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해도 가슴 벅찬 이름 설악산! 오늘은 한계령에서 시작해서 대청봉을 찍고
오색약수쪽으로 내려오는 산행입니다. 산행시간은 8시간으로 적혀있지만 분명히 그보다
더 오래 걸릴 거라는 예상을 해 봅니다.
왜냐? 8월 가은산(월악산 줄기) 산행과 마찬가지로 악산(岳山) 코스니까요.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 한계령에 도착하니 시원하다 못해 쌀쌀한 기운마저 감도는
그런 바람이 불어옵니다. 어제 비가 왔는지 그곳의 날씨는 쾌청함 그 자체였습니다.
은빛 억새가 우리를 반겨주고 가끔씩 까마귀 녀석들도 하늘에서 우리들을 환영하는
비행쇼를 보여줍니다.
모두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09:00) 저 역시 스무 번도 넘게 온
설악산이지만 실제로 대청봉에 오른 적은 한 번밖에 없답니다.
산행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경사진 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아침에 김밥 먹고 체해서 한 분이 초반부터 힘들어 하시네요.
그래도 후미를 맡으신 매송 회장님께서 부담 주지 않으며 천천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등산로는 외길이 많아 선두와 후미의 차이는 조금씩 벌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첫 번째 휴식시간, 솔매님께서 <이제 반 온거같은데...>라고 말씀하시네요.
산객들의 공공연한 거짓말 아시지요? “다 왔어요. 조금만 가면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금의 의미는 무한한 뜻을 지니고 있지요. 조금 더 힘내라는 뜻이긴 하지만
그놈의 ‘조금’은 도대체 몇 시간을 말하는건지 모르겠다며 초보 산객들은 투덜투덜대기
일쑵니다. 여러분들도 다 그 과정을 겪어보셨지요? 하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도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네요. ㅎㅎ
산행 시작 20분만에 희귀 야생화 금강초롱을 만나게 됐습니다.
지난 6월 태백의 금대봉 산행 때보다 더 많은 야생화가 눈에 띠기 시작합니다.
투구꽃, 바위구절초, 두메부추, 용담, 촛대승마.... 여러 야생화를 만나게 되니
얼마나 기쁘던지요? 산토끼님은 반갑다고 꽃에 입맞춤까지 해줬답니다.
산토끼님과 함께 오신 임미애님은 몇 번 뵙긴 했어도 오늘이 첫 대화네요.
예전에는 자일 타면서 인수봉 암벽등반에 푸욱~ 빠졌던 암벽소녀(?)였다는군요.
어쩐지 산행 내내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더라니..... (야생화 사진은 맨 아래)
산사랑 회원들은 이번 산행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까요?
어떤 이는 날마다 탄천을 몇 시간씩 걸었고, 또 어떤 이는 불곡산이나 청계산을
워밍업삼아 여러 번 올랐다고 하네요. 그만큼 도전해보고 싶은 또 정복해보고 싶은 산이
설악산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제도 북한산 숨은벽 산행을 하고 오늘은 이렇게 미련한
산행을 한답니다. 산을 너무 좋아해도 탈이 날텐데... 쯧쯧! 그런데 어쩔 수 없나봐요.
그래도 산이 좋으니까!!!
2시간 쯤 올라가니 멋드러진 운무(雲霧)가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맑은 날에 만나는 운무는 처음인데 마치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 밖으로 흘러내리는
하얀 김과 비슷한 느낌이 드네요. 거미줄에 대롱대롱 작은 물방울이 맺힌 모습도
색다른 볼거리가 되어줍니다.
분명 힘든 코스인데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산행할 수 있었던 것은 산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인 것 같습니다. 얼굴에 한바탕 분무기를 뿌린 것처럼 스윽~ 스쳐지나가는
운무도 한몫 단단히 했구요!
그런데 이게 웬 괴물(?)입니까? 눈어림으로 1000살은 됨직한 두아름드리 주목이 우리들
앞에 나타났네요. 나도풍란님도 사임당님(작가님 아내)도 한번씩 안아보고 갑니다.
