀음'을 꼽는다.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사자(獅子)놀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북청군에서도 북청읍 사자계(獅子契), 가회면 학계(學契), 구 양천면의 영락계(英樂契) 등의 사자놀음이 유명하다. 특히, 북청읍 사자는 댓벌〔竹坪里〕사자, 그것도 다시 이촌사자, 중촌사자, 넘은개사자, 동문밖사자, 후평사자, 북리사자, 당포사자 등으로 나뉜다.
동리마다 제각기 사자를 꾸며서 놀았고, 읍내에서 경연 후 우승팀을 선정하곤 했다. 그런데 1930년경 청해면 토성리의 사자놀이를 제외한 다른 사자놀이팀들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청해면 토성리의 사자놀이는 관원놀음과 함께 행해지므로 더욱 유명하다.
이 놀음은 삼국시대의 기악(伎樂), 무악(舞樂) 이래 민속놀이로 정착된 가면놀이로, 주로 대륙계, 북방계인 사자무가 민속화된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북청 일대에서는 음력 정월 14일에 여러 마을에서 장정들의 편싸움이 벌어졌으며, 달이 뜬 뒤부터 시작된 사자놀음은 15일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16일 이후는 유지의 집을 돌며 놀았다.
먼저 마당으로 들어가 난무를 하면 사자가 뜰로 뛰어들어 안방문을 열고 큰 입을 벌리고 무엇을 잡아먹는 시늉을 하고, 다음에는 부엌에 들어가서 같은 행동을 한 뒤에 다시 내정 한복판에 나와서 활발하고 기교적인 춤을 춘 뒤에 가장 먼저 물러난다. 이때 주인의 청에 따라 부엌의 조왕신에게 절을 한다. 또 아이를 사자에게 태워주거나 사자 털을 몰래 베어두면 무병장수한다고 하는 속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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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와 병산리 마을에서 별신굿을 할 때 탈놀이를 놀았는데 하회리 별신굿은 1928년이래 중단되고 다만 하회탈과 병산탈 등이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남아오고 있다.
이 놀이가 이루어졌던 곳은 하회리 풍산 류씨 '동성마을'로 불리는 곳인데 구전에 의하면 대체로 고려 중엽까지는 허씨, 그 후에는 안씨, 나중에 류씨가 조선 초기부터 집단적으로 이곳에 들어와 정착한 것 같으며, 또한 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었다는 전설로 미루어 이 하회탈이 고려 중엽의 것이라는 추정도 내릴 수 있겠다.
이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은 여신인 '무진생(戊辰生) 서낭님'으로 17세 처녀인 의성 김씨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15세에 과부가 된 서낭신으로 동네 삼신의 며느리 신이라고도 전한다. 이 서낭신에게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과 4월 초파일에 올리는 평상제는 동제(洞祭) 또는 당제 (堂祭)라고 부르고, 이와는 달리 임시 대제로 지내는 별신굿은 대체로 10년에 한번씩 거행된 것이다. 이 별신굿은 그 기능으로 보아 이른바 마을굿으로서 서낭신에 대한 큰 제사이며 탈놀 이는 오신(娛神)행사로서 별신굿의 부분에 속한다.
