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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5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예수닮기를 시리즈 설교]
제목 : 믿음이 눈으로 보여지는 삶, 신실!
본문 : 마태복음 8장 10절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셔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새번역>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조차, ‘믿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눈으로 보여 지는 것은 믿음의 결과나 믿음의 열매이지 ‘믿음’ 그 자체를 눈으로 본다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닮아가기로 결단하는 예수님의 성품과 성령의 열매 일곱 번째 ‘신실’은 그런 우리의 생각을 꽤 많이 바꾸어 놓을 것 같습니다. ‘신실’은 우리에게 믿음이 눈으로 보여 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신실이란 단어의 국어사전적 의미를 보아도 ‘믿음직하고 착실하다’라는 뜻이기에, 신실이라는 것은 믿음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이 눈으로 보여 지는 삶,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이라는 단어보다 더 큰 영역으로 성품으로서의 ‘신실’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 고백 중 하나가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신실하심을, 사랑하심을, 인도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실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여주신 적이 없는대 그저 믿기에, 신뢰하기에, 확신하기에 고백한 단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성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셨습니다. 자신이 죽은 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시며,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며, 인도하시는지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잠시 출애굽의 현장으로 시간을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앞에는 홍해가,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는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과 자신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모세가 외치고 있는 바로 그 현장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애굽기 14장 13~14절, 개역개정>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과 부르짖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가만히 서서 목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믿음’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신실’한 존재인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친히 보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출애굽기 14장 31절, 새번역>
하나님은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큰 능력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흔들리고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은 예수님 역시, 신실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순종’으로 이 땅에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신실’하신 예수님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당연히 그 다음은 수많은 믿음의 선배님들을 거쳐 ‘우리’에게 이런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신실한 그리스도인, 믿음을 삶으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 하나님께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믿음을 삶으로 보여주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우리의 이름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이 말씀이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명령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마태복음 5장 16절, 새번역>
생각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만, 믿는 사람들끼리만, 교회 안에서만 보여 지는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빛과 소금인 우리들은,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사람에게 빛을 비출 수 있어야 하고, 부패하지 않게 만드는 믿음을 보이는 신실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실의 가장 기초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대 하나는 충성이고, 하나는 진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성경에서도 해석을 이 두 가지로 나눌 때가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라디아서 5장 22절, 개역개정>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공동번역>
이 번역들은 서로 다른 번역을 한 것이 아닙니다. 충성을 기초로 하는 신실이던지, 진실을 기초로 하는 신실이던지, 충성에 진실을 더하고, 진실에 충성을 더한 이 두 가지를 기초로 하여 ‘신실’한 삶을 드러내는 것에 우리는 초점을 더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실이란 단어의 헬라어 ‘피스토스’ 역시 충성과 진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고 보니 충성과 진실을 기초로 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신실’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았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인이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직업은 유대인들을 괴롭히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왜 이 사람의 직업부터 설명을 드리는가 하면 도무지 ‘신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완전 반전드라마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가버나움은 행정 및 군사 중심지였기에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던 로마의 군대가 중요하게 주둔하고 있던 곳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 로마 군대를 지휘하고 있던 백부장이 예수님께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군대는 한 개의 군단이 6천명으로 편성되어 있었으며, 한 군단을 600명씩 10개로 나누고, 이를 다시 100명 단위로 나누어, 그 100명을 지휘하는 지휘관을 백부장이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당시 백부장은 오늘날의 군대조직에 비교하면, 구성인원은 중대장 정도의 보직에 해당하나, 당시의 인원동원능력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중대장(대위)보다 월등한 지위라 할 수 있으며, 특히 식민지역에서의 권한은 매우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은 실전 경험이 가장 많은 장교였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에 주둔했던 로마군대는 대개 당시 치안 유지와 식민지 주민의 반발 진압에 동원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의 적대감은 매우 골이 깊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이런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온 것이었습니다. 순간 제자들과 주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 것이 아닐까 긴장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의외의 말이 백부장의 입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다가와서, 그에게 간청하여 말하였다. "주님, 내 종이 중풍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5~6절, 새번역>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의외의 단어가 너무도 많이 등장해서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고백을 여기서 듣게 될 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특히 로마 군인들에게 ‘주인’은 오직 황제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지금 모두 앞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호칭을 통해 백부장이 예수님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신의 종을 위한 부탁이었습니다. 백부장에게는 군사 한 명조차도 그저 부하 한 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전쟁에서 죽는 것은 다반사였고, 부하에게 잘 대해주다가 쿠테타가 일어날 수 있기에 굉장히 엄격한 군법을 적용했던 로마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친히 자신의 부하도 아닌, 종을 위하여 예수님께 나아 왔던 것입니다. 자신의 종을 위하여 자존심을 내려놓고 부탁할 수 있는 백부장은 지금도, 당시에도 절대 쉽지 않은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자신의 종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 백부장이 어떤 성품의 사람이었는지 충분히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백부장에 대해서 바로 파악을 하셨는지 빠른 응답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서 고쳐 주마." <마태복음 8장 7절, 새번역>