그 오랜 세월 뭇여인네들과 꽉 쪼이는 포옹을 해본 저 나무도 참 행복할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ㅋㅋ
산행 중에 반대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맞부딪치면 좁다란 길목은 정체될 수 밖에 없지요.
그럴 때면 서로 어느 산악회에서 왔느냐고 묻기도 하고 가다가 조심해야할 길도 일러주면서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곤 합니다.
외길이라고 해서 짜증낼 필요도 없고 먼저 가려고 바쁜 척 할 필요가 없지요.
땀을 닦으며 앞만 보고 걷다가 놓친 주변 경치도 살필 수 있는 알토란같은 휴식시간이
되어주기도 하니까요.
4시간을 걷고나니 유명한 아치모양의 고사목을 만나네요. 체리콕님과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줬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찍어주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작가님과 아우성님이 있으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입니다. 조금씩 멀어진 선두를 만날 수
없으니 제대로 쉬지도 못해서 다리가 아프네요.
저 혼자 주저앉아 선두도 후미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만의 휴식시간을 5분 정도
가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배터리가 금방 충전됐네요.
이젠 악셀레이터를 밟아봐야지요!! 붕붕~~
속도를 내니 들국화님이 보입니다. 솔매님 내외, 다올님 내외분도 함께요~
그런데 나도풍란님은 투구꽃이 예쁘게 피었다고 휴대폰 카메라로 찍고 또 찍으십니다.
투구꽃 옆에는 하얀 오리모양의 꽃이 피었는데 이름을 몰라 집에와 식물도감을 살펴보니
흰진범이라네요. 거 참 외우기도 힘든 이름이지요? 끝청을 지나니 이질풀이 지천입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이팔청춘 꽃띠처녀가 어울리는 이 꽃의 이름이 이질풀이라니... 거 참!!
<이 글 맨 아래 꽃사진을 첨부합니다.>
신입회원 ‘은주’님을 만나 함께 가다가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위에 잠깐 올라가봤는데
경치가 끝내주네요. 시시각각 바람따라 춤을 추는 자욱한 운무를 볼 수 있었거든요.
여기서 기념사진 한 방 안 찍을 수 없지요. 오늘은 자연스러운 모습보다는 일부러 연출한
모습들로 사진을 찍고 싶어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찍어봤습니다.
어떤가요? 괜찮습니까? ㅎㅎ
아~~~ 5시간째 걸어 드디어 점심식사 장소인 중청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거의 꼴찌로!
그런데 맨 뒤에서 오는 회장님과 세 분의 산우님들은 잘 오고 있는걸까요?
제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절반정도 식사가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후미를
기다리는 것보다 따로 식사를 하라고 무전연락을 하게 됐습니다. 안타깝네요.
총무님은 라면도 사왔고(산에서 먹는 라면맛 좋잖아요?)
풍천님은 회원들 오삼불고기 해 준다고 4kg이나 지글지글 볶아주셨는데...
대청봉이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40명이 한 자리에 모여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거의 통째로 빌린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보이는 사람은 우리밖에 안 보였으니까.
날씨는 최고 중에 최고다. 왼편으로는 산봉우리 몇 개만 섬처럼 떠 있는 운해(雲海)가
펼쳐있고, 오른편에는 시원한 산바람이 운무(雲霧)를 몰고와 얼굴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산신령이 보우하사 평생 볼 수 있는 멋진 경치의 절반은 볼 수 있었던 것같다.
이 말이 뻥이 아님을 함께 대청봉을 올랐던 43명의 분당산사랑 회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정상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을 옮긴다. 산행 내내 정상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거야?
하면서 불평했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중청대피소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 전후좌우에서 펼쳐지는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에 힘들었던 5시간은 머릿속에서 운무와 함께 쏘옥~ 빠져나갔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산안개는 대청봉에 불이 난 것처럼 하얗게 하얗게 피어올랐다.
119에 신고하려면 금세 사라졌다가 또 다시 보면 연기가 피어오르고 ......