▶ 탈놀이의 내용 첫째마당은 각시의 '무동(舞童)마당'이다. 각시탈을 쓴 각시 광대가 무동을 타고 꽹과리를 들고 구경꾼 앞을 돌면서 걸립을 한다. 이렇게 모은 돈이나 곡식은 모두 별신굿 행사에 쓰이며 남으면 다음 행사를 위해 모아둔다. 둘째마당은 '주지놀이'인데 주지는 사자를 뜻하며,이 놀이는 탈판을 정화하는 액풀이 마당이다. 누런 상포같은 것을 머리로부터 뒤집어 쓰고 두 손으로 꿩털이 꽂힌 주지탈을 쓴 암수 한쌍의 주지가 나와 춤을 춘다. 셋째마당은 '백정마당'이다. 백정이 도끼와 칼을 넣은 망태를 메고나와 소를 잡고 우랑을 끊어들고 구경꾼들에게 사라고 한다. 넷째마당은 '할미마당'으로 쪽박을 허리에 차고 흰수건을 머리에 쓰고 허리를 드러낸 할미 광대가 나와 베를 짜며 한평생 고달프게 살아온 신세타령을 베틀가에 실어 부른다. 다섯째 마당은 '파계승마당'으로 부네가 나와 오금춤을 추다가 오줌을 눈다. 이때 중이 등장하여 이 광경을 엿보다가 나와 오줌 눈 자리의 흙을 긁어모아 냄새를 맡고 흥분하여 날렵하게 부네를 옆구리에 차고 도망간다. 여섯째 마당은 '양반 선비마당'으로 양반이 하인인 초랭이를 데리고 선비는 부네가 뒤따르며 등장한다. 양반과 선비는 서로 문자를 써가며 지체와 학식을 자랑하다가 결국 양반이 선비에게 욕을 먹고 지게 된다. 그러다가 서로 화해를 하고 부네와 초랭이까지 한데 어울려 춤을 추며 논다. 이때 별채 역인 이매가 나와'환재 바치시오'라고 외치면 모두 놀라서 허겁지겁 도망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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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탈 |
병산탈 | 이 놀이에 사용되는 탈은 현존하는 것으로 양반, 선비, 각시, 부네, 중, 백정, 할미, 이매, 초랭이 탈로 1964년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주지탈 2개는 1980년에 추가로 지정되어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탈은 오리나무로 제작되었으며 채색기법은 칠기와 마찬가지로 옻과 안료를 두세 겹 칠하여 색의 강도를 높였다. 하회 별신굿탈놀이는 198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으며 예능보유자인 이상호(1945년생, 백정)가 전승활동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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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양반 |
말뚝이 |
신장수 |
취발이 |
목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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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 |
영감 |
원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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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해서지방에 전승되어 오던 탈춤의 하나이다. 봉산탈춤은 봉산군.읍 경수대에서 놀아지다가 1915년경 군청 및 기타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옮겨지고, 경의선이 개통된후에는 사리원 경암산 아래서 놀아졌었다. 또 황해도 지역의 5일장이 개설되던 장터에서는 상인들이 탈꾼들을 불러 1년에 한 번씩 놀았다고 한다. 해서탈춤의 분포 지역 중에서 특히 '팔역지 八域誌'의 남북직로로 중요한 읍및 장터인 황주;봉산;서흥;평산 등지에서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황해도의 주요 읍은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교역지였으며, 소도시로서 탈춤 공연을 뒷바라지할 만한 경제적 여건을 갖춘 곳이었다. 연희 시기는 조선시대부터 5월 단오날 크게 놀았다고 한다.
▶ 탈놀이의 내용 제1 마당 사상좌춤 : 상좌 넷이 나와 춤을 추어 연희자와 관객의 안녕과 복을 빌며 사방신에게 절을 올린다. 제2 마당 팔목중춤 : 팔목중은 음주가무를 즐기며, 풍유 소리에 맞추어 한 사람씩 춤기량을 겨룬다. 제3 마당 사당춤 : 사당과 거사가 나와 서도소리를 부른다. 제4 마당 노장춤 : 소무가 불도를 닦고 있던 노장스님을 꾀어 파계시킨다. 제5 마당 : 부처님이 팔목중과 노장의 파계를 벌하려고 사자를 보낸다. 이에 목중이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빈다. 사자는 이를 용서하고 춤을 춘다. 봉산탈은 입체적이며, 의상이 화려하고, 춤사위가 활기차고 씩씩하여 대륙적인 맛이있다. 춤사위는 팔목춤의 외사위, 곱(겹)사위, 양사위, 민사위, 취발이의 깨끼춤(깨끼리춤), 말뚝이의 두어춤(양반들을 돼지우리 속에 몰아 넣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미얄궁둥이춤, 까치걸음, 팔목중의 못동춤 등이 있다.
봉산탈은 주로 종이와 바가지를 사용하고, 헝겊, 털, 가죽, 흙, 대나무 등의 재료도 함께 사용된다.
▶ 탈의 종류 1)상좌 4개, 2)목중 8개, 3)거사 6개(목중탈을 겸용), 3)노장, 4)소무, 5)신장수, 6)원숭이, 7)취발이, 8)맏양반(샌님), 9)둘째양반(서방님), 10)셋째양반(종가집도련님), 11)말뚝이, 12)영감, 13)미얄, 14)덜머리집, 15)남강노인, 16)무당(소무탈 겸용), 17)사자 등 겸용하는 탈이 있어 보통 26개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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