그런데 여기서 모두의 탄성소리를 자아낼만한 고백이 다시 한 번 백부장의 입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의외의 단어입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나는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마태복음 8장 8~9절, 새번역>
셋째, 자신이 얼마나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충성과 진실로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셔 드릴 자격이 없는 죄인임을 고백했고,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병사처럼 자신도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충성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기서 다시금 확인해야 할 사실은 그가 백부장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그 지역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 앞에서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추며, 행동하는 것은 ‘진실과 진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믿음을 예수님께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심지어는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자신의 부하들 앞에서, 믿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백부장의 믿음을 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모두가 백부장의 충성과 진실을 직접 볼 수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백부장을 통해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평가는 우리들의 평가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평가를 통틀어 가장 높은 평가를 바로 이 로마 군대의 백부장에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셔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마태복음 8장 10절, 새번역>
정말로 탐이 나는 평가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수님조차도 만나본 적 없는 믿음의 사람이 바로 이름도 알 수 없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를 뛰어 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바로 가버나움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대의 백부장이라니! 이 선포는 이방인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준 선포였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예수님의 칭찬을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경기도 광주에서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경기도에서 이런 믿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믿음을 보거나 만나본 적이 없다. 정말로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다.” 이런 평가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 한 걸음 더 깊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이 믿음의 행동이 바로 자신의 종을 향한 사랑을 기초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믿음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자의 믿음은 보여 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은 결국 ‘신실한 사람’이라는 수식어로 그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하는 일생의 목표를 잘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백부장처럼 될 수 있습니다. 백부장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보인 백부장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시각에 그 종이 나았다. <마태복음 8장 13절, 새번역>
백부장의 예수님을 향한 신실함이, 사람들 앞에서 진실했던 모습이, 말씀에 충성하는 모습이, 종의 병을 낫게 만든 것입니다. 말씀하신 그 순간 병이 나았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와 확인한 백부장이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갔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가버나움 지역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그리고 로마에 돌아가서는 로마 교회를 세우는데 큰 도움을 준 신실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며, 훗날 바울이 로마에 왔을 때 그를 도왔을 신실한 동역자였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를 닮기 위하여, 이미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리고 백부장이 보여준, ‘신실’을 우리의 성품으로 소유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성품을 소유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는 물론이고,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쉽게 이야기하면, ‘믿는 사람답게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터 위에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기초가 되는 삶, 사람들을 향한 진실이 기초가 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도, 사람들에게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조건이 아닙니다. 신실해도 되고, 신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들어야 할 말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예수님, 신실한 백부장 그리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믿음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식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연기로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말씀이 삶이 되어 ‘있는 그대로의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소유한 예수를 닮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너무도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삶입니다. 사랑하고 기뻐하고 화평하고, 인내로 친절하며, 말씀 중심의 선함을 소유한 이들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눈으로 보여 지는 삶이 바로 ‘신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서 이 ‘신실’이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가족부터, 교회에서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에서부터 점점 이 신실이 드러나 더 많은 영역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드러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이 ‘신실’이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지켜야 할 때 지킬 줄 아는 충성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거짓말 하지 않는 진실한 입술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더 큰 일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충성과 진실을 기초로 한 신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마태복음 25장 21절, 새번역>
이제 더 이상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믿음을 보이는 삶, 신실한 삶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삶을 시작할 우리 모두를 응원하면서 여러분들이 반드시 듣게 되실 말씀을 함께 선포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골로새서에 등장하는 3명의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와 함께 종이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1장 9절, 새번역>
내 모든 사정은 두기고가 여러분에게 알려드릴 것입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함께 종된 사람입니다.내가 그를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의 사정을 알고 마음에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4장 7~8절, 새번역>
그리고 사랑 받는 신실한 형제인 오네시모도 같이 보냅니다. 그는 여러분의 동향인입니다. 그들이 이 곳 사정을 모두 여러분에게 알려 드릴 것입니다. <골로새서 4장 9절, 새번역>
사랑하고 축복하는 신실하신 에바브로 같은, 두기고 같은, 오네시모 같은 동역자 여러분! 앞으로의 우리 모든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편지에 등장하는 인물로 표현되어지길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결단찬양 -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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