변화무쌍한 운무의 연기력은 10점 만점에 10점!!!
김연아, 손연재도 따라오지 못할 정말 최고의 실력이었다.
드디어 대청봉이다. 기념사진을 찍어주려는데 식사하면서 소방차님이 한 잔 주신
개복숭아주의 취기가 얼굴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몽롱한 상태로 찍었기 때문에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도 됐는데 날씨도 맑고, 산사랑 회원들도 하나같이 모델뺨치는
외모인지라 셔텨만 누르면 작품이 되어주었다. (자화자찬 되어버렸넹~ 죄송!)
자~~ 이제 하산합시다. 벌써 3시 40분이네요. 하지만 아직까지 중청대피소에도 도착하지
못한 후미팀 4명은 어떡하죠??? 오늘은 <아! 우성>님께서 후미의 수호천사가 되어
기다려주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회장님께 들으니 중청대피소 직원들이 체한 회원님에게
응급처치를 잘 해줘서 40분 정도만 따라잡으면 본진과 합류해서 하산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체한 증세가 또 나타나 내려올 때 고생을 많이 하셨다네요.
그래도 환자분은 회장님, 청보리님, 이경숙님이 함께 계셔서 든든하셨을겁니다.
회장님이 늘 후미에서 힘들어하는 회원들에게 농담삼아 하시는 말 있잖아요?
<제가 업어서라도 모실테니 하나도 걱정하지 마시고 올라가세요.>
드디어 오늘 이 말이 진담이 돼버렸네요.
거의 하산을 했을 때 후미 일행이 깜깜해지는데 못 내려오고 있다는 무전을 받고 환자를
위한 따뜻한 물을 들고 다시 역산행을 하는 풍천님!!! 저는 오포소녀님 가방을 앞에
메고 가는 상황인지라 어쩔 줄 몰라하는데 용감한 우리의 영웅 영옥님께서 제 배낭을
자기한테 달라고 한다. 우와~ 멋져! 고마워용~~
저는 스마트폰에서 <손전등>이라는 앱을 무료로 다운받아 놓았기 때문에 깜깜한 밤에도
산행이 가능했지요. 헤드랜턴 2개를 들고 올라가시는 풍천님, 또 하나의 랜턴을 갖고 있는
무한체력 작가님이 합류하여 세 명이 후미일행을 맞으러 올라갔습니다. 그야말로 삼총사네요.
한참을 올라갔지요. 주위는 시나브로 어두워져 가는데 후미 일행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휴우~ 그런데 환자분을 진짜 등에 업고 올라오시는 회장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200미터정도 산길을 그렇게 걸어오시다니... 그래도 지원군이 세 명이나 왔으니 이젠
후미일행도 내려갈 힘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양쪽에서 환자를 부축하면서 한발 한발 내려왔습니다.
풍천님은 환자분이 정신줄을 놓지 않게 계속 실없는 농담을 건넸습니다.
우리는 걷다 쉬다를 반복하고 무전도 일정 간격을 두고 어디쯤 왔는지 물어봅니다.
119 응급요원같은 분이 후레쉬를 들고 달려와서 환자를 마사지해줍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알부남’님이셨네요. 너무 전문가처럼 마사지하셔서 119 직원으로 착각했다니까요!
이로써 지원군은 4명이 됐고 외길에 인원만 많으면 위험해질까봐 헤들랜턴이 있는
청보리님과 이경숙님을 먼저 하산시키고 나머지 7명만 따로 가기로 했다.
분명 먼저 도착하신 분들은 9시가 다 되도록 내려오지 못하는 일행을 걱정걱정했을 겁니다.
그 마음에 힘입어 모두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네요. 마지막까지 회원들을 챙기면서
하산하신 회장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힘들기는 했지만 우리 분당산사랑 산우회의 단결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산행이었네요.
환자분도 기력을 되찾아 병원 응급실도 가지 않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ㅎㅎ
집에는 새벽 1시가 거의 다 되어 도착했으니 아마도 이번 산행은 산사랑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설악산의 정기를 받으신 43명의 산사랑 회원 여러분! 함께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 되어
참석하지 못했던 산우님들! 가족의 정이 좔좔 넘치는 추석 명절 잘 쇠시고 10월에 다시 만나요!
아 참~~ 다음 산행은 100회를 맞는 뜻깊은 산행이니 많이 많이 참석해 주십시오!
************** 특별 부록 ****************
1.말로만 야생화가 다 있었습니다.
첫댓글 산행기 역시 비몽사몽간에 쓴거라서 자고 일어나 조금 손보겠습니다. - 저는 잡니다.
따끈따끈한 후기 일등으로 잘 읽었습니다
현장감있는 생생한 후기 만드시느라 고생하신 모습이 역력합니다
마음만 설악산을 따라갔는데 마치 제가 대청봉을 다녀온 듯 합니다
이렇게 후기를 볼 수 있게 해 주신 싹수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산사랑 회원 모두 특히 회장님~ 멋져요~~!
후기를 써 놓으면 마음이 놓입니다.아주시는 제비님 정말 감사합니다.
산사랑 회원들 모두가 함께 올라간 것 같은 그런 느낌
매번 댓글
정말 기억에 많이 남을 설악산 산행이었습니다~ 날씨와 풍광이 너무 좋았고 후미팀 고생 너무 많이 하셨고...
함께 협조해 주신 산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말이 필요없다는 게 바로 이런거구나 생각했어요.
이 되셔야 하니까 고생하는 건 똑같을거라 생각합니다. 화이팅
선두에서 회원들을 이끄는 것 역시 모두가 따라올 수 있도록
항상 산사랑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대장님
근데.... 지난번 가은산에서 다짐했던 복수혈전은
설악산 운무보면서 모두 까먹으셨죠
그 좋은 곳에서 나쁜생각이 나겠어요? ㅎ ㅎ
산사랑 가족 여러분 뜻 깊은 설악산 산행,잊지 못할 추억을 같이 공유 하지 못 한게 아쉽지만 산행기를 보면서 마치 같이 동참한것 같은 착각을 해 봅니다 .모두건강 하세요. 싹수님 땡큐
그 착각 참 좋은 착각입니다.하
어차피 100회 산행에서 또 한번 추억만들기 할거잖아요
아쉬워 마십쇼
싹수님의 산행기 즐감했어요
쉬운산행보다 험한산행이 많은추억을 공유하지요
멋진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네번째 대청봉에등정하고 다섯번째을 기대하면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저는 여태까지 산에 다니면서 거우니까요 / 이번에는 정말 추웠네 그래도 정말 거웠어> 혼잣말을 해본답니다.
고생했다는 생각을 거의 해보지 않았거든요.
< 이번엔 땀 많이 흘렸네
솔매님의 늘 의미있는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산사랑 가족이 된후 3번째 산행에서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 다소 힘들었지만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그 기억과 추억을 잘 표현해 주신 싹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산우님들을 위해 애써 주시는 회장님,산악대장님 이하 운영위원님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설악의거운 추억 정말 오래가겠지요 행복한 추억만들기 계속 하자구요
제가 보니까 청구상가 팀의 대청봉 인증샷 정말 잘 나왔더라구요
함께 산행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답니다.
100회 산행 - 예약하셨죠
힘들고 길었던 산행 많은 분들의 수고와 염려 덕분에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렇죠
산사랑은 늘 감동입니다..
산을 알고 산사랑과 함께 할수 있다는 것은 제 복이죠
감동에 동감
산사랑과 함께 하면 늘 행복합니다. 그렇죠
언제나 가도 감동인 대청봉 코스이번에는 사연이 많아 더 기억에 남을거 같아요.)님들의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후반부에 같이 고생하신 특수회원(
산행은 힘든 것만큼 추억도 남는 거지요.
나는 오색분소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가 택배로 받았답니다.
그와중에 핸드폰까지 집나가고 실합니다
회장님과 여러님들이 있어 산사랑은 든든합니다
핸폰까지 수고를했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회장님!
찾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산행이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